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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의 미술이야기] ‘신생(미술)공간’이라는 신기루,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바벨> 展

수많은 이들이 모이고 또 흩어진다. 하루 동안 벌어지는 새로운 일들. 모두의 뉴스. 꼭 해야 할 말들. 새벽 두시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아침이 밝아오도록 꺼지지 않는 불빛. 이 모든 문장들은 한 단어와 통한다. 서울. 광장은 광장대로, 골목은 골목대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또 흩어진다. 동경과 열망, 피로가 뒤엉킨 도시. 우리가 서울에서 쌓아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전시를 관람한 후 지체 없이 도록을 구매했다. 서울의 ‘신생(미술)공간’이 어떤 과정을 통해 파악되고, 어떤 기준으로 전시참여 팀들을 선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더불어 2015년 혜성처럼 등장한 (것처럼 보이는) ‘신생(미술)공간’에 대한 수집, 기록, 축적 그리고 열람 가능한 형태로 전달하는 Archive아카이브(기록보관)는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10여년 안팎으로 형성되어 이미 존재하고 있던 공간들, 좀 더 포괄적으로 연결 짓는다면 역사 속에 언제나 존재했던 예술가들의 작은 공간이다. 어떤 맥락에서 이들이 낱개가 아닌 묶음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기록되는 것들은 어떤 여건들에 의해 선택된 것들이지 결코 ‘모든 것’이 될 수 없고, 중요도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1)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도록 첫 페이지에 짧고 명료한 인사말을 실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하는 <2016 SeMA Blue>는 연령뿐 아니라 정신과 태도가 가장 젊은, “청년 중의 청년” 작가들을 초대하였습니다. 이번 참여 작가로 선정된 소규모 미술창작 공간의 기획자들과 작가들, 독립적 스몰 디자인 스튜디오들은 을지로, 창신동, 종로, 청량리, 이태원 등 서울 구도심 산업지대 혹은 사라져 가는 변두리 틈새 지역에서 개별적인, 또는 느슨한 공동체 작업을 수행하며 신기루 같은 <서울바벨>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전시를 관람 후 떠올랐던 감정들이 비로소 문장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청년 중의 청년”

‘신생(미술)공간’의 주체가 청년세대라는 것과 더불어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도전하는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누구도 자신이 (젊은이로서의) 청년세대임을 표방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가 속한 사회와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을 스스로 궁리하여 실천하고 있다. 기성의 것들을 거부하는 새로운 움직임들은 (필연적으로 청년세대일 가능성이 크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나이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2007년, 삼청동 골목에서 시작된 “아카이브 봄”. 이 공간은 다양한 장르의 젊은 창작자들이 교류하며 작업이 쌓이면 전시를 하고 인쇄물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채워졌다. 작가 레지던시, 세미나와 만남의 장, 창작물을 발표하는 무대, 해마다 다른 형태의 운영을 해 왔고 최근 2014년부터 외부 기획자를 초청해 1년 동안 진행되는 시각예술기획전을 제작하고 있다. 창작자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할 뿐, 그 외에 모든 것들이 유연해 보이는 “아카이브 봄”은 전시되고 있는 공간 중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치열했다.

성산동의 지하 공간에 존재하는 “정신과 시간의 방”은 정홍식, 오은, 정재용, 최중호 네 명의 작가들이 스스로의 작품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다. 그들은 일 년이라는 시간동안 매 2주마다 작업을 교체하도록 시행규칙을 정했다. 이해관계가 일치한 네 명의 작가들이 ‘작가되기 훈련’의 일환으로 스스로 전시를 할 수 밖에 없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흥미롭다.

창신동에 위치한 “지금여기”는 사진매체를 활용한 시각예술작품들의 ‘전시 공간 부족’이라는 갈증이 개관의 동력이 되었다. 운영자 김익현, 홍진훤 당사자의 요구이기도 했다. 운영자(이자 작가) 김익현은 인터뷰에서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주차장이라는 폐허2)에서 ‘전시’가 아닌 ‘전시 같은 것’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는 ‘전시 같은 것’들을 하고 있던 미술관이라 이름 붙여진 꽤 많은 폐허들이 떠올랐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라는 기획으로 젊은 창작자들을 둘러싼 가속화된 시공간에서의 멀미나는 적응을 이야기하고 있다.3)

이들은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꽤 거창한 제도 내에서의 전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교통편, 조명, 넓이, 가벽 등 모든 것이 잘 갖춰진 환경보다 창작자들의 땀과 눈물이 담긴 작품의 에너지가 좋은 전시를 완성한다는 것을 현장에서 체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SeMA Blue 2016  전시장 입구
SeMA Blue 2016 전시장 입구ⓒ서울시립미술관

“신기루 같은 <서울바벨>”

기성제도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시발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의 만남과 교감이 중요하다. 만남이 무거워지는 것들을 경계하며 부담이 생기면 언제든지 흩어질 수 있다는 퇴로를 열어둔다. 개인들은 모두 정의롭다. 하지만,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정의는 불편하다. 언제나 동력은 자기 안에 있어야 한다. 학력, 재력, 권력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각자의 삶을 지키는 방식이다.

