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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민주의 화폐개혁 주장, 충분히 긍정적인 단 하나의 이유

1962년 봄 어느 날, 재무장관 천병규를 비롯한 5명의 화폐개혁 준비 팀이 비밀리에 구성됐다. 이들은 화폐개혁 업무를 맡기 직전 “기밀을 누설할 경우 총살형도 감수한다”는 무시무시한 선서를 해야 했다. 영국에서 새로 찍은 ‘원화’는 화폐개혁이 발표되기 44일 전 비밀리에 부산항에 도착했다. 새 돈이 든 상자는 ‘폭발물’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은밀히 보관됐다.

그리고 그 해 6월 9일 밤 10시, 이른바 긴급통화조치가 발동된다. 화폐 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바꾸고, 10환을 1원으로 교환하는 화폐개혁이 실시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이런 정책을 왜 이렇게 군사 작전 펼치듯이 했는지 잘 모르겠다. 출신이 군인이어서 국가를 자기가 지휘했던 사단 정도로 생각해 그랬던 건가?

아무튼 이때 진행됐던 화폐개혁은 군사정부가 저지른 수많은 경제적 만행 중 최악의 하나로 꼽힌다. 물가는 폭등했고, 사회 혼란은 극도로 가중됐다. 심지어 통계를 보면 박정희는 화폐개혁으로 지하자금도 거의 잡아내지 못했다.

사실 박정희가 화폐개혁을 한 이유는 하나였다. 박정희는 당시 지하자금의 핵심 축으로 꼽혔던 화교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군사정부를 운영할 자금을 마련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또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런 흑역사가 있기에 화폐개혁이라는 화두를 세상에 던지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그런데 제1야당인 더민주에서 불현듯 이 화폐개혁이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21일 더불어민주당 경제민주화 태스크포스 팀장인 최운열 의원이 한 방송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화폐개혁을 언급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자금 방출 작업을 하는 모습.
한국은행이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자금 방출 작업을 하는 모습.ⓒ양지웅 기자

여기에 이재명 성남시장도 가세했다. 이 시장은 페이스북에 “화폐개혁 적극 찬성, 수표에 인터넷 전자거래 얼마든지 가능한데, 현금 10만 원권 발행하려던 자들은 무슨 의도였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5만 원권 현금은 뇌물수수 등 범죄나, 불법재산 빼돌리기 은닉용 외에는 다른 용도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화폐개혁해서 지하에 숨겨진 현금 다 들춰내 경제정의 한번 확립하면 좋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화폐개혁이 긍정적인 정책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제적 견해를 접해야 한다. 선입견도 버려야 한다. 예를 들어 충분히 진보적이고 충분히 훌륭한 경제학자인 홍종학 전 의원은 화폐개혁에 반대했다. 반대로 “서비스발전기본법에 의료 분야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세상을 황당하게 만들었던 최운열 의원은 화폐개혁에 찬성했다. 이 때문에 ‘화폐개혁은 나쁜 것일 거야’라는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도 버릴 필요가 있다.

찬성론도 일리가 있고, 반대론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인 측면이 월등이 크다. 이유는 단 하나다. 화폐개혁으로 300조 원에 이른다는 지하경제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검은돈을 세상에 꺼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화폐개혁의 장단점

화폐개혁에는 당연히 다양한 장단점이 존재한다. 대표적 장점은 거래의 편의성이다. 또 국제적으로 금융 행위를 할 때 화폐의 품격(?)이 높아진다. 화폐 가치가 비슷하면 외국인들이 그 화폐의 가치를 평가하기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최운열 의원의 주장처럼 1경 원에 붙는 동그라미는 무려 15개다. 동그라미 세느라 헉헉거리는 비효율도 제거할 수 있다.

우려되는 것은 물가다. 실제 박정희의 화폐개혁 직후 물가가 급등한 것이 화폐개혁에 반대하는 중요 논거다. 3700원은 그대로 쓸 수 있는데, 3.7원이면 소수점 이하를 올려서 4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만 원은 비싸다고 느끼는데, 10원은 영 비싼지 못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물가가 오를 수 있다는 게 중요한 우려 중 하나다.

하지만 조금 섬세하게 살펴보면, 화폐개혁으로 물가가 뛸 것이라는 우려는 다소 과한 구석이 있다. 이미 지금도 커피숍 같은 곳에서는 3500원을 3.5T 식으로 표현한다. 소수점을 쓰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다는 뜻이다. 게다가 신용카드 사용도 많이 일반화돼 3.5원을 사용할 때의 불편함도 많이 상쇄됐다. 실제로 이탈리아가 유로화를 도입했을 때를 살펴보면 생활물가가 약간 오르기는 했지만 그마저 곧 안정된 전례가 있다.

지하경제, 한국 경제의 큰 병폐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화폐개혁을 하면, 이 모든 장단점을 아우를 거대한 경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하경제를 파헤칠 수 있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세금을 피해 출처를 숨긴 돈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2013년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2010년 기준)는 약 300조 원이다. 이 크기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려 24.7%에 이른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8.3%에 비해도 6.4%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선진국과 비교를 해보면 문제는 더 분명해진다. 미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9.1%에 불과하다. 일본은 11.0%, 영국은 12.0%, 프랑스는 14.6%, 독일은 15.1%다. 한국보다 지하경제 규모가 큰 OECD 국가는 멕시코, 그리스, 이탈리아 3개국뿐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지하경제 활성…, 아니 참, 지하경제 양성화를 모토로 내걸고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도무지 검은 돈을 찾아 과세를 하는데 소질이 없다. 최운열 의원은 방송에서 “몇 년 전에 서울 국세청에서 수사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 5만 원권이 80억 정도가 나왔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고 소개를 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이 일조차 2012년, 즉 이명박 정부 때의 일이었다.

5만원권
5만원권ⓒ뉴시스

박정희 정권이 화폐개혁으로 지하경제를 잡지 못한 것은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을 군사작전 벌이듯 해 버리니 사전에 준비가 너무 부족했던 것이다. 당시 화교들은 지하자금을 현금이 아니라 대부분 금으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300조 원에 이르는 지하경제 중 현금의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는 충분히 신뢰할만한 통계가 있다.

현재 시중에 풀린 5만 원권은 약 60조 원이다. 그런데 이 돈의 환수율은 40% 수준이다. 60조 원이 풀렸는데 환수율이 40%라면, 36조 원은 어디론가 증발을 했다고 봐야 한다. 이 돈이 다 어디에 있겠나? 최운열 의원의 말대로 강남 어느 성형외과 원장님 비슷한 분들의 자택 사과상자에 묵혀 있다는 추정이 가장 합리적이다. 모두 과세를 피해 숨은 돈들이다. 이런 통계가 있기에, 지금의 화폐개혁이 박정희 시절과 달리 지하경제를 잡아내는데 충분히 유용할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몇 가지 우려와 선입견을 제거하면 화폐개혁은 한국 사회에 분명히 큰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화폐가 바뀌면 사과상자에 묻혔던 돈들은 언젠가 공개된 금융시장으로 나와야 한다. 국세청은 그때 그 돈의 출처를 물으면 된다. 화폐개혁만큼 지하경제를 잡을 분명한 수단을 찾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한국의 추정 지하경제 규모는 무려 300조 원이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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