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비원 44명 전원 해고하겠다는 아파트 대표, 반대하는 주민들
D 아파트 좁은 경비실에서 경비원 한명이 밤샘근무를 서고 있다.
D 아파트 좁은 경비실에서 경비원 한명이 밤샘근무를 서고 있다.ⓒ양지웅 기자

“나이 든 경비원들의 역할은 ‘잡일’ 즉 청소 및 분리수거로 아파트 보안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경비원을 터무니없이 많이 채용해 입주민들이 큰 비용을 내고 있습니다. ‘통합전자보안시스템(보안시스템)’을 구축해 아파트 품격과 가치를 향상시킵시다.”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D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이 같은 내용의 안내문을 배포하고 경비원 44명 전원을 해고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 과반수 주민이 반대 의사를 밝혔음에도 입주자대표회의는 ‘보안시스템을 구축해 경비원을 없애면 관리비가 줄어 집값이 상승한다’는 논리를 펴며 졸속 주민투표를 다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경비원이 있어서 좋은 점이 더 많다”며 ‘경비 전원 해고’ 우려가 있는 보안시스템 도입에 반발했다.

‘경비원 전원 해고를 위한 3번째 주민투표’, ‘입주민 반발’. 20일 현재 D 아파트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잡일하는 경비는 관리비만 축내”
‘독불장군’ 아파트 대표의 경비 해고 대작전

D 아파트는 지난 1993년 6월에 준공됐다. 48평 6개동, 55평 2개동, 37평 2개동, 총 10개동 660가구, 3000여명의 입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아파트 각 통로를 지키는 44명의 경비원은 24시간을 일하고 다음날 쉬는 2교대 방식으로 근무한다. 이들은 하청 소속 비정규직으로 한달에 130만원 정도를 받고 있다. 근무시간 중간 휴식시간을 끼어넣는 방식의 편법을 써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책정한 것이다.

D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작년 3월 주민투표 직전에 주민들에게 배포한 홍보물
D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작년 3월 주민투표 직전에 주민들에게 배포한 홍보물ⓒ노동법률사무소 ‘시선’ 김승현 노무사 제공

하지만 입주자 대표들에게 44명의 경비는 아파트 관리비만 축내는 ‘눈엣가시’였다. 입주자대표회의는 “보안시스템을 도입해 경비를 없애면 매월 4천~5천만원 연간 5억원 정도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안내문을 수차례 주민들에게 배포하며 대대적인 홍보전을 벌였다. 해당 홍보물에 따르면 보안시스템이 도입되면 현재 일하는 44명의 경비원은 해고 절차를 밟게되며, 경비업체 측에서 고용한 새로운 직원 12명이 단지내 보안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이는 지난 2014년 말 취임한 세무사 출신 김 모 아파트 대표가 단지내 보안시스템 추진 계획을 위한 경비원 해고를 공약으로 내걸고 활동한 결과다.

“경비원 해고는 안 돼” 반기든 주민들

입주자 대표들의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작년 3월 주민투표에서 입주민들은 “경비원 해고는 안 된다”며 보안시스템 도입 주민투표 안건을 부결시켰다. 앞서 2014년 5월 진행된 주민투표 때도 주민 79%는 보안시스템 전환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아파트 주민 A씨는 “경비아저씨들이 노인과 아이들을 잘 챙기고 단지 내 궂은 일까지 도맡아 하면서 주민들 간의 유대관계가 잘 형성돼 있다”면서 “비용 논리를 앞세워 경비원들을 전원 해고하려는 대표자들의 일방적인 행정에 주민들이 반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취재과정에서 경비원들이 노인들의 짐을 들어주며 이동을 돕고, 맞벌이 부부의 아이가 집에 들어왔는지 등을 확인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주민 B씨는 “아파트가 지어진 지 20년이 지나서 곳곳에 수리할 부분이 많은데 아파트 수리비용 10억원 정도를 보안시스템을 도입하는데 쓰면 이후 아파트 관리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면서 “주민 의사와 반대로 무리하게 보안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입주자 대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집값 상승’ 위해 ‘보안시스템 도입-경비 해고’하겠다는 아파트 대표

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두 차례나 ‘통합보안시스템 도입’에 반대 의견을 밝혔지만, 입주자대표회의는 “보안시스템을 도입하겠다”며 3차 주민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17일 열린 입주자 회의에서 김 대표는 “직접 투표관리위원회를 꾸려 3개월 동안 주민투표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두번의 주민투표는 아파트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선관위를 꾸려 2주간 주민들의 의사를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때문에 입주자회의관리하에 3개월간 투표를 진행하면 주민 의사를 왜곡하는 방향으로 투표가 조작될 수 있다는 반발도 일고 있다.

서울시 가양동 D 아파트 전경
서울시 가양동 D 아파트 전경ⓒ양지웅 기자

입주자대표회의 김 대표는 <민중의소리>와 전화통화에서 “반대보다 (보안시스템) 찬성 쪽 의견이 훨씬 많은데 주민들이 투표에 많이 참여하지 않아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 좀 더 많은 주민의 의견을 묻기 위해 3개월간 투표를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아파트는 불필요하게 많은 경비원 때문에 관리비가 비싸기로 유명하다”면서 “보안시스템을 도입하면 경비를 많이 줄일 수 있어 관리비가 줄고 아파트가 발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안시스템 도입시 경비원 재고용 문제를 묻는 질문에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 국가나 지자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언성을 높였다.

동대표 자격으로 입주자회의에 참여하는 C씨는 “두차례의 주민투표 결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투표를 해 보안시스템을 도입하려는 것은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처사”라면서 “이제는 아파트 대표가 주민투표를 해보고 안 되면 보안시스템 도입을 주장하는 입주자대표회의 의결만을 통해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전횡까지 일삼고 있다”고 고발했다.

주택법 시행규칙 제26조 3항에 따르면 (단지 내) 주요 사업을 신설할 시 전체 주민 과반의 동의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 입주자대표회의만의 의결만으로 사업을 진행할 시 입주민대표와 주민 간의 법적 다툼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노동법률사무소 ‘시선’의 김승현 노무사는 “‘장기수선충당금’ 수억원이 사용되는 사업을 대표자들이 주민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려는 것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또 “공정해야 할 투표를 대표자들이 직접 관리하고 진행하겠다는 것은 관리 규약에도 위반 돼 투표 무효 확인 소송까지도 갈 수 있는 사안”이라며 “주민투표 결과 경비원들의 대규모 해고가 발생한다면, 구제신청뿐만 아니라 사실상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입주자 대표들에게 사용자 책임을 묻는 소송 등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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