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눈에 보는 ‘노동개악’ 20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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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목록
  1. 서문-독재 이후에도 '노동개악'은 현재진행형
  2. 1996년-노동법 날치기와 양대노총 총파업
  3. 1998년 이후-노사정위원회 출범과 구조조정 야합
  4. 2003년-‘노동운동가 변호 경력’ 대통령 취임했지만…
  5. 2004~2007년-격렬한 몸싸움 끝에 비정규직 법안 통과
  6. 2008년-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노골적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
  7. 2009~2010년-타임오프제 도입과 합헌 결정
  8. 2011년-복수노조 허용과 단체교섭창구단일화제도 시행
  9. 2014년-비정규직 사용 2년에서 4년으로?
  10. 2015년-동료 분신 시도에도…‘노동개악’ 합의
  11. 2015~2016년-해를 넘긴 ‘박근혜표 노동개악’
강경훈 기자 최종업데이트 2016-01-03 17:19:09
  • CARD 1/

    서문-독재 이후에도 '노동개악'은 현재진행형

    한국의 노동법은 1953년 최초로 제정됐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역대정권은 국가안보와 경제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노동관계법에 대한 개정을 수차례 시도했다. 특히 1971년 박정희 정권의 국가비상사태 선언에 이어 제정된 국가보위법은 제9조 1항에서 “비상사태 아래서의 근로자의 단체교섭권 또는 단체행동권의 행사는 미리 주무관청에 조정을 신청하고 그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해 사실상 노동기본권을 부정했다.

    그러나 모진 탄압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해 온 노동운동진영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촉발시켰고 이후 노동법 개정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과 요구가 거세졌다. 1993년 문민정부를 표방하며 집권한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신노사관계”를 주창하며 노동법 개정작업에 들어간다. 김영삼 정부의 노동법 개정작업은 1996년 5월 9일 대통령 자문기구로 구성된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이하 노개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노개위는 출범 후 6개월에 걸쳐 치열한 공방을 벌인 뒤 파행된다.

    이번 카드뉴스는 1996년 노개위 논쟁 이후 20년간의 노동개악 역사를 한 눈에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 CARD 2/

    1996년-노동법 날치기와 양대노총 총파업

    1996년 국회 ‘노동법 날치기 통과’이후 벌인 총파업 당시, 외국 지지자들과 함께 행진하는 권영길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
    1996년 국회 ‘노동법 날치기 통과’이후 벌인 총파업 당시, 외국 지지자들과 함께 행진하는 권영길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민중의소리

    '정리해고제' 도입 시도

    양대노총 총파업 반발

    노동법 개정 무산

    1996년 노개위에서 사용자 측은 노동단결권을 최대한 제한하고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시간제, 파견근로시간제 등 이른바 고용유연화를 위한 정책을 도입하고자 했다. 노동자 측은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는 독소조항의 폐지를 주장하는 한편 고용유연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요내용이 합의되지 않은 가운데 노개위는 일부 합의된 내용을 제외하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내용들은 공익위원끼리 합의한 내용으로 정부에 제출했다. 1996년 11월 10일 국무총리와 14개 관련부처 장관들을 위원장과 위원으로 해 노사관계개혁추진위원회(노개추)를 구성하고 12월 3일 노개위 공익위원들의 개정안보다 훨씬 후퇴한 내용으로 개정안을 의결했다.

    12월 6일 입법예고안이 발표되자 노동조합 진영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모두 노동법 개정안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총파업에 들어갈 것을 결의했다. 노동진영의 경고에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1996년 12월 26일 새벽 6시 버스를 대절해 국회본회의장으로 들어가 6분 만에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1987년 대투쟁 이후 10년 만에 총파업투쟁에 불길이 번졌다.

    당시 총파업은 연말연시가 끼어 있어 며칠 만에 동력을 잃고 불씨가 꺼질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연맹별 순환파업이라는 새로운 전술로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데 성공했다. 1996년 12월 26일부터 이듬해 1월 18일까지 24일 간 이어진 파업 투쟁 끝에 결국 노동법 개악시도는 중지되고 민주노총 지도부에 내려졌던 구속영장도 취소됐다.

