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호 칼럼] 농민 만남 무서워하는 농식품부 장관

장면 하나. 시간이 좀 지나기는 했지만 지난 9월 16일 전남지역 농민들이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과 사전에 약속된 면담을 갖기 위해 세종시 청사를 방문했다. 당시 농민들은 예상되는 쌀값 폭락의 심각성을 전달하고 쌀값 안정 대책을 마련하라는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어렵게 약속을 잡아 농식품부를 방문했다. 하지만 이들은 청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장관이 돌연 약속을 파기하고 면담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이 농민들이 면담하기 전에 기자회견을 했기 때문에 면담을 할 수 없다면서 사전 약속을 파기한 것이다. 점심끼니마저 거르면서 쌀값 안정 대책을 직접 장관에게 제안하고자 청사를 방문했던 농민들은 허탈감과 분노를 안고 뒤돌아서야만 했다.

장면 둘. 엊그제 10월 19일 충남 부여군 한 들녘에 삼삼오오 농민들이 모여들었다. 그 곳에서 열리는 벼베기 및 이모작 가을파종 시연회에 이동필 장관이 참석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접 장관에게 쌀값 폭락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농민들은 쌀값 폭락에 대해 심각한 위기감과 불안감을 갖고 있다. 지난 2009∼2010년의 쌀값 대폭락이 재연될 가능성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아직 별 뚜렷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민들이 직접 장관을 만나 사안의 심각성을 알려주기 위해 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농민들은 맞이한 것은 경찰이었다. 경찰 병력과 농민들이 논두렁 위에서 한참을 옥신각신하는 동안 이동필 장관은 예정되었던 행사 참석을 취소한다고 알려 왔다. 농민들과 만나는 것을 피한 것이다.

충남 지역 농민들이 농림부장관 면담을 요청했으나 경찰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충남 지역 농민들이 농림부장관 면담을 요청했으나 경찰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전농 충남도연맹 제공

위 두 장면은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이 중요한 현안문제에 대해 농민과의 만남을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나는 이 사례들에서 ‘일방통행’과 ‘마이동풍’으로 점철된 농정의 현 주소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씁쓸함을 삼켜야 했다.

사실 이러한 행태들은 비단 농정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박근혜정부의 여러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세월호 참사에서도 그러했고, 역사쿠데타라고 평가받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서도 그러하다. 어찌 보면 일방통행과 마이동풍은 박근혜정부의 국정을 관통하는 행태이기도 하다. 이 정부의 농정 역시 그러한 국정 행태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일방통행 농정이 농민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고, 마이동풍 행태가 농민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농민들은 그런 식의 ‘아몰랑’ 행태를 벌이는 장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방통행식 농정, 농민 안 만나는 장관

작년에 정부는 농민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쌀시장을 관세화로 전면 개방하는 결정을 일방적으로 내린 바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 올해부터 최후의 쌀마저 완전히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졌으며 한국의 농산물 시장은 100%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졌다. 그로 인한 식량주권의 상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 우리 국민의 삶에 고통을 가져올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게다가 올해는 굳이 수입하지 않아도 되는 밥쌀도 수입해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국내 쌀도 남아서 쌀값이 계속 하락하는 상황에서 수입해야 할 의무도 없는 밥쌀 수입을 강행해버린 정부의 행태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국산 및 중국산 밥쌀 3만 톤 수입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이후 지금 쌀의 과잉재고로 쌀값 폭락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에서 농민들은 밥쌀 수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밥쌀을 추가로 수입하겠다는 입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쌀 전면개방과 밥쌀 수입에서 드러난 일방통행식 농정의 문제점을 여기서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일방통행의 이면에는 어떤 말도 듣지 않는 마이동풍과도 같은 행태가 반복되고 있어서 농민들은 답답함을 넘어 분통이 터질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 쌀농사는 작년의 대풍년보다도 조금 더 많은 대풍년을 기록했다. 아마 사상최대의 풍년일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풍년의 기쁨 보다는 쌀값 폭락의 불안감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풍년이 원망스럽다’는 탄식마저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곡 80kg 1가마당 17만원이 넘던 쌀값은 이미 15만 원대로 떨어졌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쌀값 폭락은 이제 시작일 것이라는 관측이 농민들의 가슴을 더 타들어가도록 만들고 있다. 지난 7월말 기준으로 쌀 재고량이 130만 톤을 넘어섰고, 올해 풍년으로 인해 앞으로 쌀 재고량이 150만 톤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2009∼2010년 쌀값이 17만 원대에서 13만 원대로 대폭락을 기록했을 당시의 쌀 재고량이 약 150만 톤 수준이었다. 이제 쌀값 대폭락 당시의 쌀 재고량에 육박할 것으로 누구나 예상하는 상황에서 쌀값 안정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절실히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이 점은 농업계 누구나 전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다.

지난 5월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WTO쌀협상포기, 쌀값폭락, 약속위반 밥쌀용 쌀 수입 규탄대회'에 참석한 전국농민회총연맹 김영호 의장이이 모판 반납을 위해 청와대로 행진 중 막아서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지난 5월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WTO쌀협상포기, 쌀값폭락, 약속위반 밥쌀용 쌀 수입 규탄대회'에 참석한 전국농민회총연맹 김영호 의장이이 모판 반납을 위해 청와대로 행진 중 막아서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지금 시점에서 가장 실효성 있는 쌀값 안정 대책은 딱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쌀값 폭락을 더욱 부채질할 밥쌀 수입을 즉각 중단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규모 시장 격리 차원에서 대북 쌀 차관을 재개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부 관계자들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쌀값 안정을 위해 농민들이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 두 가지이다. 이것보다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은 지금까지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쌀값 폭락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지금도 정부는 가공용 공급 확대, 쌀 소비 촉진 등과 같은 한가한 말만 꺼내고 있다. 마치 딴 나라의 사정을 얘기하는 것처럼. 마이동풍(馬耳東風)이나 우이독경(牛耳讀經) 같은 고사성어가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조차 가공용 공급이나 쌀 소비 촉진이 실효성 있는 대책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으면서도 농민들이 요구하는 밥쌀 수입 중단 및 대북 쌀 차관 재개 등과 같은 실효성 있는 대책에 대해서는 아몰랑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농식품부 장관이 농민을 만나는 것이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귀찮기도 할 것이다. 농민을 만나 농정에 대한 쓴소리를 듣는 것이 그렇게 두렵고 귀찮게 여긴다면 차라리 물러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지금 농민들은 ‘아몰랑’ 장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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