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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단지 자유롭고 싶었다” : 무하마드 알리
1974년 포먼과의 역사적 대결을 위해 자이르에 도착한 알리.
1974년 포먼과의 역사적 대결을 위해 자이르에 도착한 알리.ⓒAP/뉴시스

편집자주/미국의 전설적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3일 숨졌다. 향년 74세. 알리는 놀라운 권투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1967년 베트남전에 반대하여 징병을 거부한 탓으로 챔피언을 박탈당했고, 노예의 후손으로 물려받았던 이름인 카시우스 마르셀루스 클레이 주니어를 스스로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던 인권운동가이기도 했다.

미국의 진보적 시사잡지 더네이션의 스포츠 에디터인 Dave Zirin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은 ‘I Just Wanted to Be Free’:The Radical Reverberations of Muhammad Ali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울림. 그저 외침이 아닌 울림.

무하마드 알리의 사망으로 이제 미국은 다시 그 전설적인 조 프레이저와 조지 포먼과의 명승부들,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와 베트남 전쟁에 대항했던 그의 ‘외침’들을 회고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중요한 운동선수였던 무하마드 알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인물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만들어 낸 울림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야말로 알리에게서 정치적 이빨을 뽑아버리고 그를 그저 무기력한 대중 소비용 아이콘으로 격하시키려는 시도로부터 그를 지켜낼 수 있을 수 있는 최선이 될 것이다.

알리에게서 정치적 이빨을 뽑아내지 말라

1967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베트남전 반대를 표명하고 나섰을 때, 주류언론은 그를 비판했고 그의 보좌관들 역시 “대외”정책에는 관여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킹은 굽히지 않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하마드 알리가 말했습니다. 흑인이든지, 황색인종이든지, 가난한 자이든지 우리 모두는 같은 억압적 체제의 희생자들입니다.”

넬슨 만델라는 자신이 로벤 섬에 수감되었던 시절, (인종차별의) 벽들이 언젠가 허물어지는 날이 올 것이라며 그를 격려했던 알리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한 바 있다.

미국의 육상선수 존 칼로스와 토미 스미스가 멕시코 시 올림픽 스타디움 시상식에서 불끈 쥔 주먹을 하늘로 치켜 올렸을때(1968년 멕시코 시티 올림픽에서 200 m단거리 우승) 그들의 요구 중 하나는 “무하마드 알리의 타이틀을 복원시키라(알리는 베트남전 병역거부로 선수자격과 챔피온 타이틀을 박탈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알리는 “저항하는 흑인 선수의 상징”(the warrior-saint of Black Athlete’s Revolt)이었다.

1965년 알라바마 로운데스 카운티에서 학생비폭력 조정위원회 (Student Non-Violent Coordinating Committee:SNCC) 회원들이 독립정당을 창설했을 때, 이 신설 단체는 처음으로 검은 표범 심볼(블랙팬더당을 상징하는)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 바로 아래에는 챔피언 알리가 했던 말을 슬로건으로 딴 “We Are the Greatest(우리는 가장 위대하다)”라는 문구가 새겨졌다(알리는 64년 당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소니 리스턴을 이겨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후 “I am the greatest”를 외쳤다.)

여성 프로 테니스 선수 빌리 진 킹이 미국 운동계 내부의 남녀평등을 위해 싸울 때 알리는 그녀에게 “빌리 진 킹, 당신이야말로 여왕입니다”라고 독려했다. 빌리진 킹은 알리의 이 한마디가 큰 용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내 동족의 진정한 적은 바로 이 나라 안에 있다”

어떻게 알리가 그 같은 커다란 진보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간단하게 답하자면 ‘알리가 미국 정부에 맞서 싸웠고, 승리했다’ 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스포츠와 폭력을 숭배하고, 흑인을 범죄시하면서도 흑인운동 선수를 우상화하는 미국 문화에서 무하마드 알리의 진정한 업적은 강인함이 무엇인지를 다시 정의하고, 그러한 강인함과 용기가 어떻게 대중적으로 결집될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이었다.

거리에서 회자되는 챔프(알리의 별칭)의 어록들, 그리고 그가 사각의 링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용기란 단지 링에서 그가 소니 리스턴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게 해주는 것 이상임을 보여주었다. 그가 말하는 용기는 그 대가가 무엇이 되든, 권력에 맞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행동과 말로써 간단하지만 위험한 교훈을 가르쳤다. “진짜 남자”라면 평화를 위해서 싸워야 하며, “진짜 여자”라면 목소리를 높이고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후에 언론인 브라이언트 검벨은 “무하마드 알리는 두려워하기를 거부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라고 말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알리의 어록은 “내가 바위도 병원으로 보냈다. 벽돌도 내 손에 끝장났다. 내 앞에서는 의학도 병이 난다( I hospitalized a rock. I beat up a brick. I’m so bad I make medicine sick)” 류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알리의 모습은 그가 베트남전 참전을 거부함으로써 선수자격과 타이틀을 박탈당했을 때다. 당시 알리는 자신의 고향인 루이빌에서 흑인들을 위한 공정한 주택정책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해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내 고향 루이빌에서는 소위 우리 ‘니그로’ 들이 개 취급을 받고 기본적인 인권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왜 그들은 나에게 군복을 입고 1만 마일 떨어진 곳으로 가서 베트남에 사는 갈색 인종들에게 폭탄을 떨어뜨리고 총알을 쏘라고 요구하는가?

