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도 조정위도 외면하려는 삼성…직업병 피해 가족들, 삼성 앞 노숙농성 돌입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를 비롯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구성원들이 7일 밤 삼성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2012년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대화가 시작된 후 3년 만에 마련된 조정위원회 권고안을 외면하고 독자적인 보상위원회를 꾸려 사회적 해결을 거부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규탄하며 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농성을 시작하기 전 이날 오후에는 서울 중구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회의가 열렸다. 지난 7월23일 조정위 권고안이 나온 후 두달여만에 열린 이 자리는 당사자들이 제출한 수정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7일 오후 서울 중구 KT&G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반올림과 직업병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7일 오후 서울 중구 KT&G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반올림과 직업병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민중의소리

회의 시작 전 반올림과 피해가족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대화를 하면서 줄곧 조정위원회 얘기를 했던 삼성이 이제 와서 권고안을 팽개치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사회적 기구인 조정위원회의 안에 따라 문제 해결되도록 노력해달라”는 뜻을 밝히고 조정회의에 들어갔다. 기자회견에 함께 했던 교섭단이 아닌 피해가족들이 조정위에 인사말만 전하고 나가겠다고 요청했지만 삼성전자 측의 반대의사 표명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의는 3시간 반동안 계속됐다. 회의에서 삼성 측과 반올림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가족대책위는 법률대리인인 박상훈, 김은혜 변호사만 참여하고 당사자들은 회의에 참가하지 않았다.

지난달 초 조정위가 7일 조정회의를 갖자고 날짜를 정한 후 이날 회의가 열리기까지 한달여의 시간이 있었지만 삼성전자측은 보상 범위, 재발방지 대책 등에 대해 이렇다할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보상위원회를 통해 보상하는 대상을 1996년 이후 근무자로 제한한 이유에 대해 조정위원들이 "오히려 지금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었을텐데 제한하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냐"고 묻는 질문에도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교섭단으로 삼성전자를 대표해 회의에 나섰지만 정작 삼성전자가 계속해서 강조해온 '신속하고 합리적인 보상'의 내용에 대해 이렇다할 설명도 하지 못한 것이다.

회의를 마친 후 백수현 삼성전자 전무는 “가대위가 신속한 보상을 위해 조정보류를 요청했고, 그 입장을 이해하고 동의한다”며 추가 조정을 보류했다고 전했다. 얼마 전 따로 꾸린 보상위원회를 계속할거냐는 질문에는 "신속한 보상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답했지만, 이후 날짜가 다시 잡히면 조정회의에 나설 것이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이었다.

“이렇게 할거면 왜 조정위를 하나, 정말 해도 너무한다”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앞 모습. 지난 21일부터 반올림이 삼성 직업병 피해자 이어말하기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건물 주변에 빨간색 띠를 둘러 출입을 막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앞 모습. 지난 21일부터 반올림이 삼성 직업병 피해자 이어말하기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건물 주변에 빨간색 띠를 둘러 출입을 막고 있다.ⓒ민중의소리
7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앞에서 이날 오후 조정회의에 참가했던 교섭단이 경과를 전하고 있다.
7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앞에서 이날 오후 조정회의에 참가했던 교섭단이 경과를 전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조정회의를 마친 후 반올림은 강남구 삼성본관 앞으로 이동해 먼저 ‘삼성 직업병 피해 이어 말하기’를 진행하고 있던 이들에 합류해 조정회의 결과를 전했다.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는 “삼성이 조정회의 시작 전, 보상위원회는 (보상기구가 아닌)내부 자문기구일 뿐이라면서 자문 받은 의견을 가지고 신청한 피해자들 찾아가서 일대일로 협상하고 합의서를 쓸 것이라고 전했다”며 “그러면서 (보상위원회는 신속한 보상을 위한) 인도주의적인 처사라고 홍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전자는 논의할 준비를 하나도 해오지 않았다”면서 “‘보류하겠다’, ‘즉답을 할 수 없다’, ‘회사가 크고 보상전담부서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조정회의에 진정성 있게 임할 자세가 전혀 돼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교섭단으로 나오고 있는) 커뮤니케이션팀은 조정을 보류한다는 말만 하러 나온 것 같아 너무 화가 난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뇌종양을 앓게 된 한혜경 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삼성이 용서가 되는게 아니라 미워진다”면서 “이렇게 나올거면 왜 조정위를 하나, 정말 웃기고 너무한다”고 말하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는 취지의 조정위원회 권고안 발표 이후 독자적인 보상위원회를 꾸리면서 각계각층의 비판이 계속돼왔다. 여덟 차례에 걸친 만남 끝에 나온 조정권고안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지난달 18일부터 개별적인 보상신청을 받아왔다. 제3의 기구인 조정위원회를 꾸려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던 삼성전자가 오히려 별도의 독자적인 기구로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있는 상태에서 반올림은 본관 앞 농성까지 진행하게 됐다.

이들은 삼성본관 앞에서 현재 삼성 커뮤니케이션팀 구성원으로 꾸려진 교섭단 전원의 교체와 삼성전자의 책임있고 진정한 사회적 대화를 촉구하며 농성을 계속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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