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남 칼럼] 어느 교수의 ‘죽음’이 말하는 것
지난 17일 총장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투신한 부산대 국어국문과 고현철 교수의 영결식이 21일 오전 부산대 10·16기념관에서 엄수됐다. 고 교수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는 유가족.
지난 17일 총장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투신한 부산대 국어국문과 고현철 교수의 영결식이 21일 오전 부산대 10·16기념관에서 엄수됐다. 고 교수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는 유가족.ⓒ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뜨거운 여름이 저물어갈 즈음, 충격적인 비보를 날아들었다. 대학 자치를 지키려던 어느 교수의 투신, 그리고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접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 남은 국립대 총장직선제 대학의 자존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를 외치며, 그는 부산대 본관 4층에서 몸을 던졌다. 분향소에 걸린 영정사진 속의 그를 보며, 끝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우물 속에 갇힌 채 스스로 숨을 멈춘 부산대 고현철 교수의 애타는 심정을 며칠째 껴안아본다. 안타까움 넘어 동시에, 지난 30년 동안 이어온 대학과 사회민주화의 허상을 곱씹는다. 그리고 저 진한 그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 본다.

어느 교수의 죽음, 그 의미는

그가 괴로워했던 것은 단지 국립대 총장직선제 폐지가 몰고 온 상실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학자치에 대한 교수들의 인식이 무뎌지고 대학과 사회의 민주주의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퇴행하는 데 있었다. 그의 투신과 죽음은 부산대 교수들, 또는 돈과 맞바꾼 총장직선제 폐지로 가슴앓이를 했던 국공립대학들을 넘어 우리 사회 모두에게 던지는 진실 고백이었다. 특히 교육부의 일방적 대학구조조정과 자율성 말살에 자기 혼자 살기에 바빴던 상아탑에 울린 경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투신과 죽음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몇몇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총장직선제가 가져다준 대학민주화는 한국사회에서 대학의 자율성 그리고 학문의 자유를 이끈 역사적 디딤돌이었음을 잘 안다. 또한 우리 사회의 소금이었던 대학의 비판적 목소리를 꺾으려는 비겁한 정치권력과 썩은 자본들의 욕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음 역시 잘 안다.

학문과 진리를 이끄는 대학조차 영리화의 제물로 삼으려는 시커먼 속셈을 숨긴 채 이런저런 명목의 재정지원을 빌미로 대학을 길들여온 교육부에게 국립대총장직선제는 마지막 남은 대학자치와 교육공공성의 숨통이었음이 명확하다. 대학을 저 썩은 자본에 팔아버리려는 교육부의 천박하고 포악스런 고등교육정책이 없었다면 과연 이 안타까운 죽음이 있을 법이나 하겠는가? 죽음조차 돈으로 겁박하며 학문공동체를 황폐화하고 대학자치의 목을 쳐버린 교육부와 정부야말로 이번 죽음, 아니 ‘죽임’의 책임자임이 너무나 명확하다. 죽음에 대하여 고작 ‘총장직선제를 검토해보겠다’는 식의 교육부 장관 발언이야말로 이번 죽음이 그저 어느 대학 교수의 것이 아니라 학문의 죽임이요 대학 자체에 대한 죽임이었음을 웅변한다.

영결식장에 모인 전국 교수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결코 애도의 그것과는 달랐다. 수년간 이어진 치욕스런 굴종으로 밥버러지의 상투적인 애환만 남아 있던 교수들의 짙은 회한이었다. 이것은 대학과 교수들의 가슴에 스스로 새겨 넣은 죄의식의 낙인이었다. 대학과 사회의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데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너무 무뎌졌음을 지적한 고인의 유서는 대학민주화의 허위와 가식을 그대로 드러낸 날선 반성문이었다. 말 없는 죽음이었다면 그저 그를 추념하고 그 정신이 잊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되겠지만, 그가 요구하고 그 의식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외친 것은 분명 ‘진정한 민주주의’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애도하고 눈물을 닦는 데 그칠 수는 없다.

총장직선제 사수를 요구하며 부산대 본관 건물에서 투신 사망한 故 고현철(54) 국문과 교수의 장례가 21일 엄수된다. 19일 본관 앞에서 열린 추모대회에서 고 교수의 동료 교수가 고인을 추모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총장직선제 사수를 요구하며 부산대 본관 건물에서 투신 사망한 故 고현철(54) 국문과 교수의 장례가 21일 엄수된다. 19일 본관 앞에서 열린 추모대회에서 고 교수의 동료 교수가 고인을 추모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진정한 민주주의’, 이제라도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가 다가온다. 고인의 영정과 운구차량을 떠나보낸 후 7개의 전국단위 교수단체가 <고 고현철 교수 추모와 대학자율성 회복을 위한 전국교수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면서도 여기에 ‘부산대 교수회’는 현재 결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비상대책위원회는 ‘죽음’이 가져온 무게를 생각하면 충분히 예상되었던 경로이지만, 무엇을 회복할지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부산대와 그 교수회가 총장직선제를 곧장 합의한 것처럼 부산대 교수들은 차기 총장을 직접 선출하고 대통령으로부터 임용을 받는 데 모든 역량을 쏟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전망은 매우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만약 대학자치 내지 대학자율성의 회복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가치와 그것으로 연원하는 수많은 현상들을 내다보지 않는다면, 고인의 정신은 총장직선제라는 하나의 제도에 매몰될 우려가 짙다. 총장직선제 자체는 대학민주화의 역사성을 띤 하나의 제도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대학과 학문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가로막는 벽을 부수고 그 원인과 배경 등을 철저하게 폭로하는 전면전이 전개되지 않고서는 ‘죽음’의 정신을 결코 실천할 수 없다.

1980년 ‘서울의 봄’은 처음부터 봄이 아니었음 잘 안다. 1979년 부마항쟁의 꽃이 늦게 피었을 뿐이다. 당시 10월 16일 부산대 학생들은 ‘유신철폐’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그 정신이 담긴 ‘부산대학교 10·16 기념관’에서 영면한 고인은 우리들에게, 특히 이 땅의 교수들에게 결코 흐르지 않고 오랫동안 멈춘 듯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제라도 회복해야 함을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잘못이 드러나면 멈춰야 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우리들의 유일한 답이다. 대학의 자치와 학문의 자유를 부정하거나 훼손하는 고등교육은 존재할 수 없다. 권력이나 돈에 영혼을 팔아버리는 대학이나 학문 역시 존재할 이유가 없다. 앞으로도 교육부와 정부는 재정지원 사업을 앞세워 대학자치의 살과 피를 갉아먹고 빼먹으며 대학을 돈의 아가리 앞에 던져놓겠지만 이제 그 ‘죽음’은 두 번 반복할 수 없다. 비틀거리면서도 기어이 정의의 길로 접어들 듯이 대학자치는 민주주의와 학문의 자유를 향한 구성원들의 의지와 용기, 그리고 연대에 의해 조금씩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

‘꿈꿀 공간이 없어 그가 길 떠나며’ 느꼈을 고통과 비애를 조금이라도 헤아리고자 고인의 작품 <길>을 함께 읽어본다. 그리고 기어이 ‘꿈꿀 공간’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는 길 떠난다.
꿈꿀 공간이 없으면
더 이상 머물 수 없다고, 결코
그는 빛을 가두지 않는다.
애벌레처럼
온몸을 밀어 나아갈 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언제인가, 그가
번데기 그 어둠을 벗고
은빛 날개 파르르 떨 때는.

Copyrights ⓒ 민중의소리 & vop.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