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gory Elich 칼럼] 이곳에선 아무 전쟁범죄도 없었다
나토의 폭격으로 7개월 된 태아와 함께 사망한 일리야나 스파시치. 그녀가 죽은 장소에 추모비가 달려 있다.
나토의 폭격으로 7개월 된 태아와 함께 사망한 일리야나 스파시치. 그녀가 죽은 장소에 추모비가 달려 있다.ⓒ제공: Gregory Elich

1999년 나토 전쟁범죄 기록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나는 유고슬라비아의 3번째로 큰 도시 니쉬를 방문했다. 나토는 이 매력적인 도시를 40차례에 걸쳐서 공격했고, 대략 120채의 건물을 파괴하고 3,4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우리는 두 번째 니쉬를 방문한 날 밤에 대학교수 조반 즐라티치(Jovan Zlatich)와의 미팅에 참석했다. 나토 전쟁기간 동안 즐라티치 박사는 도시 시민 방위대 사령부의 지휘관이었다. 니쉬에 가해진 폭격에 관해 토의할 때, 그는 특별히 클러스터 폭탄의 사용에 대해 강조했다. 니쉬는 CBU-87/B 클러스터 폭탄의 목표물이 되는 비극을 맞았으며, 이 무기는 일정 고도에서 202개의 작은 폭탄을 쏟아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작은 폭탄들은 공포스러운 연속폭발을 일으키고, 수천조각의 산탄을 넓은 범위에 퍼뜨린다. 클러스터 폭탄은 대인용 무기이다. 건물에는 비교적 경미한 피해를 입히지만, 인명에게는 가공할 피해를 끼친다.

니쉬 대학 병원 외과의사인 미오드라그 라지치(Miodrag Lazich) 박사에 따르면, “클러스터 폭탄은 엄청난 고통을 일으킵니다. 클러스터 폭탄에 의해 발생하는 강한 충격파는 폭발 1-2미터 내에 서 있던 사람에게 이른바 공기폭압상을 일으킵니다. 신체는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지만 간이나 뇌, 폐 같은 장기들이 파열돼 버립니다. 폭발에 의한 파편은 15-20미터 내에 있는 사람의 사지를 찢어 버리거나 복부나 머리를 관통해 심각한 부상을 일으킵니다.” 클러스터 폭탄의 연속폭발이 시작되는 속도는 자동소총에서 총알이 나가는 속도의 3배이다. 결과적으로, 산탄이 날아와 먹잇감에 부딪히는 순간 혼합된 물리적 에너지와 폭발의 위력은 산탄 그 자체 크기의 30배에 달하는 넓이에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 작은 폭탄이 퍼져 나가면서 축구 경기장 3개 넓이에 걸쳐 죽음의 비를 뿌리기 때문이다.

즐라티치 박사는 우리에게 클러스터 폭탄 피해자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우리는 페이지를 넘겨가며 민간인들이 피바다 속에 누워 있는 장면, 그리고 그보다 더 심한 해부사진을 봤다. 클러스터 폭탄이 인간의 나약한 육체에 어떤 짓을 할 수 있는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고, 즐라티치 박사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고통스런 침묵이 방안에 깔렸다. 어떤 사진은 도저히 쳐다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즐라티치 박사는 마지막에 우리를 올려보며 나직이 말했다. “이것이 서구의 민주주의에요.”

클러스터 폭탄의 가공할 파괴력

우리는 폭격이 일어난 현장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세 차례에 걸쳐서 아네트 안드레예비치가(Anete Andrejevich Street)를 걸어 내려가면서 우리는 주민들과 말을 나눴다. 5월 7일 오전 11시 30 분 직후 클러스터 폭탄이 떨어진 곳이다. 이 거리의 한쪽 끝은 시장이었고 폭격이 있던 날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 거리는 좁았고 줄지어 지어진 건물들은 고풍스러웠다. 고의적 공격의 증거는 실수가 없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집이 마마자국처럼 패여 있었고 파편들이 끌로 파내듯 벽에 만들어낸 구멍들이 집들에 더 큰 피해를 줬다. 그날은 행인들이 숨을 만한 곳도 없었다. 그곳에 세워져 있는 차 한 대는 폭격 이후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바늘에 찔린 듯 구멍이 숭숭 난채로 유리창은 플라스틱으로 덮이고 펑크난 타이어 위에 얹혀진 채로 있다. 희생자들의 추모비가 그들이 죽은 곳에 세워져 있다.

