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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 승계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님, 한국인은 맞으십니까?

한국에서 제일 오래 된 기업임을 자처하는 두산그룹이 마침내(!) 4세 경영인 시대를 열었다. 두산그룹의 지주회사인 (주)두산은 2일 이사회를 열고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퇴임과 함께 박정원 신임 회장의 선임을 결정했다. 박정원 회장은 형제들 간에 나눠먹기식으로 경영을 해 온 두산그룹 오너 일가 중 3세가의 장남 박용곤 명예회장의 맏아들이다. 한국 재벌 역사상 사실상 처음으로 4세 오너가 등장한 셈이다.

그런데 ‘4세 오너의 선봉장’이라는 칭호와는 별개로 박정원 회장은 독특하게도 싱가포르 국적과 관련된 여러 일화를 가지고 있다. 1962년생인 박 회장은 병역을 면제 받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박 회장은 싱가포르 영주권자라는 이유로 병역을 면제 받았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두산그룹 홍보팀 관계자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박 회장은 국적이 아니라 부정맥 환자로 면제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부정맥은 심장 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병으로 주로 고령층에서 흔히 발견된다.

그와는 별개로 박 회장은 2005년 두산상사 사장으로 재직할 때 싱가포르 현지법인의 등기이사로 등록해 영주권을 받았다. 그리고 이 싱가포르 영주권을 지난해까지 보유했다. 두산 그룹은 이에 대해 "영주권 만기가 10년이어서 자동으로 만료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2일 두산그룹 신임 회장으로 선임된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사진=두산그룹 제공)
2일 두산그룹 신임 회장으로 선임된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사진=두산그룹 제공)ⓒ뉴시스

박정원 회장과 싱가포르의 돈독한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박 회장은그런데 박 회장은 이듬해 11살이었던 차남을 경기도 성남시의 모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킨다. 당시 규정상 외국인 학교에는 외국인만 입학할 수 있었는데, 박 회장의 아들 또한 싱가포르 영주권을 취득해 이 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이 사실을 2014년 폭로한 정의당 정진후 의원에 따르면 박정원 회장의 차남은 싱가포르에 거주는커녕 가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싱가포르 영주권을 취득했고, 당당히 외국인 학교에 입학할 자격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재벌들의 국적 세탁

박 회장이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이 아니고 아시아권의 싱가포르를 택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추정은 충분히 가능하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 돈으로 약 8억~12억 원 정도를 현지 기업에 투자하거나 창업하면 영주권을 내 준다. 싱가포르 못지않게 국적과 영주권에 후한 나라가 에콰도르와 캄보디아다. 에콰도르는 우리 돈으로 약 3000만 원, 캄보디아는 약 4억 원을 내면 국적을 내 준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의 재벌들 중에는 의외로 에콰도르 국민, 캄보디아 국민이 적지 않다. 한국 재벌들이 병역 회피나 자녀들의 외국인 학교 입학 등을 목적으로 돈을 내고 이런 나라들의 국적을 사들였다는 이야기다. 이른바 재벌들의 ‘국적 세탁’ 의혹이 바로 이것이다.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손자인 정일선 비앤지스틸 사장은 자녀를 외국인 학교에 보내기 위해 아내와 자녀에게 2006년 1월 캄보디아 시민권을 취득토록 했다. 한국은 원칙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제한적 허용)다. 이 점을 전제로 하면 정 사장의 부인과 자녀는 현재 캄보디아 국민인 셈이다.

역시 범 현대가의 일원으로 정순영 현대시멘트 고문의 아들인 현대종합금속 정몽석 회장은 2002년 두 딸을 에콰도르 영주권을 따게 한 뒤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켰다. 이에 대한 정 회장 측의 해명은 더 기가 막힌다. “원래 자녀들을 해외로 유학을 보내려고 했는데 돈을 아끼려고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켰다”는 게 그의 답이었다. 범 현대가의 재벌 2세가 ‘돈이 없어서’ 자녀들에게 에콰도르 영주권을 따게 했단다. 한국 최고 갑부를 자처했던 정주영 명예회장이 들었으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KBO 총재의 딸도 2009년 싱가포르 영주권을 바탕으로 외국인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런데 이 딸은 입학 당시 싱가포르 영주권이 없었다. 일단 편법으로 입학부터하고 난 뒤 1년 뒤에 부랴부랴 싱가포르 영주권을 취득해 제출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무리 싱가포르, 에콰도르, 캄보디아가 선전을 해도 외국 국적 분야의 전통의 강호인 미국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2014년 KBS가 한국 10대 재벌 일가 1세대부터 5세대 중 사망자를 제외한 9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중 외국 국적자는 115명이었고, 이 가운데 미국 국적자는 무려 95명이었다. 특히 미성년자의 경우 121명 가운데 무려 35명이 미국에서 태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재벌들의 각별한 자녀 사랑 덕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자손들은 헬조선 국민이 아닌 천조국 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다.

