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일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통해 지진 희생자 죽음까지 ‘날조’?
일제의 강제동원에 따라 도난카이지진으로 희생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을 왜곡·날조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기사 발굴에 따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1일 오전 광주광역시청광장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정부의 사죄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일제의 강제동원에 따라 도난카이지진으로 희생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을 왜곡·날조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기사 발굴에 따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1일 오전 광주광역시청광장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정부의 사죄 등을 촉구하고 있다.ⓒ김주형 기자

“이들은 순직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비행기 증산에 좀 더 활동 못함을 부끄러워하며, 선반 앞을 떠나지 않았다하며, 이들의 전투적인 그 정신대 전 공장은 큰 감명을 받았고, 직장의 꽃으로 사러진 이 두 소녀를 본받겠다는 전 공장에서는 증산의 열화가 북받치고 있다 한다”

이는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944년 12월24일자 2면에 실린 ‘투혼, 증산전에 불멸’이라는 기사 마지막 부분이다. 일제는 강제동원으로 일본으로 끌고 간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녀들의 억울한 죽음까지 필요에 따라 왜곡·날조했다.

한 시민이 1일 기자회견에서 1944년 도난카이지진으로 사망한 근로정신대 희생자 죽음까지 미화한 ‘매일신보’ 기사를 들고 서 있다.
한 시민이 1일 기자회견에서 1944년 도난카이지진으로 사망한 근로정신대 희생자 죽음까지 미화한 ‘매일신보’ 기사를 들고 서 있다.ⓒ김주형 기자

이 기사에는 1944년 12월 7일 도난카이(東南海) 지진으로 죽어가야했던 당시 10대 초반의 김순례·이정숙 근로정신대 희생자들의 죽음을 ‘순직’으로 미화했다.

나아가 김순례씨에 대해서는 “광주북정 초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여자정신대원에 자진하여 참가”했고, 이정숙씨에 대해서는 “남자로 못 태어나 총을 메고 싸움을 못하러가니 그 대신 비행기 생산에 산업전사가 되겠다고 굳은 결의를 가지고 여자정신대원에 참가한 군국의 정열을 가진 소녀”였다고 날조했다.

뿐만 아니라 지진 희생자 유족들의 입을 빌어 황당한 이야기도 실었다. 12월 23일자 ‘매일신보’ 2면에는 ‘열렬 유언에도 증산’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그 애가 순직한 것은 명예로 생각합니다. 아비로서 이 이상 없는 효도를 바쳤다고 기뻐합니다”(희생자 서복영씨 아버지), “나라를 위해 일한 것은 일가의 명예입니다. 지금부터 세상을 떠난 그에게 지지 않도록 나도 국가에 봉공하겠습니다”(희생자 오길애씨 아버지)라고 희생자 부모들까지 동원해 죽음을 미화했다.

하지만 오길애씨 유족인 오철석씨는 이 기사 내용은 ‘거짓’이라며 일본 정부 사죄를 촉구했다. 오씨는 “일본의 군군주의자, 국수주의자들이 한일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이 내용을 보면 거짓말이 너무 많다. 전부 거짓말이다”라며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려면 사죄를 해야 그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1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1944년 도난카이지진으로 사망한 근로정신대 희생자 죽음까지 미화한 ‘매일신보’ 기사를 들고 일본 정부의 사죄 등을 촉구하고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1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1944년 도난카이지진으로 사망한 근로정신대 희생자 죽음까지 미화한 ‘매일신보’ 기사를 들고 일본 정부의 사죄 등을 촉구하고 있다.ⓒ김주형 기자

이날 2건의 기사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시민모임)이 1일 공개했다. 시민모임은 이날 오전 10시 광주광역시청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망자의 명예까지 짓밟은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국언 시민모임 대표,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도난카이 지진 때 숨진 김순례·오길애씨 유족, 지난달 31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일본 소송 자료집 출판기념회 참석차 일본에서 온 다카하시 마코토·테라오 테루미 나고야 소송지원회 공동대표를 비롯해 시민 20여 명이 함께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12월23일자 기사에) 소녀들(서복영·오길애씨)이 어떤 원인에 의해 목숨을 잃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면서 “다만 두 정신대원들이 죽어가면서 남겼다는 마지막 말을 소개했다”고 밝혔다.

이 기사에는 “‘우리들이 죽기 때문에 반도 동무들의 결의가 조금이라도 약하여진다면 미안한 일입니다’하여, 전선 장병에도 지지 않는 최후는 일동을 크게 감격케 하였다.”고 두 근로정신대 소녀들의 말인양 인용해 일제의 정책을 위해 미화했다.