클러스터 폭탄이 이웃에 떨어지면 거칠고 빠른 연속폭발음과 함께 수천 개의 파편이 튀었다. 73세의 스밀리야 유리치(Smilija Djurch)는 폭격 당시 그녀의 집안에 있었다. “계속 꽝, 꽝, 꽝 거렸어” 그녀는 회상했다. “나는 대체 여기가 어딘가 싶었어. 완전히 정신을 놨어. 내가 길에 있었다면 아마 죽었을 거야. 그게 시작되자마자 우리는 지하실로 뛰어 들어갔어. 사람들은 그 후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 그녀는 흐느끼며 기자에게 말했다. “나는 2차대전 때도 살아남았지만 이런 건 보지도 못했어.”

한 젊은 여성은 그녀의 집 현관 근처에서 몸이 조각조각 난 채로 유혈낭자한 채 숨졌다. 그 가까이엔 한 중년 여성이 파편에 이마가 찢긴 채 길가에 쓰러져 있었고 그녀의 옆에 당근들이 든 가방이 떨어져 있었다. 지보라드 일리치(Zhiborad Ilich)는 판지 박스 위에서 양파와 계란을 팔고 있었고 박스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다가 날아온 금속 조각들에 죽었다. 슬라비차 디니치(Slavica Dinich)는 그녀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설명했다. “우리는 침대 안으로 들어갔어요. 폭탄 한발이 우리 집 위층 천장으로 떨어졌어요.”

나토 폭격으로 부서진 자동차들의 잔해
나토 폭격으로 부서진 자동차들의 잔해ⓒ제공: Gregory Elich

보지다르 파니치(Bozidar Panich)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내 정원에 있다가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는 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봤다. “하늘을 보니 조그만 낙하산에 노란 작은 폭탄들이 나에게 떨어지고 있었어요. 본능적으로 땅바닥으로 몸을 던졌고 내 머리를 손으로 감쌌어요. 폭탄이 땅에 닿고 내 옆에서 폭발하면서 천지가 흔들렸어요. 나는 온통 흙으로 덮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나는 몇 분전 나간 아들을 찾기 위해 길로 뛰어 나왔어요. 길 위는 엉망이었어요.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도처에 쓰러져 있고...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 도와 달라고 울부짖었고 차와 지붕들이 불타고 있었어요.”

옐렌 디미트리예비치(Jelene Dimitrijevich)와 슈마토바치카(Shumatovachka)가 만나는 곳에는 시장에서 집으로 가다 이곳에서 숨진 릴리야나 스파시치(Lilijana Spasich)의 추모비가 벽돌 벽 위에 세워져 있다. 겨우 26살이었고 임신 7개월째인 그녀는 의학 대학원 5학년 졸업을 겨우 한 달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졸업 직후 출산을 하는 등 인생을 잘 계획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토는 그녀를 위한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클러스터 폭탄의 산탄들은 그녀와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모두 죽였다.

