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남 칼럼] 급식은 단지 ‘밥’이기만 할까

홍준표가 남긴 무상급식중단의 본질

‘감사 없이 지원 없다’며 공식적으로 시작된 경남지역 학교급식의 파탄은 홍준표 도지사의 독특한 정치적 위상, 정체성과 정략적 접근, 그리고 경남도의회의 압도적인 정치지형이 만들어낸 선정적·갈등적 의제를 지방교육자치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교육주체의 역량이 넘어서지 못하던 정치적 배경을 안고 있다.1) 경남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상급식정책의 원상회복운동’은 벌써 8개월째 되었다. 고 성완종 회장이 몰고 온 불법정치자금 파문이 본격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교육 불평등이 심화된 지금은 서민교육에 복지재원이 집중되어야’ 한다는 홍 지사는 선별복지와 서민교육이라는 제법 단단한 논거에 기댄 채 경남의 교육주체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처럼 탁월한 분류를 가능하게 하는 ‘교육 불평등’이라는 현실은 과연 누구로부터, 그리고 무엇에서 시작되었고 심화되는지를 성찰하였다면 그 해답을 구하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2)

급식은 교육과 그 인권의 문제

학교급식에서 강요된 가난의 입증은 자존적 인식의 성장을 돕는 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폭력이며, 현재 학부모들의 엄청난 연대에 막혀 18개 시·군 어느 곳에서도 관련 조례가 제정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경남도가 <경상남도 서민자녀 교육지원에 관한 조례>에 의해 강행하는 허울 좋은 교육복지카드 시혜는 ‘빈자’를 향한 차별적 신분등록이나 마찬가지다.(*편집자 주 - 이 글을 쓴 뒤인 18일 진주시의회는 새누리당 단독으로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를 제정했다) 차별은 비겁한 강자의 두려움을 감추려는 논리에 지나지 않으며, 영구적 착취를 낳는 씨앗이다. 따라서 지금의 사회와 국가를 유지하는 학교와 공교육은 그 차별이 없을 때 비로소, 적어도 그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결국, 복지를 학교와 공교육에 올곧게 결합하려면 그로 인한 차별을 스스로 뛰어넘지 않고서는 이미 학교가 아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반교육의 정치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그가 어느 국적, 소득, 출신지역, 학생 여부 등에 상관없이 밥 먹을 권리, 즉 인권을 갖기 때문이다.

부정의에 대한 비타협적 인식

이미 학교급식만큼은 무상으로 제공된다는 명제에 너무나 익숙한 초등학생도 홍 지사를 힐난한다. 아이들의 밥상의 가치를 차버린 행정의 권력남용, 그리고 보다 건강한 식재료를 확보하려는 노력과 성찰보다는 밥상 위를 통제하려는 반교육의 발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아병적 영웅들의 시대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정의’에 대한 비타협적 인식의 교육이다. 따라서 이번 무상급식 사태의 배경이나 쟁점 등에 대하여 교육주체이면서 급식의 당사자인 학생들이 충분히 토론하여야 한다.

학부모들은 하동지역 34개 초·중·고등학교 3784명의 학부모 가운데 78.3%에 해당하는 2964명이 서명 제출한 ‘무상급식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경남도의회 사무처에 전달했다.
학부모들은 하동지역 34개 초·중·고등학교 3784명의 학부모 가운데 78.3%에 해당하는 2964명이 서명 제출한 ‘무상급식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경남도의회 사무처에 전달했다.ⓒ구자환 기자

급식‘은’ 이미 교육이자 학생인권의 문제

헌법재판소는 의무교육 대상인 중학생의 학부모에게 급식관련 비용 일부를 부담하도록 하는 학교급식법이 의무교육의 무상 원칙을 위반하였는지 묻는 헌법소원사건에서, 학교급식을 의무교육의 대상으로 할 것인지는 국가의 재정상황과 입법정책의 문제라고 빗겨 나가고 있지만, 학교급식은 교육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확인한다.3) 즉, 보충적 성격을 지니므로 의무교육의 균등보장을 위한 핵심은 아니라면서도 학교급식은 아이들에게 한 끼 식사 제공의 의미를 넘어 교육적 성격을 갖는다고 보았다.

‘급식은 교육’의 성질을 가지므로 학교급식은 아이들에게 차별 없는 교육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인권 차원의 사회적 의제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단계별 또는 전면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별 없는 무상급식’의 흐름을 좌파의 발상이라며 정치적 덧칠을 하는 데에는 학교에서의 무상급식을 바라보는 인식에 근원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이 학생인권을 옹호하고 이를 튼튼히 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전혀 못하고 있다. 비록 ‘급식은 이미 교육의 문제’라고 주장하더라도 이를 학생인권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는다면 요즘처럼 정치적 파고 속에서는 언제든지 차별적 복지로 왜곡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무상급식 자체만으로도 학생들의 인권과 복지를 확대한 새로운 노력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자유로움과 차별금지라고 하는 인권의 정통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학교에서의 무상급식은 억압과 차별의 공간으로 바뀔지 모른다.4)

