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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리] 평택에서 성주로, “왜”라는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얼마 전 '전복과 반전의 순간'(강헌/돌베게)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이 책은 음악평론서인데 다른 평론서처럼 음악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훌륭함을 이야기하지 않더라구요. 음악들을 통해서 지난 100년 동안 우리 삶속에 어떤 위대한 진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이 음악들이 현재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역사적 통찰을 담고 있었지요. 특히 끝까지 '왜?' 라고 묻는 필자의 물음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한 힘이 된 것 같아요. 음악을 잘 모르는 저도 읽는 내내 가슴 뭉클했고 고양됐고 왜? 라고 제대로 ‘묻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어렸을 적, 저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어요. 엄마, 아빠에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엄마, 아빠는 ‘몰라도 돼’ ‘크면 다 알아’ 내 질문을 귀찮아하셨지요. 엄마, 아빠의 귀찮아하는 표정을 보면서 그분들이 싫어하는 걸 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점점 왜 라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왜?' 라는 질문을 해본 지가 얼마나 됐던가.... 머리를 싸매게 되네요. 남편을 따라 평택을 왔을 때, 아파트 위로 헬리콥터인지 군용기인지 모를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갈 때도 왜? 라고... 묻지 않았어요. 줄서서 지나가는 군용차량 때문에 도로가 몇 시간씩 막혀도 왜? 라고 제대로 묻지 않았고 대추리가 미군기지로 강제 수용된다고 했을 때도 왜? 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껏 말이죠.

평택 대추리
평택 대추리ⓒ민중의소리

대추리, 평택 미군기지가 있는 이주단지 대추리가 제 삶터에요. 대추리 마을 어르신들과 매일매일을 지냅니다. 그분들에게는 특유의 고단함이 묻어나는데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어요. 소중한 무언가를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들의 분노, 일생을 일구어온 땅을 이유 없이 내주어야했던 노여움... 그런 마음들이 일상에서 고단함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어요. 그 고단함은 작은 텃밭 농사에도 나타나요. 작은 텃밭에 엄청난 정성과 시간을 드려요. 텃밭에는 잡초 한 포기 보이지 않아요. 풀이 나기 전에 모두 뽑아버리거나 약을 주기 때문이지요. 또한 고춧대부터 감자밭까지 한 치의 오차 없이 줄 서 있는 고랑을 보면 농사를 모르는 저에게도 강박 같은 불안감이 전해져요.

옛말에 농사는 자식농사와 같다고 했어요. 손이 너무 가도 안되고 그렇다고 그냥 냅둬도 안되는. 부모의 손길이 많이 가서 자칫 마마보이가 되듯 농사도 적절함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에요. 24절기와 때를 맞춰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도 다 그 적절함을 이루기 위함인 것 같아요. 하지만 대추리 어르신들의 농사법은 절기와 때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누구보다 먼저 작물을 심고 다른 집보다 먼저 파종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추리에서는 4월 말이 아니라 3월부터 고추를 심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그분들의 일상이 위태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적절함이 묻어나지 않는 거죠. 땅을 잃어봤기 때문에 다시는 그렇게 땅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작은 텃밭에서도 나타나는 겁니다.

그런 일상을 사는 어르신들에게 왜? 라고 저는 묻지 못했어요. 그렇게 물을 수 있는 용기도 없거니와 그분들이 마주할 아픔이 얼마인지 알기에 더욱 못했던 거죠. 나를 지켜줄 것만 같은 국가가 폭력을 가하는 순간 한 개인의 일상은 절대 불안으로 접어들어 가요. 대추리 어르신들의 일상을 보면 알아요. 이런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국가를 향해 왜? 라고 묻고 싶어졌어요. 지금껏 무심했던 모든 상황에 대해서도 말이죠.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군청에서 열린 36번째 사드배치 철회를 위한 촛불문화제에서 주민들이 사드배치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군청에서 열린 36번째 사드배치 철회를 위한 촛불문화제에서 주민들이 사드배치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사드가 배치된다고 해요. 성주라는 지역에 떡 하니 자리 잡고 들어서는 거죠. 대추리 어르신들이 그렇듯 그곳 주민들도 터 잡고 살던 곳을 허무하게 내주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국가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 당당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대추리 어르신들이 그렇게 지켜내고 싶어 했던 것들은 실은 우리 모두가 ‘왜’라고 묻는 그 순간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요.

며칠 전, 8.15 광복절을 맞아 성주 군민 908명이 삭발을 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분들은 땅에 씨 뿌리고 농사 짖던 농부들이죠. 그분들이 이제는 국가를 향해 왜? 라고 질문을 하고 있어요. 대추리 어르신들도 성주주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서는 모습을 보며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없지만 모두 같은 마음으로 지키고 있는 거죠. 어르신들은 대추리 싸움에서 보여주었던 주민들의 힘이 성주에서는 한층 진화되어 있다고들 하면서 ... 대추리의 불안한 일상이 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성주와 함께 하고 계세요.

“성주 군민들의 일상을 찾아주십시오. 지난달 13일 날벼락처럼 성주 사드배치가 발표되고 한 달. 우리 성주 군민들은 일상을 잃어 버렸습니다. 여름 한철 마을 주민들끼리 관광버스를 타고 나들이 한번 가는 즐거움을 잃어 버렸고, 방학을 맞은 아이들 데리고 계곡으로 물놀이 가는 기회도 놓쳐 버렸습니다. 올림픽 경기도 눈에 안 들어오고, 저녁 먹고 촛불문화제에 가는 게 새로운 일상이 돼버렸습니다. 참외농사를 짓던 평화로운 고장 성주는 전쟁터가 되었고, 성주군민은 내 땅에서 난민이 돼버렸습니다.”

삭발을 한 어느 성주군민이 대통령께 띄운 호소문의 일부에요. 일상을 잃어버린 성주군민들. 이 호소문은 성주군민이 아니라 온 국민이 띄우는 호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있을 때에만 국가는 성립하지 않을까요. 왜? 라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너, 좌파지’ ‘종북이지’ 하는, 질문이 죽은 이 사회. 여태 무심했던 나를 돌아보며 대추리에도 성주에도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도 불안한 일상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다시 왜? 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기지평화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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