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음주 취조에 담배 고문까지…국정원 간첩조작 한 순간이더라”
없음

2013년 10월의 어느날 초저녁.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조사관이 조사실 문을 여는 순간 한쪽 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에서 삶은 돼지고기 냄새가 퍼져나갔다. 조사관이 미소를 지으며 다른 한 손을 흔들자 소주병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방 안에서 수그리고 있던 청년은 고개를 들어 눈을 번뜩이며 킁킁댔다. 경쾌한 소리의 정체도 금세 알아차렸다.

“홍 선생, 그동안 조사 받느라 고생 많았지요? 오늘은 술이나 한잔 하면서 편하게 얘기 나눠봅시다.”

종이컵에 가득 부은 소주를 두어 차례 들이킨 뒤 김치를 올린 삶은 돼지고기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뱃속이 따끈따끈해지면서 포만감에 휩싸였다. 조사관이 ‘홍 선생’이라고 부른 청년의 입고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 얼마만의 평온함이던가.’

“자, 이제 한번 터놓고 말 좀 해봅시다.”
“무엇을요?”
“에이 홍 선생, 여기 일단 담배 한 대 태우시면서 생각해보세요.”
조사관이 담배 한 대를 꺼내 손수 불을 붙여줬다. 입에 문 담배를 쭉 빨아들이니 황홀함이 경지에 치닫기 시작했다. 골초인 홍씨 앞에서 그동안 담배를 피워대며 신문을 하는 조사관들의 행위는 그야말로 고문과도 다름 없었다.

“임무 받은 것 없었어요?”
오랜만에 피운 담배 탓에 정신이 몽롱해졌는지 조사관의 목소리가 부드럽다 못해 귀를 간지럽히기까지 했다.

“자, 다시 한 번 물어볼게요. 임무 받은 것 없었나요?”
“종북세력 동향을 탐지하라고….”
“종북세력 누구요?”
“문익환 목사, 문규현 신부, 임수경, 임종석 같은 통일애국 인사들인데….”
“문익환은 죽은 지 오래 됐는데, 음…. 그 사람은 뺍시다.”
조사관이 펜과 종이를 쥐어줬다. ‘홍 선생’은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조서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조서 내용은 모조리 거짓말이었다.

홍강철(43)씨를 간첩으로 둔갑시킨 이른바 ‘북한 보위부 직파간첩 사건’이 만들어지기까지 국정원 합신센터에서 벌어진 일들 중 한 장면이다.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지?’
다음날 정신을 차린 홍씨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정신이 들고 보니 내가 엄청난 거짓말을 했더라고요.”
기자와 만난 홍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익환, 문규현, 임수경, 임종석 같은 사람들은 북에서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북에서는 통일애국 인사라고 부르지요. 그래서 국정원이 ‘종북세력’이 누구냐고 물으니 나도 모르게 입에서 그 사람들 이름이 나온 거죠. 술과 고기, 담배의 유혹에 넘어가버린 거지요.”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에 곧바로 진술을 번복한 홍씨는 ‘술 맛 한 번 보고 태도를 바꾼 쓰레기’ 취급을 당하며 또 다른 조사실로 끌려갔다.

반복되는 회유와 겁박에 홍씨는 수차례 진술을 번복했다. 그럴 때마다 조사관들은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정착금도 못 받는다”, “여기선 대졸자도 취업을 못 하는데 우리가 너 같은 놈을 취업시켜주겠냐”, “북에 있는 가족들까지 피해를 봐야겠느냐” 등 겁박을 일삼았다. 홍씨의 체력도 점점 한계에 치닫고 있었다.

‘보위부 직파 간첩’이 만들어지기까지

아무리 ‘간첩조작’이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100% 허황된 소설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다. ‘조작’에도 나름의 개연성이 있어야 법정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그래서 과정은 꽤 까다롭다. 수차례 ‘미끼’를 던져 몇 가지 입증 가능한 ‘팩트’를 만들어내야 하고, 이를 토대로 일정 수준의 완성도 높은 스토리를 짜는 일련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홍씨는 그 미끼 중 하나였다.

지리산에서 변호인단 중 한명인 박준영 변호사가 찍어준 사진.
지리산에서 변호인단 중 한명인 박준영 변호사가 찍어준 사진.ⓒ홍강철 제공

홍씨는 평양 강건종합군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군인으로서 ‘명예로운’ 출세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아무쪼록 적당히 부를 축적해서 배를 굶지 않으면서 살고자 했다. 국경 경비대 초소장을 하면 밀수꾼들이나 탈북 브로커들을 통해 꽤 많은 검은 돈을 만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경비대 초소장을 자원했다. 그때가 1998년이었다. 국경 경비대 소초는 독립 부대인 만큼 상부의 간섭에서 꽤 자유로워 초소장의 권한이 막강했다. 이른바 ‘꿀보직’인 만큼 경쟁률도 치열했다.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인사 배정을 받기 전에 보름 동안 휴가를 받았어요. 곧바로 집에 가서 어머니한테 그때 북한 돈으로 5천원을 받아서 바로 평양으로 갔지요. 어머니가 의약품관리소에서 약초 무역을 담당하면서 돈을 꽤 모아놓았었지요. 인사권을 가진 간부를 찾아가서 5천원을 줬어요. 쌀 2킬로짜리 한 포대에 40원 할 때였으니 엄청난 돈이었죠. 그렇게 돈도 먹이고 중앙기관 인맥이 있는 큰아버지 도움도 받아 평안북도 벽동군 마전초소장으로 배치받을 수 있었지요.”

