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성남시가 시행 중인 ‘청년배당’ 사업을 두고 새누리당 의원과 이재명 성남시장 사이에 설전이 오갔다. “무상복지 홍보잔치를 그만 둬야 한다”는 신보라 새누리당 의원의 비판에 이재명 시장은 “(청년배당보다) 좋은 정책이 있으면 달라. 그러면 제가 하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어 “대한민국 사회에서 청년들은 역사상 가장 어려운 취약계층이 되고 말았다”며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2년 동안 취업하면 한 달에 50만원 지원하는 정책도 해봤지만 청년들이 ‘헬조선’을 탈출하고 싶다는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재명 시장의 “예산을 아껴 4대강처럼 강이나 파는 토목 공사로 예산을 낭비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속 시원한 발언까지 나오면서 ‘청년배당’을 문제 삼으려던 새누리당의 시도는 역풍만 맞은 채 끝나버리고 말았다.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기본소득 논의
성남시가 시행하고 있는 청년배당은 3년 이상 성남시에서 거주해온 19~24세 청년에게 연 100만 원씩 ‘청년배당금’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청년배당금은 현금 대신 유통기한이 설정된 지역상품권 또는 지역 내에서만 사용가능한 전자화폐 등으로 지급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다. 이 청년배당은 국내에선 최초로 도입된 ‘기본소득’ 개념의 정책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개개인에게, 일을 하든 안 하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따지지 않고 조건 없이 국가에서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새누리당 등 보수세력들은 ‘악마의 속삭임’이라며 ‘기본소득’ 개념의 도입에 맹렬히 저항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과연 ‘악마의 속삭임’일까? 일을 하든 안하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국가에서 소득을 준다는 게 과연 가능한 것일까? 청년배당을 통해 기본소득 정책을 실험하고 있는 이재명 시장은 “기본소득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정사회를 위해 상식의 파괴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기본소득은 과연 헬조선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이 될 수 있을 지 주목되는 가운데 기본소득의 정치철학적 정당화와 예산 확보 방안에 큰 기여를 한 기본소득스페인네트워크 대표 다니엘 라벤토스의 저작인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가 출간됐다. 이재명 시장이 이한주 교수와 함께 번역 출간한 이 책은 기본소득에 대한 가장 간결하고 체계적인 입문서다.
기본소득은 성남의 청년배당 사업 외에도 스위스의 기본소득 도입 국민투표 등을 계기로 국내 언론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는 정책이다. 기본소득은 전 세계적으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를 비롯해 20여 개 자치단체가 기본소득을 적극 검토 중이다. 우리나라에선 꽤 오랜기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광범위하게 확산되지 못하다가 민중연합당,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들이 지난 총선에서 공약으로 내거는 등 최근 들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성정치권에서도 우리 정치권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전향적인 의견이 나오는 등 그 어느때보다 논의가 활발해지는 양상이다.
기본소득의 급속한 확산에는 흥미로운 이유가 있다. 얼핏 급진 좌파적 복지 정책의 하나라고 보일 수 있는 기본소득이 정치적 좌우를 가리지 않고 지지를 받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책은 기본소득의 정당성은 좌파적 복지제도보다는 공화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오랜 보수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기본소득의 궁극적 목적이 최소한의 생계를 사회로부터 보장받음으로써 인간의 가장 중요한 권리인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대안
공화주의적 자유의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작업에 천착해온 저자는 ‘자유롭다는 것은 생존을 위해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이며, 이 공화주의적 자유는 재산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재산이 부여하는 자립, 물질적 생존, 그리고 자치의 기반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하는 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며, 따라서 기본소득의 도입은 공화주의적 자유의 증대를 의미한다. 모든 사람들, 특히 가장 빈곤하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생존권과 개인적 기회는 기본소득으로 보장된 공화주의적 자유에 의해 크게 증진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복지와 마찬가지로 빈곤을 없애자는 제안이지만,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빈곤을 없애는 것은 자유의 실현을 위한 조건이다. 이 같은 전향적 관점에서 자유의 추구와 불평등의 해소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다른 면일 뿐이다.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기본소득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정치적 스펙트럼 안에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기존의 복지 정책과 마찬가지로 빈곤을 없앰으로써 불평등과 실업 문제에 대응하자는 제안이지만 정당성의 획득, 시행 방식, 그리고 효과 면에서 매우 다르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로는 자산 조사의 여부다. 가령 기존의 자산 조사를 통한 선별적 보조금은 자신의 빈곤을 증명해야 하기에 모욕감을 주며,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벌면 복지급여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보수가 낮은 노동이나 파트타임직 등에 대해서는 노동 의욕을 가질 수가 없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이 책은 기본소득은 현실성 없는 주장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19세기의 노예 해방, 20세기 투표권 확대에 이어 오늘날 인간다운 삶을 위한 혁명적 변화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특히 점점 더 극심해지는 불평등과 빈곤 문제, 그리고 다가올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예상되는 대규모 실업이라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으로 검토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관련한 보다 진지한 논의가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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