  • CARD 3/

    1998년 이후-노사정위원회 출범과 구조조정 야합

    정리해고제 도입

    근로자 파견제 도입

    명예퇴직, 아웃소싱 등 확대

    보수여권의 분열과 IMF 경제위기를 바탕으로 1997년 12월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기치로 내세웠지만, 결국 초국적 자본의 압박에 굴복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당선 직후 김대중 대통령은 최측근으로 꼽히는 한광옥을 위원장으로 하는 노사정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유럽의 노사정 대타협을 모델로 하는 사회적 협의체였다. 정부 측은 민주노총 즉각 합법화와 전교조, 전국공무원노조의 점진적 합법화를 카드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제, 근로자 파견제 도입에 합의해 줄 것을 요구했다.

    배석범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1998년 2월 직권조인으로 위의 독소조항들을 합의했다. 이 합의안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됐지만 대세에는 영향이 없었다. 민주노총은 배 직무대행을 탄핵하고 단병호 비대위원장 체제로 전환한 뒤 1999년 2월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티했다.

    칼자루를 손에 쥔 김대중 정부는 노동시장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의 유연화제도를 확립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정리해고, 명예퇴직, 아웃소싱 등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해 인력감축을 실시했다.

  • CARD 4/

    2003년-‘노동운동가 변호 경력’ 대통령 취임했지만…

    화물연대 파업 공권력 투입

    두산중공업 배달호 조합원 분신

    한진중공업 김주익 조합원 자살

    김대중 정권이 확립한 신자유주의 노선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당초 참여정부는 집권 직후 12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천명했고 직권중재, 손해배상 및 가압류, 공무원노동 기본권보장 등 법·제도개선과 비정규직노동자 보호, 공권력 투입 자제, 일방적 민영화 철회, 노사정위원회 강화, 외국인 고용허가제 시행 등을 약속했다.

    노동운동 경력까지 있는 대통령의 취임으로 어느 때보다 노동진영의 기대가 컸지만 기업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2003년 8월 화물연대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을 계기로 강경대응으로 전환했다. 또한 소위 경제위기론, 노동조합 이기주의, 대기업 귀족노조 등 이념적 공세를 펴면서 노동진영을 압박했다.

    참여정부 출범 첫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열사정국’이라고 불릴 만큼 노동자 농민 활동가들의 사망이 잇따라 노무현 정부에 대한 노동진영의 신뢰를 추락시켰다. 연초부터 두산중공업 배달호 조합원의 분신으로 시작해 9월 들어서 농민운동가 이경해씨의 멕시코 칸툰에서의 할복자결, 연말에는 한진중공업 김주익 조합원의 자살로 이어진다. 이어서 구사대 폭력으로 인한 두개골이 함몰로 이연중 조합원이 사망하고 정해진, 이해남 노동자가 분신한다.

  • CARD 5/

    2004~2007년-격렬한 몸싸움 끝에 비정규직 법안 통과

    비정규직법 개정 시도

    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 제한

    쪼개기 계약 등 편법 난무

    참여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향후 비정규직 노동자 양산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노동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은 비정규직 법안을 강행했다.

    갈수록 숫자가 늘어나고 정규직과 차별도 심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정치권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두고 집권당과 진보정당 사이에 뚜렷한 시각차를 보였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대책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할 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반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출산·육아 등으로 인한 결원 등 불가피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비정규직 관련법안들의 표결 결과, 가결을 선언하고 있는 임채정 국회의장. ⓒ민중의소리
    비정규직 관련법안들의 표결 결과, 가결을 선언하고 있는 임채정 국회의장. ⓒ민중의소리ⓒ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열린우리당은 자신들의 개정안대로라면 자연히 비정규직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보정당과 노동진영은 “2년 주기로 노동자를 교체하면 그만”이라고 주장하면서 양측은 한 치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개정안은 열린우리당이 과반 1당으로 올라선 2004년 17대 총선 직후 곧바로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 해 정기국회를 앞두고 9월 11일 정부 법안이 발의되고 해를 넘겨가며 원내투쟁이 이어진다. 민주노동당은 관련법안 통과 시도가 있을 때마다 의원단이 수시로 국회를 점거하며 물리적으로 저지했다.

