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호 칼럼] 밥쌀 수입문제, 정부의 무능과 눈치보기

지난 7월 31일 서울역 광장. 많은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떠나기 위해 서울역을 이용했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서울시내도 비교적 평소에 비해 한산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서울역 광장에는 전국 곳곳에서 상경한 농민들이 분노의 함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절정에 달하는 삼복더위 폭염보다 더 뜨거운 열기가 광장을 가득 덮었다.

왜 농민들은 폭염을 무릅쓰고 아스팔트 농사를 짓는 것일까? 40도를 훌쩍 넘기는 체감 온도 보다 더 높은 울분과 분노를 토해내야 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부의 무능과 눈치보기가 빚어낸 밥쌀 수입 문제 때문이었다.

전국에서 서울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31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밥상용 쌀 수입저지와 박근혜 정부 새누리당 규탄 전국농민대회를 마친 후 행진하고 있다.
전국에서 서울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31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밥상용 쌀 수입저지와 박근혜 정부 새누리당 규탄 전국농민대회를 마친 후 행진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쌀시장이 관세화로 전면 개방되었다. 누구든지 정부가 세계무역기구 (WTO)에 통보한 513% 관세율만 부담하면 자유롭게 쌀을 수입할 수 있도록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수입되는 쌀은 흔히 일반수입이라고 부르는데, 아직까지는 이런 일반수입 물량의 쌀은 극히 미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반수입과는 달리 5% 수준의 낮은 관세율로 수입되는 쌀이 있다.(관세율 5% 정도는 사실상 무관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의무수입으로 부르는 쌀 수입이 바로 그것이다. 올해부터 매년 약 40만 9천 톤에 달하는 대규모의 쌀을 이렇게 5% 관세만 매겨 수입해야 한다. 이러한 의무수입 쌀은 그 용도에 따라 처음부터 가공용과 밥쌀용으로 구분하여 수입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작년까지는 의무수입 쌀의 30%를 무조건 밥쌀로 수입해야 하는 족쇄가 있었다. 우리나라에 밥쌀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과 중국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실상 이 두 나라에 주는 특혜였던 셈이다. 국내 가격의 3분의 1 내지 2분의 1 정도에 불과한 밥쌀이 5% 관세만 부담하고 수입되어 국내 쌀 보다 훨씬 더 싼 가격이 거래됨으로써 국내 쌀을 대체하는 효과가 발생하여 쌀 자급률을 떨어뜨리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였고, 게다가 국내 쌀과 혼합하여 마치 국내산인 것처럼 판매됨으로써 소비자를 현혹하거나 우롱하기도 하였다.

사실 이러한 부당한 족쇄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부당한 조치인데, 과거 2004년 정부가 쌀 협상을 하면서 미국 등에 굴욕적으로 양보를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였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밥쌀용 30% 의무수입이라는 부당한 족쇄가 폐지되었다. 비록 쌀 전면개방 그 자체는 막아내지 못했지만 작년에 농민들이 힘겹게 투쟁하면서 몇 가지 작은 성과들은 거두었다. 513% 관세율을 비롯하여 혼합미 금지, 밥쌀용 30% 의무 폐지, 국가별 쿼터 폐지, 수입쌀의 해외원조 가능 등과 같은 조치가 바로 그것이다. 정부는 이와 같은 사항들을 포함한 이행계획서를 작년에 WTO에 통보하였고, 올해부터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는 의무수입 쌀의 용도와 관련하여 가공용이든 밥쌀용이든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밥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국내 쌀 공급마저 과잉 양상을 보이고 있고, 이 때문에 쌀값이 크게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조차도 공급과잉에 따른 쌀값 폭락을 우려하여 수매를 통한 시장격리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한 권리도 알아서 포기하는 정부...울화통 터지는 농민들

밥쌀을 수입해야 하는 의무도 없어졌고, 밥쌀용이나 가공용 같은 용도는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으며, 지금 국내 쌀도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을 고려할 때 밥쌀 수입을 강행하는 정부의 행태는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여러 가지 논리를 들이대면서 밥쌀 수입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논리가 “관세율 513%를 인정받기 위해 (미국 등) 상대방 국가의 밥쌀용 수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정부 스스로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는 것과 같고, 상대방 국가의 눈치를 보느라 국내 쌀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전국에서 서울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31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밥상용 쌀 수입저지와 박근혜 정부 새누리당 규탄 전국농민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국에서 서울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31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밥상용 쌀 수입저지와 박근혜 정부 새누리당 규탄 전국농민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정부 주장이 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한지 살펴보도록 하자.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등 5개국과 513% 쌀 관세율을 검증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상대방 국가로부터 513% 관세율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미국 등의 요구대로 밥쌀을 수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런데 관세율 513%가 적정한지 여부를 검증하는 것과 밥쌀 수입은 사실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관세율에 관한 검증절차는 WTO 농업협정문에서 제시하는 관세율 공식에 따라 적정하게 계산된 것인지 여부만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른 사안과 연계시킬 근거도 없고, 이유도 없으며, 또 그럴 필요도 전혀 없다. 이는 정부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관세율 검증과 밥쌀 수입을 연계시키는 정부의 통상정책은 결국 자신이 무능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같으며, 자신이 무능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보면서 밥쌀을 수입해 주고 그 대신에 513% 관세율을 인정받겠다는 것과 같다. 그저 다른 나라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정부가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애꿎은 쌀 농민들에게 그 피해를 떠넘기는 것이다.

만약 정부의 행태와는 달리 밥쌀을 우리가 수입하지 않고, 이 때문에 미국 등이 관세율 결정에 몽니를 부리는 상황이 온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무슨 문제가 생길까?

513% 관세율이 확정되는 시기가 늦어지는 것 이외에 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단지 검증절차가 장기화되면서 관세율이 확정되는 시기가 늦어질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관세율 확정이 늦어진다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쌀 관세율에 대한 검증절차가 완료되고 관세율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가 WTO에 통보한 513% 관세율이 지금과 같이 그대로 쭉 적용된다. 즉, 검증절차 자체가 한국에 불리한 것이 아니며, 다른 사안을 연계하여 양보할 필요도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실제 일본도 이러한 검증절차 과정이 22개월 걸렸고, 대만은 무려 57개월이 걸렸다. 이제 겨우 몇 달도 되지 않은 한국의 경우 검증과정이 장기화되는 것을 우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 정부가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상식대로만 일을 처리하면 되는 사안이다.

밥쌀 수입문제와 관련된 갈등과 논란을 끝내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정부가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밥쌀 수입문제 논란을 끝내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러면 굳이 휴가철에 농민들이 폭염을 무릅쓰고 아스팔트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된다.

Copyrights ⓒ 민중의소리 & vop.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