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20대 치료사 노조, 처절했던 1년의 기록

매 순간이 살얼음판이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상한X’ ‘선동꾼’이라는 욕설을 듣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고쳐먹으면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병원 간부의 회유에 마음이 흔들린 적도 있었다. 노조에서 탈퇴하면 괴롭힘은 당하지 않겠지만, 병원의 부당한 모습과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수천만원 손해배상 폭탄, 부당 징계, 감봉 등의 탄압이 이어졌다. ‘노조를 만든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협박의 결과물이었다. 처음에는 겁도 났다. 사회 초년생들이 감당하기에는 큰 압박이었다. 징계도 당하다보면 무던해진다더니, ‘갈 때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월차 사용’ ‘휴게공간 마련’ 등의 당연한 요구를 한 것 뿐이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20대 초중반 노조원 13명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렇게 1년이 시간이 흘렀다. 올해만 더 버텨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고려수요양병원지부 소속 치료사들이 거리에서 병원 측의 부당노동행위를 비판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고려수요양병원지부 소속 치료사들이 거리에서 병원 측의 부당노동행위를 비판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고려수병원지부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년 4월 전국 최초로 만들어진 20대 초중반 치료사 노조의 이야기다. 노조를 인정받기 위한 보건의료노조 고려수요양병원지부의 힘겨운 싸움이 한해를 넘겼다. ‘손배 폭탄’ ‘징계·감봉’ ‘회유·협박’, 매순간이 ‘불안과 걱정의 연속’이었다는 국내 첫 치료사 노조의 1년여간의 싸움을 되짚어 보자.

20대 치료사들, 1년간 노조 활동 결과는?
‘손배 폭탄’ ‘협박·회유’ ‘부당 징계·감봉’···

심희선 지부장은 14일 인터뷰를 통해 노조활동을 해오던 순간순간이 “기적과도 같았다”고 회상했다. “출범 9개월밖에 안된 노조가 온갖 소송과 탄압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잘 버텨준 노조원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하는 심 지부장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심 지부장을 비롯한 20대 초중반 치료사 30여명 등은 ‘오래 일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자’는 목표로 작년 4월 노조를 만들었다. “수병원 치료사 근속연수가 3.4년이다.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부상을 당해 병원을 떠난 동료가 많다. 연차가 쌓일수록 높아지는 연봉 때문인지 5년 차 이상 치료사들이 권고사직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전국 치료사 대부분이 5년 후 미래가 불투명하다. 노조의 요구는 아주 단순하다. ‘월차 사용’ ‘휴게공간 보장’ ‘고용 안정’이다. 잘 쉬고 열심히 오래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우리 요구의 전부다.”

고려수병원지부 노조원들
고려수병원지부 노조원들ⓒ고려수병원지부

노조 활동은 출범 초기부터 순탄치 않았다. 치료사와 영양부 직원 30여명으로 구성된 수병원 노조가 만들어지고 일주일 뒤 같은 병원 동료 70여명이 가입한 한국노총 철도사회산업노조 소속 제2노조가 생겼다. 제2노조가 생긴 후 병원 측에서는 인원수가 많은 제2노조와 교섭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수병원 노조와 교섭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두 달 뒤 수병원 노조 간부 3명은 병원으로부터 각각 3천만원, 총 9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노조를 만들어 소식지를 배포하고 병원 인근에서 ‘피켓시위’를 했다는 이유다.

협박과 회유는 기본이었다. 병원 측 간부는 노조원 개개인에게 ‘노조 가입하니 좋으냐’ ‘다시 한번 고민해봐라’ ‘노조는 돈달라는 XXX’라는 막말을 쏟아냈다. 심지어 고향에 있는 노조원 부모에게 “(당신 자녀가) 불법적인 노조활동을 계속 하면 법적인 손해배상소송을 당하고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다”는 협박성 우편물을 보내기도 했다.

부당 징계·감봉도 이어졌다. 2년전 회식자리에서 심 지부장의 발언이 ‘성희롱’이라며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고, 20여분간 근무지를 이탈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시말서’를 작성하게 하고 경고 처분을 내렸다.

이런 병원 측의 협박과 회유, 징계 처분 등은 지난 1월 6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노동행위·부당징계 판정을 받았다. 지노위는 병원이 노조원들에게 노조 탈퇴를 권유하고 협박한 상황들을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했고,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성추행을 이유로 징계한 것은 부당징계라며 노조의 구제신청을 받아들였다. 한편, 병원 측은 해당 징계 등이 정당했다며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5년 쓰고 버리는 소모품
전국 8만 치료사, 안녕들하십니까?”

고려수요양병원 김지윤 사무장
고려수요양병원 김지윤 사무장ⓒ고려수병원지부

심 지부장은 ‘올해를 잘 버텨보자’며 노조원들과 ‘으쌰으쌰’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련이 클 수록 더 단단해지는 법. 심 지부장은 최근 노조가 반토막 나는 사태를 겪으면서 노조원 간의 결속력이 더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달 4일 수병원은 ‘운영비 절감’ 등을 이유로 병원 내 영양부를 외주화시켰다. 수병원 노조는 치료사 13명과 영양부 13명으로 구성돼 있다. 노조에 따르면 영양부를 외주하는 과정에서 병원은 노조원들에게 ‘계속 일하고 싶으면 노조에서 탈퇴하라’고 권유했고, 결국 영양부 13명은 노조에서 탈퇴했다.

심 지부장은 “잘못 한 것이 없는 데 위축될 이유가 없다. 병원 측 악덕 노조탄압을 바로 잡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같이 힘든 일들을 겪고 있는 전국 8만 치료사들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치료사는 5년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라는 말이 있다. 인건비가 쌀 때 부려 먹고 버리면 그 자리를 새로운 치료사로 대체한다. 이런 문화는 치료사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좋지 않다. 바꿔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 최초 치료사 노조인 우리의 싸움이 중요하다. 전국에 있는 8만 치료사들과 연대하는 것도 이런 문화를 바꾸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고, 바꾸기 위해 싸우자. 우리는 싸울 준비가 돼 있다.”

고려수병원노조는 매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서울시 금천구 고려수요양병원 앞에서 병원의 노조탄압을 비판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또 노조는 병원 측이 제기한 민형사상 소송에 대응하는 한편 병원 측의 불법사항들에 대해 소송제기, 고발 등으로 다퉈나갈 계획이다.

Copyrights ⓒ 민중의소리 & vop.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