[백창욱 칼럼] 고난과 부활의 세월호여

4월 2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행령규탄 삭발기자회견'에서 한 어머니의 발언모습은 마음을 저미게 했다. 그 어머니는 미친 상태와 안 미친 상태 사이에서 간신히 외줄을 타는 듯이 보였다. 아니 이미 미쳤지만, 자식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다는 게 정확하리라.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한이 맺혔다. 무엇보다 이 나라 대통령에 대해서, 그리고 이런 끔찍한 나라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양 살아가는 다른 부모들에 대한 원망이 깊었다.

세월호 부모들이 간절히 바라는 일은 자식이 돌아와서 여느날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소박한 꿈은 이미 물 건너 가 버렸다. 그러니 이제 우리 자식이 왜 죽어야 했는가, 어떻게 멀쩡히 살아 있는 아이들이 수장돼 버렸는가에 대해 이유라도 알고 싶어서 진상규명을 원하는 데, 정부는 '돈이나 받고 떨어져라'는 식이니, 부모들은 악에 받칠 수밖에 없다. 그 어머니는 "돈은 니나 쳐 먹고 우리 아이 살려내라"고 절규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의 농성장에서 삭발을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세월호 가족협의회는 삭발식을 하며 정부에게 배보상 절차 전면 중단과 조속한 세월호 선체 인양, 시행령안 즉각 폐기를 촉구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의 농성장에서 삭발을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세월호 가족협의회는 삭발식을 하며 정부에게 배보상 절차 전면 중단과 조속한 세월호 선체 인양, 시행령안 즉각 폐기를 촉구했다.ⓒ양지웅 기자

일 년이 지나 다시 맞은 부활절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작년 이맘때, 기독교 절기인 부활절을 앞둔 고난주간 중에 참사가 벌어진 까닭에 우리는 진짜 고난주간을 보내야 했다. 그 뒤 자식을 잃은 부모들과 뜻을 같이 하는 민주시민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지난한 투쟁을 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분노와 한숨만 나오게 했다. 하여간 그 결과가 '세월호 특별법'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 때문에 금년에도 여전히 아프고 답답한 고난주간을 보내야 했다. 정부가 만든 특별법 시행령은 다시 한 번 이 정부의 악마성을 보여줬다. 부모들과 민주시민들은 '시행령을 폐기하라'는 새로운 구호를 외쳐야 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죽을 고생 하며 간신히 만들어 놓은 특별법은 투쟁한 보람도 없이 침몰 위기에 몰렸고, 진실규명은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작년 7월 21일 한전과 경찰이 청도삼평리 평화공원을 새벽 미명도 되기 전에 기습 침탈한 이후 할매들과 주민, 대책위 일꾼들과 연대자들은 공사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매일매일 하루에도 수차례 지옥, 아수라장, 생난리, 인간의 밑바닥을 보는 고통을 겪었다. 정말이지 하루하루 견디고 버티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그 때 우리를 버티게 해 준 힘은 세월호 부모들이었다. "자식을 잃은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이 겪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심정으로 견뎠다.

나는 부활절 설교를 준비하면서 특히 세월호 부모들을 의식했다. 기독교에서 부활은 가장 핵심인 사건이고 신앙의 정수이다. 그래서 기독교도들은 한 주 전인 고난주간에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사망을 이기신 부활절을 기쁨으로 맞이한다. 이 날이 정녕 이분들께도 기쁜 날이어야 할 텐데. 정녕 위로와 기쁨이 돼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준비를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이분들은 이미 부활을 살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부활정신에 깨어 있었다. 예수께서 사흗날에 일으켜 지셨듯이, 부모들은 일어나고 또 일어났다. 참사 이후 일 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고비가 있었는가. 첫날부터 부모들은 이미 죽었다. 한시가 급한 구조 앞에서 정부가 보인 늑장대응과 무능함, 전시행정에 부모들은 분노를 넘어 넋이 나갔다. 어떻게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할 수가 있는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때마다 체념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자신을 던졌다. 어떡하든 정부를 재촉하고 여론을 일으키고 온 나라가 가만있지 못하게 했다.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라는 육백만 명 서명의 원천은 부모들이 보여준 부활의 힘이었다.

지난 일 년은 그런 일의 반복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정부가 시행령조작으로 장난을 쳤다. 진상규명에 대한 의무와 책임은커녕, 끊임없이 해태하고 발목잡고 뒷걸음질 치는 정부의 태도에 질려서 다 팽개쳐 버릴 수도 있을 텐데, 부모들은 단번에 치고 일어났다. 삭발을 한 채 아이들 영정을 들고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도보행진을 했다. 그동안도 얼마나 걸었던가. 걷는 일에 진력이 났지만, 부모들은 마다하지 않고 다시 걸었다. 이러한 부모들의 모습은 나에게 새로운 부활을 보여줬다. 부활은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님을, 슬픔과 절망이 압도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것임을. 그래서 옛 세상을 극복하고 새 세상으로 가는 것임을 확실히 깨우쳐줬다.

