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2년5개월, 말라붙은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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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월호 참사 2년5개월, ‘침몰 위기’ 특조위
  2. 2014.4.17 진도="약속 안 지켜지면 다 물러나야 한다"
  3. 2014.5.19 청와대=눈물의 담화
  4. 2014.5.16 청와대=마지막 만남
  5. 세월호 참사 100일=외면
  6. 눈앞의 유가족 외면한 박 대통령 "여러번 만났다"
  7. 세월호 1주기=나홀로 담화, 물대포
  8. "배신의 정치"
  9. 특조위에 대한 '철저한 무시'
  10. 집요한 '특조위 죽이기'
  11. "세금 많이 든다"며 '특조위 활동 보장' 거부
  12. 대한민국은 '골든타임'을 놓칠 것인가
  13. 이 기사의 히스토리
최명규 기자 최종업데이트 2016-09-15 21:38:04
  • CARD 1/

    세월호 참사 2년5개월, ‘침몰 위기’ 특조위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국민적 염원에 따라 구성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박근혜 정권에 의해 9월 30일자로 침몰할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해 8월 겨우 예산을 배정받고 조직을 구성하면서 본격 활동을 시작한 지 불과 1년 1개월 만이다.

    정권 차원의 집요한 '세월호 죽이기'에 맞서 시민들의 울분 섞인 단식이 50일 넘게 전개되고 있다. 추석 연휴에도 수많은 이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특조위가 처한 현실은 1948년 9월 '친일파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안고 태어났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떠올리게 한다.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채 1년도 안 돼 폭력적으로 와해됐다.

    역사의 데자뷰. 반민특위가 좌절된 아픔은 70년 가까이 지난 현재 박근혜 정권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은 말라붙은 지 오래이다.

    2014년 5월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눈물 흘리던 박근혜 대통령.
    2014년 5월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눈물 흘리던 박근혜 대통령.ⓒ뉴시스

  • CARD 2/

    2014.4.17 진도="약속 안 지켜지면 다 물러나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다음날인 4월 17일.

    박 대통령은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향해 사고 현장을 둘러본 뒤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했다.

    "제발 살려 달라!", "이게 국가냐!" 실종자 가족들은 오열했다. 분노했다. 사고 초기 '전원구조' 소식은 오보였다. '지상 최대'라고 떠들던 구조 작업 진행 상황은 오리무중이었다.

    한 실종자 가족은 박 대통령에게 "정부가 우리를 계속 속여왔다"고 성토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그럴 리가 없다"며 "여러분들과 얘기한 게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분들은 다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실종자 가족이 자신의 핸드폰으로 약속 이행상황 등을 직접 연락해 달라고 요청하자 박 대통령은 "전화번호 주세요"라고 응했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말씀주신 것들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전화 한번 드리겠다"고 말했다.

    CCTV 영상을 통해 구조현장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상황판을 설치해 달라는 요구에도 박 대통령은 즉각 화답했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그날 밤 체육관에는 200인치 대형 영상패널 두 대가 설치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4월 17일 오후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해 가족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4월 17일 오후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해 가족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 CARD 3/

    2014.5.19 청와대=눈물의 담화

    박근혜 대통령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4일째 되던 날이었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자신의 "모든 명운"을 걸고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다"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약속했다. '특검'과 '여야,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도 언급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공허한 약속'이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5월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5월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뉴시스

  • CARD 4/

    2014.5.16 청와대=마지막 만남

    담화 3일 전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다.

    박 대통령은 '특별법'과 '특검'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또 유가족들의 의견을 계속 수렴해 반영하고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진상규명에 있어서 유족 여러분들이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날 만남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가족들의 얼굴을 마주한 마지막 자리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5월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단과 면담을 마친 후 배웅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5월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단과 면담을 마친 후 배웅을 하고 있다.ⓒ뉴시스

  • CARD 5/

    세월호 참사 100일=외면

    박 대통령의 약속도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 100일(2014.7.24)을 앞두고도 '특별법' 제정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400만명에 가까운 국민들이 서명해 국회에 청원한 세월호 특별법안은 무시됐다.

    세월호 가족들, 시민사회, 야당은 성역없는 진상조사를 위해 진상조사기구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은 강경하게 막아 나섰다.

    세월호 가족들은 "죽는 것 빼고 다 해보겠다"는 심정으로 단식, 농성, 행진, 서명 등 광범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을 펼쳤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는 2014년 7월 14일부터 46일간 단식을 벌였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향했지만 경찰이 길을 막았다.

