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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칼럼] 친일파와 일제잔재 청산, 참다운 광복을 기다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과의 오찬에 참석,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영관 옹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과의 오찬에 참석,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영관 옹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뉴시스

시민의 짜증을 유발하는 박근혜정부

지금부터 101년 전인 1905년 대한제국은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겼다. 그리고 2년 뒤인 1907년에는 군사주권까지 일제에 넘겨주었다. 외교권과 군사주권의 상실은 1910년의 경술국치로 이어졌다. 아예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한 세기 전에 일어났던 민족사의 비극이 2016년 한반도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사드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사드를 밀어붙이는 박근혜정부에게서 자주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정부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조를 깡그리 무시한 채 마치 대통령만이 권력의 주체인 것처럼 착각해 시민들의 합리적 요구를 해묵은 색깔론과 안보논리를 내세워 억압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대통령이 결정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종북이고 종중이며 매국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기껏해야 1년 반밖에 법정 기간이 남지 않은 정권에 의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다시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릴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하다.

어디 사드사태뿐인가. 이 정권의 실정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는 추문도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온다. 정권 탓은 아니겠지만 사상 유례가 없는 폭염까지 더해져 모든 것에 짜증이 날 정도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데서 짜증을 날려버리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건국절 추진 움직임에 대해 일갈한 원로 독립투사

지난 12일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 모임에 참가한 한국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가 대통령 면전에서 뉴라이트의 지론인 건국절을 밀어붙이는 박근혜정부의 비뚤어진 역사인식을 헌법까지 들먹이며 공박한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너무나도 당연한 문제제기에 대해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함으로써 이 정권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천박한 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청와대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상황이었겠지만 최근 정권 차원에서 벌인 일련의 역사왜곡 사태에 비추어볼 때 어쩌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이를 통해 박근혜정부가 대통령까지 나서서 입버릇처럼 ‘국가’, ‘국민’, ‘안보’의 미사여구를 늘어놓고 있지만 헌법 전문에 명기된 독립정신과 민주주의를 충실하게 따르는 정권은 아니라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되었다. 그래서 통쾌해 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그동안의 행태에 비추어볼 때 정권이 원로 독립투사의 고언을 받아들여 기존의 정책노선을 바꿀 가능성은 전무하다. 광복절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일어난 사건은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경기도교육청 제공

경기도 교육청의 일제잔재 청산 움직임

그래서 경기도 교육청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더 반갑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기도 교육청은 광복 71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 아직도 교육현장에 남아 있는 일제잔재를 청산하는 데 온힘을 기울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는 한 줄기 소나기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경기도 교육청에서 일제잔재의 대표적인 보기로 꼽은 것이 일본식 학교 이름이다. 해방된 지 71년이 되었는데도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억지로 바꾼 일본식 지명을 그대로 학교 이름으로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컨대 내가 사는 경기도 안산에는 감나무가 많은 동네라는 뜻의 감골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보통 사람은 뜻도 알 수 없는 시곡(柿谷)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해방 이후에는 감골이라는 알기 쉽고 아름다운 이름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감골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시곡초등학교와 시곡중학교라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지명을 그대로 따온 이름을 쓰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학교 이름을 붙인 경우는 시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래서 경기도 교육청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식으로 지어진 지명을 그대로 따르는 학교 이름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제일이라는 서열주의식 이름을 붙인 학교와 동서남북의 방위명을 쓴 학교까지 일본식 학교 이름 짓기의 유제로 보고 모두 바꾸기로 했다. 대상은 경기도의 전체 초·중·고등학교 2,385개 가운데 약 절반 정도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제잔재 청산을 위해 교육계에 남아 있는 일본식 용어를 정화하는 작업도 벌이겠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교육부문의 대표적인 일제잔재로 꼽히는 운동장 전체조회와 밀접하게 관련된 구령대(또는 조회대)를 정비해 학생 교육공간이나 휴계공간으로 활용하려는 것도 그렇고 일본식 군사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교장 훈사, 차렷과 경례 등을 개선하겠다는 것도 모두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걱정이 된다. 학교 이름을 바꾸는 데 반발하는 움직임이 바로 나타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일제잔재를 그대로 고수하려는 세력이 가만히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의회 앞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4,389명 필사본 제작 범국민운동 행사에서 직접 필사본을 제작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의회 앞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4,389명 필사본 제작 범국민운동 행사에서 직접 필사본을 제작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친일청산의 실패로 되살아난 친일파

