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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화하는 중국의 무역 보복, 한중FTA로는 막지 못한다
여야 대표및 원내대표단이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중FTA비준 관련 여야 대표 회담에 참석한 모습.
여야 대표및 원내대표단이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중FTA비준 관련 여야 대표 회담에 참석한 모습.ⓒ정의철 기자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 “(중국이 상징적으로 보복을 한다면) 설혹 기업 몇 곳이 망하더라도 우리는 국가 안보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매를 맞고 가는 게 오히려 낫다”고 적었을 때부터 뭔가 불안했다. 이 신문, 적어도 이런 불길한 예언 분야에서는 적중률이 꽤 높은 곳 아닌가?

홍콩연합신문망 등 홍콩의 여러 매체들이 1일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은 ‘국제적인 요인’을 이유로 향후 일정 기간 한국 연예인의 중국 내 활동을 규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관련 조치는 8월부터 유효하다고 한다.

이미 심의가 통과된 프로그램은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겠지만 앞으로 제작되는 프로그램에서 한국 연예인들은 분명히 규제를 받게 될 전망이다. 그리고 이 같은 소문은 중국 업계에 이미 충분히 확산된 상태라는 게 홍콩 언론들의 설명이다. 본격적인 무역 보복의 서막이 오른 셈이다.

중국의 무역 보복을 괴담으로 치부하는 일부 언론들과 보수적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줄기차게 “무역보복을 하면 중국도 손해다. 또 한중FTA까지 체결한 마당에 무역 보복은 불가능하다” 따위의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중국의 무역 보복 움직임이 구체화되자 이 사람들이 이제는 “기업 몇 곳 망해도 괜찮다”며 꼬리를 내린다.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에게 묻고 싶다. 그 망하는 기업 몇 곳에 <조선일보>가 포함돼도 “기업 몇 곳 망해도 괜찮다”는 헛소리를 달고 다닐 것인가? 사람 심보가 아무리 고약해도 그렇지,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고 다녀서는 안 되는 법이다.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는 무역 보복

한중FTA가 과연 중국의 무역 보복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중국 연예계에서 촉발된 한국 연예인 출연 제한 움직임은 한중FTA가 무역 보복을 막는 데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중요한 사례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연예계 무역 보복’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라는 기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광전총국은 중국 문화계를 총괄하는 최종 결정권자다. 2013년 3월 기존에 신문, 출판, 온라인게임을 관장했던 신문출판총서와 TV, 라디오, 영화산업을 관리해 온 국가광전총국이 통합해 출범한 기구가 바로 이것이다. 즉 이 기구의 한 마디는 중국 문화산업의 법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 기구가 일정 기간 동안 한국 연예인의 중국 내 활동을 규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규제 이유가 ‘국제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에 열이 제대로 받았다는 이야기다. 황교안 총리와 유일호 부총리, 그 동안 “중국이 경제와 외교를 분리했기 때문에 대놓고 보복은 안 할 것이다”라고 장담해 왔다. 이제 자신들의 장담이 얼마나 황당한 헛소리였는지 이해가 되시는가?

ISD는 강대국에게만 강력한 조항

문제는 중국 정부가 저런 일을 해도 올해부터 발효된 한중FTA는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현실이다. 한미FTA 때에도 널리 알려졌지만 한중FTA에도 ‘투자자-국가 소송제’, 즉 ISD( Investor-State Dispute) 조항이 들어가 있다.

ISD란 말 그대로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전까지 무역 분쟁이 벌어지면 주로 정부들끼리 합의를 했다. 하지만 ISD 조항이 FTA에 들어오면서 투자자가 정부와 대등한 입장으로 소송을 할 수 있게 됐다. 돈만 밝히는 사적 영역이 정부라는 공적 영역과 맞짱을 뜨게 된 것이다.

한미FTA 협상 당시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 및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원들이 서울광장에서 한미FTA 전면재협상 및 ISD폐기를 요구하며 108배를 하고 있다.
한미FTA 협상 당시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 및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원들이 서울광장에서 한미FTA 전면재협상 및 ISD폐기를 요구하며 108배를 하고 있다.ⓒ이승빈 기자

혹자는 “정작 한미FTA를 했는데도 ISD로 소송 거는 미국 기업들이 거의 없다. 이것 역시 진보진영이 위기를 과장했던 것이다”라는 주장을 한다. 실제 한미FTA 이후 진행된 ISD는 세 건 밖에 없었다. 이 중 석유 재벌 만수르가 주도했던 소송 하나는 이미 철회된 상태다.

하지만 ISD를 이용한 소송 숫자가 적은 것은 ISD가 무력한 조항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알아서 공적 영역을 줄줄이 개방했기 때문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한국 정부처럼 해외 투기자본의 이해관계를 잘 배려해주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나? LG CNS가 스마트팜을 추진하는데 여기에 영국 자본이 대거 개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농업도 투기자본한테 쉽사리 내주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투기자본이 이 예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이유가 없다.

ISD는 분명히 강력한 조항이다. 특히 미국 같은 강대국 기업들에게 ISD는 약소국 정부를 압박하는 매우 유력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도 이 조항을 이용해 중국 정부의 부당한 무역 보복에 대항할 수 있을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ISD가 중국 무역 보복을 막지 못하는 현실적 이유

지금 중국 광전총국이 추진하는 한국 연예인 출연 규제는 FTA 시스템 아래에서 분명히 부당한 정부의 시장 개입이다. 이미 광전총국이 이런 조치를 각 방송사에 내려 보냈다는 소문이 파다하고, 홍콩 언론도 이를 연이어 보도하고 있는데도 중국 정부가 이를 공식화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개입이 부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광전총국의 부당한 개입을 확인했을 때,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중국 정부를 상대로 ISD 소송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이 소송은 한국 기업들이 승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에게 중국은 그야말로 노다지 시장이다. 동남아까지 퍼져있는 화교 자본과 중화문화권의 넓이를 생각하면, 결코 이들의 심기를 거스를 수가 없다.

광전총국의 부당한 개입으로 손실을 입은 CJ엔터테인먼트가 중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을까? 나중에 무슨 보복을 당하려고 그런 간 큰 짓을 벌이나? 장담하는데 그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너무 큰 강대국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ISD는 강대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이 된다. 미국 투자자는, 중국 투자자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결코 중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지 못한다. 한중FTA가 체결됐다는 이유로 무역 보복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야기가 말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중FTA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일이 이렇게 됐다면, 국익을 위해 할 수 있는 남은 방법은 무역 보복이 벌어지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은 소위 이경촉정(以經促政), 즉 ‘경제적 접근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을 국제관계의 골간으로 삼는다. 정치적으로 크게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한, 중국은 경제적으로 주변 국가들에게 이익을 넘겨주며 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 하는 속성이 있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사드 배치를 철회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사드 배치를 철회한다면, 애초에 아예 안 하려 했던 것보다 되레 중국으로부터 얻을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실질적인 국익을 도모하는 방법을 선택하자는 이야기다. “기업 몇 곳 망해도 괜찮다”는 것은 <조선일보>의 아둔한 생각일 뿐이다. 보수 세력들이 좋아하는 기업 몇 십 개 더 살리는 방안이 눈앞에 보이는데 그 방안을 외면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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