4일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합동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선체 인양을 촉구를 위한 도보 행진을 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4일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합동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선체 인양을 촉구를 위한 도보 행진을 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세월호 이후,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흔히들 말한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야 한다고. 이 명제에 동의한다. 그런데 어떤 내용으로 달라져야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87년에 우리는 독재타도, 정치의 민주주의가 급선무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자본이 이렇게 괴물이 될 지 별로 예상하지 못했다. 정치만 바뀌면 다른 것은 다 잘 될 것으로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정치는 정치대로 퇴행해 버렸고, 또한 그에 못지않게 금권이 더욱 악랄하고 비열하고 이 나라 공공성에 심각한 회의를 던지는 실체가 돼 버렸다. 세월호 참사도 결국은 더 많이 자본을 탐하려는 욕심이 낳은 재앙이다. 그리고 정치의 물리력을 행사하는 공권력은 자본 영역확장에 문제해결업체로 전락해 버렸다.

지금 이 나라 곳곳에서 국민을 죽이고, 죽음으로 몰고 가고, 신음에 빠뜨리는 장기투쟁현장의 공통점은 오직 하나다. 정치권력이 자본의 용역이 돼서 최우선당사자인 해당국민을 배제하는 현실이다. 미국 해군기지를 세우려는 제주강정, 에너지마피아들의 탐욕의 희생양인 밀양청도 할매들, 회사의 부실을 고스란히 떠맡아서 죽음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 노후 핵발전소의 공포 속에 살고 있는 경주 월성과 기장 고리 지역민들을 보라. 또 철거민을 도시테러분자로 낙인찍은 용산참사도 있었다. 이들은 정치권력과 자본이 결탁한 한 줌 탐욕세력에 속절없이 벼랑으로 밀려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그런 끝없는 자본의 욕심이 어린 학생들과 선량한 시민들에게까지 확장해 버린 것이다. 그들도 자신들의 탐욕이 이런 처참한 결과를 낳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보행진을 마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진상규명과 온전한 인양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서 딸의 영정을 어루만지고 있다.
도보행진을 마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진상규명과 온전한 인양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서 딸의 영정을 어루만지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제 어찌할 것인가? 이대로 계속 금권은 끝없이 탐욕을 확장할 것인가, 이 나라의 공공성이 무너지든, 양극화가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지든 상관하지 않고 계속 이대로 갈 것인가 말이다. 그리고 정치권력은 지켜야 할 가치를 상실해 버리면서 계속 억지애국심을 강요하며 있는 자들의 배만 불려줄 것인가에 대해 답해야 한다.

청도 삼평리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는 한전에게 우리는 수도 없이 물었다. 너희가 송전탑 세우느라고 짓밟히는 주민들, 할매들의 생존권, 재산권, 행복권은 어떻게 하느냐고? 그들은 묵묵부답, 경찰에 기대어 철탑세우는 일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그리고 철탑을 세운 지금은, 썰물 빠져 나가듯 빠져 나갔다. 자기들이 짓밟은 삼평리가 어찌 되든 상관하지 않고, 도망쳤다. 자본과 정치권력이 일하는 방식이 이런 식이어서는 안된다. 성경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은 나라가 망하고 말 것이다. 이스라엘이 꼭 그렇게 하다가 망했다. 구약 예언서는 야웨 하나님을 따르고 정의를 실현하고 약자를 위하라고 수없이 외쳤지만 돌이키지 않고 오직 탐하기만 하는 지배세력들에 대한 심판선언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이 무너져서 망한 줄로 알지만, 그 전에 이미 백성들의 마음에서 나라는 무너졌다. 성이 함락된 것은 지킬 가치가 사라진 나라의 결과일 뿐이었다.

권력의 속성이 원체 불의하고 오직 관심사는 권력유지뿐이지만, 그래도 대의민주주의제 아래에서 권력을 선택한 유권자들을 봐서라도 양심도 좀 회복하면 좋겠다. 세월호 부모들도 이 나라 국민이고 유권자이다. 이들에게 인간적인 도리를 제대로 하라. 기자회견에서 그 어머니는 이렇게 외쳤다. "정신 좀 차립시다! 뒤집어 봅시다!"라고.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정말 뒤집히고 싶지 않으면 진실을 인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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