    김영오 씨를 비롯한 세월호 가족들의 손을 잡아준 이는 박 대통령이 아니었다. 수만 리를 날아온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교황은 "유가족들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해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진상조사기구 수사권·기소권' 요구에 대해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든다"며 공식 거부 입장을 표명했다.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복미사를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카퍼레이드 도중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가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만났다.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복미사를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카퍼레이드 도중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가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만났다.ⓒ교황방한준비위원회

  • CARD 6/

    눈앞의 유가족 외면한 박 대통령 "여러번 만났다"

    2014년 10월 29일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국회 본관 앞 농성장에서 밤샘을 하며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9시 41분께 본관 앞에 등장한 박 대통령. 유가족들은 '가족 참여 특별법 제정', '안전한 대한민국'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어보였다. "애들 좀 봐주세요!" "애들을 살려주세요!" 유가족들은 호소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발길만 재촉했다. 유가족들은 "유족 입장에서 진상규명 한다면서 왜 외면하냐"며 오열했다.

    박 대통령은 이듬해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면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소통 의지 부족'이라는 지적에 "세월호 유족 분들은 사실 여러 번 만났다"고 반박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10월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뒤 본관 밖으로 나오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지나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10월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뒤 본관 밖으로 나오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지나치고 있다.ⓒ뉴시스

  • CARD 7/

    세월호 1주기=나홀로 담화, 물대포

    2015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이날 박 대통령은 유가족들도 없는 팽목항을 방문해 '나 홀로 담화'를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특조위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조직을 축소하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제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에 반발한 유가족들은 박 대통령에게 "시행령 철회"에 대한 확답을 갖고 추모제가 예정된 경기 안산으로 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무시됐다. 박 대통령은 팽목항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뒤 중남미 순방을 떠나버렸다. 박 대통령은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유가족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변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시행령 철회" 요구에 대한 답은 차벽과 물대포였다. 세월호 1주기 추모대회 등에서 경찰은 물에 한이 맺힐 대로 맺힌 유가족들을 겨냥해 캡사이신(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난사했다.

    이 물대포는 그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는 칠순의 백남기 농민의 머리로 향했다. 백남기 농민은 300일이 넘게 사경을 헤매고 있다. 박 대통령은 백남기 농민의 이름을 단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인 2015년 4월 16일 유가족들도 없는 전남 진도 팽목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참사 1주기인 2015년 4월 16일 유가족들도 없는 전남 진도 팽목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민중의소리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2015년 5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북인사마당 앞에서 1박2일 문화제를 열고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촉구한 가운데 경찰이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쏘며 해산을 시도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2015년 5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북인사마당 앞에서 1박2일 문화제를 열고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촉구한 가운데 경찰이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쏘며 해산을 시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 CARD 8/

    "배신의 정치"

    2015년 6월 25일 국무회의.

    박 대통령은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 행사를 강행한다. 앞서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을 겨냥해 "위헌", "정부 기능 마비" 등의 비난을 쏟아내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상태였다.

    국회법 개정안에는 정부가 제정을 밀어붙인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과 같은 이른바 '하극상 시행령'에 대해 국회의 '시정 요구권'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개정법이 시행되면 첫 대상은 당연히도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회법 개정안은 사망선고를 받았다. 사실상 '세월호 죽이기'였다. 법안 처리에 합의했던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배신의 정치"로 낙인 찍혀 물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6월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6월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 CARD 9/

    특조위에 대한 '철저한 무시'

    박 대통령은 특조위를 상대로 '철저한 무시'로 일관했다.

    박 대통령은 이석태 위원장을 비롯한 특조위 위원들을 단 한 차례로 만나지 않았다. 2015년 3월 5일 특조위 상임위원 임명장 수여도 박 대통령이 중동 순방을 나간 사이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가 대신 했다.

    '시행령' 파동 때 이석태 위원장이 장관급으로서는 사상 초유의 광화문 농성을 하면서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아무런 답변 없이 거부했다. 이 위원장이 청와대로 향하는 길도 경찰에 가로막혔다.

    이석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장이 2015년 4월 3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철회를 촉구하며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후 이 위원장은 청와대로 향했으나 경찰에 막혔다.
    이석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장이 2015년 4월 3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철회를 촉구하며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후 이 위원장은 청와대로 향했으나 경찰에 막혔다.ⓒ정의철 기자

  • CARD 10/

    집요한 '특조위 죽이기'

    박근혜 정권의 '특조위 죽이기'는 집요하게 전개돼 왔다.

    2015년 1월 16일 '친박'(친박근혜) 핵심 김재원 당시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출범조차 못한 특조위를 겨냥해 "세금 도둑"이라고 비난한 이후 정부·여당은 갖가지 수단을 총동원해 '특조위 죽이기'에 나서 왔다. 김 수석부대표는 현재 청와대 정무수석이기도 하다.

