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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의 미술이야기] ‘그림’을 본다는 것, 강요배의 <시간 속을 부는 바람>展

5년 전 현기영 작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국가와 폭력 그리고 문학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는 백발노인의 선명한 눈빛. 당시 나는 ‘저 할아버지가 왜 이렇게 화가 났지’ 생각했다. 그의 글을 읽은 적 없고, 제주4.3(이하 4.3)을 알지 못했을 때였다. 그리고 작년 ‘잃어버린 마을1)’의 한 폐교에서 다시금 그 눈빛을 만났다. 제주4.3미술제(이하 4.3미술제) 워크숍에서 처음 마주한 강요배 작가였다.

소설 <순이 삼촌>의 현기영과 그림 <동백꽃 지다>의 강요배는 분단과 독재,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제주사회가 배출한 우리시대의 지성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뒷골목에서 몰래 써야했던 1970년대. 육지와 단절된 섬의 악몽, 그 날의 기억을 문학으로 세상에 폭로했던 소설가 현기영. 그는 창작의 고통, 그 대가로 또 다른 신체적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다. 1992년, 강요배의 <제주민중항쟁사>전시에서 발표된 50점의 작품들. 제주현대사는 구체적인 한 장면, 한 장면으로 묘사되어 수 만 명의 관객을 만났다2). 한 날 제사지내는 일이 많은 마을들. 해가 지면 작은 목소리로 주고받던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이 사회에 널리 알려진 계기였다. 그림을 보는 찰나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가.

제주도립미술관 입구. 전시장 내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작품은 찍지 못했다. 전시 포스터로 활용된 작품은 “구름이 하늘에다(130x162cm, 캔버스의 아크릴, 2015)”이다. 전시된 것들 중에 가장 해맑다.
제주도립미술관 입구. 전시장 내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작품은 찍지 못했다. 전시 포스터로 활용된 작품은 “구름이 하늘에다(130x162cm, 캔버스의 아크릴, 2015)”이다. 전시된 것들 중에 가장 해맑다.ⓒ박민희

‘그림’을 보다

1976년 24세 청년 강요배의 첫 개인전이 제주에서 있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80여점의 작품을 통해 그의 어린 시절까지 평생을 환기하는 대규모 기획전 <시간 속을 부는 바람>이 진행 중이다. 먼저 접해 온 그의 역사화와는 또 다른 깨달음이 스친다. ‘그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 아, 이것이 그림이구나! 붓이 지나간 자리, 겹겹이 쌓아올린 물감들. 한 발 물러서면 보인다. 파도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 발끝까지 환하게 비춰주는 달빛… 툭툭 무심코 찍힌 듯 보이는 붓 자욱이 이토록 아름다운 야생화로 보이는 신비. 그렇지, 자연에는 외곽이 선명한 것이 없다. 멈춰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한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 가만히 멈춰있고 단순화된 색들은 오롯이 기계가 토해낸 인공뿐이다. 고성능 카메라로 절대 담을 수 없는 풍경, 한 가지 계통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색. 움직이는 그림. 참 사실적이다. 작가는 ‘그림’만의 고유한 영역에 다가가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작업실에 침잠해 있었던 것일까. 수십 년 간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 그림 그리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색을 했을까.

나는 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그림 그리기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절대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그림 그리는 시간이 늘 조급했다. 코끝 찡하게 만드는 한 문장, 몸을 들썩이게 하는 노랫가락, 눈물 펑펑 쏟게 하는 영화관의 두 시간을 대체할 수 있는 그런 그림이 존재할 수 있는지가 항상 의문이었다. 아마도 그림다운 그림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것이리라. 또 정말 그리고 싶은 것이 없었던 것이리라. 사진을 보고 확대 묘사하는 교육을 받았던 이들에게 그림이란 언제나 사진보다 못한 것이었기에.

몸속이 텅 비어 ‘종’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댕- 댕-’ 마음의 울림을 느끼며 전시를 관람했다. 그림을 보는 찰나의 코끝 찡함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한다. 겹겹이 쌓인 물감들이 만들어낸 서걱서걱한 질감. 비가 왔는지 습기를 머금고 짙어진 하늘. 돌풍에 높아진 파도와 바위에 부서지고 흩뿌려지는 물방울들이 어둡다. 작품들은 묵묵히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작가가 애정하고 그려내는 이 섬이 어떤 역사를 품고 있는지를.

강요배와 ‘4.3미술’

앞서 언급한 강요배의 <제주민중항쟁사>전시는 1994년 탐라미술인협의회(현재는 탐라미술인협회, 약칭 탐미협)창립과 함께 탐미협 주최로 1회 4.3미술제가 개최되는데 주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전시의 성황은 도민들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예술로 함께 치유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1997년 4월 2일자 제민일보 기사 스크랩. 4.3미술제 5주기를 맞아 탐미협에서 제작한 『역사에 던진 아픔의 꽃묶음』 일부를 스캔했다.
1997년 4월 2일자 제민일보 기사 스크랩. 4.3미술제 5주기를 맞아 탐미협에서 제작한 『역사에 던진 아픔의 꽃묶음』 일부를 스캔했다.ⓒ스캔 박민희

