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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군대 문화’ 대학생은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해 11월 서울의 H대 경영대학에는 학생회 간부 출신인 A씨가 단과대 학생회장에 단독 출마했다. 경력도 경력인데다 주변에서 ‘리더십’을 인정 받아 학생회장까지 출마했던 A씨는 무난하게 선출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H대 커뮤니티에는 이상한 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A씨가 동아리에서 학번제를 통해 군기를 잡고 술을 강요했다”는 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일진놀이 하던 패거리가 학생후보에 나올 수 있느냐” “개나 소나 회장하는 줄 아나?”라는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A후보에 대한 반대 여론은 급속도로 확산됐고 결국 A후보는 선거운동 기간중 자진사퇴하고 종적을 감췄다. 후배들 군기를 적당히 잡고 잘 달래주면 그것 자체가 능력이 되고 자연스럽게 학생회 간부로 이어지던 ‘잘못된 상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대학가가 달라지고 있다. 연일 뉴스를 뜨겁게 달구는 ‘공포의 사발식’, ‘얼차려 대면식’ 등의 전통(?)은 ‘연대의식 강화’라는 명목으로 여전히 음지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악습은 안돼’를 외치며 변화를 모색하는 캠퍼스는 분주하다.

서울의 한 대학교 캠퍼스에서 진달래와 목련 등 봄 꽃들이 만개한 가운데 학생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교 캠퍼스에서 진달래와 목련 등 봄 꽃들이 만개한 가운데 학생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제공 : 뉴시스

군대식 서열문화, 변화가 시작된다

A씨가 사퇴한 이후 새롭게 선출된 학생회장단은 ‘악습 철폐’를 강조했다. 신입생이라면 나이를 불문하고 선배들을 누나와 언니, 오빠로 불러야 하는 호칭 제한도 자유롭게 바꿨고 술자리를 강요하는 문화도 지양했다. 비단 H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곳곳에서 강압적인 사발식이나 군대식 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성신여대 정솔(14학번) 학생은 올해 학과 신입생환영회에서 치뤄진 대면식에 대해 “신입생들이 궁금해 하는 주제들로 토크 게임을 만들어 선후배가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뒷풀이 술자리도 강압적인 분위기 없이 신청자를 중심으로 즐겁게 진행됐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언론에서 강압적인 대면식 문화를 보고 제 경험과 너무 달라 놀랐다”면서 “선배가 후배를 휘어잡아야 한다는 이상한 우월의식”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신입생 군기’가 강조되는 것으로 알려진 공과대학에서도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천창근(11학번) 학생은 “엠티, 오티, 새터 등에서 의식적으로 조심하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게 신경을 쓰다 보니 굳이 그런거(군기잡기) 안해도 선후배 잘지내는데 뭐하러 그랬나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양모(14학번) 학생은 “페이스북 익명 페이지인 대나무숲이라는 공간에는 요즘 바람직한 선후배 관계, 술자리 문화에 문제의식을 담은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면서 “대학 내 권위적인 문화에 많은 사람들이 내색은 안하더라도 불편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고통, 또다른 누군가에겐 전통

여전히 곳곳에서 ‘악습’이 확인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이지만 이 과정 자체가 ‘선배와 후배를 이어주는 끈끈한 전통’이라는 생각을 가진 학생들도 있기 때문이다.

‘신입생 막걸리 사발식’으로 유명한 고려대학교가 대표적이다. 총학생회는 고육지책으로 자원자를 대상으로 막걸리 사발식을 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쌀음료로 대신 하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사발식 자체를 없애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고려대 박세훈 총학생회장은 “사발식을 안하고 싶었지만 선배, 심지어 동기들조차 네가 왜 전통을 없애려하느냐는 비판을 들어 어쩔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임모(15학번)씨는 “여전히 교내에서 보면 잔디에서 신입생을 굴리고 그러는 문화가 있다”면서 “굴렀던 친구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말하는데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이라고 액땜이라고는 하지만 그것 자체가 구성원들 내부의 합의 상태에서 이어져야 전통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말하는 전통은 새로운 구성원이 합의를 한 상황은 절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강정한 교수는 “나이로 줄을 세우는 것은 학생들 사이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요즘은 예전과 달리 후배에게 호칭을 ◌◌씨로 한다거나 존댓말을 해 겉으로는 선후배관계가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풍선효과처럼 호칭문제 이외에 다른 쪽으로 상하관계가 더 민감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나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강정한 교수는 변화하는 캠퍼스 문화에 대해서 “일부 학생들은 선후배 사이 유대감과 학과에 대한 소속감 등을 잃을 것이라는 걱정도 하겠지만 과격한 단합문화가 아닌 건전한 놀이문화로도 집단소속감을 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지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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