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농성 100일, 왜 그들은 아직도 거리에 있나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 노숙농성장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 노숙농성장ⓒ민중의소리

영하 5도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 강남역 8번 출구 앞 농성장에는 응원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난 12일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첫 합의가 이뤄졌지만 교섭 주체 중 하나인 ‘반올림’은 여전히 아스팔트 위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삼성병 백혈병 사태가 모두 해결 된 것처럼 알려졌지만 아직 사과와 보상에 있어서는 3주체가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7월 삼성과 반올림이 대화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공익재단 설립을 통한 피해자 보상과 재발방지대책을 골자로 한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이 마련됐다. 하지만 삼성은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보상위원회를 꾸려 보상절차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반올림은 지난 10월 7일 “대화를 하면서 줄곧 조정위원회 얘기를 했던 삼성이 이제 와서 권고안을 팽개치고 있다”며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은 해를 넘긴 14일 어느덧 100일 차를 맞았다.

아스팔트 위에서의 100일, 성과도 있었지만

지난 12일 사과, 보상, 재해예방대책으로 구성된 조정 의제 중 하나였던 재해예방대책을 놓고 삼성과 반올림, 가족대책위는 최종 합의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의 내부 재해관리 시스템 강화와 외부 독립기구인 옴부즈만 위원회 설립이 그 내용이다. 이에 대해 반올림 임자운 변호사는 “9년 동안 반올림이 요구했던 삼성 반도체의 안전 상황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 외부감시 통로 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반올림은 노숙 농성을 멈출 수 없었다. 삼성이 ‘재해예방대책’을 제외한 나머지 ‘사과’와 ‘보상’ 문제에 대한 반올림과의 합의가 없었음에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는 식의 여론몰이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12일 합의 직후 삼성이 “조정권고안의 기준과 원칙을 기초로 보상과 사과가 진행된 데 이어 예방 문제에 대해서까지 완전히 합의에 이르렀다”고 밝힌 것이다.

교섭 주체 중 하나인 반올림이 합의한 적이 없었지만 삼성의 발표를 토대로 한 언론의 보도가 줄을 이었다. 권영은 반올림 집행위원장은 “삼성이 (사과와 보상에 대해) 반올림과 한번도 협상한 적이 없는데 삼성 직업병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보도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 반올림 노숙농성장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 반올림 노숙농성장ⓒ민중의소리

조정위 권고안 깡그리 무시한 삼성

지난 7월 발표된 조정위 권고안에는 사과의 방식과 내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권고안에 따르면 근로자에 질환이 발생했음에도 충분한 관리가 이뤄지지 못했던 점을 회사가 인정하고, 근로자 본인과 가족들에게 사과하는 내용을 대표이사가 기자회견 방식으로 사과문을 낭독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삼성은 권고안을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꾸린 보상위에 보상 신청을 한 피해자들에 한해 개별 사과문을 발송했다. “아픔을 헤아리는데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 진작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임 변호사는 “반올림은 부실한 안전관리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지만 삼성은 개별적인 사과문을 발송하고 어떠한 잘못도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보상에 있어서도 조정위원회 권고안은 삼성전자와 ‘독립’된 사회적 기구를 설립해 보상과 예방대책 사업을 총괄하도록 하고, 기구 사업수행과 운영에 필요한 기금 1000억원을 삼성이 기부하도록 했다. 하지만 삼성은 이러한 권고안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보상위를 통해 최소한의 보상기준’으로 조정위가 포함시켰던 갑상선암‧직장암‧폐암‧유산‧불임 등을 보상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삼성은 “조정위 권고안에 기초해 보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반올림은 삼성의 이같은 보상 조치는 "명백한 교섭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또 삼성이 보상 신청기한을 2015년 12월로 한정함에 따라 “상당수의 피해자가 삼성의 보상 기준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기한에 내몰려 보상신청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반올림은 밝혔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 반올림 노숙농성장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 반올림 노숙농성장ⓒ민중의소리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삼성이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 것”

반올림은 현재 삼성의 이러한 태도가 직업병 문제가 처음 대두되던 9년 전과 똑같다고 말한다. 반올림에 대화를 먼저 제안했던 것도, 조정위를 만들자고 제안했던 것도, 중재안이 나오면 따를 것을 요구한 것도 삼성이니 이제 그 약속을 지키라고 말이다.

삼성 반도체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故손경주 씨의 아들 손성배 씨는 “ 삼성은 중재안이 나오면 수용하겠다고 했다. 삼성이 초일류 기업인 줄 알았는데 직업병 문제 해결은 삼류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노숙농성 100일 차, '완전 타결'이라는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은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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