강요배는 제주다움과 세상의 근원에 다가가는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면서도 4월에는 어김없이 4.3미술제에 신작을 출품한다. 올 해의 출품작은 “버트 하디의 사진에 대한 경의”다. 작품의 아래 부분에는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였던 버트 하디(영국)가 1950년 9월 부산형무소에서 찍은 사진이 실린 신문 스크랩이 붙어있다. 집단학살 현장으로 이동하기 직전 모습으로 추정된다. 수년 전 신문기사를 오려 스크랩 했던 당시 작가의 마음, 그리고 그 작은 쪼가리를 들고 당신보다 큰 캔버스에 옮겨 그리는 작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까지 5년은 사상의 충돌과 권력자들의 욕망이 뒤엉킨 지옥이었다. 1948년 가족과 동네사람들의 피를 뒤집어 쓴 섬사람들은 한국전쟁에 앞다투어 자원입대한다.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들 대다수는 전국 곳곳의 포로수용소에서 행방불명되었다. 4.3평화공원에 행방불명자 묘비가 셀 수 없이 많은 이유다.

작품과 마주했을 때의 숙연함.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이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작가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먹먹하다는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공기가 몰려온다. 유가족들이 이 사진을 보았을까. 미술작가로서 이것만큼 진심을 다해 경의를 표하는 방법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

“버트하디의 사진에 대한 경의(455x182cm, 캔버스에 아크릴, 2016)”
“버트하디의 사진에 대한 경의(455x182cm, 캔버스에 아크릴, 2016)”ⓒ탐미협 제공

나는 4.3미술제에 출품된 강요배의 작품들을 찾아보면서 ‘4.3미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해마다 ‘제祭’ 지내는 마음으로 새롭게 제작되는 작품들. 태어남과 동시에 오롯이 4.3이라는 역사에 귀속된다. 사진이 없던 시절에 대한 강력한 증언. 태초의 4.3미술제가 추구했던 리얼리즘. ‘4.3미술’이 미술운동, 그리고 하나의 장르로서 고유명사로 정립될 수 있다면 이와 같은 기준점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올 해로 23년째 지속되고 있는 4.3미술제는 21회(2014년)부터 탐미협 외부의 국내외 작가들까지 동참하는 연대 기획전으로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 4.3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통해 더 많은 대중들과 공감을 나누는 자리로서 그 외연이 확장되어야 한다고, 단체 내외의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4.3미술제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면서 전시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출품으로 마음을 보태는 일과 더불어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의 활발한 소통을 바탕으로 ‘4.3미술’ 그 정체성을 이론적으로 정립해 나가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연구의 시작과 중심에 강요배가 존재함은 말할 것도 없다.

마음속에 부는 바람

처음 미술칼럼을 시작했을 때의 다짐, 한 명의 관객으로서 가볍고 솔직한 글쓰기. 횟수가 거듭될수록 자괴감만 늘어간다. 할 말이 생기는 전시와 작품을 만났을 때 문장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말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되짚는 과정에서 이내 의기소침해진다. 항상 공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반성, 나 따위가 누군가의 정성을 언급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같은 대상에 대한 수려한 글들을 읽으면 아예 의욕이 상실된다. 이미 존재하는 좋은 글을 그대로 옮겨 적어 소개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번 칼럼은 특히 더했다. 강요배라는 작가를 알게 될수록, 작품을 감상할수록 밀려오는 감동을 나누기에 ‘글’은 너무나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는데 작가가 쓴 ‘글’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림’이라는 말에는 조금 더 다른 뜻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싶고, 또 그리는 행위에는 어떤 마음 같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가 스며있다. 어느 정도 평평한 곳에 몸을 써서 마음을 나타내려는 의지가 있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일부발췌, 강요배 (『강요배 소묘:1985-2014』전시 작가 에세이, 학고재 갤러리, 2014)

“내 마음이 그리던 삶다운 삶은 늘 유예되어왔다. 현실은 언제나 임시방편이었다. 이렇듯 사노라면 안팎이 같이 시달린다. 몸은 서서히 낡아가고, 이리저리 벌여놓은 일들은 좀처럼 여의치가 못하다. 옹골찼던 마음자리는 ‘진실의 어리석음’을 발견하고 회환으로 얼룩진다. 나는 나인데 진정한 내가 없는 낡아 버린 허깨비!”
-“마음의 풍경” 일부발췌, 강요배(『강요배』전시 작가 에세이, 학고재 갤러리, 2003)

임시방편으로 살아가는 허깨비 인생이 아닌,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서슴없이 달려가는 진정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또 다짐한다. 전시는 제주도립미술관에서 7월 10일까지 진행되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제주도에 갈 일이 있다면 꼭 그를 직접 만나고 오기를 권한다. 더불어 각자의 마음속에 부는 바람은 무엇인지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박민희 art_thinker@naver.com

주석

1) 제주에서는 4.3 당시 집중적인 피해를 입어 마을이 통째로 유실되어 버린 곳을 '잃어버린 마을'이라 부른다. 무려 108개. 비공식 130여개.
2) 강요배의 역사그림 전시회 <제주민중항쟁사>는 제주, 서울, 대구 순회하며 진행되었다. 제주에서는 1992년 4월 21일부터 27일까지. 이후 1997년 4월 3일부터 11일까지 서울 학고재에서 개최된 <제주민중항쟁사> 전시는 전시기간 내 하루 5~6백명의 관객이 다녀가며 대성황을 이뤘다는 신문기사가 있다. 당시의 작품들은 출판물 <동백꽃 지다>에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전시장에서 슬라이드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박민희|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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