올해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1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은 게 35년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두 배가 되는 70년이 넘는 세월은 꽤나 긴 시간으로 여겨질 수 있다. 사람의 나이로 치더라도 환갑이 훨씬 지난 셈이다. 70년이라는 시간은 일제잔재를 청산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해방 이후 한반도에 형성된 분단체제는 일제잔재의 청산을 가로막거나 지연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그 결과 일제잔재의 청산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불행하게도 일제의 식민통치는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해방 이후 우리 민족의 최대 과제는 자주적인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과 이를 위한 기초로 일제잔재를 청산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청산이란 법, 교육, 문화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일제가 이식한 국가지상주의, 집단주의, 전체주의, 군사주의, 반공주의를 일소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역사는 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친일파가 각계에서 지배세력으로 다시 등장하면서 일제잔재 청산도 물거품이 되었다. 교육분야만 놓고 보더라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제국주의와 천황에 충성을 다하는 황국신민이 되라고 가르치던 교육자들이 해방 이후 교육계를 장악했다. 교육계뿐만이 아니다. 그 어떤 분야에서도 친일파 청산은 이루어지 않았다. 친일파가 대통령이 되고 대법원장이 되고 육군참모총장이 되고 검찰총장이 되고 경찰 총수가 되었다. 그 자체가 일제잔재이기도 한 국가지상주의의 영향 아래 친일파가 핵심을 차지한 국가권력이 시민사회를 전면적으로 통제하는 가운데 일제잔재는 그대로 되살아나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제잔재가 살아 숨쉬는 교육현장

국민학교라는 이름부터가 그렇다. 국민학교의 ‘국민’은 조선인을 천황의 충성스런 신민으로 기르겠다는 뜻의 ‘황국신민화’를 줄인 말이었다. 일제가 조선인을 침략전쟁에 동원할 필요가 생겼을 때 기존의 소학교를 굳이 국민학교로 바꾼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당연히 해방 이후 국민학교라는 이름은 사라져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것은 해방된 지 50년이 지난 1995년의 일이었다. 초등학교가 사라진 것은 일제잔재 청산의 진일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학교 이름 하나 바꾸는 데 반세기의 시간이 필요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일제잔재 청산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례, 애국조회, 훈화 등 대표적 일제잔재가 광복 71주년을 맞이하는 현재도 교육현장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교육부문에서의 일제잔재 부활은 그 자신이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데 충실한 식민지 교사 출신인 박정희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시절에 특히 두드러졌다. 교육칙어를 베낀 국민교육헌장이 제정되고 황국신민서사를 연상시키는 국기에 대한 맹서가 제정된 것이 모두 박정희정권 때의 일이었다. 교육은 일제강점기 때 그랬던 것처럼 애국이라는 이름 아래 권력에 맹종하는 집단주의를 국민에게 심어주는 도구의 역할을 했다. 그런데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는 지금도 애국조회를 실시하고 훈시를 하는 학교들이 있다. 심지어는 유치원에서도 애국조회를 한다. 박근혜정부는 아예 애국심을 고취한다는 미명 아래 태극기 사랑과 애국가 부르기를 강조한다. 그러고 보면 이 정권 들어 유난히 마치 천황이 신민에게 하는 것과 같은 훈시성 명령의 성격을 띤 국민담화나 대통령 발언이 남발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친일파 이름을 땄던 ‘백일초등학교’가 2일 오전 학교명칭 변경식을 통해 ‘성진초등학교’로 새출발하고 있다.
친일파 이름을 땄던 ‘백일초등학교’가 2일 오전 학교명칭 변경식을 통해 ‘성진초등학교’로 새출발하고 있다.ⓒ광주광역시교육청

일제잔재 청산의 귀결점은 식민주의 청산

일제잔재 청산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5년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의 일환으로 옛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것이 대표적인 보기이다. 이때의 해체작업은 광복절을 맞아 전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다. 그러나 옛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함으로써 역사가 바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은 허망한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한 단발성의 전시행사로 일제잔재가 청산되고 역사가 바로 세워질 수 있다면 지금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일제찬재 청산이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사회구조, 문화, 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일제잔재를 없애지 않는 한 일제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해방된 지 반세기도 더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일제잔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보기를 들어 ‘묵찌빠’는 우리 고유의 놀이인 것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묵찌빠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말에서 비롯된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더욱이 그 어원이 일제의 군국주의와 직결되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묵찌빠는 원래 일본의 구찌빠 놀이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기서 구는 군함, 찌는 침몰, 빠는 파열을 의미한다. 곧 군함에 의한 침몰과 파열을 표현하는 놀이가 구찌빠였던 것이다. 구찌빠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이끈 일본해전을 기념하는 놀이였다. 이 놀이가 식민지조선에 들어와 묵찌빠로 변형된 것이다. 우리는 묵찌빠라는 놀이를 통해 무의식중에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있었던 셈이다. 묵찌빠 외에도 우리 일상생활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제잔재가 남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뎅을 어묵으로, 다꾸앙을 노란무로, 스시를 초밥으로, 사시미를 회로 바꾸어 쓴다고 해서 일제잔재가 청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울과 경기도 안산을 잇는 지하철 4호선의 평촌역은 원래 벌말역이었다. 벌말은 ‘벌판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이름만 들어도 그 지역의 유래가 한눈에 그려진다. 그런데 어느 날 벌말역이 평촌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평촌이라는 이름은 1914년 일제가 지방제도를 개편하면서 순 우리말 동네 이름을 모두 일본어식 한자 이름으로 바꿀 때 새로 생긴 것이다. 말하자면 벌말역이 평촌역으로 바뀐 데는 우리 고유의 이름보다는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이름을 더 존중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던 셈이다.

