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IT오지 코리아’만드는 정부

한국에는 출산과 육아를 지원해주는 공공서비스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일례로 어린이집은 대부분 전액지원이 된다. 아이 돌보미도 소득수준에 따라 상당히 높은 금액이 지원된다. 설령 소득수준이 기준보다 높아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사설 업체를 통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도 돌보미를 구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의 ‘조건’이 있다. PC를 통해 신청해야 한다. 그것도 반드시 ‘윈도우PC’이어야 한다. 모바일로도 안되고, 직접 방문해서 신청할 수도 없다. 오직(!) ‘윈도우PC’를 써야 한다.

업무상 애플컴퓨터를 쓰는 사람들 중에는 ‘공공기관용’으로 윈도우PC를 하나 더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라장터를 비롯해 공공기관 홈페이지에는 ‘공인인증서’를 요구하는데 애플컴퓨터로는 불가능한 사이트가 많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윈도우PC를 하나 더 구입한다.

세계 그 어느 곳보다 웹서비스가 발달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우리는 자화자찬해 왔다. 인터넷으로 쇼핑도 하고 은행업무도 보고 세금도 내고 주민등록등본을 떼기도 하고, 정부의 공개입찰에 응하기도 한다.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다. 단, ‘윈도우PC’를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인터넷으로 각종 서비스를 사용하려면 인터넷 상의 신분증이라 불리는 ‘공인인증서’를 사용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깔아야 한다. 이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액티브X’ 기반으로 제작됐다. 문제는 이 ‘액티브X’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터넷익스플로러’에서만 돌아갔다는 점이다.

지금껏 ‘액티브X’문제는 한국에서 큰 이슈가 되지 못했다. 애플컴퓨터를 쓰는 사람이 ‘별종’으로 보일 정도로 윈도우PC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다 ‘인터넷브라우저 = 익스플로러’로 인식될 정도로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이 높았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한국은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나라였다. 그야말로 ‘IT강국 코리아’였다.

그런데 이제 ‘IT강국 코리아’는 더 이상 써서는 안 되게 생겼다. 새로 출시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10’이 기본 인터넷브라우저를 바꾸어 버렸다. ‘엣지’라는 이름의 새로운 인터넷브라우저는 ‘액티브X’를 지원하지 않는다. 다행히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10에 ‘익스플로러11’를 탑재해줬고, 여전히 ‘액티브X’를 지원하긴 한다. 하지만, 이 마저도 한시적 조치일 뿐 시간이 흐르면 ‘익스플로러’는 퇴출될 예정이다. 즉, 액티브X를 쓸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좀 쉽게 설명하면 수많은 한국의 사이트들이 ‘먹통’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우선, 아이키우는 부모는 어린이집 신청이 불가능해진다. 돌보미도 신청할 수 없다. 오직 ‘윈도우PC’에서 ‘익스플로러’를 사용해 신청한 순서대로 어린이집 입원을 결정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된다. 나라장터에 입찰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이 역시 마찬가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 정부가 ‘대책’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말이다.

정부는 이같은 상황을 몰랐을까?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이미 ‘익스플로러 퇴출’을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의 주요 공공기관 사이트들은 여전히 ‘익스플로러를 사용하라’는 명령을 화면에 떡하니 공지하고 있다. 이제와 부랴부랴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라는 것이 ‘윈도우10 업그레이드를 지금 하지 말라’ ‘익스플로러11을 써라’는 공지를 하는 수준이다. IT에서도 이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이 ‘기다려라’라니.

사실 국제 웹표준에 맞추어 사이트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문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차일피일 미루더니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중국사람들이 천송이 코트를 살 수 있게 개선하라’고 주문했다. 문제는 여기서 다시 꼬였다. 액티브X가 문제라는 여론이 급등하니 액티브X를 폐지하라는 정책들이 쏟아지고 연말까지 가능하게 하라고 정부는 윽박질렀고, 결국 웹표준에 맞지도 않는 ‘.exe’라는 이름의 새로운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그 와중에도 공공기관 사이트들은 ‘천송이 코트’는 쇼핑몰에나 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여전히 ‘액티브X’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부의 계획은 2017년까지 공공기관 사이트를 웹표준에 맞게 전환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계획의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IT관련 기술 문제에서 ‘2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동안 어떤 새로운 기능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지 모른다. 정부가 생각할 때 2017년까지 한국 국민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라는 것인지 새로 출시되는 PC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쯤되면 ‘IT오지 코리아’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Copyrights ⓒ 민중의소리 & vop.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