그때부터 홍씨는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국경을 침범한 어선을 압수해서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어선을 돌려주는 대가로 중국 국경 지역 검사창으로부터 돈을 받거나 밀수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밀수상인들에게 뒷돈을 받아 챙겼다. 탈북자들이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돈을 전해주고 그 수수료로 5~10%씩 받기도 했다. 벌이가 좋을 땐 남쪽 돈으로 하루에 5백만원 정도를 번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인민군 보위사령부로(정치범 색출 및 해외공작 업무를 맡는 국가안전보위부와는 다른 조직)부터 여러 번 경고를 받으면서 요주의 인물로 찍히기도 했다.

그렇게 검은 돈을 만지며 지낸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러던 중 2013년 1월께 탈북 지원 사업을 하던 동거녀가, 그해 4월에는 비슷한 일을 하던 지인이 보위사에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홍씨의 이름이 나오게 되면서 체포영장까지 발부돼 홍씨는 졸지에 수배자 신세가 됐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홍씨는 탈북을 결심했고, 그 실행 과정에서 남쪽의 탈북자단체 중 하나인 NK지식인연대 소속 Y씨를 만나게 됐다.

“동거녀를 구해내려고 그동안 벌었던 돈을 보위사에 죄다 쏟아 붓는 바람에 남은 돈이 없었어요. 탈북 자금이 없어서 다시 탈북 브로커 일을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Y씨를 알게 됐죠. 그가 북에 있는 모녀 두명을 넘겨주면 600만원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Y씨는 부산에 있는 모녀의 가족한테 일을 청탁받았었지요. 그런데 그가 NK지식인연대에서 챙겨온 출장비를 중국에서 다 쓰고 우리한테 넘겨줄 돈이 없었던 거지요. 그래서 부산에 있는 모녀 가족인 A씨에게 돈을 달라고 했더니 ‘우리 딸이 무사히 오면 돈을 주겠다’고 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거지요.”

그러던 사이 홍씨는 알고 지내던 한 여성의 도움을 받아 함께 탈북에 성공했다. 반면 Y씨는 북에 있는 모녀를 데리고 오기 위해 들고 간 출장비 용처에 대한 추궁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곤란해진 Y씨는 모녀 탈북을 청탁한 부산의 A씨의 입을 막고자 ‘너를 죽이고 북으로 돌아가 남한 사회 부조리를 폭로하면 나는 용서받을 수 있다. 모녀가 살고 있는 집 주소를 찾아서 아이들도 죽여버리겠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A씨는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남측 수사기관의 의심까지 사게 된 Y씨는 결국 홍씨를 미끼로 썼다.

“Y씨가 국정원에 말하기를, 보위부 공작원인 내가 자기를 북으로 유인 납치하려고 했다는 거예요. 나는 북에서도 떵떵거리면서 잘 살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남쪽으로 올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였어요. 그때가 제가 태국을 거쳐 입국해 합신센터에 넘겨질 즈음이었지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국정원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때문에 코너에 몰려 있는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걸 덮자니깐 홍강철 사건을 밀어붙이지 않았을까요?”

그때가 2013년 8월이었다. 그 당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유우성 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의 증거조작 혐의가 드러났다. 국정원으로서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필요했다.

남쪽에 대한 불신 쌓여만 가…“민변 변호사들도 국정원 사람인줄 알았다”

3개월 가량 조사실에서 취조를 받으며 정신적·체력적으로 쇠약해진 홍씨는 “가족들을 데려다주고 집도 주고, 변변한 직업도 마련해주겠다”는 조사관의 말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국정원이 원하는 대로 조서를 작성하고, 거의 완벽하게 입을 맞췄다.

“차라리 허위자백을 하고 사회로 나가서 직업을 갖고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감옥에 갈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내가 언론에 나오면 북에 있는 가족들이 난처해지니 데려올 수가 없게 된다며 언론에 공개하지도 않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이듬해 검찰 조사까지 쭉 가게 된 거예요.”

