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구] 문답으로 푸는 한국형 양적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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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형 양적완화, 농담이 아니었다
  2. 양적완화란 무엇이고 한국형 양적완화는 또 무엇인가?
  3. 한국형 양적완화, 예상되는 첫 번째 방법
  4. 한국형 양적완화, 예상되는 두 번째 방법
  5.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방식은 왜 못 쓰나?
  6. 부작용은 없나?
  7. 어떤 정책을 먼저 써야 하나
이완배 기자 최종업데이트 2016-04-28 20:18:35
  • CARD 1/

    한국형 양적완화, 농담이 아니었다

    27일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박 대통령은 양적완화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발언한지 하루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양적완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민중의소리도 26일 페이스북에서 관련기사를 소개하며 “오늘 말씀하신 한국형 양적완화, 뜻은 아시는 거죠?”라고 대통령에게 물은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잘못했다. 괜히 대통령의 자존심을 건드려 땅 속에 묻혔던 양적완화가 진짜로 현실화할 모양이니 말이다.

    박 대통령은 28일 오전 제17차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국형 양적완화를 본격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녀의 육성은 이랬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실을 신속하게 처리하면서 구조조정을 차질 없이 성공적으로 추진을 하려면 구조조정을 집도하는 국책은행의 지원 여력을 선제적으로 확충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서 필요한 재원은 미국, 일본, EU 등 선진국들이 펼친 무차별적인 돈 풀기 식의 양적완화가 아닌 꼭 필요한 부분에 지원이 이루어지는 선별적 양적완화 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와 관계 기관이 긴밀하게 협의를 해서 최적의 방안을 마련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알았다. 우리가 잘못했다! 대통령이 양적완화가 무슨 뜻인지 아는 것으로 인정하겠다. 그러니 제발 ‘한국형 양적완화’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나 써야 할 정책을 거둬주기를 청한다. 한국형 양적완화는 일의 선후도 잘 못됐고, 실패했을 경우 국민들이 져야 할 부담도 너무 많다. 무엇보다 아직 한국은 이런 극단적 정책을 써야 할 정도로 남은 수단이 고갈된 상태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양적완화가 무엇이고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자.

  • CARD 2/

    양적완화란 무엇이고 한국형 양적완화는 또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양적완화란 ‘중앙은행이 통화를 시중에 직접 공급해 신용경색을 해소하고, 경기를 부양시키는 통화정책’을 뜻한다. 한국은행이 아예 직접 돈을 찍어 시중에 풀어버리는 방식으로 경기 활성화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보통 한국은행은 극단적 상황이 아니면 금리를 조율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풀리는 돈의 양을 조절한다. 경기 활성화가 목적이라면 금리를 낮춰 돈을 푸는데, 이때에는 물가 상승이라는 부작용이 생긴다. 물가 억제가 목적이라면 금리를 높여 돈줄을 죈다. 물론 이때에는 경기가 침체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양적완화는 보통 금리 정책을 쓸 수 없는 극단적 상황에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이미 기준금리가 제로에 가까울 때, 즉 더 낮출 금리가 없는데도 여전히 경기가 침체됐을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한국형 양적완화는 이와는 다소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박 대통령의 표현대로 ‘시중에 무분별하게 돈을 푸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돈을 찍어 풀겠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 명확한 목적은 다름 아닌 구조조정이다. 구조조정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돈을 찍으라는 이야기다. 이게 바로 한국형 양적완화의 본질이다.

  • CARD 3/

    한국형 양적완화, 예상되는 첫 번째 방법

    한국형 양적완화는 크게 다음의 두 방법 중 하나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 예상되는 방식은 총선 때 새누리당이 공약한 것으로,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의 채권을 인수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 예상되는 방식은 아예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에 자금을 대(출자를 해) 새로운 주주가 되는 방식이다.

    두 방식 모두 산업은행이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왜 양적완화를 위해 산업은행의 존재가 필요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은행이 어떤 은행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이다. 한때 민영화가 됐지만 지난해에 다시 공기업이 됐다. 공기업답게 사회간접자본의 형성이나 중화학공업 개발에 필요한 대규모 장기성 자본을 융통해 주는 역할을 한다.

