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 칼럼] 밥쌀 수입, 쌀 문제가 아니다

우루과이라운드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쌀을 지키겠노라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결국 지키지 못했다. 2004년 재협상에서도 지키겠다고 말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2014년, 정부는 어이없게도 20년 버텼으니 충분하다고 쌀 수입개방을 선언했다. 지난 20년, 우리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쌀’이라는 농작물이 아니었다.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쌀’이 대표하는 우리 밥상이었다. 그러나 정부도, 어쩌면 국민 대다수도 이것을 밥상문제가 아니라 쌀문제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 심각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왜 그럴까?

1990년대 초 쌀수입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미국산 칼로스쌀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 즈음 정부는 국산쌀이 칼로스쌀보다 맛있다고 홍보하고 일부 언론에서는 미국이 쌀시장 개방을 앞두고 사전 시장점검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도 돌았다. 당시 쌀은 주로 미군부대로부터 불법유출된 것이라 이를 집중단속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쌀시장개방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남달랐다. 이런 관심은 2004년 재협상때도 비슷했다. 그런데 2014년 국민들의 관심은 그전과는 달랐다. 지난 20년 먹을거리에 관한 높은 관심은 우리 땅에서 나는 것이 얼마나 우수한가에 대한 범국민적 인식을 높였다. 이제 국민들 중 누구도 과거처럼 칼로스쌀을 칭찬하지 않는다. 물론 수입쌀이 싸니까 앞으로 그걸 사서 밥을 해먹어야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 결과 쌀시장이 개방되었는데도 사람들은 우리가 다 국산쌀을 먹을 것이니 시장개방쯤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낙관을 가지기에는 우리 밥상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국산쌀로 수입쌀을 이길 거라는 순진한 낙관

1970년대를 살아온 사람은 아마도 다들 기억하겠지만 쌀밥 먹는 게 소원이던 시절을 지나 드디어 전국민이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그때, 우리는 혼분식의 날이 있었고 이것은 어느 날 분식을 먹는 날로 둔갑했다. 그 시절 이런 혼분식을 피하고 쌀밥을 먹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적도 있다. 그토록 밀가루보다는 밥을 먹고자 노력했던 우리가 어느새 스스로 밀가루를 찾아먹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국민 1인당 밥쌀 소비량의 변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1984년 1인당 밥쌀 소비량이 1년에 130킬로그램이었던 것이 2014년에는 65킬로그램으로 줄었다. 그나마 군대급식과 학교급식을 빼고나면 30킬로그램을 넘을 수나 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밀가루가 대신하고 있다. 자급률이 2%도 채 되지 않는 밀가루가 국민의 주식처럼 되어가고 있다.

65킬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1년에 전국민이 밥으로 먹는 쌀은 약 300만톤이다. 밥쌀 3만톤의 수입이 뭐 그리 대수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 밥상이 어떻게 바뀔지를 생각해보면 이는 정말 끔찍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농민들이 한해에 생산하는 쌀은 400만톤을 훌쩍 넘어서고 있지만 그동안 쌀수입은 의무수입량을 훌쩍 넘어섰다. 2013년 의무수입량이 38만톤이었지만 우리가 수입한 쌀은 58만톤 이상이었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5월 2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WTO쌀협상포기, 쌀값폭락, 약속위반 밥쌀용 쌀 수입 규탄대회'에 참석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청와대에 모판을 반납하기 위해 행진하고 있다.
5월 2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WTO쌀협상포기, 쌀값폭락, 약속위반 밥쌀용 쌀 수입 규탄대회'에 참석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청와대에 모판을 반납하기 위해 행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고 우리가 의무적으로 쌀을 수입해야 했을 때, 그때도 이미 우리나라는 쌀이 남아돌았다. 자급률이 130%를 웃돌았다. 농민들이 쌀을 너무 많이 생산해서? 아니다. 이미 그때 우리는 밥 대신 밀가루로 끼니를 해결하는 빈도가 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79년 롯데리아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는 각종 패스트푸드 체인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젊은 층을 시작으로 밥 대신 패스트푸드를 먹는 사람이 늘어났다. 1990년대 불었던 사교육열풍은 여기에 한몫을 더했다. 여기저기 학원을 옮겨 다녀야 하는 10대들에게 차분히 앉아서 밥을 먹는 것은 사치이고 이동시간을 활용해 배를 채우기에는 패스트푸드만큼 좋은 게 없었던 까닭이다. 중고등학교 앞에서 패스트푸드 세트 봉지를 들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학부모를 보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다.

