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창 칼럼] 배제 없는 연대를 통해 패배의식을 극복하자

직접 선거 전면에 나서기로 한 민중운동 단체

최근 민주노총, 전농 등 민중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선거연합정당을 구성하기 위해 활발하게 논의한다고 들었다. 그리스의 집권당으로 떠오른 ‘시리자’를 모델로 한다고 해서 흥미를 느낀다. 서구식 정당 정치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처음 듣고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또 이게 일시적으로 국면 타개를 위한 처방인지 아니면 장기적인 새로운 흐름인지 판단하기 힘들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답답한 마음에 지푸라기도 잡으려는 마음으로 그 맥락을 헤아려 보려 한다.

선거연합정당이란 언뜻 보면 선거연합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신자유주의 시대, 세계적인 추세가 선거연합이라 한다. 신자유주의로 사회의 각 계급, 각 계층 사이에서 이해의 대립이 더욱 심화되었다. 이를 기초로 다양한 정당이 출현하기 마련이며, 선거 국면에 이르면 이들 정당 사이에서 연합전선이 출현하게 된다. 우리의 경우에도 총선과 대선에서 이미 여러 번 이런 선거연합을 해보았으니 새롭다 할 수 없겠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기왕의 선거연합과 지금 제안된 선거연합정당은 근본적인 차이점을 지닌다. 그것은 민중운동 단체가 직접 선거 후보를 내세우겠다는 생각이다. 쉽게 말해서 노동운동 단체는 노동자 후보를, 농민운동 단체는 농민 후보를, 청년운동 단체는 청년 후보를 직접 내겠다는 말이다. 여기에 기왕의 제도적인 정당도 고유한 후보를 내세울 수 있고, 선거 국면에서 공동으로 활동하므로, 나머지 부분은 기왕의 선거연합과 다를 바 없다. 과연 이런 방식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일까?

민중후보 전술이라는 이미 오래된 전술을 돌이켜 생각해보자. 서구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이론가들이 주장하듯이 비례의 불균형이라는 문제이다. 서구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민중의 수에 비해서 민중을 대변하는 의원의 수는 지극히 작다. 이런 불균형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만은 아니다. 민중이 갈망하는 정책이 실질적으로 실현되는 경우 또한 드물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축하를 받고 있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축하를 받고 있다.ⓒ민중의소리

진보정당과 민중 후보의 성과와 과제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미 레닌이 이 문제를 고민한 적이 있다. 레닌이 ‘국가와 혁명’(1917년)에서 주장한 바에 따르자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서구 민주주의가 지닌 제도적 문제이다. 서구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지역(즉 소비의 영역)을 기초로 하며 정책의 집행이 전문적인 관료에게 장악되어 있다. 레닌의 대안은 코뮌을 기초로 하는 소비에트 민주주의이며, 인민적 자치의 확대였다.

서구의 경우 레닌적 문제의식만은 공감하면서 서구 민주주의의 제도적인 틀 안에서 이런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해 왔다. 나라마다 다양한 해결방식을 제시해 왔다. 우리의 경우도 80년대 민중운동이 등장한 이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줄기차게 전개해 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진보정당을 통해 간접적인 민중후보 전술이다. 진보정당은 유리한 지역에(극히 소수의 지역에 한정되지만) 민중후보를 추천했다. 민중후보는 대개 민중운동에 참가했던 사람으로서 진보정당 운동에 기여한 정치인이고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상당한 정치적 자산을 갖춘 사람이었다. 많은 민중후보가 어려운 여건에서 헌신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비판적으로 보자면, 문제점도 없지 않았다. 의회 진출에 성공한 상당수는 기왕의 명망가가 걸었던 길을 답습하면서 점차 민중을 대변하는 원래의 길에서 이탈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또는 마음속 깊이 민중에 헌신하고자 했던 많은 후보들은 명망성이나 그 외 정치적 자산의 부족으로 의회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였다.

또는 진보정당은 민중후보를 비례대표로 추천했다. 정치적 자산이 부족한 민중후보로서는 그래도 유리한 길이 비례대표 추천의 길이었으나 이 길은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 한때 진보정당이 민중운동 단체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얻었을 때 그 토대가 이 비례대표 추천의 제도였다. 이 방식 역시 근본적으로는 정당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이므로 최종적인 추천(추천 선거)이 정당인에 의해 장악되면서 진보정당과 민중운동 단체 사이의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보아 진보정당을 통한 민중후보 방식에는 장단점이 있었다. 장점으로 말한다면, 이 방식은 적어도 민중출신 후보에게 부족한 정치적 자산 예를 들어 명망성이나 신뢰감 부족 등의 자산을 상당히 보완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이런 단점은 앞에서 설명한 것을 통해 이미 짐작했으리라 믿는다.