    특조위 여당 추천 위원들과 파견공무원을 통한 '내부 분란' 획책, '동향 파악', 특조위 조사활동에 대한 정부 기관의 비협조와 방해, 각종 매체를 통한 '마타도어'(흑색선전) 등 공세 방식도 가지가지였다.

    특히 '시행령'과 함께 '예산'을 통한 '목 조르기'는 대표적인 공세 수단 중 하나였다. 정부는 지난해 7개월 동안 특조위에 예산을 단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그러다 정부는 같은해 8월 4일 박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반토막' 낸 예산을 기습적으로 통과시켰다. 당초 특조위가 요구했던 160억원은 89억원으로 깎였다. 삭감된 예산은 대부분 진상조사와 관련된 예산이었다.

    정부는 2016년도 예산 편성에서도 특조위가 요구했던 198억7천만원을 3분의 1도 안 되는 61억7천만원으로 대폭 깎아 버렸다. 선체조사 예산도 전액 잘라냈다. 선체조사에서 아예 특조위를 배제하겠다는 뜻이다.

    게다가 정부가 편성한 예산은 6개월분이었는데 이는 특조위 조사 활동을 6월 30일에 강제로 종료시키겠다는 노골적인 의도였다.

  • CARD 11/

    "세금 많이 든다"며 '특조위 활동 보장' 거부

    박근혜 정권의 '특조위 강제해산' 시도는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특조위는 9월 30일 문을 닫아야 될 판이다.

    이에 이석태 위원장은 또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나섰다. 이 위원장으로부터 시작된 릴레이 단식농성은 50일이 넘어섰다. '예은 아빠' 유경근 씨, '준형 아빠' 장훈 씨 등 세월호 가족들은 최장 20일 동안 단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당이 발의한 '특조위 활동 보장'을 골자로 하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은 새누리당의 강력한 반대에 의해 막혀 있다. 특조위가 제출한 특검 요청안도 새누리당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이처럼 정부·여당이 '특조위 죽이기'에 골몰해 온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청와대'에 있다. 정부·여당은 야당에 특조위 조사 대상에서 청와대를 제외해주면 조사기간을 보장해 줄 수 있다는 제안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으로 표상되는 청와대의 참사 초기 대응은 진실규명에서 핵심적인 대목이다. 청와대가 참사 당시 구조는 아랑곳없이 'VIP(대통령) 보고'에만 열을 올렸던 정황은 이미 국회 국정조사나 특조위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그러나 '성역없는 진상조사'를 약속했던 박 대통령은 '특조위 활동 보장'에 대해 "세금이 많이 들어간다"며 수차례 거부 입장을 밝혀왔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2주기 때는 '세월호'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2016년 8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4.16 가족협의회 전면 단식선언 기자회견에서 8일째 단식 중인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16년 8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4.16 가족협의회 전면 단식선언 기자회견에서 8일째 단식 중인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 CARD 12/

    대한민국은 '골든타임'을 놓칠 것인가

    정권 차원의 집요한 공세 속에서도 특조위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1, 2차 청문회에서는 해경 수뇌부의 책임, 국가정보원-청해진해운 관계의 일각이 드러났다. 특조위는 세월호에 검찰 조사에서 누락된 대량의 철근이 실려 있었던 사실도 밝혀냈다. 이 철근의 일부는 제주 해군기지로 가던 중이었다.

    특조위는 '대관 취소 압박' 등 정부의 방해에도 지난 9월 1~2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3차 청문회를 실시했다. 참사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 'KBS 보도통제' 논란의 당사자인 이정현 현 새누리당 대표(당시 홍보수석) 등 핵심 증인들은 대거 불참했다.

    하지만 3차 청문회에서 발표된 TRS(주파수공용통신) 교신기록 분석 결과에서는 해경이 대통령 보고를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에어포켓에 거짓 공기주입을 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세월호는 아직 바다 밑에 있다. 그러나 진실을 향해 가던 특조위는 선체 조사도 못 하고 좌초될 위기에 놓여 있다.

    말라붙은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 대한민국은 이대로 '골든 타임'을 놓칠 것인가.

    2016년 9월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에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제3차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2016년 9월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에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제3차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김철수 기자
    2016년 9월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에서 열린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제3차 청문회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방청하고 있다.
    2016년 9월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에서 열린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제3차 청문회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방청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 CARD 13/

    이 기사의 히스토리

    이 기사는 2016년 9월 15일 처음 발행됐습니다.

    최명규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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