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미국의 공작에도 살아남은 쿠바의 ‘참여민주주의’… ‘쿠바식 민주주의’
쿠바식 민주주의
쿠바식 민주주의ⓒ기타

‘쿠바(Cuba)’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쿠바에게 ‘시가’를 배우고, ‘음악’을 배우고, ‘야구’를 배우자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만약 쿠바에게 ‘의학’과 ‘의료 시스템을 배우자’고 말한다면 대부분은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쿠바 출신 의사들의 헌신적 봉사와 국가적으로 의료인을 키워내는 쿠바의 정책을 소개한 다큐멘터리 등을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쿠바에서 민주주의를 배우자’고 말한다면 ‘쿠바가 민주주의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다분히 도발적인 제목의 책 ‘쿠바식 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vs 참여민주주의’는 쿠바하면 독재를 떠올리는 많은 독자들에게 일반적 통념을 깨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정진상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압도하고 있는 서방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쿠바 정치 체제의 진면목을 드러내 보이는 가장 최근의 저작”이라고 이 책을 소개하며 “미국에서만큼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쿠바 사회와 정치에 관한 왜곡이 심한 것 같다”면서 “이 책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쿠바의 사회와 정치를 이해하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본질에서부터 성찰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독재국가라는 왜곡을 벗고 들여다보는 쿠바의 진실

이 책의 시작은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현실적 결과가 그 도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작은 ‘쿠바는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1959년 쿠바혁명에서 2015년 미국과 국교 정상화에 이르기까지, 카리브 해의 조그만 섬나라 쿠바는 미국의 온갖 붕괴 공작과 봉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은 단순히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21세기 참여민주주의의 모델로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부들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더구나 오는 19일부터는 프란치스코 교황(체 게바라와 같은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졸업)이 쿠바를 방문해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쿠바로 쏠리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민주주의라고 하면 떠올리기 마련인 양당제 대의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미국식 민주주의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반대 지점에 있는 쿠바의 정치 시스템에 대한 현지조사를 통해 이른바 ‘독재 국가’라는 오해를 걷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책은 특히 쿠바에서 펼쳐진 총선거 과정(2011~2012년)과 쿠바공산당 당대회, 전국회의를 분석하여 현실 정치에서 민중의 참여와 개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밝혀냈다. 아울러 쿠바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세 나라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민주주의 실험을 함께 살펴본다. 오늘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애쓰는 한국 정치에도 참고할 만한 부분이 많다.

양당제 중심의 미국식 민주주의의 허상

이 책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가진 허상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그리고 그 사례로서 등장하는 것이 2008년과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버락 오바마의 당선이다. 오바마는 당시 미국 전체 투표연령인구의 28.5와 25퍼센트의 지지만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의 민주주의와 양당제가 고착된 선거 제도에선 이른바 ‘차악’의 덫에 빠질 수밖에 없고, 왜곡된 아메리칸드림, 인종 담론의 덕을 본 ‘오바마 부부’는 엘리트와 자본을 배후로 하는 미국 정치 시스템을 고착화시켰다는 것이다. 결국 서방 언론이 대서특필하던 ‘새로운 인물’은 풀뿌리 민중이 아니라 개인의 기회주의와 지배 세력에 ‘편입’된 차악으로 선택을 받은 셈이라고 꼬집는다.

아울러 이 책은 마치 민주주의의 강력한 유포자로 여겨지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내외부로부터 위협받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2010년 아랍의 봄에 이어 2011년 이집트 타흐리르 봉기로 표출된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미국 본토까지 상륙했고 위스콘신 주정부 청사 점거, 뉴욕의 공공장소 점거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 책은 시민혁명을 통해 사유재산과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탄생한 미국 헌법에는 놀랍게도 ‘민주주의’라는 말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일종의 미국이 만든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민중이 토론하고 합의하며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반면 에스파냐 제국에 맞서 제1차 독립전쟁이 시작된 1868년부터 오늘날까지 쿠바는 오랜 기간 뿌려진 참여적 정치문화의 씨앗과 전통이 살아 있다. 헌법과 선거, 국가, 민주주의 투쟁과 관련하여 풍부한 자생적 경험은 사유재산보다 사회정의와 민중의 참여를 우위의 가치로 놓는다. 일찍이 미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켜본 ‘쿠바의 볼테르’ 호세 마르티는 독립전쟁의 와중에 쿠바혁명당을 만들고 헌법을 구상했다. 혁명 이듬해인 1960년 노동절에 피델 카스트로는 이렇게 연설했다. “오늘 이러한 직접적 형태로 민주주의는 압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혁명 과정 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 쿠바 사람들은 종이와 연필이 아니라 자신들의 피와 2만 동포의 목숨으로 투표했습니다.”

