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청춘칼럼] 응답하라 1224, 올해도 몰래산타 나르샤

벌써 8년 전이다. 등도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건물 계단을 올라 찾아간 초등학교 3학년 태은이는 산타들의 방문에도 기뻐할 줄 몰랐다. 또래 아이들처럼 까불지도 기뻐하지도 않고 눈물만 뚝뚝 흘리던 그 아이. 너무 의젓해서 마음이 더 아팠다. “왜 울어? 안 좋아?”라 물으니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했다.

수학 선생님이 꿈이라던 태은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작년에는 리어카 폐지 한가득이면 삼천 원, 한달 내내 주워도 십만 원도 되지 않는다는 아흔세 살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노란리본 산타’를 하며 기다림과 오열의 공간 팽목항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북받치는 서러움을 참지 못해 아이처럼 펑펑 울기도 했다. 그렇게 해마다 겨울이면 산타클로스를 자처하며 ‘사랑의 몰래산타’를 진행한지도 어언 8년이 지났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몰래산타

2008년, “크리스마스에 사람이 모이겠어?”라는 반신반의 시작한 활동이 이제는 해마다 수백 명이 참가하고 지역사회와 언론의 주목을 받는 대구지역 크리스마스 ‘메인 이벤트’가 되었다. 이미지가 딱히 좋지 않은 대구에서, 그것도 공식적인 봉사단체, 모금단체가 아닌 곳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수백 명이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규모가 점점 커지다 보니 준비기간도 길어지고 할 일도 태산이다. 9월부터 기획회의를 진행하고, 11월부터 생뚱맞게 산타복을 입고 모집 활동을 하러 대학가로, 시내로 나간다.

좋은 뜻을 가진 선남선녀 만났으니 ‘몰래 사랑의 산타’가 탄생하는 일은 부지기수고, 불순한(?) 의도를 가진 참가자들을 걸러내려 나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기도 했다. 방문하기로 한 가정과 혼선이 생겨 아이는 밤새 울고불고 산타를 찾고 정작 산타는 가지 않아 항의 전화를 받은 것도 수차례다. 이렇게 어려움은 있지만 해마다 몰래산타는 크리스마스에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들을 찾아간다.

사랑의 몰래산타 참가자들. 자료사진
사랑의 몰래산타 참가자들. 자료사진ⓒ민중의소리

그런데 올해는 더욱 쉽지 않다. 찬바람도 불고 눈발도 날려야 겨울분위기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날 텐데 산타복을 입고 홍보전단을 돌리는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릴 정도의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니 환장할 노릇이다. 게다가 11월에 며칠간의 이어지는 장맛비가 웬말인가? 경기침체 탓인지, 세상살기가 팍팍한 탓인지 연말의 들뜬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캐롤에도 자본의 논리가 들어와 저작권 문제로 거리에서 캐롤을 듣기가 쉽지 않다. 재정적 어려움은 여전했다.

짱짱한 단체에서 진행하는 행사야 메인 스폰서 달고 쉬엄쉬엄 가도 괜찮지만, 노동조합, 시민단체를 통해 알음알음 모았던 후원마저 각 단체 사정으로 끊겨나가는 통에 지인을 찾아다니며 반강제로 개인후원을 요청하는 것도 맘은 편치 않다. 그러다보니 ‘산타원정대’, ‘희망산타’ 등등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내걸고 특전을 자랑하는 비슷한 활동에는 묘한 경쟁심과 부러움이 발동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앞으로도 ‘몰래산타’를 진행하는 내내 겪을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주고 있고, 특히 대학생, 직장인 청년들의 참가가 많다. 연인과 친구와 함께 보내기에도 바쁜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험기간과 직장생활,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흔쾌히 시간을 내고 참가비를 내서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겠다고 나선 청년들과 함께하는 것은 내가 겪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자 선물이다. 차별없는 크리스마스를 만들겠다며 참가한 청년들도 사실 학력과 경력, 출신과 스펙으로 차별받고 N포 세대라 불리며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세대 아니던가? 이런 상황에서도 사회와 이웃을 향한 청년들의 에너지,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만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과 진심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크리스마스만이라도 따뜻한 기운을 나누기 위해

차별과 불평등이 당연시 되는 요즘 세상에 한 번의 활동으로 세상이 크게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크리스마스만이라도 차별을 없애기 위해 2015년 올해도 ‘몰래산타’가 출동한다. 가난과 차별로 더 이상 산타를 믿지 않는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전기장판 하나에 의존하며 쓸쓸히 겨울을 나고 있는 홀몸 어르신들과 함께, 역사왜곡 계속되고 친일이 애국으로 둔갑하는 요즘에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독립유공자 어르신들을 ‘몰래산타’가 찾아간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산타가 없다고 생각하는 진주의 동심을 지켜주려 크리스마스 선물로 갖고 싶다는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이웃들은 온갖 애를 쓴다. 결국 어른들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골목길 공동체’는 우리 기억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도 그런 공동체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1988년 골목길 이웃들이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만들었듯, 2015년 몰래산타가 따뜻한 기운을 나누며 어두운 골목길을 누빌 것이다. 설사 산타와 안 비슷하고 아이들이 안 믿으면 어떤가? 누군가를 위해 우리가 함께 만드는 시간은 그것만으로도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것이 몰래산타들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에 응답하는 법이다. 몰래산타와 함께 하는 올 겨울도 메리메리 크리스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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