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의 미술이야기]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raw(날 것의, 다듬어지지 않은)’ 창작물이 쏟아지는 시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점점 다양하고 간편해지고 있다. 시간과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시민을 대상으로 추진되는 ‘문화예술교육’ 정책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우리는 모두 예술가!’라는 구호는 이런 맥락에서 유효하다. 우리는 예술행위를 통해 잠재되어 있는 다양한 욕구를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다. 또 나 밖의 존재들에 대해 관찰하고 느낀 바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 이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 중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취지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목적은 결과물의 완성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일시적으로 부여되는 ‘작가’라는 호칭은 ‘자기표현을 두려워하지 마세요.’라는, 암묵적으로 합의된 응원이다.

최근 우연한 계기로 ‘로사이드(raw+side)’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다. 자폐를 가진 한 청년의 노트를 본 예술가가 버려진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하며 설립한 비영리예술단체다. 그들은 제도권의 미술교육과 무관하게 스스로 창작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날 것의 창작자’를 발굴하고 다양한 장르의 전문 창작자들과 연결하여 공동의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또 창작물 중에 어떤 것들은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상품으로 개발된다.

‘로사이드’를 소개해 준 최선영 작가(로사이드 운영위원)는 나를 포함하여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홍보지를 나눠주었다. 그 내용은 12월 2일부터 15일까지 종로의 ‘갤러리 일호’에서 열리는 작가미술장터 <잇-장>이었다.

전시장 풍경
전시장 풍경ⓒ박민희 제공

미술행위가 익숙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재료의 특성을 충분히 체득하지 못해서 그림을 그릴 때 강약 조절에 미숙하다. 때문에 일관된 힘으로 재료를 사용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모든 선을 흐리게 그리거나 그 반대이거나. 하지만 그 익숙하지 않은 상태도 장기간 반복되어 자신만의 표현방식으로 구축된다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성, ‘작가주의’가 된다. 자타에 의해 ‘작가’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창작물의 양이 중요해지는 부분이다.

미술작품이 그 자체만으로 감동을 줄 때에는 그것만이 갖고 있는 힘, 말로 설명되지 않는 기운이 있다. 그 것은 원근법에 따른 형태의 완벽함이나 재료를 다루는 능숙함 이전에, 창작자의 집요함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raw(로우)’한 그림들 중에서도 집요함으로 완성된 것들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힘이 있고, 분명 잘 그렸지만 기억나지 않는 어느 미술대학생들의 그림보다 더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생각을 드러내는 행위로서 가치를 갖게 된 미술, 근대의 개념으로 바라봤을 때 ‘날 것의 창작자’들은 ‘미술언어’를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잇-장>에서 선보인 작품들의 대부분은 이런 유형의 것들이다.

인상 깊었던 작품은 신승호, 정진호의 드로잉이다. 날 것의 창작자 신승호의 “세계의 전차 시리즈”를 보면 그가 얼마나 ‘전차’에 골몰해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총 85개의 전차가 아주 세밀하게 그려졌다. 독일과 프랑스, 미국 등 세계에 존재하는 전차의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 그것들을 암기해서 표현했는지 혹은 많은 자료들을 찾아보며 정리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전차의 생김새와 명칭 그리고 해설까지 창작자 특유의 집중력이 발산되고 있었다.

신승호의 “세계의 전차 시리즈”(종이에 볼펜과 마카, 395x545mm 4개, 2015) 일부
신승호의 “세계의 전차 시리즈”(종이에 볼펜과 마카, 395x545mm 4개, 2015) 일부ⓒ박민희 제공

정진호의 ‘황도 12궁’ 또한 일필휘지의 힘이 느껴지는 좋은 드로잉이다. 지구의 공전에 의해 생기는 태양의 길, 황도. 그 길에 따라 한 달에 한 개씩 볼 수 있는 12개의 별자리. 그가 ‘사대천사’나 ‘오룡’처럼 상상의 동물을 그리거나 ‘황도 12궁’을 독창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인도/유럽/러시아의 역사, 일본과 미국의 애니메이션, 아즈텍/바빌로니아/이집트/북유럽의 신화, 신화 속 동물, 무기의 종류와 활용기술, 동물의 진화론 등 광범위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으며 각각 습득한 지식과 정보들을 자유자재로 호출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특히 그 작품들의 개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는 함께 전시된 ‘굿즈(Goods, 상품)’였다. 판매되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선주문 후 수공으로 제작되어 질이 매우 좋다. 한마디로 ‘raw’하지 않고 ‘well done(훌륭)’하다. ‘공동창작자’들은 날 것의 창작품들에서 개성 있는 부분을 일부 발췌해 반복되는 패턴을 디자인하고, 그것으로 소파, 쿠션, 모자와 가방 그리고 의류까지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냈다. 자세히 보기를 통해 매력을 발견하는 매개자로서 예술가의 역할이 돋보였다. 전시를 관람한 후 나는 몇 가지 작품을 상품의 형태로 소장할 수 있었다. 그들의 협업은 굉장히 성공적이다.

정종필의 “백조”(종이위에 마카, 197x272mm, 2015) 중 부분. 그림을 활용하여 제작된 “백조모자”(디자이너 정유희)
정종필의 “백조”(종이위에 마카, 197x272mm, 2015) 중 부분. 그림을 활용하여 제작된 “백조모자”(디자이너 정유희)ⓒ로사이드 제공

지금도 곳곳의 수많은 일상에서 ‘날 것의 창작물’들은 생산되고 있다.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디자인을 보태 세상과 연결하는 ‘로사이드’. 그들이 만든 <잇-장>에서 구매하고 싶은 것들을 고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그리는 행위로 생산되는 가장 오래 된 ‘미술’은 상품이 되는 과정으로 존재할 때에 더 값어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가가기 어렵다고 느끼는 현대의 ‘미술’은 점점 더 다수의 사람들이 소유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로사이드’에서는 장애가 있는 창작자들은 ‘날 것의 창작자’, 그들과 1:1로 팀을 이뤄 공동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을 ‘공동창작자’라고 부른다.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서로 교감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로사이드’홈페이지에서 <잇-장>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 ‘로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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