또한 12월 24일자 기사를 소개하며 “지진 얘기는 전혀 없고 ‘뜻하지 않는 사고’라며 사건을 은폐했다”면서 “마치 자신이 원해서 일본에 간 것처럼 동원경위를 완전히 왜곡했다”고 비난했다.

나아가 “이처럼 일제는 죄 없는 어린 소녀들의 죽음마저 완전히 날조했다”면서 “이를 통해 패전 위기에 몰린 일본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한편, 군수품 생산을 독려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악용했던 것”이라 주장했다.

끝으로 “얼마 전 아베총리는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호재삼아 일본이 원폭 피해국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데 십분 이용했지만 같은 현장에서 죽어간 한국인 피해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며 “아베총리가 진정 지난날 일본 국민들의 아픔을 강조하고 싶다면, 당장 과거 제국주의의 헛된 망상부터 버려야 한다. 아울러 72년 전 억울하게 죽어 간 이 소녀들에 대해 지금이라도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군국주의 폐기,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판결 즉각 이행 등을 촉구했다.

1944년 12월7일 도난카이지진으로 당시 숨진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순례씨 유족 김준곤씨가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1944년 12월7일 도난카이지진으로 당시 숨진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순례씨 유족 김준곤씨가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김주형 기자

도난카이 지진으로 희생된 고 김순례씨 유족인 김준곤씨는 “놀랄 지경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이와 같은 일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 뿐”이라며 “아무리 자기 나라가 전쟁에서 꼭 이겨야겠다고 하더라도 죽어간 사람을 이용해서 정신을 앙양시키는 방향으로 보도했다는 것은 눈물겨운 게 아니라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당시 근로정신대로 함께 강제동원됐던 양금덕(85) 할머니는 지진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일본 사람들이 지진이라고 해도 그것을 모르고 적기가 온 줄 알고 어떻게 할 줄 몰랐다”면서 "(지진 당시) 내 주위에서 (매몰돼) 죽은 동무 3명을 내 손으로 파냈다. 그런데 어떻게 죽은 사람들이 말을 남겼고, 그 부모들은 자식이 어디로 끌려가 일하는 줄도 모르는데 (기사처럼) 말도 안되는 얘기가 있는지 72년만에 처음 듣는다"고 목소리를 높이다 오열했다.

도난카이 지진은 1944년 12월7일 오후 1시36분께 발생해 1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 됐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등 당시 3백여 명이나 되는 10대 초반 소녀들이 강제동원된 나고야 등을 포함하는 지역에 당시 진도 5~6 지진이 관측됐다.

이 지진으로 근로정신대 가운데 광주전남 출신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앞서 기사에 이름을 올린 서복영·오길애(목포소대)씨, 김순례·이정숙(광주소대)씨와 함께 나주소대 소속인 김향남·최정례씨가 지진으로 숨졌다.

양금덕 할머니가 1944년 12월7일 도난카이 지진 당시 상황과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문제를 이야기하다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양금덕 할머니가 1944년 12월7일 도난카이 지진 당시 상황과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문제를 이야기하다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김주형 기자

다음은 1944년 12월23일과 24일자 기사 전문이다.

도난칸이 지진으로 희생된 근로정신대 소녀 ‘왜곡·날조·미화’ 한 ‘매일신보’ 기사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1944년 12월23일과 24일자(오른쪽, ‘투혼, 증산전에 불멸’)에 도난카이(東南海) 지진(12월7일)으로 희생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과 유족들 소식을 전하며 악의적으로 날조한 기사를 실었다.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1944년 12월23일과 24일자(오른쪽, ‘투혼, 증산전에 불멸’)에 도난카이(東南海) 지진(12월7일)으로 희생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과 유족들 소식을 전하며 악의적으로 날조한 기사를 실었다.ⓒ민중의소리

열렬 유언에도 증산
두 반도여자정신대원 최초의 순직

목포부 야마데(山手) 여자청년대 오-야마(大山福英) 구레하라(吳源愛子.15)의 양 대원은 목포부 출신의 ○○명과 같이 지난 ○월 나고야(名古屋) ○○공장의 여자정신대원으로서 선발되어 그간 항공기 증산에 정진하였는데, 지난 ○월○일 순직을 하게 되었다.