    2005년 4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정규직이 결코 고용의 일반 원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은 고용형태에서 예외적으로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지만 정부여당은 계속적으로 비정규직 법안의 통과 필요성을 역설했다.

    2년 넘게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자 2006년 정기국회에서 정부여당은 이번에야말로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고 민주노동당은 환노위 회의장 점거로 맞선다. 마침내 국회경위권이 발동돼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보좌진, 경위들이 동원돼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을 하나둘씩 환노위 회의장 밖으로 끌어내려 한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이 끝까지 버티자, 여당은 결국 환노위 전체회의의 개최시간과 의안순서를 변경해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본회의장 출입구를 두고 한바탕 몸싸움을 치른 뒤 마지막으로 직권상정을 막기 위해 본회의장 국회의장석을 9명의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둘러싼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의원단은 4인1조로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차례로 끌어냈고 결국 해당 법안은 2006년 11월 30 본회의에서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처리되고 말았다.

    2007년부터 개정된 기간제법이 적용됐지만 비정규직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통계청 자료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2006년 35.5%에서 2014년 32.4%로 소폭 하락했을 뿐이다. 사용자들은 쪼개기 계약 등의 편법으로 여전히 마음껏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비율은 오히려 악화돼 2000년대 중반 62~3% 수준에서 2014년 55% 수준까지 하락했다.

  • CARD 6/

    2008년-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노골적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

    파트타임 활성화, 파견업종 확대 시도

    비정규직 사용 기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시도

    공공부문 구조조정, 공공서비스 민영화 등 강행

    2008년 등장한 이명박 정권은 경제살리기를 명분으로 노골적인 친기업 정책을 추진했다. 이 정권의 노동정책은 노동유연화 확대와 노사관계 선진화 두 축으로 전개됐다. 노동유연화 확대는 일자리의 질과 관계없이 고용총량을 증대시킨다는 명목 하에 파트타임 활성화,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업종 확대, 유연근무 확산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농협 성남농산물종합유통센터 비정규노동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는 이영희 노동부 장관(재임 2008.02~2009.09). 이 장관은 ‘100만 실업대란설’ 을 유포하며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을 추진했지만 실패하고 그 책임을 물어 경질당한다.
    농협 성남농산물종합유통센터 비정규노동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는 이영희 노동부 장관(재임 2008.02~2009.09). 이 장관은 ‘100만 실업대란설’ 을 유포하며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을 추진했지만 실패하고 그 책임을 물어 경질당한다.ⓒ매일노동뉴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비정규직 사용기간은 2년에서 4년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2008년 10월 이영희 당시 노동부 장관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100만 실업대란설’을 처음 언급하며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필요성을 주장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을 보호하기보다는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며 “비정규직 기간제한을 아예 없애야한다”고 법 개정에 대한 정치 공세에 가담했다.

    그러나 2007년 7월 도입이후 기간제법의 사용기간 제한이 도래하는 2009년 7월 이후에도 비정규직의 대량해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근거도 없는 ‘100만 실업대란설’ 유포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조장하고 사회적 혼란과 소모적인 논쟁만 불러 일으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노사관계 선진화란 단체교섭창구단일화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제도의 도입과 노조전임자제도 폐지, 법과 원칙에 의한 쟁의질서 확립, 노사협조주의 강화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기조 아래 정권은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공공서비스 민영화 강행,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해태, 단체협약 개선명령, 단체협약 해지, 노조변경설립신고증 교부거부 등의 수단을 총동원해 노동진영을 압박했다.

    이외에도 합법파업을 한 철도노조조합원 1만 2천여 명을 중징계하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폭력 진압했다.

  • CARD 7/

    2009~2010년-타임오프제 도입과 합헌 결정

    타임오프제 도입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이명박 정부는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는 타임오프제 도입까지 강행하고 나섰다.

    타임오프제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노사교섭, 산업안전, 고충처리 등 노무관리적 성격이 있는 업무에 한해서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이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구체적으로 노동조합법 24조 2항을 통해 노동조합 업무에만 종사하는 전임자는 원칙적으로 급여를 지급받지 못하도록 했다. 동법 4·5항에서는 노조가 이를 위반하고 급여지급을 요구하는 쟁의행위를 하지 못하게 했다. 또 노동조합법 시행령 11조의 2에서 근로시간면제 심의위원회(근심위)가 사업장 전체 조합원 수와 해당 업무 범위 등을 고려해 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전임자를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서 타임오프제는 2009년 말 노사정 합의에 의해서 2010년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이 제도는 1997년 3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정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노사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13년 동안 시행이 유예됐었다.

