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탄저균 배달은 단순사고가 아니다

주한미군 오산기지로 활성상태의 탄저균이 배달됐다. 미국 측은 탄저균에 노출됐던 22명의 실험요원 중에 피해자가 없다고 말하며, 단순한 실수 정도로 처리하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자칫했으면 커다란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수도 있는 사건이다. 살아있는 탄저균은 그 자체로 대량살상 무기이기 때문이다. 살상력에서 핵무기에 비견되는 생물학 무기가 아무런 통제 없이 우편 배달됐다는 데에는 아연해 질 수밖에 없다.

거꾸로 다른 나라에서 미국으로 탄저균이 배달 됐다면 미국이 지금처럼 ‘실수’나 ‘배달사고’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갔을지 의문이다. 아마 세계적인 규모의 사건이 되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에 탄저균이 아무런 관리 통제도 없이 국경을 넘는다는 것 자체가 주권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있을 수 없는 일이 태연하게 일어나고도 그것을 ‘배달사고’라 부르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문제의 탄저균은 미국 유타주에 있는 미군 연구소에서 미국 내 9개 지역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딱 한 곳, 한국의 오산 미군기지로도 보내졌다. 이번에 살아 있는 탄저균을 배달받은 유일한 외국이 한국이다. 그러면서도 미국 측은 탄저균 반입과 실험에 대해서 우리 정부에 전혀 알리지 않았다. 과거에 비슷한 일이 또 있었는지 어떤지조차 알 길이 없다. 과거에도 탄저균과 같은 위험물질이 한국에 반입됐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혹이 있지만 주한미군 측은 어떤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은 이번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도 즉시 한국 정부에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자체 조치를 다 끝낸 다음에서야 뒤늦게 사실을 알려왔다. 결과적으로 별 일 없다는 식의 통보를 듣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위협에 직면한 한국 국민에게 전혀 위안이 되지 못한다. 미군의 택배 발송 실수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정부가 탄저균이 국경을 넘어와도 관리와 통제는 고사하고 심지어 기초적인 사실인지조차 할 수 없다면, 그것을 주권국가의 정부라 말하기조차 민망하다. 한국 정부는 당장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사건의 당사자인 미군이 이제 안전하다고 말한 것만 믿고 안심하라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일이다.

문제는 앞으로이다. 이번 사건을 그냥 넘어가면 앞으로도 안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나라로 남게 될 것이다. 주한미군이 치명적인 세균을 들여오든 화학물질을 들여오든 간단한 공항 검색조차 없을 것이니 말이다. 위험 물질의 국내 반입은 반드시 한국 정부의 동의와 철저한 관리를 받게 하도록 한·미 주둔군지위협정도 개정되어야 한다.

Copyrights ⓒ 민중의소리 & vop.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