급식경비를 지원받아 공짜로 밥을 먹어서 다행이니 사회복지에 부합한다는 생각은 학생인권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정치적 단견이다. ‘차별적’ 무상급식은 특정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학생들에 특혜를 허용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는 양립할 수 없는 낙인의 조건을 그들에게 부과하게 되는데, 이는 유네스코의 <교육에서의 차별금지협약> 제3조가 말하는 교육에서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 아울러 ‘차별적’ 무상급식이 실시되면 어떤 학생도 사생활과 주거 등 학생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바로 무너진다. 특히 유엔경제사회위원회의 ‘교육의 권리에 관한 특별보고관’이 제시한 국가의 의무 가운데 ‘교육의 접근가능성’을 고려할 때, 차별적 무상급식은 직간접적인 교육비용의 장벽을 제거하여 모든 학생들이 교육에의 접근성을 확보하게 하는 데 실패하는 정책이 된다. 따라서 학교무상급식은 모두에게 차별 내지 역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학생인권의 시작을 알리는 첫 발걸음이다.5)

학교급식을 무상으로 하려는 정당성은 법과 제도에 의해 포장된 권리담론이 아니라 인권, 즉 노동하거나 공부하다가 또는 놀다가 배고프면 당연히 배 속을 채워야 하는 ‘몸’의 자유로운 반응에 따른 것이다. 학교교육을 보편화하여야 비로소 국가와 사회가 지탱된다면 그 학교에서 교육과 학습, 그리고 배움을 공유하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한 그릇의 밥’은 자유로움과 같음이 흔들림 없이 고려되는 인권의 내용이다. 금전과 교환적으로만 성립하는 급식권리라는 식과 마찬가지로 의무교육의 반대급부로서 의무급식이라는 권리로 포장되어 있는 논리는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6)

급식을 받으며 즐거워하는 어린이들
급식을 받으며 즐거워하는 어린이들ⓒ뉴시스

경남급식운동의 의미:정치적 언어를 뛰어넘는 실천들

교육주체로서의 학부모가 교육현장에서 어떤 위상과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관한 경험의 부족을 해소하는 움직임이 지역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매우 자발적이고 대중적인 이런 움직임은 교육주체로서의 역할을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성할지를 고민하는 주민으로서의 책무를 각성하는 데 나아가고 있음에 주목한다.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는 이 정치적 언어의 퍼포먼스는 이미 파산선고를 받았고, 급식 또한 교육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금 경남은 지역마다 차별급식과 차별교육을 저지하려는 교육주체의 외침이 큰 흐름을 잇고 있다. 부디 이런 정치적 각성이 정치 상품으로 포장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교육의 자치와 그 인권은 결코 진보교육감의 당선정도로는 결코 얻을 수 없음을, 주민과 학부모들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교육주체임을 각성하고 비타협적으로 실천할 때 얻을 수 있음을 보고 있다. 경남에서 사실상 유상급식으로 전환된 4월 이후 무상급식 지키기 주민행사가 경남 곳곳에서 개최되어 지역마다 수백 명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운집하고 있는데, ‘밥은 교육이고 민주주의’라는 가장 본질적인 구호까지 나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7)

지역의 형편에 따라 무상급식 의제에서 한 단계 진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인구 5만 여명, 4개의 고교, 그 학생의 수가 1,800여 명의 경남 고성군에서 기초자치단체의 재정지원만으로 고등학생의 무상교육이 가능한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제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현재 무상급식 논쟁에서 ‘학교교육에 관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성이 어디까지인지’를 주민들이 실제 고민하고 있어야 한다.

도지사 소환으로 갈무리될 문제가 아니다

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정치적 여건이 딱 들어맞는다면 고려할 수 있거나 어쩌면 고려해야 하는 의제이긴 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이 너무 많다. 주민소환의 성공에 관한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런 법률운동 자체가 올바르게 평가되기 위해서는 주민소환이라는 합법적 법률운동으로 곧바로 뛰어들 게 아니라 광범위한 법이념 논쟁과 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 주민투표나 조례개정운동과 달리 주민소환은 그 과정보다 결과(즉, 퇴진)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운동의 성격 때문이다. 만약 의무교육에서 국가와 지자체의 역할에 관한 선전 및 교육, 공교육을 담당하는 학교교육에서 교육의 내용이 정말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 학부모의 참여와 역할은 학교의 안과 밖에서 어디까지인지, 교사회와 학생회의 법정기구화는 불가능한지의 논쟁, 학생인권은 왜, 어떻게 보장되어야 하는지, 교육과 학예에 관한 지자체와 시도의회의 책무성 논쟁 등 폭넓은 법이념 논쟁과 숙의가 선행되지 않은 채 주민소환운동이 진행된다면, 현재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학부모 등 주민들의 정치적 움직임(각성, 조직 등)을 협소하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결과, ‘무상급식’, ‘의무급식’, ‘보편급식’, ‘차별 없는 학교급식’ 그리고 ‘급식은(도) 교육이다’ 등 교육자치의 다양한 가치를 이롭게 하는 건강한 의제들이 순식간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진주시 지수면 학부모 10여명은 이날 지수초등학교 교내에서 가마솥을 설치하고, 초등학교 학생과 중학교 학생 약 70여명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했다.
진주시 지수면 학부모 10여명은 이날 지수초등학교 교내에서 가마솥을 설치하고, 초등학교 학생과 중학교 학생 약 70여명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했다.ⓒ구자환 기자