그러나 국정원 조사를 마치고 검찰 조사를 받기까지 홍씨는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더 커져만 갔다.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기 전 날 국정원에서 파티를 했어요. 술과 안주는 물론 담배도 맘껏 피웠죠. 조사관이 ‘내일 이사를 가야 한다’며 가방에 와이셔츠랑 전기 면도기를 넣어주더군요. 담배도 7갑 정도 받았어요. 당연히 ‘하나원’이라는 곳에 갔다가 사회로 나갈 줄 알았어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구치소에 가게 됐어요. 완전히 국정원 직원들한테 농락을 당한거죠. 물론 들고 간 가방은 빼앗겼지요.”

그렇게 한달여간 지옥 같은 생활을 한 어느 날 김씨는 경악할 만한 사실을 확인하고야 말았다. 신문에 ‘북한 보위부 간첩사건’이라는 제목이 달린 검찰발 기사를 본 것이다. 언론에 공개하지 않겠다던 국정원 직원의 말이 떠오르면서 배신감이 또다시 가슴을 쳤다.

“구치소 안에서 깽판을 쳤어요. 국정원 새끼들 데려오라고. 울면서 난리를 치니 공안 담당 교도관이 와서 안정을 시키더라고요. 다음날 검사 호출을 받고 검사실로 갔어요. 그랬더니 검사 말이 ‘우리가 가족들을 데려다준다는 게 아니라 가족들이 자체적으로 탈북을 해서 제3국 공관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책임지고 돌봐주겠다는 것이었다’는 겁니다. ‘아 결국 국정원이 또 나를 속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쌓인 불신 때문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도움을 못 받을 뻔도 했다.

그해 3월 장경욱 변호사(법무법인 상록)는 검찰발 보도를 확인하고는 ‘조작사건’임을 확신했다. 수소문 끝에 홍씨의 국선변호인이 누군지를 확인하고, 그 국선변호인을 통해 홍씨를 접견하기에 이르렀다. 장 변호사는 후배인 김진형 변호사에게 부탁해 홍씨를 먼저 접견해보라고 했다.

“구치소에서 국선변호인 접견을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어요. 국선변호인 이름이 임모 변호사였는데 접견신청을 한 변호인은 김진형 변호사였던 거예요. 그래서 국정원이 내 동향을 알아보라고 보낸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분이 ‘민변’이라고 들어봤냐고 해서 ‘들어봤다’고 답했어요. 어떻게 아느냐길래 국정원 조사관들이 ‘민변이라는 단체에 소속된 정신나간 변호사들이 찾아올 수도 있는데 절대 만나지 말라고 했다. 그 사람들 만나서 진술 번복했다가 징역 3년 받을 거 5년 받은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고 들은 그대로 말했지요. 제 말을 들은 김 변호사가 웃더니 ‘우린 돈도 필요없으니깐 진실만 말해주면 된다’고 하더군요. 의심을 하면서도 서러움에 복받쳐 울면서 국정원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했었지요.”

며칠 후 검사 호출을 받은 홍씨가 검사실을 찾았는데, 검사실에 김 변호사가 앉아있었다. 순간 홍씨는 ‘내가 국정원한테 속아서 또 말을 잘못 했구나’ 싶었다고 한다.

“김 변호사가 국정원 사람이라고 확신을 하는 순간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김 변호사가 검사한테 언성을 높이면서 항의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국정원 직원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했지요. 그러고 나서 장경욱 변호사가 와서 검사한테 삿대질을 하면서 ‘또 조작질 하느라 바쁘시죠’라며 호통을 치더군요. 그래서 ‘저 사람들이랑은 마지막까지 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결국 북한 보위부에서 직파돼 국내외에서 간첩 활동을 벌였다는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됐던 홍씨는 장 변호사를 포함한 민변 변호인단의 도움을 받아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장경욱 변호사가 홍강철씨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이 홍씨를 가장 처음 접견한 김진형 변호사.
장경욱 변호사가 홍강철씨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이 홍씨를 가장 처음 접견한 김진형 변호사.ⓒ양지웅 기자

1심은 홍씨가 국정원 합신센터에서 작성한 자필 진술서와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등 검찰 측이 제출한 핵심 증거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만을 무죄 판단의 근거로 들었고, 2심은 여기서 나아가 홍씨 혐의의 신빙성 자체를 부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1심 판결은 ‘증거가 인정되지 않았을 뿐 홍씨가 간첩일 가능성은 있다’는 여지를 남겨뒀으나, 홍씨의 혐의 및 증거의 신빙성 자체를 부정한 2심 판결에 의해 ‘국정원의 조작 사건’이라는 변호인단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 셈이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으면 홍씨는 남쪽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남쪽에서는 정직하게, 열심히 살고 싶어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고 나면 운전 면허도 따고, 취업 준비해서 번듯한 직장도 얻어야지요. 지금 중국에 계시는 어머니까지 들어오시게 되면 가정도 꾸려서 떳떳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싶습니다.”

강경훈 기자

편집국 법조팀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