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UR협상 당시 농민들의 주장은 ‘맞았다’
1994년 7월 8일 한겨레신문 보도
1994년 7월 8일 한겨레신문 보도ⓒ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지금 우리는 농산물을 지켜내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느냐, 아니면 민족의 근간인 농업을 외세에 맡기고 민족의 자주권을 구걸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 천영세 전국연합 공동의장

“정부의 졸속사대외교로우리 농업과 농촌이 벼랑 끝에 서게 됐다”
- 이기택 민주당 대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이 타결되고 난 뒤 정부 협상안이 국회에 넘어와 비준을 앞두고 있던 1994년 4월 10일 ‘국민대회’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비준안에는 쌀을 제외한 나머지 농산물에 대해 수입을 자유화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농민들은 “우리 농업 다 죽이는 수입 농산물을 막아내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농민들의 주장은 과도한 피해의식으로 치부됐다. 수입농산물이 들어온다고 해서 우리 농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별로 없었다. 여기에는 수출을 위해서 농업 희생은 감내해야 한다는 여론도 작용했다.

정부는 앞다퉈 농업 지원책을 발표했다. 수입농산물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우리 농산물의 경쟁력을 키우면 해볼만한 싸움이라는 설명이었다. 우루과이라운드를 강행했던 김영삼 정부는 10년간 62조원을 농업 경쟁력 강화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1994년 7월에는 ‘농어촌특별세’가 도입 되면서 재원 마련도 현실화 됐다. 이후 매년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의 예산이 농업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뿌려졌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농업은 정부의 말대로 경쟁력을 갖춰 살아남았을까? 아니면 농민들의 말대로 “근간인 농업을 외세에 맡기고 민족의 자주권을 구걸하며 살아가는”처지가 됐을까.

경쟁력은 고사하고...한국의 농업은 죽었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결론부터 내리자면 실패였다. 실패도 이만한 실패가 없었다. 산업으로서의 농업은 사실상 몰락했다.

우리나라 전체산업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4로 축소됐다. 1990년 국민총생산(GDP) 대비 농림어업의 비중은 8.9%였으나 2014년에는 2.1%에 불과했다.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농업 노동력은 심각한 수준으로 감소했다. 1990년 농민인구는 666만명이었으나 2014년 농민 인구는 270만명으로 60% 가까이 급감했다. 전체인구 대비 농민 인구는 15.3%에서 5.5%로 9.8%p 줄었다.

그나마 남은 농업 노동력은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1995년 총 농가의 16.2%가 65세 이상 농가였으나 2014년에는 그 비율이 39.1%로 2배 이상 급증했다.

농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토지 역시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농업에 사용되는 토지를 경지라고 부르는데 지난 1995년 전체 국토의 20% 가량이 경지였지만 2014년에는 총 국토의 16.9%만이 경지다. 3.1%p 이상 줄었다.

식량 자급률

농업의 몰락은 식량자급률의 하락으로 나타났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날개 없는 추락을 이어왔다. 1990년 43.1%였던 식량자급율은 2014년 24%까지 곤두박질쳤다. 한국은 국내 필요한 식량의 70%이상을 해외에 의존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이중 곡물에 대한 의존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른바 4대 곡물 메이저라고 불리는 카길과 ADM, BUNGE, LDC로부터 수비하는 소맥, 대두, 옥수수 등 이른바 3대 곡물은 전체 수입량의 56.9%에 달한다.

곡물 메이저 비중
곡물 메이저 비중ⓒ민중의소리

1994년 4월 집회 현장에서 터져나온 “민족의 근간인 농업을 외세에 맡기고 민족의 자주권을 구걸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라는 말은 2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결코 허황되지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한 망상도 아니었다는 점이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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