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 칼럼] 대법관 박상옥과 피고인 강기훈

91년 2월, 나는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대학 1학년 때 이미 사법고시가 내 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것은 역사와 민족을 위해 살자는 당시의 젊은 청춘들처럼 훌륭한 이유는 아니었다. 단지 사법고시 과목 중에 내가 정말 좋아하지 않는 과목이 반절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대는 얼마나 놀기에도 좋은 학과였던가. 고시공부를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인원이 많아 출석을 부르다 시간이 다 가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출석을 부르지 않았고 그 흔한 보고서 숙제도 없었으니 고시공부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놀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천국과 같은 학과였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보내고 졸업을 즈음하여 진로를 고민하던 중 법을 시험이 아닌 법으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갑작스런 호기심이 발동하여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전공을 선택할 때는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해보기로 작정하고 농업 관련법을 한 번 해보자는 나름의 의욕도 있었다. 그렇게 난 농업 관련 단체에서 공부하며 드디어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제 나의 길은 당연히 학문의 길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어찌 보면 그 당시에는 당연한 것이었다. 8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새로운 바람 중 하나가 학문에서 길을 찾고자 하는 것이었고 학술단체협의회가 생기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학계로의 진출이 모색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1991년의 억울한 죽음과 ‘유서 대필’이라는 누명

나의 이런 기대는 몇 달 가지 못했다. 그해 4월 우리나라에서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이 또 발생했다. 불과 5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다시 한 청춘을 잃었다. 그것도 쇠파이프로. 그리고 뒤를 잇는 죽음들. 그때는 스스로의 길을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조차 분노하게 만들었고 도서관이 아닌 거리로 나서게 만들었다. 다시 거리는 87년 6월로 돌아갔다. 이번에야 말로 진짜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사람들을 다시 거리로 나서게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지난한 싸움이 다시 시작된 줄 알았다. 그러나 보름도 채 못 되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건이 벌어졌다. 정권은 한 번 당한 일을 두 번 당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일까. 이 모든 억울한 죽음이 마치 배후세력에 의한 것인 양 몰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사람이 유서를 대필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을 갔다. 그리고 20년도 훌쩍 지난 지금 그 모든 것이 조작임이 드러났다. 한 사람이 이렇게 억울한 삶을 사는 동안 그를 이렇게 만든 검사라는 이들은 다들 높은 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있는 게 21세기의 대한민국이다. 91년의 우리나라는 너무도 뻔한 검찰의 조작과 이를 앵무새처럼 되뇌는 언론에 의해 억울한 죽음은 ‘죽음의 굿판’, ‘죽음의 블랙리스트’라고 더렵혀졌으며 국무총리의 희생적(?) 밀가루 뒤집어쓰기로 완전히 묻혔다.

조선일보 1991년 5월 5일자 김지하의 기고
조선일보 1991년 5월 5일자 김지하의 기고ⓒ자료사진

어찌 이런 뻔한 놀음으로 인한 억울함이 91년뿐이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이런 뻔한 속임수에 번번이 속아 넘어간다. 그리고 이런 속임수의 주연은 정권이 아니다. 그것은 매번 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뽑는다는 그 사법고시에 합격한 수재들이, 사법연수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야 임용된다는 검사와 판사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억울함은 법에 호소하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신뢰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은 언제나 정권이었다. 그때나 지금에나 말이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법조계의 천박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19년을 고스란히 상급학교의 진학을 위한 공부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법대에 진학한다. 그 중 특출한 몇 백 명이 해마다 사법고시에 합격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 보자. 스무 살 갓 입학한 법대생에게 사법고시는 절대적인 사명이었을 것이고 그 사명을 열과 성을 다해 이루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검사와 판사라는 자리가 주어졌다. 이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자신 앞에 서있는 그 어떤 사람의 삶에 대한 판단이다. 그러나 검사와 판사라는 자리에 서기까지 그들이 했던 경험이라고는 오로지 공부밖에 없다면 그들은 한 사람의 삶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그들에게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라면 했을 법한 사고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들은 그 어떤 평범한 사람들보다 세상에의 경험은 얕기만 할 것이다. 그런 그들이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그들에게 주어지는 기준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맛을 아는 그들이 자신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이들의 기준을 따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들의 관심사는 그들이 가진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지 법이 그들에게 준 사명도 아니며 국민들이 그들에게 보내는 신뢰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친가? 물론 그렇지 않은 검사와 판사도 있을 것이고 싸잡아 욕먹는 것 역시 억울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권력 속에 있으면서 그런 권력의 위험을 서로 경고하지 않는 침묵 역시 묵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권력에 취한 법조계의 천박함

그들은 어떻게 권력을 누리는가? ‘의심가면 피고에게 유리하게’라는 말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일컫는 말이다. 즉, 법은 99명의 죄인을 놓칠지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대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헌법으로 말이다. 그러나 당신들에게는 그것은 그냥 많은 법조문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검찰은 아주 조그만 사실도 슬쩍 언론에 흘려 부풀리기 일쑤이며 특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건일수록 이런 언론 흘리기는 그 즉시 효과를 발휘한다. 어떤 것은 과장되고 어떤 것은 축소되어 과감한 끼어 맞추기가 시작되면 이미 판결은 난 것이나 다름없다. 여론재판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새 검사와 판사라는 자리를 막론하고 그 여론재판의 결과물을 그대로 판결로 드러낸다. 마치 그것이 정의라는 듯이. 언론의 끼어맞추기에 세뇌된 사람들은 드디어 예상했던 판결이 나왔다는 안도와 함께 정의실현의 만족감을 느낀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한다. 이게 우리나라에 헌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억울하면 당신들이 내린 결론(그것이 기소이건 판결이건 간에 말이다)이 수십 년 지나 재심에서 무죄가 되는 사건들을 돌이켜 봐라. 왜 뻔한 사건에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으면, 왜 뻔한 사건에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 언론이 그것을 기사화하는지 생각해 봐라.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면 굳이 기사화할 일이 아니다. 그런 일들은 좀처럼 없었기에 화제가 되는 것이다.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 씨가 지난해 2월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재심 무죄판결을 받은 후 기자회견을 갖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 씨가 지난해 2월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재심 무죄판결을 받은 후 기자회견을 갖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양지웅 기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오늘날 법조계의 천박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들이 그동안 해왔던 그 무수한 사건들, 그 사건들 중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권력놀음의 산물이었던가에 대해 반성해라. 그리고 그 반성의 결과물을 보여주어라. 특히, 1987년 가장 부끄러운 역사 속에 가장 부끄러운 짓을 저지른, 고문으로 한 생명을 앗아간 경찰들을 보호하려고 자신의 임무를 망각한 채 엉터리 재판을 이끌었던 주제에 오늘 대법관이라는 자리에서 또다시 부끄러운 역사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 자리에 앉은 당신! 당신부터다.

아, 그리고 사족으로 한마디 더. 그런 대법관 임명에 불참으로 항거했다고 우겨대는 정치인들, 그리고는 유감표명을 사과라면서 받아들이는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인들, 당신들도 천박하기는 매한가지다.

오는 14일은 1991년 분신 자결한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누명을 썼던 강기훈씨의 재심 대법원 선고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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