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조위 청문회 통해 드러난 ‘사실’과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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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닷속에 잠자고 있는 ‘진실’을 찾아서
  2. <사실 1> 구조당국은 세월호와 직접 교신 안 했다
  3. <사실 2> 대통령은 ‘뒷북 지시’를 내렸다
  4. <사실 3> 대통령 방문 당시 수색작업은 없었다
  5. <사실 4> ‘잠수사 500명 투입’, ‘에어포켓’은 거짓말
  6. <의혹 1> TRS 교신 녹취록은 조작됐다?
  7. <의혹 2> 청와대가 세월호 구조를 방해했다?
  8. <의혹 3> 대통령은 왜 가족과 국민에게 거짓말했나?
  9. 이 기사의 히스토리
옥기원 기자 최종업데이트 2015-12-22 08:46:08
  • CARD 1/

    바닷속에 잠자고 있는 ‘진실’을 찾아서

    작년 4월 16일 오전 9시께 전남 진도군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를 해경 등이 수색하고 있다.
    작년 4월 16일 오전 9시께 전남 진도군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를 해경 등이 수색하고 있다.ⓒ뉴시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1차 공개청문회를 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608일이 지나 열린 청문회에서 사고 발생 이후 구조당국과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여부가 조사됐습니다. 당시 해경청장, 123정장, 해수부장관 등의 증언을 통해 참사 직후 구조 세력의 과장 발표, 대통령의 거짓말과 ‘뒷북 지시’, TRS 녹취록 조작 여부 등 사실과 의혹이 드러났습니다. 현재 김경일 123정장만이 형사처벌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초기 부실 구조의 단초가 해경 지휘부 등에 있고 이들 또한 참사의 책임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수사권·기소권’이 없는 상황과 ‘여당 추천 특조위원 전원 불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특조위가 1차 청문회를 통해 밝혀낸 4가지 사실과 3가지의 의혹을 정리합니다.

  • CARD 2/

    <사실 1> 구조당국은 세월호와 직접 교신 안 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 이후, 해양경찰청과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목포해양경찰서 모두가 세월호와 직접 교신하지 않았다. 구조에 직접 관여했던 해당 부처들은 진도VTS(해상교통관제센터)와 세월호 간 교신내용도 파악하지 못했다. 이들 부처는 서로에게 교신을 떠넘기며 세월호의 사고 발생후 40여분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았다.

    목포해경 소속 123정이 사고해역에 도착한 오전 9시 30분 이후 세월호 사고의 심각성이 관련 부처들에 전달됐다. 123정이 아무런 구조 준비 없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상황에서 세월호는 이미 50도가량 기울어져 있었다. 구조세력들은 퇴선명령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며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배가 많이 기울었다는 이유로 구조대원들의 선체신입 조차 시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이후 승객 304명은 선내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작년 4월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동 북방 1.8마일 해상에서 해경과 해군, 민간선박 등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작년 4월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동 북방 1.8마일 해상에서 해경과 해군, 민간선박 등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뉴시스

  • CARD 3/

    <사실 2> 대통령은 ‘뒷북 지시’를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4월 17일 오후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해 피해 가족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4월 17일 오후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해 피해 가족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세월호 참사 발생 후 1시간 40여분이 지난 오전 10시 30분께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특공대 등 전 구조세력을 총동원해 한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게 하라”는 ‘뒷북 지시’를 내렸다. 통화 당시 특공대 등 전 구조세력이 이미 동원된 상황임을 고려하면 박 대통령은 세월호 구조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 뒷북 지시를 내린 후인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할 7시간여 동안 대통령의 행적이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다.

  • CARD 4/

    <사실 3> 대통령 방문 당시 수색작업은 없었다

    세월호 참사 발생 다음날인 2015년 4월 17일 오후1시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해경 등은 물살이 약한 정조시간에도 수중 수색을 진행하지 않았다. 해당 시간은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에 방문했던 시간대와 일치한다.

    현장 잠수사 증언 등을 종합하면 17일 잠수가 불가능할 정도의 기상상황이 아니었다. 일기예보에도 17일 파도 높이는 수중수색을 진행했던 16일, 18일과 비슷했다.