체 게바라는 피델 카스트로와 대중에 관해 이렇게 기록했다. “대규모 대중 집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은 두 개의 조음기가 진동의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소리를 내면서 대화하는 것 같은 어떤 것이다. 피델과 대중은 함께 진동하는 대화를 시작해서 점점 집중하여 마침내 갑작스런 결론에 이르는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1959년 바티스타 정권을 몰아낸 혁명정부는 토지개혁과 산업 국유화를 진행하는 한편 의료서비스와 무상교육, 문자해득운동을 펼치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아 나갔다. 마침내 1975년 2월 대중조직의 대표들로 구성된 쿠바공산당 특별위원회는 헌법 초안을 내놓았고 그 내용은 대중 토론에 부쳤다. 직장과 교육 기관, 농촌 지역에서 모든 대중조직들이 직접 참여하여 두 달 동안 토론이 이어졌다. 무려 70,812차례의 이웃공동체 토론 모임이 열렸고 2,064,755명이 참가했다. 1976년 2월 24일 보통·비밀 투표로 실시되어 투표율은 98퍼센트를 기록했다. 투표자들 가운데 97.7퍼센트가 찬성표를 던졌다. 이 헌법을 토대로 그해 10월에 처음으로 전국적으로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어 11월에는 시의회 대의원들이 도의회 대의원들을 선출했으며, 그다음에 도의회 대의원들이 최고 권력기구인 민중권력국가의회(ANPP, 국회) 대의원들을 선출했다. 시민들이 선출한 대의원들 가운데서 국가평의회 의장이 선출된다. 그전에 전국후보자위원회(CCN)는 민중권력국가의회 임원과 국가평의회 평의원 추천, 선출을 조직하는 책임이 있다. 2006년 국가평의회 제1부의장이던 라울 카스트로는 병세가 악화된 피델 카스트로한테서 의장직을 넘겨받았고, 2013년 선거를 통해 민중권력국가의회 대의원이자 국가평의회와 각료회의(정부) 의장으로 선출되어 2018년까지 쿠바공화국을 대표하고 있다.


쿠바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실험실

이 책은 2011~2012년 가장 최근에 전개된 쿠바공산당, 선거과정, 평상시 정치활동을 현지 참여관찰을 통해 정치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본격적으로 분석한다. 쿠바공산당 당대회와 전국회의 과정, 4년마다 치르는 쿠바 총선거의 과정과 절차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민중권력국가의회’와 시의회, 그리고 민중평의회의 정치활동을 분석하면서 선거 국면뿐 아니라 평상시에 민중의 참여와 개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 준다. 현대 쿠바 정치 시스템에 대한 이런 분석은 쿠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거나 ‘공산당 일당독재’라는 식으로 왜곡된 정보를 막연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실과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실제로 1960년대 초 중앙은행장과 산업부 장관으로 일하며 체 게바라가 목도한 관료주의와 교조주의, 부패 구조는 여전히 참여민주주의의 적이다. 정치·경제 구조를 전반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은 풀뿌리 민중이 진화하여 쿠바 정치 주역으로 좀 더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데 달려 있다. 이 책에서 언급한 쿠바의 사회과학자들과 언론인,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 참여의 수준을 높이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쿠바는 여전히 또 다른 민주화 국면을 겪고 있고 새로운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실험실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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