인천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개발된 송도 국제도시도 마찬가지이다. 섬을 뜻하는 ‘도’가 지명에 들어가 있지만 송도는 섬이 아니다. 송도는 이른바 일본의 3대 절경의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센다이(仙臺) 마쓰시마(松島)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일본해군은 자신들이 보유한 군함에 마쓰시마를 기념하기 위해 송도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송도함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당시 인천 앞바다에서 벌어진 해전에 참전했다. 일제는 1936년 인천의 구역을 확장하는 가운데 군국주의 침략을 미화하기 위해 새로 인천에 편입된 부천군 문학면 옥련리에 송도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해방이 되자마자 일본식 지명을 다시 우리말 이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송도정은 옥련동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05년 국제도시를 개발하는 데는 새로운 지역 이름이 필요하다는 논리 아래 다시 송도동으로 돌아갔고 이른바 송도 국제도시가 개발된 것이다. 섬도 없는 곳에 송도라는 이름을 붙이고 국제화 운운하는 것은 결국 역사를 일제강점기로 돌리자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국정교과서반대 청소년행동은 서울 광화문역 앞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7차 청소년 거리행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청소년은 다양한 역사교과서를 원한다라며 박근혜 정부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국정화를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정교과서반대 청소년행동은 서울 광화문역 앞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7차 청소년 거리행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청소년은 다양한 역사교과서를 원한다라며 박근혜 정부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국정화를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김철수 기자

국정교과서 사태와 이어진 일제잔재

해방 70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일제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진부한 논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그러한 문제가 거론될 정도로 일제의 식민통치가 남긴 폐해는 막심하다. 일제 식민통치가 남긴 부정적 유산은 단지 자원 수탈, 민족문화 말살, 각종 악법 제정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묵찌빠나 일본식 지명은 눈에 보이기라도 한다. 힘들기는 하지만 그것이 일제잔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런 놀이를 하고 그런 지명을 쓰는 데 문제가 있으니 고치자는 주장이라도 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미 구조화된 일제잔재, 우리의 의식 안에 남아서 지금도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식민주의의 유산이다.

2014년 식민사관에 절어 있는 문창극을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한 데 이어 친일파의 후손이어서 그랬는지 문창극을 적극적으로 두둔한 이인호를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KBS) 이사장으로 임명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박근혜정부 자체가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문제의식을 결여하고 있다. 대통령 자신이 친일파인 박정희의 생물학적 딸이자 정치적 후계자인 데다가 역시 친일파인 김용주의 아들인 김무성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대표를 지냈다는 사실 등은 친일의 문제가 어느 정도 구조화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일제잔재의 청산이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일제 식민통치와 친일파를 미화하는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가 2013년 박근혜정부의 교과서 검정을 버젓이 통과했고 지금은 그 교과서를 전범으로 한 국정교과서 집필 작업이 비밀리에 강행되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 사태나 그에 뒤이은 국정교과서 사태는 모두 역사교육을 국가(더 정확하게는 정권)가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검은 속내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정제에서 검정제로의 전환 자체가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결실이었고 전체주의교육에서 민주주의교육으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국정제가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일본 등 파시즘국가가 시도한 바 있던 국가주의교육의 중요한 도구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박근혜정부가 국정교과서를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박근혜정부는 전체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하나의 역사’를 내세워 국정제를 강행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군위안부’ 문제 야합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듯이 다시 군국주의의 길을 걷는 일본과 박정희정권을 제외하고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유착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정부가 식민사관에 절은 문창극을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하고 박근혜정부의 고위 공직자들 사이에서 신판 친일파가 대거 등장하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는 공개적으로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는 공직자가 등장할 정도이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항간에는 박근혜정부가 대한제국의 주권을 일본에 팔아넘긴 이완용내각과 다를 바 하나 없다는 비판마저 나돌고 있다.