    산업은행은 주로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이라는 특수목적 채권을 통해 자금을 얻는다. 산업은행은 이 산금채의 발행권을 독점한 은행이다. 산금채는 1980년대까지 주로 중화학공업 등 대형 플랜트산업용 재원으로 주로 사용됐고, 최근에는 통신 등 서비스 분야의 투자 재원용으로도 발행됐다.

    한국형 양적완화의 첫 번째 예상되는 방식은 산은이 오로지 구조조정을 위한 산금채를 발행하는 것이다. 이 산금채는 결국 ‘망하는 기업’에 투자되는 것이므로 시중에서 다 팔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 실제 외환위기 때 투입됐던 구제금융 자금 중 아직도 회수되지 않은 자금의 규모가 30%에 육박한다.

    정부는 그 안 팔리는 산금채를 한국은행이 사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물론 필요한 돈은 한국은행이 인쇄기로 찍어서 발행한다. 여기에서 바로 ‘발권력이 동원되는 양적완화’의 개념이 사용된다

    문제는 이게 한국은행법이 개정이 돼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한국은행법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국채와 정부가 보증한 채권에 한해서만 직접 인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법이 바뀌지 않으면 정부 보증이 없는 산금채를 한국은행이 인수할 방법이 없다. 양적완화 첫 번째 방법의 운명은 정부가 아니라 국회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 CARD 4/

    한국형 양적완화, 예상되는 두 번째 방법

    또 다른 방법은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에 직접 출자를 하는 방식이다. 실제 산업은행은 첫 번째 방식보다 두 번째 방식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식의 골자는 이렇다. 현행법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출자할 수 있는 시중은행은 수출입은행뿐이다. 그래서 한은법을 개정해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에도 직접 출자할 수 있도록 바꾸자는 게 정부의 방안이다.

    물론 이때 필요한 출자금 역시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돈을 찍어 마련한다. 이렇게 하면 산업은행의 자금 구조가 튼튼해진다는 장점과 함께, 구조조정을 현실적으로 주도할 실탄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도 얻는다. 요즘 구조조정의 전면에 떠오른 조선과 해양업종 기업들의 부채는 대부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몰려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익스포저라는 다소 어려운 용어로 설명한다. 익스포저는 쉽게 말하면 은행들이 기업에 물린 돈의 총액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부채도 포함되고, 다양한 파생상품도 포함된다. 현재 조선업체 중 가장 상황이 나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금융권의 익스포저는 약 21조 7000억 원에 이른다. 이 중 수출입은행의 익스포저가 12조 5000억 원, 산업은행의 익스포저가 4조 1000억 원이다. 전체 익스포저 중 84.3%인 18조 3000억 원이 특수은행의 몫이다.

    해운 기업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양사에 대한 금융권의 익스포저는 1조 77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77.6%(한진해운)와 68.4%(현대상선)가 특수은행의 부담이다. 정부가 산업은행의 자본금을 늘려서라도 실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결국 양적완화를 통해 투입되는 돈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부실기업에 물린 부실채권을 땜질하는 데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방식의 운명 역시 정부가 아니라 국회의 손에 달렸다.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에 출자하기 위해서는 역시 한국은행법과 산업은행법이 개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 CARD 5/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방식은 왜 못 쓰나?

    당연히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박근혜 정부가 매우 꺼리는 방식이다. 정부 재정 상황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이미 박근혜 정부가 떠안고 있는 부채의 규모는 600조 원에 육박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 수치가 늘어나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야권(더민주 윤호중 의원)에서는 “양적 완화란 게 정부가 져야 할 부담을 한국은행에 떠넘기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이 나온다. 아무리 한국은행이 독립 기관이라 해도, 한은 역시 정부기관인 것은 마찬가지다. 정부가 질 부담을 한은이 진다고 국가가 위기를 덜 떠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 CARD 6/

    부작용은 없나?

    당연히 있다. 그것도 아주 많다. 기본적으로 돈을 찍어서 시중에 풀면 화폐가치가 떨어진다. 이어서 원화 가치가 하락할 것이고, 외국인 투자금도 빠져 나갈 것이다.