    민주노총은 타임오프제가 노동 3권과 근로의 권리,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재는 2014년 5월 29일 재판관 9인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은 노조 전임자에 대한 비용을 원칙적으로 노조 스스로 부담하도록 해 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면서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 근로시간 면제한도를 노사 자율이 아닌 근심위가 정하도록 법으로 규정한데 대해서도 "우리 노사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입법 목적 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CARD 8/

    2011년-복수노조 허용과 단체교섭창구단일화제도 시행

    복수노조 허용

    단체교섭창구단일화 제도도 도입

    복수노조 제도 사실상 '유명무실화'

    2011년에는 민주노동진영의 숙원과제였던 사업장 내 복수노조가 허용됐다. 하지만 재계에 유리한 제도들도 동시에 생겨나면서 복수노조 허용이 거의 유명무실화됐다. 복수노조 허용은 노사간의 의견차로 수차례 연기되다 2011년 7월 14년 만에 시행됐다.

    하지만 단체교섭창구단일화제도도 도입됐다. 복수노조로 인해 단체교섭이 불필요하게 지연되거나 교섭대표가 불명확한 점을 이용해 사용자가 교섭을 기피하는 부작용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이 제도에 따르면 노조들은 자율적으로 단일화를 할 수 있고, 사업주의 동의하에 개별 교섭을 할 수 있다. 자율적 단일화가 불가능하거나, 사업주가 개별 교섭에 동의하지 않으면 과반수 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된다. 2개 이상의 노조가 위임 등을 통해 전체 노조원 과반수의 지지를 받아도 과반수 노조로 본다.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전체 노조가 공동교섭대표단을 구성해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다. 대표단의 구성 및 운영은 노조들이 자율적으로 합의해 정하면 된다.

    얼핏 합리적인 제도인 것처럼 보이나, 단체교섭창구단일화는 사측 입장에서 노조를 통제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제도다. 현 사측이 어용노조를 조직해 과반수의 조합원을 확보하면 민주노조의 역할은 미미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이를 두고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제약하는 위헌적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 CARD 9/

    2014년-비정규직 사용 2년에서 4년으로?

    비정규직 사용 기간 확대 시도

    2015년 노사정위원회로 논의 넘겨

    고용노동부는 2014년 12월 29일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내놨다. 정부는 노사정위 논의 결과를 반영해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노사정위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비정규직 고용 규제 및 차별 시정 제도 개선'과 '노동시장 활성화' 대책에 대한 논의를 2015년 3월까지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정부 발표안 중 핵심적인 것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늘리고 파견 업종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35세 이상 기간제 노동자에 한해 2년으로 제한돼 있는 사용기간을 본인 신청시 2년 범위 내에서 연장이 가능하도록 했다.

    정부는 4년을 사용한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계약해지 할 경우, 이직수당(연장기간 중 지급한 임금총액의 10%, 퇴직금은 별도)을 지급토록 해 사용자에게 부담을 지우겠다고 밝혔다. 또 현재 1년 이상 근무해야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을 3개월 이상 근무하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대책안에 포함됐다.

    또한 대책안에는 32개 업종으로 제한돼 있는 파견 업종을 확대하는 것도 포함됐다. 정부는 고령자 및 고소득 전문직 재취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5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및 절대금지 업무를 제외하고 파견을 허용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음해 노사정위의 주요쟁점으로 남아 9월까지 논의를 이어갔다.

  • CARD 10/

    2015년-동료 분신 시도에도…‘노동개악’ 합의

    노동법 개정안 강행 의지

    쉬운해고 제도화 시도

    임금피크제 시도

    비정규직 사용 기간 연장 시도

    2015년 노동계 최대 이슈는 바로 '쉬운해고'를 골자로 한 정부.여당의 노동법 개정안이었다. 이에 강하게 반발하는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노사정위원회에서 개정안 논의를 이어갔고, 결국 반쪽자리 합의에 이르렀다. 새누리당은 즉각 이를 입법 발의했다.