또 다른 스파시치인 시메운카 스파시치(Simeunka Spasich)는 그녀의 시어머니다. 그녀는 “비행기 소리가 들렸을 때 우리는 아파트에서 300-400미터 떨어져 있었고 시장으로부터는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어요. 갑자기, 폭탄들이 우리 주변 사방으로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끔찍했어요. 폭발과 연기와 잎들과 나뭇가지들... 전 제 머리에 충격을 느꼈고 피가 흐르고 있었어요. 그리고 전 기절했어요. 몇 초 지나서 의식을 되찾았죠. 주변을 둘러보니 저는 길가에 쓰러져 있었어요. 제 오른팔과 다리는 부러져 있었죠. 제 주변 사람들은 죽거나 다쳤어요. 정말 끔찍했어요. 제 바로 오른쪽에는 제 며느리 릴리야나가 미동도 않고 쓰러져 있었어요. 그 아이는 죽었죠. 그 순간 전 그녀를 살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그 자리에서 죽었고 아이도 구할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구급차에 실린 후 그녀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저는 벨그라데(Belgrade)에 있는 군사의료학교에서 완전히 의식을 되찾았어요. 제 왼다리 무릎 아래는 절단돼 있었고 오른손도 심하게 다쳤어요. 난 오른손을 움직일 수 없었죠. 나는 몇 번의 수술을 더 견뎌야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를 찾아온 제 아들은 제 창자가 흘러나온 것을 보고는 모두들 제가 살아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대요.”

포르다니 세클리치(Pordani Seklich)를 위한 두 개의 기념비가 그녀가 종업원으로 일했던 식당 창문 앞에 세워져 있다. 그녀는 주방에 있었고 산탄이 굉음과 함께 지붕을 찢고 들어와 그녀는 선 채로 죽었다. 우리가 묵고 있던 니샤바(Nishava) 건너의 호텔은 아네트 안드레예비치 거리를 내려다 볼 수 있었고 우리는 이 지역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이곳은 완전히 주거지역이었고 군사적 목표가 돼야 할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시장과 그 인근에 대한 클러스터 폭격을 한지 십 분 만에 나토 군용기들은 클러스터 소이탄을 병원 주차장에 떨어뜨렸다. 불덩이들이 주차장을 휩쓸고 차에 불을 붙이고 굵고 검은 연기를 하늘에 내뿜었다. 주변의 몇몇 집들이 피해를 입었다. 수백 개의 산탄이 병원을 때렸고 교실 지붕을 무너뜨렸다. 직원들은 매일 이곳에서 정오에 만나 점심을 먹으며 전쟁에 관해 토론하던 것이 일상이었다. 정오를 20분 지나고 공격이 시작돼 모두 죽었다. 이 한 개의 방에 무려 90개가 넘는 파편으로 인한 구멍이 있었다.

소이탄 폭격의 효과는 나토가 코소보(Kosovo)의 집으로 돌아가던 알바니아계 피난민 행렬을 공격한 야코비차(Djakovica)를 떠오르게 했다. Jane’s Defence Weekly 의 전시보고서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새로 개발된 CBU-97 클러스터 폭탄을 알리고 싶어 안달 난 상태였다. 이 무기는 정해진 온도에서 산탄을 뿌리고 폭발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주차장 차 안에 남아 있던 다 타버린 잔재들을 보면 병원을 노리고 폭격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야코비차는 CBU-97 탄을 성공적으로 시험한 또 다른 장소로 73명의 민간인이 자신들이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죽거나 팔다리가 잘리거나 몸에 불이 붙었다. 폭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흩어져서 집으로 숨었다. 이것을 지켜본 나토 파일럿들은 미사일을 집으로 발사해 사상자를 늘렸다.

“나토의 지휘관은 인간이 아니에요”

내가 본 피해자들의 사진은 끔찍했다. 우리는 나중에 벨그라데의 알바니아계 주민 중에 유고슬라비아 정부를 위해 일하거나 그들 사회에서 특별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 중 하나는 군용기가 그를 따르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죽이는 것과 같은 야코비차의 학살에 대한 그의 분노를 언급했다.

“나토의 지휘관은 인간이 아니에요. 그는 짐승이에요. 야코비차의 폭격 이후, 저는 목이 잘린 몸을 보고 사진도 가지고 있어요. 무섭고 끔찍해요. 저는 팔다리가 없는 사람도 봤어요.”