    하지만 더 궁극적인 문제는 양적완화가 결국 부실기업 구제를 국민 부담으로 해결토록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면 국민 세금으로 부실기업을 구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사기극일 뿐이다. 한국은행이 1차적인 부담을 진다고해서 궁극적으로 국민이 져야 할 부담이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정부기관인 이상 투자금을 떼이면 그 부담은 모두 국민의 몫이다. 역사적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물가가 통제 수준을 벗어나 빠르게 오르는 현상)이 일어났던 국가들을 보면, 중앙은행이 뭔가에 물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돈을 찍어내고, 화폐가치가 떨어져 그 돈이 다시 물리니 또 돈을 찍어내는 방식을 반복하다가 발생했다.

    설혹 한국은행이 운이 좋아 투자금을 떼이지 않는다 쳐도, 풀린 돈의 양만큼 물가는 무조건 오르게 돼 있다. 그 물가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져야 한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다. 중앙은행이 독립된 이유는 정부가 무분별하게 돈을 찍어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실제 유럽연합(EU)이나 미국을 대상으로 양적완화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이와 관련한 정책 결정권자는 모두 중앙은행 총재로 나온다. 양적완화는 물론이고 양적완화의 탈출구인 테이퍼링조차도 대통령이나 총리가 아니라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나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진행되는 양적완화 논쟁은 이미 중앙은행의 손을 벗어나 버렸다. 한국은행의 독립성 문제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19일까지만 해도 이주열 한은 총재는 “구조조정을 지원하더라도 법 테두리 안에서, 중앙은행의 기본 원칙 안에서 하겠다”라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나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총재는 22일 금융협의회에서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다양한 정책수단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라며 태도를 돌변했다. 박근혜 정부 발 양적완화 논쟁이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 CARD 7/

    어떤 정책을 먼저 써야 하나

    양적완화 같은 최후의 수단을 쓰기에 앞서 우리에게는 아직도 두 척의 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금리를 내려 돈을 푸는 것은 ‘구조조정만을 위한 자금 마련’의 취지에 어긋나므로 최후의 수단 중 하나로 인정하지 않겠다.

    우리에게 남은 두 척의 배는 다름 아닌 재벌들의 사재 출연과 법인세 인상이다. 사실 구조조정이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대부분 경영을 엉망으로 한 재벌들을 구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주주, 근로자, 채권자 모두 고통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지만, 한국에서 진행된 대부분의 구조조정 고통은 근로자들만이 떠안았다.

    부실기업에 자금을 투입하는 것(그것이 양적완화이건 정부 재정의 출혈이건)은 먼저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죽일 수 없다면, 그래서 그 기업을 살려야만 한다면 그 부담을 먼저 경영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지우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야 국민들도 추가 부담을 질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진해운의 전직 최대주주였으며 경영 부실의 1차적 책임이 있는 최은영 씨는 보유 재산이 무려 1800억 원대라고 한다. 그녀에게 대충 200억~300억 원 정도 사재 출연을 시킨 뒤 1조 원에 가까운 부채를 국민보고 책임지라는 것은 정당성이 전혀 없다. 그리고 그녀가 보유했다는 1800억 원대 자산조차 주식 자산만을 계산한 것이다. 부실경영의 책임을 물려 그녀의 전 재산을 기업 회생에 사용토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미 300억 원의 사재를 출연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 회장의 자산은 3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의 부실은 전적으로 그녀가 책임지고 경영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300억 원은 그 책임을 감당할 충분한 돈이 결코 아니다. 대량 해고를 추진 중인 현대중공업도 정몽준 전 의원의 책임을 무시할 수 없다. 정 전 의원은 최대주주로서 상당히 깊숙이 현대중공업 경영에 간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재 출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법인세 인상이다. 구조조정은 결국 재벌들이 싼 X을 국민이 치워주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그 X을 치우는 1차 책임을 재벌들이 지는 게 옳다. 하지만 단지 이런 차원이 아니더라도 보다 폭넓은 재정 확대를 위해 법인세 인상은 필수적이다.

    법인세 인상은 20대 총선에서 야당이 앞세운 주요 공약이기도 하다. 구조조정 국면이 진행되면 경기가 더 침체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딱히 구조조정만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침체된 경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 불가피하다. 그 재원 마련을 위해서라도 금고에 돈을 쌓아두고 있는 재벌 대기업에게 조금의(겨우 3%포인트 세율 인상) 세금 부담을 높이는 일은 결코 과하지 않다. 또 설혹 법인세 인상으로 구조조정에 대한 충분한 재원이 마련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이 정도 조치가 있어야 구조조정에 재정을 쏟아 붓는 것에 국민적 합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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