어디 이뿐이랴. 2014년 농식품부가 발간한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 가구당 월 평균 식료품 지출이 약 35만원인데 외식비지출은 약 31만원이다. 도시노동자의 경우 식료품 지출은 약 36만원인데 외식비는 약 35만원이다. 끼니의 거의 반을 외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외식가운데 밥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 가능하다. 결국 밥쌀 소비량은 계속 줄기만 했다. 130%를 웃도는 쌀자급률은 사실 이런 변화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그러나 남아도는 쌀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쌀이 남아도는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기 전에 그저 남아도는 쌀을 빨리 소비하기 위한 방법만을 고민한 것이다.

밀가루에 밀린 국산쌀, 우리 밥상 전체가 위험하다

자, 이제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이 80%대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먹는 밥은 나날이 줄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쌀가공산업육성, 20년 전 정부가 내세운 이 정책이 바로 그 원인이다. 2011년에는 급기야 쌀가공산업육성법을 만들기까지 했다. 2014년 정부가 쌀시장개방시대를 맞아 내세운 1순위 정책이기도 하다(이것은 이 정부가 내세우는 6차산업과 교묘하게 맞닿아 있다). 20년 전 쌀가공산업 육성으로 쌀막걸리가 허용되었다. 물론 그 외에도 많은 쌀가공식품이 정부 정책과 지원으로 활성화되었다. 남아도는 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이 쌀가공산업육성정책은 오늘날 다양한 쌀가공식품을 만들어냈지만 그 원료는 점차 수입산 쌀로 바뀌고 있다.

밥쌀 수입 반대 농민 농성장 모습
밥쌀 수입 반대 농민 농성장 모습ⓒ전국농민총연맹

품목이 어떻든 원료가 국산에서 수입산으로 바뀌는 것은 항상 핑계가 같다. 가격경쟁력이다. 이제 그 가격경쟁력이라는 것이 쌀가공식품을 넘어 밥쌀에게까지 밀어닥칠지도 모른다는 것은 단순한 우려가 아니다. 저임금으로 가격경쟁력을 키우고 그 저임금으로 최저생활을 유지하도록 저곡가정책을 써온 50년이 넘는 역사를 봐라. 지금도 그 저임금을 고수하기 위해 농산물값이 조금이라도 오를 기미가 보이면 바로 수입을 결정하는 것이 우리나라다. 그래도 그동안 적어도 정부가 농민을 걱정한다는 시늉이라도 하기 위해 쌀만은 지키는 척 해왔다. 그러나 그런 ‘척’도 이제 끝났다. 더욱이 밀가루가 점점 주식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마당에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지금 세종시 농식품부 입구 앞 그 시멘트바닥 위에서 그 뙤약볕을 견디며, 천막 그늘에 이리저리 스티로폼을 옮겨가며 농민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쌀’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농민들이 자신들의 수입원인 벼농사를 지키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이 지키려고 하는 것은 바로 정부가 오래전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포기한 국민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국민의 생존권은 바로 ‘밥상’이다. 밥을 먹어야 반찬을 먹고 그래야 벼농사도 밭농사도 산다. 그러니 오늘도 우리의 밥상을 지키려고 자신의 안위를 기꺼이 내던지는 ‘아스팔트농사’의 달인이 되어가는 농민들에게 더 이상 아스팔트가 아닌 흙을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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