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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발 구조조정 정국이 몹시 불편한 세 가지 이유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6년 7월, 서울 강남역 한 호프집에서 삼성중공업 임직원 200여 명이 모여 ‘호프 데이’라는 행사를 열었다.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자 김징완 당시 삼성중공업 사장은 예정에도 없던 3부 노래자랑 대회를 제안하고 마이크까지 직접 잡았다. “삼성그룹 역사상 사장이 3부 사회를 본 것은 처음”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김 사장이 이렇게 업(up)된 이유는 하나였다. 한 달 전쯤 열렸던 독립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이건희 회장이 삼성중공업에 대해 오너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극찬을 늘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회장은 에버랜드, 삼성물산, 제일모직, 호텔신라 등 10여개 독립 계열사 사장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앞으로 삼성전자와 견줄만한 계열사는 삼성중공업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삼성전자와 견줄만한 유일한’ 계열사…. 언론들은 “이건희 회장이 삼성중공업을 미래 먹거리의 핵심으로 키울 것”이라는 보도를 집중적으로 쏟아냈다. 삼성중공업은 창사 이래 가장 눈부신 주목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삼성중공업 홈페이지.
삼성중공업 홈페이지.ⓒ삼성중공업 홈페이지 캡쳐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이건희 회장이 그토록 극찬했던 삼성중공업의 2015년 실적은 처참하다. 매출 9조7144억 원에 영업손실이 무려 1조 5019억 원, 최종 순손실은 1조 2121억 원으로 집계됐다.

삼성중공업이 영위하는 조선산업은 정치권에서 촉발된 구조조정의 태풍에 휘말린 상태다. 자기들끼리 “그룹의 미래”라고 극찬하며 덩치를 키울 때는 언제고, 이제는 업황이 안 좋다며 군살을 빼겠단다. 이 와중에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 책임이 온전히 노동자들의 몫인가? “그룹의 미래”라며 과잉 중복투자를 서슴지 않았던 삼성중공업의 경영진, 그리고 그 정점에 서 있었던 이건희 회장은 도대체 무슨 책임을 졌나?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촉발시킨 구조조정 정국이 심히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구조조정을 해도 오너는 행복하다

최근 진행되는 구조조정 국면은 업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해운업과 조선업의 주요 기업들의 과잉 중복 투자를 어떻게든 정리하겠다는 쪽으로 진행되는 듯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아직까지 구조조정을 위한 추경 편성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지만, 결국 정부가 돈을 쏟아 붓는 방식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지난주 한진그룹 오너 조양호 일가는 경영난에 봉착한 한진해운의 경영권을 사실상 포기했다.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하면서 기업의 운명을 채권단의 손에 넘긴 것이다. 이전까지 조양호 일가는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수 년 째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결과는 별무소득. 결국 한진해운의 운명은 채권단의 손에 넘어갔다. 그리고 그 부담은 궁극적으로 정부가 나눠지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진해운 본사
한진해운 본사ⓒ김철수 기자

조선업계 세계 1위 기업인 현대중공업도 이미 3000명 감원설을 흘리며 바람 잡기에 나섰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 즉 빅딜(big deal)설도 꽤 설득력 있게 나돈다. 어떤 형태건 이 구조조정에도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와 정부 자금의 동원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조정 국면이 매우 불편한 이유는, 문제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2014년까지 한진해운의 오너로 지내며 오늘날 한진해운의 경영 위기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제수) 일가는 한진해운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겠다고 밝히기 직전에 보유했던 한진해운 주식을 홀라당 팔아 손실을 최소화했다.

3000명을 해고하겠다는 현대중공업의 오너 정몽준 전 의원은 여당이 20대 총선에서 참패한 이후 되레 대권 주자로 다시 조명을 받는다. 역시 경영 위기에 직접적 책임이 있으며 5조 5000억 원에 이르는 부실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는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지난해에 이 회사에서 퇴직금과 급여 명목으로 무려 21억 원을 챙겼다.

김종인 발 구조조정이 불편한 세 가지 이유

그래서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문제를 제기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맞장구를 쳤던 구조조정 국면은 매우 불편하다. 이것이 불편한 첫 번 째 이유는 ‘문제의 원인과 책임 소재’에 관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중복투자를 용인한 이건희 회장, 사실상 현대중공업 경영에 전권을 행사하는 정몽준 전 의원, 5조 원이 넘는 부실 회계 의혹을 받는 고재호 전 사장은 기업은 망조가 들어 구조조정의 태풍에 휩싸이는데도 모두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둘째, 더민주가 제기하는 구조조정의 해법은 일의 선후를 완전히 뒤집고 있다.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는 최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구조조정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대량해고와 실직 문제에 대해 “다만 그때 일어날 수 만 명의 실업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약속 받아야 한다. 노동조합들의 걱정을 우리가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게 지금 더민주가 주장하는 자신들과 정부·여당과의 차별성이다. 하지만 이는 올바른 문제 해결 경로가 아니다. 구조조정을 먼저 협의 테이블에 올릴 것을 전제하고, 이후 ‘파생되는’ 실업 문제를 다루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이야기다. 일의 선후를 제대로 따지려면 실업자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당연히 먼저여야 한다. “사회 안전망 구축이 전제가 돼야 구조조정 이야기를 협의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야당의 올바른 태도다.

정부는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 업종으로 선정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자구 노력에 따라 선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이야기인데 이거야말로 언 발의 오줌 누기 식 처방이다. 어차피 구조조정 국면은 조선업으로 한정돼 끝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의 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당연히 ‘특별고용지원 업종’ 같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더 포괄적이고 더 보편적인 실업자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야당은 이 카드를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그래서 조선업종의 실업자들만 겨우 어떻게 구제했다고 치자(그 마저도 확률이 거의 없지만). 그 다음에 해운업은? 석유화학업은? 건설업은? 철강업은? 사회 안전망의 확보라는 뿌리가 없으면 고름은 터 크게 곪아 터질 뿐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서 경제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서 경제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셋째, 지금 야당은 구조조정에 들어갈 재원 마련에 대한 대책을 못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의 관례로 보면 결국 구조조정은 ‘재벌 살리기’의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1998년 외환위기 때도 그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재벌 오너 일가 중 위기 때 책임을 진 이도 없었고, 손해를 본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면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은 당연히 경영상 책임이 있는 재벌들로부터 나와야 한다. 법인세율 인상 카드를 사용할 절호의 찬스가 바로 지금이라는 이야기다. 정부 부채가 무려 600조 원이어서 추경 카드를 쉽게 꺼낼 상황도 아니다. 이건희 회장과 정몽준 전 의원 등 과잉 중복투자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오너들의 사재 출연도 사회적으로 논의해 볼만한 카드다. 그런데 야당은 이런 방침도 없이 “구조조정 국면의 주도권을 쥐었다”며 만족해한다.

벌써부터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이것도 매우 불편하기 짝이 없다. 노동자들은 기업이 망하는데도 자기 월급 지키겠다고 나서는 이기적 존재가 결코 아니다. 그간의 숱한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 노동자들은 자기들 월급을 깎아서라도 동료들의 해고를 막고 함께 공생하는 길을 찾을 용의가 충분히 있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 일을 위해서는 분명한 전제가 필요하다.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묻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먼저 책임을 지는 것이다. 북유럽 모델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실업자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는 일이다. 이런 전제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대중공업은 벌써 3000명 해고설을 흘리고 다닌다. 재벌은 살고, 노동자만 죽는 지금의 구조조정 논의에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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