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 칼럼] 국정교과서 사태의 두 주역, 친일·독재의 후손이 맞다

기어이 박근혜 정권이 일을 저지를 모양이다. 많은 역사학자, 역사 교사, 학생, 시민이 반대하는 데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와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내겠다고 행정 예고했다. 20일 남짓의 행정예고 기간이 지난 뒤에는 늘 그랬듯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국정제를 밀어붙일 것이다.

더 자세히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국정 교과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다양성과 다원성을 특징으로 하는 21세기에 국가가 ‘하나의 역사’를 내세워 역사 교육을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정부여당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국정제에 반대하는 여론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 등 일부 독재국가나 후진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정 교과서가 용도 폐기되었다. 오죽하면 유엔이 국정 교과서를 내고 있는 베트남에 대해 국정제 폐기를 권고했겠는가? 박근혜 정권의 계산대로 2017년부터 국정 교과서가 나온다면 대한민국은 유엔으로부터 국정제 폐기를 권고 받는 두 번째 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 정권이 잘 쓰는 표현대로 국격 떨어지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 같다.

국정교과서 명분쌓기용의 색깔론 공세

국정 교과서는 ‘교육의 전문성,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역사 교육의 다양성 존중’이라는 국제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 교사·학생 등 교육 주체의 의사가 무시되기 때문에 민주주의 원칙에도 크게 어긋난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이 국정제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국정제 강행에는 보수 정권의 연장이라는 정치적 흑심이 깔려 있다고 이야기한다. 국정화의 명분으로 마지막에는 색깔론을 꺼내든 것도 당장 내년에 있을 총선을 앞두고 ‘진보 대 보수’라는 진영 논리를 강화하기 위한 전초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교육부와 새누리당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짓인 줄도 모르고 박근혜 정권 아래 검정을 통과해 학교에서 쓰이고 있는 기존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종북 좌편향의 낙인을 찍으려는 것은 정치 선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이 선동은 선동일 뿐이다. 내용도 없고 현실과 동떨어진 선동은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속일 수 있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새누리당은 색깔론의 정점인 “우리 아이들이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바로 철거했다. 저들의 선동대로 중·고등학교 역사 수업에서 정말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다면 그런 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킨 것이 박근혜 정권이고 따라서 박근혜 정권이야말로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할 종북 정권이라는 비판 앞에 바로 꼬리를 내린 것이다.

정부의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는 집회를 진행하는 인헌 고등학교 학생들
정부의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는 집회를 진행하는 인헌 고등학교 학생들ⓒ제공: 뉴시스

좌편향된 역사 교과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의 검정 교과서에 주체사상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간 것은 이명박 정권이 만든 교육 과정과 집필 기준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좌편향된 집필자들이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주체사상을 교과서에 집어넣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흑색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기존의 검정 교과서에는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적 설명이 충분히 들어가 있다.

주체사상뿐만이 아니다. 정부여당에서 좌편향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가지 사안은 실제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아무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은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를 싸잡아 좌편향이라고 공격하는 데서 국정제 강행의 명분을 쌓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미 현실이 증명하듯이 국정 교과서 사태는 보수 대 진보의 이념 문제가 아니라 상식 대 비상식, 민주주의 대 독재의 문제이다. 지난 주말 열린 국정 교과서 반대 집회에 참가한 한 여중생이 직접 만든 손 피켓에 적힌 “저희는 좌편향된 역사를 배운 적 없습니다. 저희도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라는 구호처럼 국정제는 이념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옳고 그름이라는 문제가 깔려 있다. 이른바 보수라고 불리는 역사학자들조차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고 더 나아가 집필을 거부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해석을 생명으로 하는 역사학의 본질을 훼손하는 데 반발하지 않을 역사학자와 역사 교사가 어디 있겠는가?

아버지를 위한 효심의 발로인가? 아니면 자기를 위한 변명인가?

