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꽃다운 재활치료사들이 노조를 만든 사연?

“지부장님”이라는 호칭에 그는 멋쩍은 듯 웃었다. 아직 앳돼 보이는 외모의 심희선(29) 씨는 민주노총 보건의료노동조합 고려수요양병원 지부장이다. 그는 20대 중후반 재활치료사 등 30여명과 함께 올해 4월3일 노조를 만들었다. 그래서 “요즘 회사 곳곳에서 눈총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재활치료) 일이 보람되고 자랑스러워요. 오래 일하고 싶어서 노조를 만들었습니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느껴졌다. 꽃다운 나이의 재활치료사들은 왜 노조를 만들었을까?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오후 그가 일하는 서울 금천구 고려수요양병원(이하 수병원)에서 이들이 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들어봤다.

고려수병원 노조를 만든 심희선(29) 지부장
고려수병원 노조를 만든 심희선(29) 지부장ⓒ민중의소리

“디스크·근골격계 질환 달고 살는 치료사...
병원은 커졌지만, 처우는 더 열악”

심 지부장은 이야기 도중 습관처럼 손목을 털었다. 엄청난 무게를 견디며 물리치료를 하는 치료사들에게 일종의 직업병 같은 습관이라고 그는 말했다. 반년 전 100kg에 가까운 환자를 치료하다 손가락 골절을 당한 사연을 자랑스럽게 설명하기도 했다. "디스크가 터져(?) 치료사를 그만둔 동료들에 비하면 소소한 부상”이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수병원은 기계 대신에 치료사가 직접 손으로 하는 수(手)재활치료로 명성이 높다. 그래서 뇌졸증 등 몸을 잘 가눌 수 없는 중증 환자들이 주로 찾는 병원이다. 수병원은 현재 부천, 구로, 금천 등 3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고, 올해 말 강남 4호점 개원을 앞두고 있다. 그가 일하는 금천점만 해도 200병상 중 평균 180여명의 환자들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제가 근무한 5년 동안 병원은 점점 커졌지만, 직원들 근무환경은 점점 열악해졌어요.”

그는 치료사 일과를 설명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근무시간을 30분 단위, 16타임으로 나눕니다. 치료사들은 이 시간중 하루에 10~13타임 물리치료를 합니다.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특성상 한 환자 치료에도 많은 힘이 들어갑니다. 점심시간이 지날 때면 몸이 녹초가 될 정도에요. 몸에 힘이 빠진 상태라 잘못하면 치료사뿐만 아니라 환자 또한 부상을 당할 가능성이 커져요. 그래서 적절한 휴식시간과 휴게공간을 보장하라는 건데 병원 측은 치료사들의 요구에 귀를 닫고 있습니다.”

실제로 수병원 치료사들은 환자 치료가 진행되는 치료실 구석 간이의자 등에 앉아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휴식 중간에도 혼자서 환자치료가 벅찬 동료를 도와주느라 휴식시간을 소비하는 경우도 많았다.

“작년에는 병원이 인력부족을 이유로 매년 15개 연차를 6개로 줄였어요. 쉬고 싶어도 그만두지 않으면 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추가 근무수당, 휴일수당 미지급은 물론이고, 일하다 부상을 당해 산재신청을 한 사례도 전무합니다. 제가 (반년전 골절 사고로) 유일하게 눈치를 보며 산재를 신청한 직원입니다.”

고려수병원 재활치료사들이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고려수병원 재활치료사들이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고려수병원

“우리 병원 근속연수 3.4년,
‘오래 일할 수 있는 병원’ 만들려 노조 설립했지만...”

심 지부장은 “5년 후 미래가 불투명에서 노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우리 병원 치료사 근속연수가 3.4년입니다. 치료사 70여명 중 60여명이 5년차 이하입니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업무 부상 등을 이유로 병원을 떠난 동료가 많아요. 연차가 쌓일수록 높아지는 연봉 때문인지 병원이 5년차 이상의 치료사들에게 권고사직을 권유하기도 합니다. 5년이 지나면 어떤 이유로도 병원에서 계속 일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거죠.”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봤지만 회사는 귀를 닫았고, 직원들의 마음 속에 불만이 쌓여갔다. 심 지부장은 개별적으로 동료들을 만나 노조 설립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1년 6개월의 노력 끝에 지난 4월3일 30명 규모(직원수 130여명)의 노조를 만들었다. “오래 다닐 수 있는 병원을 만들자”며 뭉친 노조는 병원 측에 노조설립 사실을 알렸고, 단체교섭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노조활동에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생겼다. 일주일 뒤 같은 병원 동료 70여명이 가입한 한국노총 철도산업노조 소속 제2노조가 생겼고, 병원 측에서는 인원수가 많은 제2노조와 교섭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 지부장은 병원 측으로부터 ‘소수 노조와 교섭하지 않겠다’는 구두통보를 받은 상태다.

“우리는 5년짜리 소모품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닙니다.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는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노조를 만든 건 병원에 손해를 끼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오랫동안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서입니다. 좋은 동료들과 안전한 근로환경에서 잘릴 걱정 없이 일하고 싶습니다. 그 정도는 요구할 수 있잖아요. 이게 과한 요구인가요?”

그는 “1인시위를 해서라도 병원 측의 부당함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인원이 많은 복수 노조가 생겨서 노조 활동이 힘들다고, 병원이 우리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다고 부당한 것을 모른 척할 수 없잖아요. 1인시위를 해서라도 내부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병원의 문제들을 알릴 겁니다.”

인터뷰 직후 심 지부장은 노조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병원 앞으로 급히 자리를 옮겼다. “10년 후에도 수병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내용이 쓰인 피켓을 든 임미선(27) 부지부장, 김지윤(28) 사무장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5년짜리 소모품이 아닙니다” 재활치료사들의 간절한 호소가 병원 인근에 울려퍼졌다.

고려수병원 노조 간부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미선(27) 부지부장, 김지윤(28) 사무장, 심희선(29) 지부장
고려수병원 노조 간부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미선(27) 부지부장, 김지윤(28) 사무장, 심희선(29) 지부장ⓒ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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