    이에 대해 특조위원들은 “대통령이 와서 잠수를 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김석균 전 해경청장은 “기상 여건이 좋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박 대통령은 17일 가족들은 만나 “500명의 잠수 인력이 투입됐다”는 김 전 해경청장의 발표가 맞다고 말하며 당시 대규모 수색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설명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4월 17일 오후 세월호의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 방문 가족들과의 대화를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4월 17일 오후 세월호의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 방문 가족들과의 대화를 갖고 있다.ⓒ김철수 기자

  • CARD 5/

    <사실 4> ‘잠수사 500명 투입’, ‘에어포켓’은 거짓말

    세월호 참사 발생 당시 해경 등의 ‘500명 잠수사 투입’ 발표는 거짓말로 드러났다. 김석균 전 해경청장이 작년 4월 17일 ‘잠수사 500명 투입’을 발표할 때까지 누적 잠수인원이 30여명에 불과했지만, 동원 소집된 잠수인력까지 추가해 과장 발표한 것이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범대본)는 이후에도 하루 누적잠수인원 20~80명인 상황에서도 ‘민관군 합동구조팀 총 755명 동원 격실 내부 집중 수색’이라는 브리핑 자료를 잇달아 발표했다.

    이에 김석균 전 청장은 ‘500여명의 잠수인력 투입’은 “잠수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동원을 의미한다”고 말했고,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현장을 살피느라 보고서를 볼 겨를 없었다. 잘못을 인정한다”고 사과했다.

    작년 4월26일 오후 전남 진도 사고 해역 수색에 투입된 해난구조대 잠수사가 바지선에 올라서고 있다.
    작년 4월26일 오후 전남 진도 사고 해역 수색에 투입된 해난구조대 잠수사가 바지선에 올라서고 있다.ⓒ양지웅 기자

    참사 직후 선체 내 공기가 남아 있다는 일명 ‘에어포켓’의 존재 가능성도 애초부터 희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구조당국은 당시 침몰한 선체 에어포켓에 공기주입 작업을 벌이며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참사 600여일이 지난 후 이주영 전 장관은 청문회에서 당시에도 에어포켓 존재 가능성이 희박했다고 증언했다.

  • CARD 6/

    <의혹 1> TRS 교신 녹취록은 조작됐다?

    세월호 참사 직후 TRS(디지털 주파수공용통신) 교신 녹취록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23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할 전후인 오전 9시 18분, 27분 부분의 교신 녹취록이 통째로 없어진 것이다. 검찰과 감사원 등 사정기관에 제출된 TRS 녹취록은 2가지이지만 2가지 녹취록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았다.

    녹취록이 의도적으로 조작됐다는 특조위원들의 주장에 조형곤 목포해경 상황관은 “음성파일을 직원들이 직접 들으면서 녹취록을 작성해 안 들리는 부분을 추가로 적어 제출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발행했다”고 해명했다.

    진도 팽목항에서 바라본 진도 VTS.
    진도 팽목항에서 바라본 진도 VTS.ⓒ양지웅 기자

  • CARD 7/

    <의혹 2> 청와대가 세월호 구조를 방해했다?

    특조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김경일123정 정장의 답변을 지켜보는 세월호 피해 가족들
    특조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김경일123정 정장의 답변을 지켜보는 세월호 피해 가족들ⓒ김철수 기자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123정이 청와대와 해경 등에 보고를 하려다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허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조위에 따르면 참사 당일 오전 9시 20분부터 오전 10시 40분까지 총 21회에 걸친 청와대와 해경상황실 통화중 6번의 영상 요구가 있었다. 법원은 해경 등이 참사 당일 9시 36분께 김경일 123정장에게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2분 22초동안 통화하고, TRS로 20여회 이상 보고하게 하는 등 김 정장이 구조활동에 전념하기 여렵게 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특조위원들은 이에 대해 “세월호 사고 직후 1분1초가 중요한 상황에서 김경일 경장은 보고를 하다 구조활동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고, 해경은 “구조를 목적으로 한 보고였다. 구조 상황에 방해를 주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 CARD 8/

    <의혹 3> 대통령은 왜 가족과 국민에게 거짓말했나?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발생 다음날 진도 체육관에서 피해 가족들을 만나 김석균 전 해경청장의 ‘잠수사 500여명 투입’ 발표가 ‘맞다’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는 매시간 간격으로 해경 핫라인을 통해 실제 잠수 누적인력이 30여명이라는 내용의 보고를 받았다. 만약 박 대통령이 보고된 구조 상황을 파악하고도 해당 발언을 했다면 피해 가족과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후에도 수차례 “사고의 진상이 규명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세월호 피해 가족과 국민들에게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박 대통령은 피해 가족의 면담요구를 거절하고, 세월호 관련 언급을 일체 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언론 등이 의혹을 제기한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 박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 또한 대통령의 프라이버시라는 이유 등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 참사 1주기인 4월 16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침몰 참사 1주기인 4월 16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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