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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젠트리피케이션을 담아낸 2016년의 노래들

글쎄, [젠트리피케이션] 이 음반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들을지 모르겠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싱글과 음반이 쏟아지는 시대이니 말이다. 사실 온라인 음원사이트에서 눈에 띄는 곳에 배치되어 있다고 해도 이미 알고 있는 뮤지션이 아니라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데 이 음반은 거의 들어본 적 없는 뮤지션들이 만든 음반인데다 음반 제목은 젠트리피케이션. 이런 음반은 일부러 찾아 듣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다.

행여 음반 타이틀을 발견했더라도 너무 심각하다고, 분명 재미없다고 예단할 가능성이 높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여도 이런 음반은 의미만 좋고 음악적으로는 재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예전의 민중가요들을 떠올리고는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고정관념과 예상은 잠시 내려놓자. 세상 모든 일이 예상대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이 음반을 들어보자. 이 음반은 음반 타이틀처럼 총 11곡의 노래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주제로 한 음반이다.

음반 ‘젠트리피케이션’
음반 ‘젠트리피케이션’ⓒ@일상의 실천

뮤지션들이 현장에서 만난 ‘젠트리피케이션’

젠트리피케이션은 지금도 곳곳에서 진행중이고 특별한 누군가만 당하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수록곡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이 무엇이고,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누가 이득을 챙기고 누가 손해를 입는지를 분석하거나 설명하지는 않는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 끈질기게 싸워야 한다고, 그렇게 해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고 호소하지도 않는다. 11곡의 노래는 각기 다른 뮤지션들이 젠트리피케이션 현장과 마주치면서 떠올리고 느끼고 생각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다.

이들은 대부분 민중가요보다는 인디 신의 활동에 더 밀접한 영향을 받으며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뮤지션들로서 싱어송라이터들이다. 당연히 자신이 직접 노랫말을 쓰고 곡을 썼으며 스스로 연주하고 노래했다. 자신이 지금껏 해왔던 음악 스타일과 자신의 정서로 음악을 만든 덕분에 11곡의 노래가 담긴 음반에서는 개별 뮤지션들의 개성과 차이가 오롯하게 부각된다.

밴드 노컨트롤에서 활동하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의 핵심 조합원으로 이 음반을 프로듀싱하고 녹음한 황경하가 조직한 파다파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복고적인 신스 팝으로 담담하게 ‘다시 만나’자고, ‘난 괜찮’다고 노래한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 가서 피해당사자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곤 하는 김동산은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이 되는 바람에 수원 지동 29길에서 쫓겨나게 된 유병남 할머니의 사연을 삼각전파사와 함께 블루스의 감성이 묻어있는 곡 <수원 지동 29길>로 만들었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아나킨 프로젝트는 <너와 나의 콘크리트>라는 곡으로 콘크리트 중심의 개발과 해체에 중독된 한국사회를 통렬하게 조롱했다. ‘옥바라지골목과 아현포차를 지키기 위한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는 황푸하는 섬세한 감성이 돋보이는 포크 곡으로 자본과 권력을 이겨내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을 곱씹었다.

빼어난 싱어송라이터 김해원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삶의 공간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이들의 황망하고 서글픈 상실감을 핍진하고 서정적으로 복원한 명곡을 더했다. 올해 1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여유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삶을 잃고 슬픔에 잠긴 이들의 마음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담아냈다. 일렉트로닉 뮤지션 있다는 공간감을 부각시킨 음악으로 우리 시대의 불안과 공포를 아울렀다.

심애리와 이권형은 곱고 순결한 감성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버무려 쫓겨나고 싸워야 하는 이들의 마음을 드러냈으며, 김동산은 끝내 포기하지 않고 싸움을 계속하려는 이의 의지를 경쾌한 블루스 음악에 담아 노래했다. 유레루나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 친구들에 대한 곡’을 담았으며, 박지하와 김오키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 비어버린 공간에서 일렁이는 마음을 섬세한 연주로 기록했다.

그런데 이 노래들을 듣는다고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가 무엇이고 젠트리피케이션과 어떻게 맞서 싸워야하는지를 알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슬프고 분하고 억울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해, 그들의 삶과 마음과 영혼이 망가지고 흔들린다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이 음반의 수록곡들이 모두 듣는 이의 마음을 설득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완성도와 개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재산권보다 소중한 ‘인간애’와 ‘공감능력’

예술은 논리로 설득하지 않고, 감성으로 나 아닌 타자를 이해하며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데 이 음반의 수록곡들은 모두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음반의 수록곡들은 음악적 완성도 측면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고른 완성도를 보이며 사회적 의제를 담은 음악도 얼마든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회적 의제를 담은 음악의 완성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잠시 미뤄두자. 중요한 것은 이 음반의 수록곡들 가운데 다시 듣고 싶어지지 않는 곡이 한 곡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지금은 자신을 빼앗긴 이들의 편에 두기보다 빼앗으려는 이들의 편에 두고, 법의 정신보다 실정법의 조항에 더 연연하는 이들이 더 많은 시대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과 우장창창을 비롯해 최근 이슈가 되었던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 대한 언론 보도와 칼럼 등에 달린 댓글 가운데 절대다수가 법 조항을 방패로 자신의 재산권만을 지키려는 이들의 편에 섰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한 개인의 살 권리보다 다른 개인의 재산권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고, 그리하여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발버둥조차 조롱받고 비난받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엄밀한 법적 타당성과 논리적 근거가 아닐지도 모른다. 한 개인의 삶도 함부로 내쳐져서는 안된다는 인간애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공감능력. 그것이야말로 많은 이들이 망각하고 잃어가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존엄과 연대의 기본일 것이다.