마지막 순간에 결국 총대를 메기는 했지만 교육부장관이 국정제에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교육부장관도 국사편찬위원장도 애초에는 국정제보다는 검정제 강화를 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결국에는 마치 국정제만이 ‘좌편향’된 역사교육을 바로잡을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것처럼 난리법석을 떠는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심청에 비유하는 사람이 있다. 눈먼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에 자기를 판 효녀 심청처럼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뒤늦게 정치를 시작한 이유도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물론이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정치인 박근혜에게는 박정희의 그림자가 겹쳐진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할 일이 있다. 유신 체제에서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사실상 영부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유신 체제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의 책임은 박정희에게 있지만 일정 부분 박근혜에게도 귀속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신 체제가 무너진 지 35년도 더 지난 2015년 현재도 유신의 망령에서 사로잡혀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유신 체제의 옹호는 박정희를 위한 변명이자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 본인의 과거 행적을 미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권은 ‘제2의 유신체제’로 규정된다. 실제로 박근혜 정권이 보인 여러 행태에 박정희의 1인 독재체제가 겹쳐진다.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아버지가 교원노조에 용공 혐의를 씌워 탄압한 것처럼 딸도 권좌에 앉자마자 전교조를 탄압했다. 아버지가 유신체제 선포 직후 바로 역사교육에 손을 대 국사 교과서의 국정제를 강행했듯이 딸도 멀쩡한 검정제를 비난하면서 국정제로의 회귀를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 출국에 앞서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박근혜 대통령
미국 출국에 앞서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박근혜 대통령ⓒ뉴시스

독재자 박정희와 그 딸 박근혜의 역사적 재평가를 위한 국정 교과서

박정희가 친일파이고 독재자라는 사실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심지어 박정희를 창씨명인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부르는 것을 즐겨 하는 사람들도 많다. 기존의 검정 교과서에는 박정희가 친일파라는 사실이 서술되어 있지 않다. 교과서에 실릴 만큼 당대의 거물급 친일파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1979년 10월 26일 측근에 의해 살해되기까지 박정희가 1인 영구독재를 위해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인권을 탄압했는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하게 적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를 독재자로 평가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5·16군사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으로 그리고 박정희 정권에 의해 이루어진 산업화와 경제성장만을 예찬하고 독재와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올바른 교과서’를 내는 것이 딸로서의 숙원이었음을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08년 뉴라이트가『대안교과서』라는 책을 내면서 박정희의 역사적 복권을 시도한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 대표 자격으로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대안교과서』를 극찬했는데 이야말로 국정제의 원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박정희는 어렸을 때부터 일제 파시즘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모든 개인은 국가나 민족, 아니 더 정확하게는 권력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전체주의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천황이 국가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밝힌 일본 메이지헌법을 본뜬 유신헌법을 만들어 한국의 ‘천황’이 되려고 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천황제 아래 모든 신민(臣民)은 천황의 적자(赤子) 곧 갓난아이로 간주되었다. 갓난아이가 부모의 보살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듯이 국민도 지도자의 보살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박정희의 딸이 국민을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권력자에 의해 계도되어야만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현행 헌법 1조 2항에 분명히 적혀 있듯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이를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온다’로 과감히 바꾸어 해석한다. 헌법 해석과 관련된 한 전쟁을 부정한 일본 현행 헌법에 대해 이른바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 자위권 행사를 용인한 아베 정권도 울고 갈 정도이다. 결국 국정제로의 회귀에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일제 파시즘의 망령을 대한민국에서 되살리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도 여겨진다.

‘좌파와의 역사전쟁’ 운운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국정 교과서 사태의 주역은 박근혜 대통령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라는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박과 김무성 대표 사이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일부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사이의 갈등이 일촉즉발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국정 교과서 사태에서는 친박과 김무성 대표가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정제로 돌아가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당장 좌경세력에 의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점에서는 친박도 김무성 대표도 마찬가지이다.

김무성 대표는 2013년 교학사 교과서 사태가 불거졌을 때부터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 100여 명으로 구성된 ‘근현대사연구교실’이라는 것을 만들어 ‘좌파와의 역사 전쟁’ 운운 하면서 교학사 교과서 구하기에 나선 적이 있다. 일본 극우의 자학사관 주장을 그대로 베낀 김무성 대표의 한국 근·현대사 비틀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올해만 해도 8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좌파 세력이 준동하며 미래를 책임질 어린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 그래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 교과서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변한데 이어 9월 2일의 국회 교섭 단체 대표 연설에서도 기존의 검정 교과서에 대해 '편향된 역사관', '자학사관'으로 낙인을 찍으면서 국정 교과서 도입을 역설했다. 물론 이는 김무성이 주장하는 ‘좌파 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킨 것이 박근혜 정권이며 검정의 기준이 된 교육 과정과 집필 기준을 만든 것이 박근혜 정권과 한 뿌리인 이명박 정권이라는 사실에는 애써 눈을 감는 말 그대로 누워 침 뱉기 식의 흑색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고개 치켜드는 이승만 ‘국부’론