나는 백인 노예주들이 전세계 유색인종들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려고 강요하고 있는, 내 고향에서 만 마일 떨어진 곳의 가난한 나라로 가서 사람들을 학살하고 불태우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바로 그 같은 악이 종식되어야 하는 날이다. 사람들은 참전 거부 때문에 내가 이제 수백만 달러를 손해 보게 될 거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말했고 이제 다시 말할 것이다.

내 동족의 진정한 적은 바로 이 나라 안에 있다.

나는 자기 나라의 정의, 자유, 평등을 위해 싸우는 모든 이들을 노예로 종속시키고자 하는 음모에 나 자신을 도구로 이용당하게 함으로써 내 종교, 내 동족, 나 자신을 욕보이지 않을 것이다…

만일 전쟁에 나가는 것이 이천 이백만 내 동족의 자유와 평동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라면 그들은 나를 징집할 필요도 없다. 나는 바로 다음 날로 전쟁터로 나갈 것이다. 자신의 믿음을 위해 싸운다면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나를 감옥에 가두어 넣는다면 뭐 어떤가? 우리는 이미 지난 40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는 단순히 블랙파워의 선언이 아니다. 이는 모든 억압된 민족을 결집하는 전 지구적 저항이자 국제적 연대의 선언이다. 이는 미국 밖의 전쟁을 미국 내 흑인, 갈색인종, 빈곤층에 대한 공격과 연결시킨 선언이며 당대 사회가 부여한 최고의 승자 자리에 올라선 인물, 즉 챔프에게서 나온 선언이었으므로 그 반향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치적 입장 때문에 그를 증오한 이들은 미국 주류언론과 우파들만이 아니었다. 자유주의 언론인들과 주류 시민운동권도 그가 ‘네이션 오브 이슬람(Nation of Islam, 말컴엑스가 활동했던 흑인분리운동단체)’의 일원이며 린든 존슨 대통령의 전쟁에 반대하는 것을 못마땅해해서 등을 돌렸다.

걱정해야 할 사람은 그를 제외한 우리 모두다

그는 인종차별주의를 종식할 것을 요구하는 신진 운동세력과 초창기의 반전 운동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60년 당시에는 반전운동과 인종차별운동은 별개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이들의 우상인 헤비급 챔피언이 이 두 운동을 하나로 묶어서 사람들 앞에 제시한 것이다.

시인 소냐 산체스는 당시 알리가 일으킨 파장과 감동을 가슴 뭉클하게 묘사한다. “지금 그때 감정이 어땠는지 묘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죽어 돌아오는 미국병사들의 다수가 흑인 젊은이들이었던 그 전쟁에 징집을 거부한 유명인사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름답고, 유머 넘치며, 시적인 젊은이가 당당하게 일어나 ‘노’를 외친 것이다. 한 번 상상해보라. 헤비급 챔피언이자, 너무나 매혹적인 인물이 링 밖으로 나와 정치권력에 도전장을 던지고 굳건히 선 모습을. 그의 메시지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그가 전하고자 했던 진정한 메시지- 즉 평화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를 가슴에 새기고자 한다.

알리의 인간적 복잡함에 대해서는 훨씬 자세한 글에서 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또 그래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말컴 엑스와의 결별, 1970년대 이후 그의 비정치화, 그의 투병 말기에 전쟁광들이 그를 무대 소품처럼 이용하려 했던 상황 들에 대해서는 자세한 진실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중요한 유산은 1960년대 당시의 두려움에 굴복하기를 거부했던 모습이다. 훗날 그는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영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틀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한 모든 행동은 양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도자가 되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저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지금 세대까지 전해오는 그의 유산은 그가 한 싸움들이 아니라 그가 남긴 울림,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울림이 챔프의 이름을 우리 세대를 넘어 후대까지 이어지게 할 것이다.

알리가 징집을 거부했던 해인 1967년, 전설적인 농구선수 빌 러셀이 했던 다음 말은 옳았다. “나는 무하마드 알리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이 없다. 걱정해야 할 사람들은 그를 제외한 우리 모두이다.” 바로 지금 우리세대에 그대로 적용되는 지적이다.

Voice of the World / 편집 : 이정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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