민주주의를 넘어서 자치의 확대로

진보정당을 통해 간접적으로 민중후보를 내세우려는 지금까지의 전술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나는 이런 평가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단점은 단점으로 인정하더라도 장점은 장점대로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민중운동 단체가 직접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을 시도해 보자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우선 선거연합정당의 제안자가 강조했던 것처럼 ‘고육지책’이라는 측면으로 본다면 현 시점에서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현재 진보정당이 분열된 상황에서 간접적 추천을 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간단하지 않은 여러 문제들(예를 들어 법적 한계나 민중조직 내부의 문제 등)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법”은 없고, 세상에는 원래 “뜻이 있으면 길은 있는 법”이다.

장기적으로 보아도 이 방식은 진보정당 운동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정당의 우위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사회단체가 정당과 함께 공동으로 선거에 참여해 왔다. 정당 말고 사회단체가 직접 후보를 내세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정당이 하지 못하는 일을 사회단체가 수행할 여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은 민중조직의 직접 후보 전술이 장기적인 차원에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생명력은 민주주의를 넘어서 자치가 필요하다는 데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진보정당 정치인조차도 세월이 지나면 점차 관료적인 정치인으로 변모한다는 점을 고려해 보자. 민중의 직접 후보는 이런 관료적 정당 정치를 타파하는 데 일조할 것은 틀림없다. 왜냐하면 민중 직접 후보는 민중운동 속에서 길러진 후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활을 통해 민중 속에서 살아가고 민중과 호흡을 같이 해 왔기에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민중의 의사를 대변하고 실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민중 직접 후보 전술이 장점만 가진 것은 아니다. 부족한 정치적 자산을 보완하는 문제가 우선적으로 남아 있다. 더욱이 민중 직접 후보는 민중의 지역적, 부문적 이해에 급급할 가능성이 있어서 정당이 지닌 전국적 거시적 정치적 관점과 대립할 수도 있다. 다양한 민중운동 단체들 사이의 갈등이나 진보정당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너무 비관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모습을 볼 수가 없어 판단하기 어렵지만 선거연합정당은 진보정당과 민중운동조직이 함께 하는 것이니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지난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선 옥쇄파업이 벌어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홍희덕, 이정희 의원이 경찰과 사측에 항의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선 옥쇄파업이 벌어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홍희덕, 이정희 의원이 경찰과 사측에 항의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단결과 연대로 패배의식을 극복하자

나는 이 자리에서는 선거연합정당을 주로 민중후보 전술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보았지만, 진보운동 전체에서 놓고 볼 때에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선거연합정당을 통해 민중이 직접 진보의 단결을 위해 압력을 가한다는 전술이다.

진보가 분열된 모습으로 당면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지금 현실에서 진보 내부에서 갈등과 반목이 심하고 이를 묶어내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현 시점에서 민중운동 단체가 가진 역량을 동원하는 것이 진보의 단결을 추진하는 데 커다란 동력이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선거연합정당은 흩어진 여러 정당, 사회단체의 독자성을 보장하면서 서로 경쟁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차이와 연대의 전략’을 구사하겠다고 했다. 느슨하지만 그래도 공동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대중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지닐 것으로 기대된다. 혹시 선거연합정당을 통한 공동의 투쟁으로 진보의 더욱 밀접한 단결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다면 너무 낙관적일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매력적인 만큼 어려움도 많다. 민중의 압력이나, 느슨한 공동투쟁이 한계가 지녔다는 점은 한눈에 보인다. 그나마 현 시점에서 가능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거둘 수는 없다.

선거연합정당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상에서 설명한 제도적인 측면들이 아니다. 이런 제도야 장단점이 있다. 현 상황에서는 가능한 유일한 선택지이고, 그 문제점은 제안 내에 이미 보완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나는 오히려 이 제안에 깔려 있는 정신에 주목하고 싶다. 선거연합정당은 어느 세력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연대의 정신위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새누리에 대항하는 민주진보 세력에는 분열이 극심하다. 단순한 노선의 갈등을 넘어서서 서로의 존재 자체를 배제하려는 전술이 횡행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종북몰이’일 것이다. 나는 이런 분열이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패배의식 때문이라 보지만 그 원인이야 어떻든 이렇게 분열이 극심한 시대에 연대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용기 있는 행동이다. 분열의 유혹을 극복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진보의 토대가 된다. 이런 점에서 선거연합정당 제안은 ‘배제 없는 연대’라는 주장만으로도 이미 역사적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제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배제 없는 연대를 통해 패배의식을 극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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