두 정신대원들은 순직할 때 최후로 남긴 말은 “우리들이 죽기 때문에 반도 동무들의 결의가 조금이라도 약하여진다면 미안한 일입니다”하여, 전선 장병에도 지지 않는 최후는 일동을 크게 감격케 하였다. 오-야마, 구레하라 두 대원의 유골은 20일 오후 2시 그리운 고향 목포에 무언의 개선을 하였는데 목포부에서는 이 존귀한 순직에 감격하야 구민장(區民葬)을 행하야 두 여성의 영령을 위안하기로 되었다. 목포부 야마테 청년대장 에이무라(岩村武士)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라를 위하야 일하게 됐다고 즐거워하며 간 씩씩한 자태가 눈에 선하다. 오-야마와 구레하라는 다 같이 1년부터 6년까지 우등이었으며, 책임감이 강한 애였다. 모두 최후가 훌륭하였다고 듣고 감격하였다. 두 명이 순직한 최후를 들은 6년생은 모다 감격하야 전원 자원을 탄원하고 있다. 일선 장병에게 못지않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둘이 다 비행기 증산에 몸을 바쳐 만족하였을 것입니다.

▲福英孃 嚴親 豊氏 談(서복영 아버지의 말)
내 딸이 정신대에 뽑혀 그 손으로 만든 비행기가 얄미운 미영을 쳐부수는 걸 생각하니 그대로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애가 순직한 것은 명예로 생각합니다. 아비로서 이 이상 없는 효도를 바쳤다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그 애는 최후에 뒤를 따르는 동료들이 저로 인하야 결의가 굽히지 말라고 말하였다 합니다.

▲愛子孃 嚴親 正彬氏 談(오길애 아버지의 말)
나라를 위하야 일한 것은 일가의 명예입니다. 정신대에는 나도 몰래 지원하여 나중에서야 알고 용서하였습니다. 지금부터 세상을 떠난 그에게 지지 않도록 나도 국가에 봉공하겠습니다.

▲佐野府尹 談(佐野 목포부윤의 말)
장병 출정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출발한 정신대 중에서 두 명이 직장의 꽃으로 산화한 것은 뒤따른 대원들의 결의를 굳게 하였을 것이다. 장의는 구민장으로 진행하고 그 유족들을 충분이 원호하겠다. 목포출신 처녀의 순충(純忠)어린 최후에 감사한다.

(매일신보.1944.12.23.2면)

2008년 도난카이지진으로 희생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기사를 처음으로 소개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간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방식에 의한 노무동원에 관한 조사’ 보고서.
2008년 도난카이지진으로 희생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기사를 처음으로 소개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간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방식에 의한 노무동원에 관한 조사’ 보고서.ⓒ김주형 기자

투혼, 증산전에 불멸
두 처녀의 순사를 총후전장에 살리라
싸우는 여자 정신대 귀감

[광주] 조선에서 처음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소녀들로만 된 여자정신대가 전남에서 조직되어 대원 일동은 지난 6월 12일에 용약 광주역을 출발하였다. 이들은 미쓰비시 항공기 ○○공장에서 비행기 증산에 불철주야로 분투하고 있는 중 지난 7일에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작업장에서 순직한 거룩한 두 소녀가 있다.

그는 광주부 명치정 5정목32번지의 미쓰사와(光澤禮子=舊 金順禮)와 광주부 수기옥정 6번지의 미야모도(宮本貞淑=舊 李貞淑) 두 소녀로 미쓰사와 양은 광주북정(北町) 국민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여자정신대원에 자진하야 참가하였고 동 대원중에서도 모범이었으며 제4분대장으로 책임감이 강한 소녀로 칭송이 자자했든 것이다.

그리고 미야모도 소녀는 광주호남(湖南) 국민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무남독녀로 남부럽지 않게 귀여히 자라났으나 부모의 만류하는 것도 듣지 않고, 남자로 못 태어나 총을 메고 싸움을 못하러가니 그 대신 비행기 생산에 산업전사가 되겠다고 굳은 결의를 가지고 여자정신대원에 참가한 군국의 정렬을 가진 소녀였다.

이들은 순직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비행기 증산에 좀 더 활동 못함을 부끄러워하며, 선반 앞을 떠나지 않았다하며, 이들의 전투적인 그 정신에 전 공장은 큰 감명을 받았고 직장의 꽃으로 사러진 이 두 소녀를 본받겠다는 전 공장에서는 증산의 열화가 북받치고 있다 한다.(사진은 미쓰사와양)

(매일신보. 1944.12.24. 2면)

관련기사

김주형 기자

광주(전남·북 포함) 주재기자입니다. 작은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겠습니다.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