    9월 13일 노사정위 4인 대표자회의는 핵심쟁점사항에 대해 합의를 마치고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4인 대표자회의에는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참석했다.

    한국노총은 4월 정부측과 사용자측이 제기한 ‘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변경’ 논의에 반발해 노사정위를 탈퇴한 이후 내부에서 진통을 겪었다. 8월 18일 노사정위 복귀를 논의하기 위한 중앙집행위원회의(중집)를 산별노조인 금속, 화학, 공공노련 조합원 100여명이 회의장 복도를 점거하고 중집위원들의 회의장 진입을 막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노총 지도부는 같은 달 26일 중집을 다시 열고 노사정위 복귀를 결정했다.

    9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노사정위 합의안 최종 승인 결정 논의를 위한 중앙집행위원회가 금속노련 위원장의 분신 시도로 무산된 가운데 회의장이 소화기 가루로 뿌옇게 보이고 있다.
    9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노사정위 합의안 최종 승인 결정 논의를 위한 중앙집행위원회가 금속노련 위원장의 분신 시도로 무산된 가운데 회의장이 소화기 가루로 뿌옇게 보이고 있다.ⓒ양지웅 기자

    일반해고는 저성과자나 근무불량자를 해고하는 것으로, 현행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지 않았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 완화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때 근로자의 동의를 받도록 한 법규를 완화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해고 관련 합의안은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치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내용이다.

    취업규칙 변경요건은 “임금피크제 도입 등과 관련,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치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고 합의했다.

    우리나라에서 임금피크제는 1998년에 공무원을 대상으로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교원 정년 단축으로 백지화됐다. 이후 2003년 7월 신용보증기금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2016년 1월 1일부터 공기업, 공공기관 및 300인 이상 고용기업의 정년이 60세로 연장(지방자치단체와 300인 미만 고용기업은 2017년부터 적용)되면서 임금지출부담을 명분으로 정부와 기업계의 임금피크제 도입 주장도 강화돼왔다.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비정규직 가이드라인의 경우 공동으로 실태조사와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거쳐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5인 미만 사업장, 농업 등에 대한 근로시간 적용제외제도 개선 방안은 2016년 5월말까지 실태조사와 노사정위 논의 등을 통해 마련된다. 또 청년고용을 확대하는 기업에 세대간 상생지원,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세무조사 면제 우대 등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고,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해 절감된 재원을 청년고용에 활용하는 방안도 합의에 포함됐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김대환 위원장 등 위원들이 9월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제89차 본위원회를 열어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의결한뒤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김대환 위원장 등 위원들이 9월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제89차 본위원회를 열어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의결한뒤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9월 14일 노사정위 합의안을 승인하기 위한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의에서 김만재 금속노련위원장은 몸에 신나를 뿌리고 분신을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집은 48명의 참석위원 중 30명의 찬성으로 합의안을 가결했다.

  • CARD 11/

    2015~2016년-해를 넘긴 ‘박근혜표 노동개악’

    정부.여당, '노동법 개정안' 연내 처리 의지

    청와대, 정의화 국회의장에 '직권상정' 요구

    정 의장 거부로 연내 처리 무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2015년 노동법 개정안을 반드시 연내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야당의 강한 반발과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거부라는 암초에 부딪혔다.

    민주노총이 빠진 9.15 노사정 합의문이 발표된 데 이어 새누리당은 같은 달 노동법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발의했다. 여야는 노동법 개정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런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하는 등 연일 강경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정 의장이 노동법 개정안 직권상정은 국회법 위반이라며 결단코 직권상정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임에 따라 노동법 개정 국면은 해를 넘기게 됐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지난 9월 1만여 명의 조합원이 참가한 가운데 노동법 개정안 발의에 반발하는 총파업대회를 열어 ‘노동개악 저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집회시위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공안당국의 타깃이 돼 수배생활을 하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자진출두하는 대신 노동법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강하게 맞섰으나 박근혜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11월과 12월 연달아 열린 1,2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빌미로 민주노총 핵심 지도부에 대한 수사와 체포영장을 남발하면서 민주노총의 투쟁 동력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달 8일 정부‧여당의 노동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집중 총파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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