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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중환자실 간호사의 한의사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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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경북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5년여 동안 일해오다 갑자기(?) 진로를 바꿔 한의사가 된 사람이다. 누가봐도 쉽지 않아 보이는 이 길을 꿋꿋이 걸어가 결국 해낸 '의지의 한국인'이다.

그런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25일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인애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원 원장을 맞고 있는 그는 자칫 독하디 독한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지은혜'라는 여성스런 이름과 시종일관 밝은 미소를 보이는 평범한 30대 여성이다. 물론 성격도 무척 쾌활하다. 인터뷰 첫 만남 자리에서 "올해 37살의 나이지만 만으로 35살이라고 해달라"고 말할 만큼.

인애한의원 지은혜 원장
인애한의원 지은혜 원장ⓒ민중의소리

간호사, 한의사가 되기로 결심하다

이런 지은혜 원장은 왜 갑자기 한의사가 되려고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짧지 않은 시간동안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해 온 지 원장이 한의사가 되려고 한 계기는 현대의학의 최첨단 장비에서 느껴지는 회의감이다. 대부분 큰 수술을 마친 사람들이 머무는 중환자실은 그에게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제가 맡은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어요. 산소호흡기와 같은 장비를 동원해 생명을 연장해야 했죠. 담당 간호사로서 정성껏 케어 했지만 결국 돌아가시는 분들이 나왔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고민을 했어요"

지 원장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생명 연장을 위해 사용되는 첨단 장비에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간호사로서 그의 고민이 시작됐다. 고민은 쉽게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의료 윤리에 대한 책도 보고, 고민도 해봤지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공부를 조금 더 해보자는 생각에 대학원에 갔죠. 그런데도 변하는 건 없었어요"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그에게 새로운 결심을 하게 해준 건 다름 아닌 아무생각 없이 보고 있던 TV 방송이었다. 한의학 교수가 무료진료를 다니는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이 그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방송이 끝날 때쯤엔 그런 한의학 교수의 삶을 동경하게 됐다.

"첨단 의학장비들을 보면서 들었던 회의 때문인지 한의학이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왔죠. 정말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었어요. 하늘이 도왔는지 운 좋게도 동국대 한의학과로 편입할 수 있었죠"

인애한의원 지은혜 원장
인애한의원 지은혜 원장ⓒ민중의소리

"어디가 아파서 오셨냐"는 질문에
대뜸 손목을 내미는 환자들

전혀 새로운 길로 들어선 그가 정식으로 한의사 된 것은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남들보다 시작이 늦었던 탓이지만 열정만큼은 어느 젊은 한의사들 못지않았다. 우리사회가 한의학에 가진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한의원이 ‘병을 치료하는 곳’이라기보다 '보약을 짓는 약방'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지 가끔 한의원을 찾아 ‘갑질’을 하려는 환자들도 있죠. 이런 한의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꾸고 싶은 거예요"

한의원은 단순히 보약만 짓는 곳이 아니다. 한약과 침술 등 한방의료 원리 및 기술을 바탕으로 인체의 질병과 장애를 치료하고 예방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한약재를 처방하여 탕약으로 달이거나 침, 뜸, 부항, 물리치료, 수기요법 등의 치료법을 사용해 치료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잘못된 인식으로 한의원을 찾아 다소 황당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한의원도 일반 병원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진료를 하죠. 그런데 얼마 전에는 진짜 황당한 환자가 있었어요. 환자에게 '어디가 안 좋아서 오셨나요'라고 물었는데, 뜬금없이 손목을 내미는 거예요. 그러면서 '직접 진맥을 해서 맞춰야지'라고 말했죠. 한의원을 마치 '점집'처럼 생각한 거죠.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땐 정말 속상 했어요"

지 원장이 말하는 '진상' 환자는 이뿐만이 아니다. 병원에 가서는 의사에게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한의원에 와서는 여성 한의사들에게 '언니'라고 부르는가 하면, 심지어 한의원 직원들에게 욕설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런 생활에 실망하고 답답할 만도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들이 한의사로서 소중한 재산이라고 했다.

"모든 환자들이 그런 건 아니에요. 짧은 시간이지만 환자들과 교감을 나눌 때도 있죠. 진정한 치료는 수술이나 약을 처방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병으로 망가진 환자의 마음까지 보듬어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환자들과 그런 교감을 느낄 때 바로 제가 바라던 한의사 된 것 같아 행복해요"

인애한의원 지은혜 원장
인애한의원 지은혜 원장ⓒ민중의소리

"가족 같은 한의사?, 그냥 친구 같은 한의사 될래요"

한의사로서의 삶을 선택한 그는 양방과 한방을 모두 경험해 봤기 때문일까. 한의학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처음엔 한의대를 다니면서 실망스러운 점도 있었어요. 양방과 달리 치료법에 대한 명확한 통계들이 부족했죠. 그리고 한의들 사이 정보 공유가 부족하기도 했고요. 그러다보니, 내가 한의사가 됐을 때 정확한 치료를 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죠. 그래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극복하려고 노력했죠. 이젠 젊은 한의사들 사이에서 다양한 치료법들을 공유하고 선배 한의사들에게 배움을 청하기도 해요."

한의사로 새로운 삶을 사는 그에게는 한 가지 목표가 있다. 모든 병을 고치는 명의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큰 한의원을 차려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작게는 한의원이 있는 영통동, 크게는 영통구 주민들에게 든든함을 느낄 수 있는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가끔 '내가 정말 모든 환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치료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봐요. 결론은 '힘들다'였죠.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친구 같은 한의사는 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친구처럼 친근한 그런 한의사 말이죠. 이런 마음가짐으로 앞으로 좀 더 노력한다면 우리 동네 든든한 한의사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윤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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