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의 미술이야기] Prologue ‘블록버스터’ 전시와 거리두기

한 명의 관객으로서

객석이 텅 비어있는 무대와 영화관. 관람객 없는 미술관과 박물관. 독자 없는 출판물. 시청자 없는 방송. 말만 들어도 쭈뼛하고 힘 빠진다. 하지만 관람객이 많다고 해서 모두 좋은 전시라고 단정 지을 수 없듯이, 객석이 비어있다고 하여 혹평할 수 없는 법. 나는 예술을 사랑하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직접 경험한 작품 중 나누고 싶은 것들을 소개하고 그 가치를 함께 논하는 작은 마당을 만들고자 한다.

올 여름 17회 서울변방연극제에 ‘관객비평단’으로 참여했다. 삼십 여년을 살면서 관람한 연극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연극에는 문외한이었지만 ‘관객비평’이라는 말이 나를 독려해주었기 때문에 지원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내 몫의 작은 마당, 앞으로 게재될 미술칼럼의 말머리 문구를 고심하다가 다시금 관객의 역할을 떠올렸다. 벤야민이나 들뢰즈를 언급할 생각은 없다. 다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작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면 읽을 수 있는, 예술인들의 신호를 포착하고자 한다.

‘블록버스터’ 전시와 거리두기

관람객이 많다고 해서 좋은 전시라고 할 수 없는 대표적인 예로 ‘블록버스터’ 전시를 꼽는다. 미술 분야에서 ‘블록버스터’란 피카소와 앤디워홀, 샤갈이나 고흐와 같이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서양화가들의 대형전시를 말한다. 이런 전시들은 작품을 국내에 들여오는 데에만 최소 20억 원 이상이 소요된다. 작품 대여료, 운송료, 보험료 기타 전시를 만드는 비용이다. 국가의 후원과 대기업의 협찬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어마어마한 자본이 투입된 만큼 공영방송을 통해 광고하고 10만 명 단위의 관람객을 유치해 수억의 이윤을 남기는 구조다. 2004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이 블록버스터 전시 붐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서울 50만 명, 부산 16만 명을 포함해 총 66만 명이 관람했다. 입장 수익만 35억 원에 달한다. (정보 출처 CNB저널 왕진오 기자)

‘마크 로스코’전 포스터
‘마크 로스코’전 포스터ⓒ자료사진

올 해에 대표적인 블록버스터 전시는 무엇일까. 단연 <마크 로스코>전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된 이 전시의 부제는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마크 로스코’다. 이 구호로 인해 누군지도 몰랐던 마크 로스코는 스티브 잡스 버금가는 인물이 되었다. 철학자 강신주가 작품을 해설하고, 배우 유지태가 오디오 가이드를 녹음했다. 개막부터 폐막까지 연일 언론사의 찬양이 쏟아졌다. 정치인들을 비롯한 배우 이영애, 샤이니 키, 영화감독 임권택이 다녀갔다, 개관식에 주한미국대사 마크 리퍼트가 참여했다, 가수 윤종신과 빈지노가 전시관람 후 곡 작업을 했다는 둥. 문화예술계에 종사하고 있거나 평소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전시만큼은 꼭 봐야할 것 같은 분위기, 모르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전시기간 관련 연극표와 책도 함께 판매되었다. 억대 자본이 투입된 마케팅의 끝판, 왕이다. ‘최초’, ‘최대’, ‘최고’라는 단어가 서슴없이 따라붙었다. 강신주 박사는 마크 로스코에 대한 강의 중 ‘전시장에 방문하는 것만으로 우리사회가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온라인 매체를 통해 이 발언을 접하는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이러한 대형전시들의 마케팅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작품의 가격이 얼마나 비싼가를 알리는 것. <마크 로스코>전을 설명할 때에는 전시되는 작품 50점의 평가액이 총 2조 5천억 원이라는 사실에 대한 언급과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라는 수식이 항상 따라다녔다. <앵그르에서 칸딘스키까지>전은 어떤가. 이 전시 포스터에서 제목 다음으로 큰 글씨는 ‘작품평가액, 총 1조 2천억 원’이다. ‘당신은 비싼 그림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것이 관객을 유치하는 주요 전략인 것이다. 나는 묻고 싶다. 전시가 끝난 후 누가 명예를 얻었는지, 얼마나 이윤을 남겼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얼마나 나아졌는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앵그르에서 칸딘스키까지'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앵그르에서 칸딘스키까지'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뉴시스