국정교과서와 국가주의 역사교육

올해 초에 박근혜정부의 첫 번째 역사 국정교과서가 선을 보였다.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교과서를 보면 국가주의 서술이 훨씬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특히 근·현대편에 해당하는 단원 2와 단원 3은 ‘나라의 역사(국가사)’에 국한된다. 근대편에 해당하는 2단원의 제목이 ‘근대 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과 민족 운동’, 그리고 현대편에 해당하는 3단의 제목이 ‘대한민국의 발전과 오늘의 우리’로 되어 있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근대에는 나라를 지키거나 되찾으려는 역사가 우리 역사이고 현대에는 나라를 발전시킨 것이 우리 역사라고 가르치라는 셈이다.

국가주의 서술의 정점은 마지막 쪽의 “대한민국의 발전은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라는 문장에 그대로 압축되어 있다. 이는 신판 국민교육헌장이다. 교육과정에 따르면 초등학교 역사교육의 목표는 민주시민을 기르는 데 있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는 아예 언급도 하지 않은 채 국가의 발전을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 할 것만을 강조하는 교과서를 과연 민주시민을 기르기 위한 교과서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점을 비판했더니 교육부의 답변이 가관이다. “해당 내용에 대한 비판은 국민의 책임과 의무를 교육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평가”로 보인다는 것이다.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기에 앞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먼저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국가주의 논리로 대응하는 것을 보면 역사 박근혜정부답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회원들이 30일 오후 60주년 한미동맹의 날 경축연이 예정된 서울 용산구 하얏트호텔 앞에서 백선엽 한미동맹상 반대 공동 평화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회원들이 30일 오후 60주년 한미동맹의 날 경축연이 예정된 서울 용산구 하얏트호텔 앞에서 백선엽 한미동맹상 반대 공동 평화행동을 진행하고 있다.ⓒ이승빈 기자

민주정권의 수립만이 일제잔재 청산의 마지막 해결책이다

다시 경기도 교육청의 일제잔재 청산 움직임 이야기로 돌아가자. 경기도 교육감은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다. 진보 교육감이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교육감으로서의 올바른 권한을 행사해 일제잔재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밝힐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경기도 교육청의 결단이 진보 교육감이 있는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보수 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도 일제잔재 청산의 기풍이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교육자치제에 대해 국가권력이 호시탐탐 개입과 통제의 칼날을 들이미는 상황에서 교육청 차원의 일제잔재 청산만으로는 부족하다. 민주화의 결실인 검정 교과서조차 국정으로 되돌리는 것이 보수정권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일본식 학교 이름을 바꾸는 것도 교육부가 관행의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렇다면 결국 일제잔재 청산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이 바뀌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권이 아니면 일제잔재 청산은 불가능하다.

2009년에는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회, 그리고 2010년에는 역시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법에 정해진 활동을 마감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국가차원의 친일청산은 마무리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에서는 기왕의 친일청산마저 부정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예컨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회가 결정한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친일군인 백선엽의 경우를 보자.

국방부는 이명박정부 시절부터 “항일무장세력에 대한 탄압 활동과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것으로 결정된 백선엽을 한국전쟁의 전쟁영웅으로 기려 명예원수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여기에는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까지 가세했다. 2011년에 불거진 백선엽 다큐멘타리 제작 및 방송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백선엽은 “조선인 항일세력은 조선인의 손으로 잡는다”는 목표 아래 친일파를 앞세워 만든 조선인부대로 악명이 높던 간도특설대 출신(만주군 중위)이었다. 그런 백선엽에게 한국군인의 최고명예를 부여하겠다는 셈이니 이쯤 되면 가치관의 전도가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시민사회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의 백선엽 영웅 만들기 작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아니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더 노골적으로 진행되었다. 2013년부터는 아예 한미동맹60주년을 맞아 10대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백선엽의 이름을 붙인 ‘백선엽 한미동맹상’이라는 것을 만들었을 정도이다.

백선엽과 관련된 일련의 움직임은 민주정부 이후 잠시 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친일청산이 언제든지 형해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작년에 서울시 교육청에에서 관내 중·고등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을 보급하려고 했을 때 교육부는 노골적인 반대 움직임을 보였다. 친일청산은 일제잔재 청산과 동전의 양면이다. 친일청산이 실패하면 일제잔재 청산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경기도 교육청에서 어렵게 시작한 일제잔재 청산의 움직임이 요원의 불길처럼 널리 번져나가기를, 그리하여 2016년이 일제잔재 청산의 실질적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아니 뜻있는 사람들의 힘을 모두 모아 그렇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고 해방 이후에는 민주화운동가와 통일운동가들이 꿈꾸었던 완전한 자주독립국가가 이 땅에 실현되는 그 날을 꿈꾸는
광복 71주년의 아침이다.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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