이 젠트리피케이션 음반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사회적 참사를 다루면서 바로 그 인간애와 공감능력을 일깨우며 북돋고 있다. 수록곡들은 서로 다른 장르와 어법으로 각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완성도 높은 음악이 되게 만들어냈다. 그 덕분에 이 음반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무관심하거나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도 말을 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으며 음악 자체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게 되었다.

이는 이 음반에 참여한 이들이 선한 의지로 시대의 문제를 껴안으려는 작가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방법론으로 노래를 노래답게 만들어내는 개성과 창작력을 가진 덕분이다. 그 덕분에 이 음반은 민중가요뿐만 아니라 사회적 현실을 담은 노래들 가운데 일부 곡에서 보였던 메시지 과잉과 빈약한 완성도라는 단점이 거의 보이지 않는 순도 높은 음반으로 완성되었다.

음악하는 뮤지션과 현장을 지키는 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 돋보여

이 음반이 민중가요 진영이나 활발한 사회참여를 해왔던 뮤지션들에 의해 제작되지 않았음에도 이처럼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는 점은 지금 한국 대중음악 씬의 저력과 다채로운 씬의 존재에 대해 주목하게 만든다. 또한 여전히 현장 활동을 하고 있는 민중가요 뮤지션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과거 민중가요 뮤지션들이 해왔던 역할이 이제는 더 많은 뮤지션들로 확산되고 이전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는 사례라는 점에서도 특기할만하다.

실제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장 등을 비롯해 사회적 폭력의 현장에 참여하고 있는 민중가요 진영 뮤지션들의 활동과 작품은 최근에는 이처럼 다양한 작품과 높은 완성도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젠트리피케이션 음반에 참여한 이들은 항상 진보적인 메시지를 음악화하고, 조직적 사회운동과 연계해서 활동을 펼치지는 않지만 우장창창, 옥바라지 골목, 아현포차 등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는 현장에 꾸준히 결합해서 노래했을 뿐만 아니라 ‘밤을 새다 용역깡패들에게 포위되어 개처럼 강제로 질질 끌려나오는 괴로운 경험도 수차례 겪었다.

그리고 이 음반 역시 녹음실에서 녹음된 것이 아니다. 음반의 프로듀서이자 녹음 엔지니어인 황경하는 테이크아웃드로잉, 수원 지동 29길, 경의선공유지, 뽀빠이화원, 우리동네나무그늘, 요기가갤러리, 옥바라지골목 구본장여관, 통영생선구이와 같은 최근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서 각각의 노래를 녹음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노래의 현장성을 극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음악을 하는 뮤지션과 현장을 지키는 이의 간극을 최대한 좁히려고 노력했다.

이는 물론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가능한 방식이었지만 ‘음악을 행하는 사람과 그걸 듣는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담고 싶었다’는 발상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대개 특정 사안의 문제가 발생하면 뮤지션은 그 문제를 담은 노래를 만들고 현장에 가서 부르고 돌아오며, 얼마나 핍진하고 완성도 높게 노래를 만들어냈는지가 주요한 평가지점이 되는데 이 음반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장과 현장의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다가가 서로 영향을 받으며 노래 안팎에서 만들어지는 교감까지 담아내려고 한 것이다.

이 음반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실제로 과거 민중가요 진영에서 만들어진 노동가요 가운데에서는 노동자들이 직접 삶의 이야기를 쓰는 과정에 창작자들이 함께 참여하고, 그 공동작업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어내서 다시 그 노래를 함께 부르며 울고 웃는 경우가 많았다. 전문가들이 만든 노래를 수동적으로 향유하는 방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음반 속 현장 예술의 지향은 예술이 지켜야 할 가치와 역할 가운데 소중한 부분을 채워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서 힘겹게 버티는 이들에게 큰 힘과 감동을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김동산이 작업한 곡들은 과거의 방식을 재현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현재의 언어로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가치가 있다. 시대는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지만 음악을 통해 교감하고 기록하며 이를 통해 음악이 삶에 가닿고, 뮤지션과 비뮤지션의 경계를 허물면서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오늘의 현장에서 계속 이어진 것이다.

노래 혹은 예술이 오늘의 문제에 반드시 답을 주고 문제를 해결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처받고 아프고 힘겨운 이들의 곁에서 삶과 시대를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기록하고 되새기고 보듬는 것은 언제 어디서건 예술이 감당해야 할 역할 가운데 하나이다. 음악과 예술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삶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 음반은 과거 민중가요 진영이 만들어내고 여전히 지켜가는 정신이 오늘 더 많은 뮤지션들에 의해 이어지며 새로운 음악운동으로 확산되었을 뿐 아니라 오늘의 음악으로 더 풍부하게 완성되고 있음을 낙관하게 하는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놓치지 말아야 할 음반이며 소중한 기록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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