니쉬에 있는 국영 DIN 담배 공장은 2,500여 명의 근로자를 고용한 유고슬라비아의 가장 큰 공장 중 하나였다. 이곳은 네 차례에 걸쳐 폭격 당했다. 공장의 부지배인 밀로보예 아포스톨로비치(Milovoje Apostolovich)는 공장에 떨어진 클러스터 폭탄이 공장 안의 유일한 군수품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아직도 세르비아인이길 원해?” “더 빨리 달려”라고 쓰인 클러스터 폭탄 파편 두 개를 발견했다. 아포스톨로비치의 추산에 의하면 그의 공장의 피해는 3천5백만 달러에 달했다. 담배 공장은 정말로 아무런 군사적 용도가 없었다. DIN 공장이 폭격 받은 유일한 이유는 이곳이 가장 많은 노동자를 고용한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장터를 돌아다녔다. 크루즈 미사일은 담배 적재창고를 완전히 평평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보다 큰 두 개의 빌딩도 심하게 부서졌다. 파편을 깨끗이 치우는 것이 당면한 업무였다. 다른 많은 작은 건물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벽돌공은 바쁘게 간이식당을 짓고 있었다. 통로를 건너서 재무와 컴퓨터 센터 외관에도 수백 개의 구멍이 나 클러스터 폭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토의 폭격으로 부서진 니쉬의 가옥
나토의 폭격으로 부서진 니쉬의 가옥ⓒ제공: Gregory Elich

친 서방 정부에 의해 국영 DIN 공장이 민영화되고 1400명의 노동자가 쫓겨날 때까지 재건은 계속됐다. 2003년 10월, DIN은 필립 모리스에 매각됐고 6년 후엔 남아 있는 노동자의 1/3이 “기술적 잉여”라 불리며 해고됐다.

다양한 단체들에 의해 ‘국제 구 유고슬라비아를 위한 국제법정(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ICTY))에 니쉬의 클러스터 폭격과 같은 나토의 전쟁범죄를 조사해 달라는 청구가 접수됐다. 그러나 미국의 지령에 의해 만들어지고 미국의 풍족한 자금지원을 받는 ICTY는 완전히 순수한 단체가 아니었다. 나토의 행동에 대해 끈질기게 제기되는 불만을 잠재우라는 압박을 받으면서, ICTY 조사국은 나토에 대한 법률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조사' 권한을 가진 위원회를 구성했다.

놀라울 것도 없이, 조사위원회는 나토를 처벌하려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니쉬에 대한 클러스터 폭격에 관해서는, 클러스터 폭탄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어떤 국제조약도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조사국은 세르비아 민족 지도자인 밀란 마르티치(Milan Martich)를 자그레브(Zabreb)에 대한 로켓 폭격혐의로 기소하면서 “자그레브의 군사시설이 아닌 민간인을 위협할 목적”이라는 이유를 붙였다. 나토의 클러스터 폭격은 명백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게 규정받지 않았다. “나토가 그런 목적(민간인 학살)으로 클러스터 폭격을 가했다는 어떤 징후도 없다.” 조사국은 “나토의 클러스터 폭격에 대한 조사는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사국의 보고서는 나토 지휘관들이 “군사적인 목표물을 식별하기 위한 모든 방법을 다 사용했고 민간인 공격을 자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조사국은 나토의 공격목표들이 “명백히 군사적 성격이고 때로 군사시설이 인구밀집시설에 위치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조사국은 그렇게 결론 지은 근거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토와 회원국들의 보도자료는 일반적으로 신뢰성이 있고 해명들은 정직했다.” 그러나 나토에게 답변이 요구된 특정 사건들은 대답이 모호하고 사건들을 설명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한 가지 결론만이 가능했다. “검토된 정보들을 보건데 조사위원회는 폭격에 대해 깊이 조사하거나 특정 사건들을 정확히 해명할 의사가 없다.”

홀아비가 된 릴리야나 스파시치의 남편에게 한 번 그의 죽은 아내와 태어나지도 못한 아이, 불구가 된 어머니가 법적으로 군사적 목표물에 해당한다고 설명해 보시라.

나토의 폭격으로 부서진 니쉬의 건물
나토의 폭격으로 부서진 니쉬의 건물ⓒ제공: Gregory El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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