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거대 자본을 향한 ‘샌더스 혁명’ 이제 시작일 뿐이다

"개미 군단이 월스트리트 자본을 누르고 첫 승리를 자치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승리한 날이다."

미국 버몬트 주에서 이른바 '버니 아저씨'로 불리며 2016년 미국 대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첫 승리를 확정한 버니 샌더스(75) 상원의원 관련 기사에 올라온 댓글들이다.

시장 재임 시절부터 유럽식 보편적 무상 복지정책을 비롯한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부를 만큼 강력한 정책을 펼쳐 주민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샌더스이다. 그가 단지 말이 아니라, 폭설이 내린 다음 날에도 직접 제설차를 몰고 나가는 등 주민 친화적인 정책을 솔선수범함으로써 시장이나 의원이 아니라 '버니 아저씨'로 불린 이유이다. 하지만 그가 약 9개월 전 미국 대선 참여를 선언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모두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두 번째로 치러진 뉴햄프셔 주 프라이머리에서 민주당 버니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승리를 확정지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두 번째로 치러진 뉴햄프셔 주 프라이머리에서 민주당 버니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승리를 확정지었다.ⓒ뉴시스/AP

샌더스는 미국에서 가장 큰 문제는 소득 불평등이라며, 한 마디로 월가의 독점 자본을 해체하고 그 돈을 국민들의 무상 복지에 투여하겠다는 사회주의적 공약을 내세우며 출마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돈과 조직과 미디어가 당락을 결정하는 미국의 기존 대선 구조에서는 거의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불과 9개월 만에 모든 것이 변하고 말았다. 샌더스 돌풍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거대 자본들이 지원하는 '슈퍼백'이 아니라, 수백만 명에 이르는 개미 군단들의 10달러, 20달러의 기부금이 이어지면서, 자금력의 열세는 오히려 조직을 강화하는 기반이 되고 말았다. 소액 기부자들이 그대로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는 셈이다. 이에 놀란 자금력이 풍부한 클린턴 측이 최근 '1달러 기부'를 선거 전략으로 내세울 정도이다. 몰려드는 자원봉사자들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 층의 조직력이 강력한 기존 정치 조직을 그대로 무너뜨리고 있는 형국이다.

"가능성이 없다"면서 홀대하던 주류 미디어들은 이른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의 힘으로 제압했다. 주류 언론들이 거대 잠룡인 클린턴 위주의 보도를 이어나갈 때,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샌더스 지지자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사용해 샌더스 공약의 필요성을 알리며 이를 만회했다. 주류 언론들이 클린턴의 여러 기존 스캔들에 대한 보도를 주저할 때, SNS에서는 이미 광범위하게 관련 기사가 배포되었다. 샌더스의 돌풍이 SNS의 승리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막말의 대명사'이자 부동산 재벌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돌풍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것도 샌더스의 또 다른 장점으로 꼽힌다. 기행과 갖은 막말로 인종차별주의자로 불리는 트럼프와는 달리 많은 정치전문가는 샌더스의 강점으로 그의 정직함과 진정성을 꼽는다. 좌파로 불리고 있음에도 상대방을 비방하는 네거티브 선거전략을 피하고 공약과 정책대결 중심으로 자신의 견해를 일관성 있게 주장하는 것도 샌더스의 장점이다. 여기에 더해 순박함이 느껴지도록 대중을 휘어잡는 샌더스의 연설 능력도 탁월하다.

버니 샌더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1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연설하기 전 주먹쥔 손을 치켜 올려보이고 있다.
버니 샌더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1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연설하기 전 주먹쥔 손을 치켜 올려보이고 있다.ⓒ뉴시스/AP

이제 "혁명의 시작이다"... 휘청거리는 '클린턴 대세론'

뉴햄프셔에서 샌더스의 승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클린턴과 초접전을 벌이며 사실상 동률을 기록하는 개표 방송이 이어지는 몇 시간 동안 미국 각지의 개미 군단들은 또 수백만 달러의 기부금을 버니 측에 전달했다. 2008년에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일격을 당한 클린턴이 뉴햄프셔에서 만회할 정도로 막강한 조직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21%p 차이로 완패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했다. 이번 뉴햄프셔의 승리로 또 얼마만 한 개미 군단의 자금과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오는 20일 네바다 코커스와 27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 그리고 3월 1일은 12개 주가 동시에 경선을 실시하는 이른바 '슈퍼화요일'을 앞두고 있다. 현재 모두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이 앞서고 있지만, 이도 이제 별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샌더스의 돌풍이 클린턴의 지지율을 따라잡는 과정에서 이는 더욱 열풍을 몰고 올 것이라는 분석이 압도적이다. 실제로 이번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단순히 대학생과 젊은 층의 열성 지지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과 계층에서 샌더스 지지가 쏟아진 것으로 나타나 돌풍의 위력을 짐작하게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막강한 자금력과 함께 민주당 당조직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클린턴을 샌더스가 이기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산을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달 하순 치러지는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와 같은 남부 주는 클린턴이 이미 확고한 '아성'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지역에서도 샌더스가 클린턴을 이기거나, 샌더스가 바짝 추격해 아슬한 접전을 벌인다면 '샌더스 돌풍은 이제 '돌풍'을 넘어 미국 정치사에서 '혁명'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미국 서민의 대명사인 '버니 아저씨'가 이제 '아웃사이더'를 넘어 본격적으로 미국 정치판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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