주인 없는 공간을 꿈꾸지만 현실에서 주인들은 존재한다. 누군가는 운영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책을 판매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보증금을 쾌척하기도 했다.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1/n로 월세를 분담하기도 하며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다. 이렇게 애정을 담아 스스로 움직였던 마지막 한 명이 부담감에 건강하지 못하다면, 공간도 없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서울’이라는 젠트리피케이션 사막에서 방 한 칸이라는 일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현실의 작동법이다. <서울바벨>이 월세로 쌓여가는 이상 신기루일 수밖에 없다. 10년 후 건물 매매를 꿈꾸고 있다는 “아카이브 봄”이 모두가 마실 수 있는 오아시스가 되어주기를 감히, 기대해도 되는 걸까. 30개의 신기루가 모여서 하나의 오아시스를 만들어 낼 순 없을까.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곧 사라져버릴 바람들이 쌓여간다.

독립큐레이터 임다운이 운영하는 3평 남짓한 공간 “기고자”는 협소한 공간의 한계를 매 전시마다 한 개의 작품을 밀도 높게 소개하는 기획으로 극복했다. 청량리동에 위치한 문화․전시 공간 “청량엑스포”와 서교동에 위치한 전시 공간 “합정지구”처럼 단지 지역이름을 붙인 명칭이나 “800/40”, “300/20”, “200/20”처럼 보증금과 월세로 공간을 호명해버리는 것을 통해 ‘공간’ 그 이상의 무게를 두지 않으려는 기획자들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객을 맞이하고 있는 “펭귄 2-나-9”는 “활활”이 제작한 자전거마을버스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개인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기반으로 한 활동이 연대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기획자 신소우주와 작가 장성진을 주축으로 비롯된 “활활”은 작은 기획들을 존중한다. 전시장내에서 “임시재생목록”으로 묶여 상영되는 작업들 또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죽지마라. 얘들아.’ 한 장면으로 남은 전시장 풍경이 벌써 공허하다. “초단발활동” 참여 7인은 이번 전시기간동안 개별적으로 활동한다. 일종의 프로젝트로 보이는 “초단발활동”은 전시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움직임, 활동을 지향하는 작가들의 소규모 모임이다. 심지어 “RAT school of ART”라는 작가주도연구프로그램이 소개되고 있는데, 전시기간 내에 어떤 프로그램을 개최하는지에 대한 세부정보는 찾지 못했다. 운이 좋다면 전시 관람 중에 이들과 마주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1인이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모조산업”, “스튜디오 OYE”, 2인이 운영하는 “햇빛 스튜디오”, “워크스”의 작업 결과물들과 사업자등록증, 체크리스트 등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기고자”, “200/20”, “정신과 시간의 방”, “청량엑스포”, “초단발활동”, “RAT school of ART”, “모조산업”, “햇빛스튜디오”는 모두 2015년에 시작되었다. “정신과 시간의 방”과 “초단발활동”은 이름을 짓고 공간을 임대할 때부터 단 일 년의 운영만을 약속했다.

SeMA Blue 2016  전시장내 풍경
SeMA Blue 2016 전시장내 풍경ⓒ서울시립미술관

17개의 ‘신생(미술)공간’, 17개의 전시

SeMA Blue 2016 <서울바벨>은 서울에 존재하는 17개의 ‘신생(미술)공간’들, 혹은 그들이 기획한 전시를 소개하는 전시다. 때문에 70여명 작가/팀 각각의 작품에 몰입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정제된 정보들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며 쉴 틈 없이, 동시에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 관심을 기울이는데 무려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인터뷰 영상에서 또 다른 인터뷰 영상으로 느릿느릿 이동하는 동안 족히 수백 명의 관객이 내 곁을 스쳐지나갔다. ‘17개의 보이지 않는 구획으로 17개의 다른 전시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전체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채 병렬적으로 작품을 접하는 이에게는 분명 난해할 것이다. 더욱이 거의 유일한 힌트일 수 있는 안내문에는 각 전시의 기획의도 보다는 각 전시를 기획한 ‘신생(미술)공간’을 소개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은 <서울바벨>이라는 제목과 같이 ‘혼란’만을 경험하고 미술관을 나서게 될 지도 모른다.

*관람 Tip 1)관심이 가는 공간에서 헤드셋을 끼고 인터뷰 영상을 관람한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들을 훑어볼 뿐, 영상에 귀 기울이지는 않더라.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를 권한다. 2)도슨트(전시해설 프로그램) 시간에 맞춰간다. <서울바벨>전은 4월 5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무료다. 매일 2회(11시, 15시) 큐레이터가 전시를 해설해준다.

SeMA Blue 2016  전시장내 풍경
SeMA Blue 2016 전시장내 풍경ⓒ박민희 촬영

박민희 art_thinker@naver.com

주석

1) 『숲은 검게 선 채로 침묵한다-빅데이터 시대, 아카이브 열병에 관한 진단서』, 안진국, 2015 SeMA세마-하나 평론상에서 TOP3에 선발된 글의 두 문장을 거의 흡사하게 옮겨왔다. <서울바벨> 전시를 본 후 다시 찾아 읽어보았다. 일독을 권한다. http://ewsngod.nayana.kr/zexe/critical/12277

2) 서울 종로구 창신동 23-617번지는 “지금여기”가 입주하기 전 주차장, 봉제공간으로 쓰이던 공간이다. 곳곳에서 공간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3) “지금여기”의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기획의 글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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