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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 경복궁 경회루 무료 특별개방, 600년에 얽힌 사연 살펴보니...

경복궁 경회루 무료 특별개방, 600년에 얽힌 사연 살펴보니...

온라인이슈팀
물가에 비친 경회루
물가에 비친 경회루ⓒ김세운 기자

경복궁 경회루는 북악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삼아 그 아름다움은 항상 돋보인다. 경회루는 각종 달력과 문화재 책자에 단골로 등장한다. 경복궁을 찾는 관람객들은 항상 이곳을 찾는다. 경회루에서 보는 북악산 일대와 주변 전경은 최고의 경치로 평가 받고 있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는 스스로 왕이 되어 조선을 개국하고 즉위 4년째인 1395년 경복궁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궁의 규모는 390여칸이었으며 정전인 근정전, 연생전, 경성전 등이 갖추어져 있었으나 경회루는 없었다.

당시 경회루 위치에는 작은 누각 정도만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412년 (태종 12)태종은 서루(西樓)가 기울어지고 위태롭자 누각을 수리할 것을 지시했다. 공사를 총지휘한 것은 노비출신의 공조판서 박자청이었다. 노비출신임에도 공조판서의 지위에 오를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건축 기술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박자청은 경복웅 서쪽의 땅이 습한 것을 염려하여 루(樓)를 에워서 못을 파고 경회루를 건설하였다.

누각이 완성되자 태종은 누각의 이름을 지을 것을 명하였고 하륜은 그 이름을 경회루라 명하였다.

하륜의 ‘경회루기(慶會樓記)’를 살펴보면 경회루라는 이름을 갖게된 사연이 나와있다. “대개 인군(人君)의 정사는 사람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사람을 얻은 뒤에라야 ‘경회(慶會)’ 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 ‘경회’라는 것은 군신 간에 서로 덕으로써 만나는 것을 의미 한 것이니, (중략) 옛일을 상고하건대, 요ㆍ순ㆍ우ㆍ탕ㆍ고종ㆍ문왕ㆍ무왕 같은 이가 임금이 되고 고요(皐陶)ㆍ기(夔)ㆍ백익(伯益)ㆍ이윤(伊尹)ㆍ부열(傅說)ㆍ여상(呂尙)ㆍ주공(周公)ㆍ소공(召公) 같은 이가 보좌가 되면 참으로 경회라 이를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임금과 신하가 조화롭게 정치를 잘 하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름을 짓고나서 태종은 세자인 양녕대군에게 ‘경회루’라는 글씨를 쓰게 하여 그것을 편액으로 삼았다. 경회루는 외국사신을 접견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써 만난다는 뜻에 맞게 임금과 신하들이 함께 연회를 베푸는 공간으로도 활용됐다. 때로는 기우제가 치러지기도 하고 무과 시험이 치러지기도 했다.

이런 경복궁 경회루가 무료로 특별개방된다는 소식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경복궁 경회루는 오는 10월까지 개방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