학부모에 의한 학교급식지원조례 개정운동의 의미

현재 주된 흐름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경남의 몇몇 지역에서 고민하고 실제 준비하는 시·군의 학교급식지원조례 개정운동 역시 학부모 등 교육주체들이 상호간 열정과 연대를 통해 주도되어야 하고, 광범위한 법이념 논쟁 속에서 합법적 법률운동의 함정에 스스로 갇히지 않는다면 긍정적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현행 <지방자치법>은 주민들이 조례제정 또는 개폐할 것을 단체장에게 청구할 수 있을 뿐이고 이를 심의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의회에 맡겨져 있으므로 주민청구조례안을 작성하고 마련하는 과정에서 학교급식의 본질과 차별 없는 급식을 위한 조례안이 구성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 물론 시·군의회에서도 이번 무상급식중단과정에서 나타난 무능력과 비겁함을 성찰하는 혁신적 개정조례안이 준비될 수 있을 것이며 이미 양산시의회와 김해시의회에서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도지사소환운동과 다른 점인데, 주민청구조례안의 내용을 구성하면서 직접민주주의의 가치가 발현된다면 2015년의 경남은 차별교육을 반전시킨 빛나는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8) 이 조례안에는 이번 무상급식중단의 배경과 이를 극복하려는 저 수많은 학부모들의 열정과 연대가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학교급식은 학교가 존재하는 한 국가와 지자체가 제공하여야 하는 교육적 성격을 지녔다는 점, 무엇보다도 학교급식에서는 자신 및 보호자의 소득이나 지역 등을 이유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권의 가치가 담겼으면 한다. 물론 이에 대한 정치적 시비는 충분히 예상되지만 경남의 학부모들은 능히 이를 넘을 것이다. 이미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정치적 각성과 그 실천적 열정은 저 멀리 달리고 있다.

주1) 고영남, 무상급식토론회(친환경무상급식지키기 경남운동본부 주관) 지정토론문(2015.3.27/경남도의회 대회의실); 고영남, “무상급식은 복지가 아닌 교육과 그 인권의 문제다.”, <김해아이쿱생협> 2015년 봄호(29호) 소식지 참고.
2) 이 칼럼의 대부분은 <친환경무상급식지키기 김해운동본부>가 마련한 “김해 학부모·학생 만민공동회”(2015.4.24./김해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의 내 발제를 보완한 것이다.
3) ‘헌법 제31조 제3항에 규정된 의무교육의 무상 원칙에 있어서 의무교육 무상의 범위는 원칙적으로 헌법상 교육의 기회균등을 실현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비용, 즉 모든 학생이 의무교육을 받음에 있어서 경제적인 차별 없이 수학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비용에 한한다. 따라서 의무교육에 있어서 무상의 범위에는 의무교육이 실질적이고 균등하게 이루어지기 위한 본질적 항목으로, 수업료나 입학금의 면제, 학교와 교사 등 인적·물적 시설 및 그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인건비와 시설유지비 등의 부담제외가 포함되고, 그 외에도 의무교육을 받는 과정에 수반하는 비용으로서 의무교육의 실질적인 균등보장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비용은 무상의 범위에 포함된다. 이러한 비용 이외의 비용을 무상의 범위에 포함시킬 것인지는 국가의 재정상황과 국민의 소득수준, 학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및 사회적 합의 등을 고려하여 입법자가 입법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학교급식은 학생들에게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영양공급 차원을 넘어 교육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교육적 측면은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학교 교육 이외에 부가적으로 이루어지는 식생활 및 인성교육으로서의 보충적 성격을 가지므로 의무교육의 실질적인 균등보장을 위한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이하 생략)(헌재 2012.04.24. 2010헌바164)
4) 고영남, “차별 없는 무상급식은 학생인권의 첫 걸음”, <국회보> 제521호(2010년 4월호), 120쪽 이하 참고.
5) 고영남, “무상급식은 모든 학생에게 차별 없이”, <경향신문> 2009년 12월 19일자 칼럼 참고.
6) 앞의 무상급식토론회(친환경무상급식지키기 경남운동본부 주관) 지정토론문(2015.3.27.) 참고.
7) 앞의 김해 학부모·학생 만민공동회(친환경무상급식지키기 김해운동본부 주관) 발제문(2015.4.24/김해교육지원청 대회의실) 참고.
8) 고영남, <2015년, 소소한 바람골 인문학>(예비 사업적 기업 “바람골 그 가게” 주관) 제1강 법의 함정(2015.4.21.) 참고.

Copyrights ⓒ 민중의소리 & vop.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