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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버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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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성소수자들에 대해 ‘특이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 더 맞을 듯싶다. 동성에게 끌리는 ‘게이’나 ‘레즈비언’,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마음이 끌리는 ‘바이섹슈얼(양성애자)’,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다른 ‘트랜스젠더’까지 이들은 나의 삶과 동떨어져 있으며, 그들의 삶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취재를 위해 퀴어문화축제 현장을 찾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곳에서 지금껏 살아온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 했던 수많은 성소수자들을 만났다. 물론 처음에는 마음 한편에 자리한 불편함을 느꼈다. 이질적이었고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본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 그들에게서 '다름'을 인정해달라는 간절한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내 자신이 나와 다른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하고는 다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내가 정작 성소수자들에 대해서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 했던 것이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고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문득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선입견에 둘러싸여 배척당하기 일쑤인 이들이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고 또 살아가는지 말이다.

스스로를 게이라고 소개한 재윤(34)씨를 만난 건 지난달 28일 오후 종로에 위치한 한 카페였다. 약속시간보다 10~20분 정도 늦게 도착한 그를 반갑게 맞이했지만, 정작 성소수자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기자는 혹여나 실수라도 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재윤씨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재윤씨ⓒ재윤

“제 첫사랑이요? 16년 전...”

어색한 분위기 속에 시작된 대화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는 재윤씨 덕분에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이때다 싶어 그동안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감이 없던 탓에 “언제 어떻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게 됐냐”는 고급(?)스러운 질문 대신 “첫사랑은 언제였냐”고 물었다. 당황할 만도 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10여 년 전 다시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때가 아마 열여덟 살 때쯤이었을 거예요. 그러니 16년 전인가요? 그때쯤 저에게도 첫사랑이 찾아왔죠. 다만 그 대상이 조금 달랐어요. 평소 친한 동성친구였는데 어느 순간 제가 그 친구를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느꼈죠. 물론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 했어요”

누구나 그렇듯 첫사랑의 추억은 그에게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때를 떠올리는 그의 표정에서 옅은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마냥 행복한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인지 씁쓸한 표정도 함께 묻어났다.

“정말 막막했어요. 고민도 많이 했죠. 처음엔 친구로서 좋아하는 건데 내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 동성애에 대한 정보 자체를 접하기가 당시엔 너무 어려웠으니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죠”

16년 전이라면 어렵사리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등의 PC통신을 이용할 때였기에 인터넷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당시 그가 느꼈을 막막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제가 끝까지 용기를 내 찾아 봤고, 저의 이런 감정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그리고 (첫사랑인)그 친구를 그냥 좋아하면 된다는 사실도요”

학창시절부터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기어이 하고야 마는 성격이었던 그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주변에 알리는 것도 빠른 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21살이 되던 해 그는 친한 주변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물론 모든 친구들이 쉽게 받아들여 준 것은 아니었지만 몇몇 친구들은 그에게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다”며 더욱 관계가 돈독해지기도 했다.

“부모님에게 고백한 건 제가 29살 때였죠. 그 나이 때쯤의 남자들에게는 결혼에 대한 압박이 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그래서 부모님도 아셔야 되겠다 싶었어요. 아직까지 아버지한테는 말씀 못 드렸는데 지금은 알고 계신 것 같은 눈치에요”

누구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을 수 있었을 가족.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커밍아웃을 누구보다 따뜻하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왜 이제야 얘기 했냐”며 역정을 내기도 하셨다. “엄마가 그렇게 꽉 막힌 사람 같았느냐”며 말이다.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재윤씨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재윤씨ⓒ강조새 제공

“결혼이요?... 일단 연애 먼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청춘들은 대부분 결혼을 꿈꾸고 또 계획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고픈 건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에. 성소수자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요? 일단 연애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연애도 제대로 못해서(웃음)... 그리고 제 자신이 결혼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대한민국은 사실상 법적으로 동성간의 결혼이 불가능하다. 최근 영화감독 김조광수씨와 그의 배우자 레인보우팩토리 대표 김승환씨의 동성결혼 신청을 법원이 각하 결정한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많은 성소수자들이 결혼을 원하죠. 하지만 우리나라가 또 사회가 동성간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죠. 물론 이런 사실은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아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제도 안에 묶여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죠. 또 형식적으로 법적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실제로 동성간의 결혼이 가능해진다 해도 사회적 분위기가 그에 대한 반감이 클테니까 동성 결혼을 하는 사람이 엄청 많거나 하진 않을 것 같기도 해요.”

그는 진정으로 성소수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만들어진 법적인 제도가 성소수자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고 있다. 아니 확신이다. 동성간의 결혼이 허용된다고 실제로 용기를 낼 수 있는 성소수자는 많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간단한 예로 한 사람이 취업을 하기위해서는 많은 서류가 필요하죠. 각종 증명서는 기본이고요. 이 과정에서 동성간의 결혼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면 어떨까요? 결국 성소수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법적인 제도는 또 다른 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 벽을 부수기 위한 과정에서 법제화가 필요하지만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도 그래서 그만큼 필요한 것 같아요."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재윤씨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재윤씨ⓒ재윤

“성소수자에게 가진 편견을 버려주세요”

대학을 졸업한 재윤씨는 처음부터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회원은 아니었다. 원래 일반 사무직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스스로를 잘 감추기보다 당당하게 드러내는 그의 성격 탓에 회사생활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제가 남자이다 보니 주변에서 연애부터 결혼이야기까지 묻는 게 많았죠. 그러다 ‘가까운 회사 동료들에게는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행에 옮겼죠. 물론 어렵지 않게 이해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었죠. 그중에는 저에게 ‘연애는 남자랑 하고 결혼은 여자랑 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라’라는 사람도 있었죠. 그것도 아니면 절 바꾸려 들었어요”

평소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보수적인 일반회사보다 좀 더 진보적인 성격의 직장을 원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노동조합 전업활동가였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평범한 회사에서 생활하던 제가 성소수자 단체인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에 가입한 게 2011년쯤이었죠. 그러면서 희망연대노조 같은 노동조합과 진보적인 단체들에 자리가 날 때 종종 지원을 했어요. 최종 면접까지 간 경우도 있지만 결국 뽑히지는 못했죠”

그는 전업활동가는 아니지만 지금도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는 성소수자들로만 이뤄진 단체가 아니다. 회원제로 운영돼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이성애자들도 가입된 단체다. 그는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다양한 성소수자들과의 교류할 수 있었고, 또 진정 자신을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이성애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저희는 세월호 투쟁부터 쌍용차, 유성 등등 많은 현장을 찾아 다니죠. 그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고 함께 싸울 수 있는 것 모두 편견 없이 우리를 바라봐 주고 이해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모든 성소수자들이 그렇듯 그 역시 ‘다름’을 인정받길 원한다.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과 ‘배’를 좋아하는 사람이 서로에게 선입견을 갖거나 배척하지 않듯이 말이다.

윤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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