그런가 하면 같은 무렵에는 1인 영구독재를 꿈꾸다가 4월 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이승만을 “우리 민족사 최초로 자유민주선거를 시행하고,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 체제의 초석을 다진 대통령”으로 치켜세우며 “건국의 대통령” 곧 ‘국부’로 예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무성이 이승만의 복권에 총대를 멘 데는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자유시장경제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차기 대권경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재계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흑심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김무성 대표가 국정제 강행의 총대를 멘 데는 교과서를 빌미로 이념 논쟁을 부추김으로써 자신을 극우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속내가 분명히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당 대표가 된 뒤 보인 일련의 행태는 극우 정치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극우의 지지만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굳이 극우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데는 정치적 계산 이외의 그 무엇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김무성의 가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김무성 부친 김용주의 이승만과 친일파 옹호

김무성의 아버지인 김용주는 일찍이 1984년에 낸 회고록에서 “이 박사(이승만-인용자)의 정치구상은 궁극적으로 한국적, 민족적 민주주의의 정립에 목표를 두게 되었”다는 파천황의 재해석을 한 바 있다. 김무성이 이승만을 ‘국부’로 띠우려는 데는 아버지인 김용주의 이승만론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용주가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를 거론한 이유는 이승만이 민주주의의 구현자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해방정국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청산의 대상이 되었던 친일파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마련해준 은인이기 때문이었음을 짐작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 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 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정의철 기자

심지어 김용주는 일제강점 말기의 대표적 친일파로 일본 귀족원 의원까지 지낸 윤치호에 대해 “민족의 해방과 자주독립을 위해 가장 드높이 항거의 횃불을 들었던 역사적 인물 중의 한 사람(강조-인용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자신이 친일파인 김용주의 눈에는 자신보다 거물급 친일파인 윤치호야말로 애국자라는 것이다. 그런 김용주를 역시 애국자의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것이 김무성 대표의 역사관에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주지하듯이 김용주의 회고록을 거의 그대로 전재한 평전이 바로 얼마 전에 나와 ‘김용주=애국자’라는 지어낸 이야기를 퍼뜨리려다가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친일 행적 검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한 뿌리

국정제의 두 주역인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모두 친일파의 후손이고 독재자나 독재권력의 하수인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기 위해 서로 불편함을 느끼는 현실 권력과 미래 권력이 손을 잡는 것이 2015년 국정 교과서 사태의 핵심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 하나만 더 언급하기로 하자. 지난 10월 19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국정 교과서를 밀어붙이는 이유가 부친의 친일·독재 행적을 미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새누리당은 예상대로 거의 신경질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는데 그런 가운데 당 대변인이 박정희와 김용주의 친일·독재 행적을 언급하는 것은 연좌제라고 비난했다. 연좌제란 ‘범죄인과 일정한 친족관계에 있는 자에게 연대책임을 지우는 제도’를 가리킨다. 곧 새누리당 대변인이 연좌제 운운 한 것은 대통령과 당 대표가 모두 ‘범죄인’ 곧 친일파 내지는 독재자라는 사실을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요즘 잘 쓰는 말로 하면 대통령과 당 대표를 옹호한답시고 ‘팀 킬’을 한 셈이다.

당연히 민주 사회에서는 연좌제가 금지되어야 한다. 친일파나 독재자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비난 등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후손이 선조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친일·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려고 할 경우에는 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권이 역사 교육을 통제하겠다는 것은 헛된 꿈이다. 정권의 역사는 유한하지만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무한하다. 유한한 정권이 무한한 역사학과 역사 교육을 통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유신 정권의 국정 교과서가 전두환 정권에 의해 부정되고 전두환 정권의 국정 교과서가 김영삼 정권에 의해 부정되었다. 박근혜 정권의 역사 교육 통제도 다음 정권에 의해 뒤집어질 것이 분명하다. 다른 일 같으면 이미 정권 편을 들었을 보수 언론조차 역사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정권과 선을 긋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제 강행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주된 흐름을 일제 식민통치와 친일, 그리고 독재의 역사로 전환시키려는 거대한 역사쿠데타의 음모가 깔려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독립 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려는 박근혜 정권의 역사쿠데타 음모를 막아야 한다. 그것이 헌법 전문에 적혀 있듯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4·19민주이념을 계승”한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적 책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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