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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수리 하청노동자 ‘죽음’으로 몰아넣은 ‘살인적 수당’
24일 서울 노원 을지병원장례식장에는 에어컨 수리 노동자인 A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24일 서울 노원 을지병원장례식장에는 에어컨 수리 노동자인 A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민중의소리

하루 평균 14시간씩 에어컨을 수리하던 엔지니어(AS기사)가 실외기를 지탱하던 외부 난간이 부서지면서 목숨을 잃었다. 숨진 노동자는 A씨(45)는 삼성전자서비스의 하청업체 소속으로 건수 당 지급되는 보수를 채우기 위해 주말에도 출근했다. A씨와 함께 일한 동료들은 터무니없이 낮은 수당과 20분 만에 제품을 수리해야 하는 노동환경이 이번 참사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4일 서울 노원 을지병원장례식장에는 에어컨 수리 노동자인 A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그는 바로 전날 월계동 인근 빌라의 3층 에어컨을 수리하던 도중 난간이 무너지면서 장기파열로 숨을 거뒀다. 현재 빈소에 머물고 있는 A씨의 초등학생 아들과 딸은 영문도 모른 채 오열하는 어머니만 바라보고 있다.

‘쿵’ 소리에 나가보니 에어컨 실외기와 A씨가 “아...아프다” 신음

지난 22일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의 한 빌라에 사는 이모(68)씨는 에어컨에 이상을 느꼈다. 높아진 온도와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로 눅눅해져 에어컨을 틀었지만 하나도 시원하지 않았다. 이씨는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몇시간 지나지 않아 서비스 기사 A씨가 도착했다.

A씨는 에어컨 상태를 살피더니 “냉매 가스가 다 떨어졌네요, 실외기에도 이상이 있는 것 같아요”라며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다. 가스를 채워준 그는 “실외기 점검은 내일 해주겠다”며 예의바르게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23일 오후 다시 빌라를 찾은 A씨는 외벽에 달려 있는 실외기를 고치려고 실외기 받침대에 발을 올렸다. 그 순간 철골 받침대가 부러지면서 A씨는 7m 아래로 추락했다.

사고 당시 현장을 목격한 박모(여·70)는 “쿵! 하는 소리에 밖에 나가보니 실외기 받침대와 에어컨 실외기 널브러져 있었고 A씨가 쓰러져 있었다”라며 “그 가운데 A씨가 ‘아프다...’라는 말을 반복했다”라고 전했다.

사고를 당한 A씨는 주민들의 신고로 출동한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이내 숨을 거뒀다.

삼성서비스 노동자가 사고를 당한 빌라의 모습.
삼성서비스 노동자가 사고를 당한 빌라의 모습.ⓒ민중의소리

쉴 사이 없이 일해야 하는 하청노동자의 숙명...
서비스 노동자의 죽음 부른 건 구조적 문제

15년간 함께 일해 왔다는 박제호(47)씨는 사망한 고인에 대해 “엔지니어로서는 최고다”라며 “강직한 성격과 출중한 실력으로 부지런히 일했다”라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A씨는 사고가 난 당일에도 동료들과 커피 한잔할 여유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박씨에 따르면 A씨가 하루에 처리하는 AS 건수는 8~10건으로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씩 일 해왔다. 보통 직원이 4~5건 씩 처리하는 것에 비하면 두 배에 가까웠다. 그러나 박씨는 A씨에 대해 “무리하게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A씨의 동료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 하청업체 소속 직원들의 기본급은 130만 원이다. 이마저도 한 달 기준 60건의 수리를 끝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며 이후 한 건당 7천원~2만 원 사이의 수당을 받는다.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는 생활하기 힘든 액수다.

위험한 상황에서 안전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은 모두 알고 있지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서두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 결국 A씨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것은 하청 구조에서 발생하는 ‘살인적 수당’ 체계의 임금 구조 때문인 것이다.

박씨는 “투명하게 지급되지 않는 위험수당과 낮은 건당 수당이 무리한 업무를 초래했다”라며 토로했다. 박씨에 따르면 숨진 A씨와 같이 야외로 노출된 에어컨을 수리하게 되면 5천원의 위험 수당이 지급된다. 그러나 박씨는 “기본급에 위험수당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전혀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비판했다.

A씨의 동료인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형권 성북분회장은 “과거 위험수당이 포함된 60건의 수리를 한 적이 있는데 막상 월급을 받으니 위험수당 반영 없이 130만 원의 급여만 받았다”라며 “위험수당이 전혀 지급되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양 분회장은 노조원들을 경계하는 사측의 일감몰아주기도 비판했다. 그는 “노조탄압을 목적으로 함께 해야 할 일들을 비노조원에게만 부담시킨다”라며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가 원하는 물량과 노조원에게 주지 않은 일감, 성수기(여름철) 때 몰려드는 일감 등 A씨가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하청 구조로 시작되는 낮은 수당에 대해서는 “엔지니어들(AS)이 한 번 수리를 나가면 원청은 15만 원 이상의 수익이 생긴다”라며 “원청에서 수수료를 취하고, 하청업체 사장이 이득을 챙기면 노동자들에게는 많아야 건당 2만5천원 뿐”이라고 말했다.


지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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