CJ 이재현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역시 미국 국적 소유자다. 정몽구 회장의 셋째 딸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와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딸인 조현민 전무 역시 한국 국적을 포기한 미국 시민이다. CJ그룹은 방송 채널을 통해 종종 “힘내라 대한민국” 같은 광고를 내 보내는데, 이미경 부회장의 처지를 고려하면 “힘내라 미국” 같은 홍보도 같이 해야 할 판이다.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역시 자녀 모두를 미국 뉴욕대학병원에서 낳았다. 삼성서울병원이라는 국내 최대 병원을 보유한 삼성그룹 지휘자가 굳이 미국 뉴욕대학병원을 선호한 별도의 이유가 있을 리 없다. 그냥 자녀들을 천조국 시민으로 키우고 싶었을 것이다. 이 부회장의 동생인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도 자녀 4명 가운데 2명을 미국에서 출산했다. 그런데 둘째 딸을 낳았을 때 이 사장은 제일모직 부장으로 한국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직장은 한국에 있는데 굳이 미국까지 가서 딸을 낳는 열과 정성이 놀랍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 상무와 큰 딸 구연경 씨도 자녀를 미국에서 출산했다. 구 회장의 손자와 손녀 4명은 모두 미국인인 셈인데, 구 회장은 설날에 손자들에게 세배는 제대로 받는지 궁금하다.

지난달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타워에서 열린 '대한민국 랜드마크 롯데월드타워 상량식'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타워에서 열린 '대한민국 랜드마크 롯데월드타워 상량식'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롯데그룹 일가의 국적은 대부분 일본과 관련돼 있다. 경영권 분쟁으로 바쁜 롯데가의 2세들, 신동주, 신동빈 형제 모두 과거 일본 국적으로 병역을 면제 받았다.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씨 역시 한국 국적을 상실해 현재 일본인 신분을 가지고 있다. 최근 신 씨는 일본인 아내를 맞이했다. 신유열이라는 한국 이름 탓에 헛갈릴 수 있는데, 그 결혼은 국제결혼이 아니라 엄연한 일본인들의 국내 결혼이었다.

늘어나는 재벌의 애국심 마케팅, 그런데 당신들 한국인이긴 하십니까?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 굴지의 재벌들은 모두 애국심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광복절 즈음 서울 도심에는 주요 대형 빌딩마다 대형 태극기가 나부꼈다. 롯데그룹은 광복 70주년 의미를 살린다며 롯데월드타워 70층에 초대형 태극기를 내걸었다. 이때 롯데그룹은 “국내 최고 높이의 태극기로 1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었다”며 생색을 냈다. 삼성, 현대차, SK, LG, 한화 등 굴지의 재벌들 사옥에도 어지간한 건물 몇 개 크기의 대형 태극기가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2014년 KBS가 재벌들의 국적에 관해 취재할 때, 이들은 너무도 태연히 취재진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한국인이 아닌데 왜 병역에 대해 물어보느냐?”라고 말이다. 그들 모두 재벌의 후광을 입고 금수저를 입에 문 채 호의호식하면서 살아가는데도, 그들은 스스로 한국인임을 부정한다. 필요할 때에만 한국인임을 강조하고 애국심을 생색내면서, 정작 속으로 그들은 천조국 시민이 되기를 강력하게 열망한다.

공무원 시험에 애국심 항목을 넣는 박근혜 정부의 황당한 애국심 마케팅에 동의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재벌들에게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돈 벌 기회만 있으면 그들은 스스로 애국심을 전면에 내새워 소비자들을 현혹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국을 사랑하는 척 하는 재벌 총수님들, 도대체 한국인이기는 하신 겁니까?”라는 질문을 그들에게 던진다. 그리고 이 질문은 한국 재벌 최초로 4세 승계자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은 싱가포르 영주권 보유 경력자, 두산그룹 박정원 신임 회장에게도 던질 수밖에 없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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