‘나’와 ‘예술작품’의 관계

이쯤 되면 명치 밑 어딘가에서 불끈하고 솟아오르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나는 자존심이 상한다. 우리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 전시를 왜 봐야하는가? 그 비싼 작품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 작품들의 미술사적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작품의 관계를 좀 더 고찰해보자는 것이다. 모든 예술작품은 관객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아무리 비싼 것이라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 작품은, 적어도 ‘나’에게 좋은 작품이 아니다. <인상파의 고향 노르망디>전을 보고 별 감흥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노르망디가 어디에 붙어있는 지역인지, 그 지역에서 살아 온 사람들이 어떤 문화와 정서를 향유하는지, 그것이 지금의 나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는지 등에 대한 흥미가 없다면 그 낯선 풍경이 무슨 말을 걸어오겠는가. 나는 차라리 조선말기의 뛰어난 풍속화가 김홍도의 고향이 어디인지, 그는 고향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것이 더 궁금하다. 내가 주로 생활하고 있는 서울 마포구에 지금 어떤 화가들이 있는지 그것이 더 궁금하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와 같은 시대, 조선 최초의 자화상을 그린 윤두서에게도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왜 우리나라의 대표 예술기관이라는 곳의 기획전시 대다수는 서양미술인 것일까?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다

1969년에도 참된 예술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실동인 제1선언의 첫 문장,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다. 너무나 당연한 문구, 그 진리를 선언해야하는 때가 있었다. 모든 예술작품은 현실을 반영한다. 모든 예술인들 또한 자신이 속한 사회와 시대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 우리 사회는 다시금 그 당연한 진리를 선언해야만 하는 모순에 빠졌다.

올 해에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좋은 전시들이 곳곳에서 열렸다. 지난 해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최고 영예의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한반도 오감도>의 귀국전(아르코미술관). 네덜란드의 수집가들로부터 잠시 빌려 온 북한의 유화, 포스터, 우표 등 총 250점을 직접 볼 수 있었던 <북한 프로젝트>전(서울시립미술관). 월북 작가로 낙인찍혀 역사에서 삭제되었던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전(국립현대미술관) 등이다. 모두 분단이라는 현실을 환기하고, 남과 북의 70년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했다. 언급한 세 개의 전시도 많은 관람객들이 다녀갔지만, <마크 로스코>전의 관람객 수와는 월등한 차이가 있음을 확신한다.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이 전시들은 왜 <마크 로스코>전 만큼 홍보되지 못하는지, 국가와 기업이 나서서 그 역사적 가치와 의의를 해설할 수는 없는 건지, 얄팍한 질문들을 무심히 던져본다.

이쾌대, 해방고지, 캔버스에 유채, 181×222.5cm, 1948,이한우 소장
이쾌대, 해방고지, 캔버스에 유채, 181×222.5cm, 1948,이한우 소장ⓒ삼성미술관 리움

오늘의 예술, 우리의 예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변방 어딘가에서 굳세게 흔들리고 있는 그 몸짓들을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것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런 관객일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영광일까. 오늘의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수많은 꽃들을 직접 보고 싶은 의지가 일상에 치여 쉽게 꺾이곤 했다. 그 작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인터넷 매체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방법을 택했다. 다음 회부터는 본격적으로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 작정이다. 전시관람 후기, 작가 소개, 작품 소개, 미술 이슈에 대한 의견 등이 될 것이다. 부담이 컸지만 필자와 독자가 함께 대화 나누며 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더 많은 사람들과 오늘의 예술, 우리의 예술에 대해 함께 논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준 민중의 소리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박민희 art_think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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