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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역사학자들 “건국절·국정교과서·사드.. 대한민국은 총체적 위기”

“박근혜 정권이 ‘건국절’을 말하는 이유는 독립운동가를 역사에서 지우고 식민지 시절 일본에 부역했던 민족반역자들을 건국 주역으로 바꾸려는 시도이다” 원로 역사학자인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가 정부·여당의 ‘1948년 8·15 건국절' 제정 주장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도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확정지으며 ‘1948년=대한민국 수립(건국)’설을 발표했다”면서 “건국절 주장은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고, 독립운동과 헌법정신을 모독하는 것이므로 즉각 폐기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로 역사학자들과 역사단체들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위기의 대한민국, 현 시국을 바라보는 역사학계의 입장 기자회견을 열었다.
원로 역사학자들과 역사단체들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위기의 대한민국, 현 시국을 바라보는 역사학계의 입장 기자회견을 열었다.ⓒ민중의소리

20여명의 원로 역사학자와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서양사학회 등 20개의 역사단체 등이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위기의 대한민국, 현 시국을 바라보는 역사학계의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행사는 100여년전인 1910년 8월22일, 대한제국이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고 강제병합조약이 서명된 날을 맞아 현 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비판하고 바로잡기 위해 마련됐다.

‘건국절’ 주장하는 정부·여당..
현 정권이 독립운동가를 지우려는 이유?

역사학자 등은 성명서를 통해 “보수정권이 독립운동 정신을 훼손하고 식민지배와 친일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일제 식민사관에 찌든 문창극을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한 데 이어, 뉴라이트 건국절 주장을 용인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올 광복절 경축사에 또다시 ‘광복 71주년이자 건국 68주년’이란 발언을 했다”면서 “건국절 주장의 본질은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의 법통성과 선열들의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민족반역자인 친일파를 건국 주역으로 탈바꿈하려는 역사세탁”이라고 지적했다.

광복절 63주년을 맞아 정부의 건국60주년행사에 불참하고 백범김구선생 묘소를 찾은 야당 의원들 (자료사진)
광복절 63주년을 맞아 정부의 건국60주년행사에 불참하고 백범김구선생 묘소를 찾은 야당 의원들 (자료사진)ⓒ민중의소리

건국절이란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인 1948년 8월15일이 ‘대한민국 건국일’이라고 주장하고, 이날을 광복절 대신 국경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앞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8월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내용의 ‘국경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수차례 상정한 바 있다. 하지만 건국절이 제정되면 친일파도 1945년 8월 15일 이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면 건국공로자가 되고,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치고도 해방 이후 단독정부 정부수립에 참여하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반국가사범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많은 논란이 돼 왔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건국절 주장과 관련해 “독립운동과 헌법정신을 모독하는 것이므로 즉각 폐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1919년 9월 중국 상해에 통합임시정부가 생겼고, 이승만 대통령과 제헌국회도 대한민국의 출발점이 임시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면서 “하지만 왜 현 정부가 민족의 독립운동과 국가의 정통성에 대해서는 인색하게 구는 반면 일제 통치의 연장선상에서 나라가 이뤄졌다는 뉴라이트 주장에는 쉽게 동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정교과서, ‘위안부’ 합의, 사드..
침몰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호’

역사학자들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교과서 강행, 한일 ‘위안부’ 합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등을 언급하며 “현 정세가 100여년 전 국가의 존망이 위협받던 때와 유사한 위기국면”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정교과서반대 청소년행동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가 내리는 속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5차 거리행동을 진행한 뒤 청계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자료사진)
국정교과서반대 청소년행동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가 내리는 속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5차 거리행동을 진행한 뒤 청계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자료사진)ⓒ양지웅 기자

이들은 “교과서 국정화는 주권자로부터 한시적으로 권력을 위임받은 집단이 자신의 해석을 유일한 역사로 판단하고 이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정부가 민주시민 양성을 가로막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한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시대착오적 역사인식”이라고 비판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대해 “지난 수십년간 피해자들이 요구한 ‘일본군 위안부 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보상 그리고 명예 회복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 등 어느 것 하나도 요구하지 않은 채 단돈 10억엔에 역사를 팔아먹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역사학자들은 19세기 말 서구열강이 동아시아에서 패권경쟁을 벌던 시기 대한제국이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나라를 빼앗긴 상황을 언급하며 “박근혜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은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과 외교갈등을 증폭시키는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중국의 급성장으로 미국의 헤게모니 질서가 도전받고 있는 지금일수록 (사드배치에) 더욱 장기적인 전략과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 정부는 새로운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갈 만한 비전과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면 심지어 무책임하기까지 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2016년 8월, 세월호의 뒤를 따라 침몰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호’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친일, 독재, 분단, 냉전으로 치닫는 지금의 항로를 자주독립, 민주, 인권, 평화통일을 향한 항로로 바꿔야 한다”면서 국민에게 “선택에 기로에 서있는 대한민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현정권의 탈선을 막아내는 데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이날 발표된 성명서에는 박현서 한양대 명예교수, 윤경로 한성대 명예교수, 이근수 경기대 명예교수, 이이화 전 서원대 석좌교수 등 20여명의 원로 역사학자들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역사역구회, 한국서양사학회, 민족문제연구소 등 20여개의 역사단체들도 성명에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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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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