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 칼럼] 한국사 국정 교과서는 박정희식 ‘정권 교과서’

지난 대통령선거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정권으로서는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헌법과 각종 법률에 정해진 대로 민주주의 원칙과 절차를 충실히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정권은 그런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헌법을 농단하는 것이 마치 정권의 사명이라고 여기는 것같은 행태를 보여 왔다.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를 통한 전교조와 통합진보당에 대한 탄압, 뉴라이트를 앞세운 공영방송 장악 등 박근혜정권의 헌정질서 파괴는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박근혜정권은 그마저도 부족해 이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 발행을 강행하려고 한다. 이는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버금가는 역사쿠데타이다. 시대가 바뀐 만큼 박정희처럼 총칼을 앞세운 정변을 일으키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대신 역사반란을 통해 역사를 박정희 1인 독재시대로 돌리려는 것이다.

박근혜정권의 역사교육에 대한 통제가 도를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이다. 교학사 교과서 사태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국민은 정권의 역사교육 개입에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박근혜정권은 참담한 실패를 반성하기는커녕 2014년 초에 이미 유신시대를 연상케 하는 교과서 편수제를 부활하겠다고 한 데 이어 올해 7월에는 ‘교과용도서 개발체제 개선방안’이라는 것을 통해 교과서를 검정할 때 ‘본 심사를 2단계’로 하고, 그 사이에 ‘전문기관에 감수를 위임·위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교학사 교과서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교육부가 말하는 ‘전문기관’이 뉴라이트가 포진한 기관일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뉴라이트 입장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주무를 수 있도록 정권의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교육부가 내놓은 교과서 발행제도 개선의 핵심이다.

최근 발표된 2015 역사과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시안에서 근·현대사의 축소, 독립운동사의 왜곡·폄하 등 뉴라이트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박근혜정권에 의한 역사교육의 퇴행은 현재진행형이다. 교육부로서는 역사교과서의 검정제를 유지한다 해도 이미 국정과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 준비를 마친 셈이다. 그런데 사실상 국정화에 준하는 이런 조치만 갖고도 부족했는지 정부여당은 아예 검정제를 폐지하고 국정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노골화하고 있다.

역사에 무지하면서도 국정제의 총대를 멘 교육부장관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얼마 전 한 신문과의 면담에서 “한국사는 과거와 달리 수능 필수과목이다. 그런데 교과서를 보면 을사조약도 있고 을사늑약도 있고 안 가르치는 교과서도 있다. 이런 교과서를 가지고 어떻게 수능 시험을 보겠는가. 국민이 존경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역사가가 제대로 만들면 된다. 그런 분이 심혈을 기울여서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쓰듯 하나 써줬으면 하는 걸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을사조약과 을사늑약이라는 두 가지 용어가 교과서에 쓰이고 있다면 그것은 두 용어를 다 써도 된다고 결정한 교육부의 책임이다. 그런데도 엉뚱하게 마치 검정제 자체 때문에 두 용어가 혼용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행태이다. 더욱이 을사조약이든 을사늑약이든 가르치지 않는 교과서가 있다는 이야기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모든 교과서에 1905년 일제의 강제에 의해 불법으로 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사실이 자세히 적혀 있다. 따라서 국정화의 명분을 위해 교육부장관이 엉터리 이야기를 지어낸 셈이다. 그야말로 역사왜곡에 몸이 단 박근혜정권의 고위 공직자답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마치 훌륭한 사서 내지는 역사교과서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삼국사기』는 철저하게 고려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쓰인 지배층의 사서일 뿐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사대주의, 신라중심주의라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발해사를 제외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무엇보다도 사서라고 하기에는 사료수집을 게을리 했고 그러다 보니 기초적인 사실에서 오류가 많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반해 『삼국유사』는 서민생활을 많이 담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거꾸로 불교신앙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지나치게 설화적인 내용이 많다는 한계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마치 두 권의 책이 후대의 사람들이 모두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사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문외한의 치기어린 발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부총리
박근혜 대통령과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부총리ⓒ제공 : 뉴시스

국정 역사교과서 내는 민주주의 국가 없다

이 지구상에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없다. 적어도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국가가 역사교육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조차 할 수가 없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헌법정신과 배치된다.

헌법재판소도 1992년 11월 12일 국정교과서 발행체제와 관련해 국정교과서가 “위헌은 아니나 바람직한 제도는 아니다”고 판결한 바 있다. “교과서의 국정제도는 국가가 교과서를 독점하는 체제이니만큼 검·인정제도보다도 훨씬 교과서 발행방법이 폐쇄적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이 개방되고 있는 자유발행제도와 비교할 때”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정제도보다는 검·인정제도를, 검·인정제도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아울러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국사의 경우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말로 박근혜정권이 강행하려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반헌법적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교과서 국정화는 교과서 발행제도의 전통과 민주주의의 성장과도 배치된다. 1895년 학부에서 첫 근대교과서를 발행한 이래 박정희정권이 1974년에 국정제를 도입하기 이전까지의 교과서 발행제도는 줄곧 검인정제도였다. 지금보다 이념대립이 훨씬 심했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5년 동안 검인정제를 채택했다는 사실은 한국이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국론통일을 위해서도 국정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국정제는 국가의 공공성이 파괴된 유신체제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이후 국정교과서는 권리와 인격의 주체인 시민을 정권에 복종하는 신민으로 전락시키는 이념교육의 수단이 되었다. 유신의 산물인 국정교과서는 결국 실패했다. 박정희정권의 국정교과서가 전두환정권에 의해 부정되고 다시 전두환정권의 교과서는 김영삼정권에 의해 부정되었다. 말이 국정교과서이지 정권교과서라는 사실이 차례로 입증된 셈이다.

