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모두 배제한 삼성…누구를 위한 보상위원회란 말인가”

“13년 동안 이 병(다발성 경화증)을 앓아왔습니다. 시력을 잃고 이제 가족들 얼굴조차 볼 수 없고...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어요. 몇 년이 흘러도 아무런 보상 해주지 않던 삼성이 보상위원회를 만든다고 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보상위원회란 말입니까?”

“보상위원회를 꾸린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삼성을 규탄하기 위해 7일 오후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 모인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가족들은 삼성LCD공장에서 일하다가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는 김미선(35) 씨의 발언에 눈물을 흘렸다.

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삼성LCD 다발성경화증 피해자 김미선 씨가 발언하고 있다.
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삼성LCD 다발성경화증 피해자 김미선 씨가 발언하고 있다.ⓒ민중의소리
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반올림이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대한 삼성전자의 독단과 기만을 규탄한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반올림이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대한 삼성전자의 독단과 기만을 규탄한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민중의소리

“대화 먼저 제안해놓고... 최소한의 예의도 염치도 없는 삼성”

삼성은 지난 3일 “직업병 피해 보상을 위해 보상위원회를 꾸린다”고 발표했다. 반올림과 어떤 협의도 거치지 않은, 보도자료를 통한 일방적인 발표였다. 개별보상 협의를 위해 만나고 있던 가족대책위와도 합의되지 않은 것이었다.

반올림은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대한 삼성전자의 독단과 기만을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삼성은 누구의 비판과 권고, 조언도 듣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보상위원회 설치를 강행했다”면서 “사회적 대화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외면했고, 그 대화를 먼저 제안한 자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염치마저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보상위원회에 가족대책위 측 박모 변호사가 참여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가족대책위가 동의한바 없다고 했고 설사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217명의 직업병 피해자를 모두 대표한다고 할 수 있나”고 반문하면서 “이에 더해 보상위원 4인을 직접 지명까지 했고, 그 중 원모 위원은 삼성반도체 암 사망 노동자의 산재 소송에서 망인의 질병이 업무환경과 무관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던 인물”이라고 꼬집었다.

삼성은 지난 3일 노동법, 산업의학, 사회정책 분야 전문가 위원 4명과 가족대책위 대리인, 회사측 및 근로자대표 7명으로 보상위원회를 구성, 발족했다고 밝혔다. 보상위원회 구성 과정에서도 반올림, 가족대책위 누구와의 상의도 없었다. 위원장을 맡는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0년 근로복지공단 비상임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근로복지공단 정책자문단에 속해있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싸워야했던 상대방이 근로복지공단이었고, 현재 산재인정을 위해 싸우고 있는 피해자들만 50여명에 이른다.

“삼성의 말뿐인 사과와 보상‧재발방지 약속... 이 문제 해결없이 삼성의 앞날은 없다”

조돈문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상임대표는 “삼성이 6명의 피해자를 위해 보상위원회를 만든다는데, 반올림에 제보한 삼성반도체‧LCD 산재 피해자들만 200명이 넘고 사망자도 70명이 넘는다”면서 “전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재발방지대책은 피해자 모두와, 이들을 대변하는 반올림과 협의해야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범죄를 저질렀으면 조용히 죗값을 치러야지 (삼성이 혼자 보상위원회를 만드는 것은) 죄지은 사람이 형을 협의하고 교섭하는 꼴”이라면서 “죗값을 달게 치르는게 남은 과제”라며 삼성의 사과와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황상기 반올림 대표(삼성 백혈병 피해자 故 황유미 씨 아버지)는 “2014년 5월 삼성전자 권오현 부대표가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다가 병들고 죽어간 노동자들 진작 챙기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재발방지 충실히 하고 사과도 충분히 하겠다고 했다”면서 “그렇게 얘기한지 1년넘게 지났지만 말만 하고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가족들을 지치게 만들어 떨어져나가게 할지만 생각하고 있다”면서 “재발방지 충실하게 하고 충분한 보상을 해야하는데 그마저도 사회적 합의로 안하고 개인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걸 보면, 반올림 피해자 가족들을 속이고 기만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규탄했다. 이어 “이 문제 풀지 않고 삼성은 앞으로 한발짝도 나갈 수 없다”면서 권오현 부대표는 물러가고 이재용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7월23일 “삼성이 1000억을 기부해 독립적인 공익법인을 세우고 이를 통해 보상과 예방대책을 마련하라”는 취지의 조정위원회 권고안이 나왔다. 삼성과 반올림이 직업병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협의해오던 과정에서 제3자의 조정을 통해 해결하자는 삼성과 일부 가족들(가족대책위)의 의견에 따라 마련된 조정위원회였고, 8개월 만에 마련된 조정권고안이었다.

그러나 조정위 권고안이 나온 후 삼성과 가족대책위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정위는 당사자들의 이견으로 오는 10월 7일 오후 비공개 합동회의 방식으로 회의를 다시 열기로 했다. 그러던 중 가족대책위와 개별 협상을 진행하던 삼성이 지난 3일 보상위원회를 발족해, 사실상 조정위원회를 배제하고 교섭 전 상황으로 되돌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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