역사학계는 국정제가 도입되던 당초부터 그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꾸준히 반대운동을 벌여 왔다. 이후 국정제는 역사학계의 노력과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단계적으로 폐지되다가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의해 완전히 폐지되었다. 따라서 국정화로의 회귀는 지난 30여 년에 걸친 역사학계 연구자들의 노력과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처사이다.

국정 교과서에 대한 여론의 심판은 냉정하다. 교육부가 국정화의 명분을 얻기 위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만 하더라도 교사의 대부분이 국정 교과서에 반대했다. 학부형 가운데서도 초등학교 학부형을 제외하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국정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높았다. 이는 이미 교육현장에서 검정제 교과서의 장점이 입증되었음을 반증한다.

국정제가 강행될 경우 예상되는 국정교과서의 내용

박근혜정권의 추진하는 국정교과서에 담길 내용은 분명하다. 그것은 2013년 교학사 교과서의 재현이 될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친일을 미화하고 더 나아가서는 독재정권에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현행 헌법의 전문에도 명기되어 있듯이 대한민국이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계승했다고 하는 것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반국가적, 반헌법적 교과서라는 비판을 받았다. 작년에 논란이 된 초등학교용 국정 실험본 사회교과서, 교육부의 오늘의 교사 선정 사태, 법무부의 광복 70주년 기념 동영상 등에서도 거푸 확인되었듯이 박근혜정권의 역사인식 수준이란 친일파와 독재자를 부활시키는 것도 모자라 아예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아니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폄하할 수밖에 없다.

최근 언론보도에서 확인되었듯이 국정제가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교육부는 한국 근현대사를 크게 왜곡하는 교육과정안과 집필기준안을 마련했다. 두 안에는 3·1운동과 좌우합작단체가 아닌 우파만의 단체로서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외에는 학생들이 굳이 독립운동사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몰상식한 생각이 담겨 있다.

두 안의 핵심은 독립운동사 특히 좌파의 독립운동사는 고등학교에서 아예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다. 문제는 좌파가 아닌데도 뉴라이트와 극우세력에 의해 좌파로 몰리는 사람조차 역사교육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는 데 있다. 최근 <암살>이라는 영화를 통해 재조명되기 시작한 김원봉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김원봉이 좌파라면 임시정부에서 김원봉과 손을 잡은 김구가 좌파로 몰리는 것도 시간문제이다.

결국 독립운동사를 ‘반공’이 국시인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아예 몰아내겠다는 것이 국정제가 노리는 최종 목표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독립운동사가 빠진 자리를 친일파, 그리고 친일파와 불가분의 관계인 독재권력이 차지하리라고 예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이승만과 박정희로 상징되는 독재정권의 역사적 부활은 다시 민주화운동의 부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주된 흐름을 일제 식민통치와 친일, 그리고 독재의 역사로 전환시키려는 거대한 역사쿠데타의 음모가 국정제 강행의 이면에 깔려 있다.

지난해 3·1절에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보수단체가 친일미화 역사 왜곡 지적을 받은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3·1절에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보수단체가 친일미화 역사 왜곡 지적을 받은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판매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국정제야말로 ‘종북’이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특징으로 하는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국가가 인정한 하나의 관점과 해석에 따라 서술될 수밖에 없는 국정 교과서로 회귀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지금 지구상에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내는 나라는 극소수이다. 얼마 되지 않는 나라도 후진국이거나 독재국이다. 대표적인 데가 북한이다. OECD 국가는 대부분 자유발행제나 검정제를 실시하고 있다. 보수정권과 극우세력이 맹종하는 미국도 국정제가 아니다. 우리가 역사교육이 잘못 되었다고 늘 비판하는 일본도 검정제를 고수한다. 입만 열면 자유시장경제를 뇌까리는 사람들이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반하는 국정교과서가 아니면 역사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광분하는 것을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검정제에서 자유발행제로 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거기에는 될 수 있으면 국가가 교육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런데 OECD의 일원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국정제로의 회귀를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세계적인 망신거리이다. 싸우면서 닮아간다더니 북한을 비판하다가 북한을 따라가려는 꼴은 아닌지 걱정된다. 만약 박근혜정권이 끝까지 국정제를 밀어붙인다면 대한민국의 보수정권이야말로 ‘종북’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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