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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의 미술이야기] 시월의 전시 스케치

미술관에 들어서면 조용하고 고급스러워서 다른 세상 같지만 그 곳 역시 한국이다. 나는 작가들의 예민한 감수성을 신뢰하는데 불편함을 외면하지 못하는 예민한 감수성이 변화를 만들어 내는 씨앗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 만들어지고 있는 누군가의 작품에는 이 사회의 어떤 불편한 모습이 담아지고 있을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 중인 <올해의 작가상 2016>에서는 한국미술의 현재를 볼 수 있다. 2012년부터 진행된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협력하여 역량 있는 미술 작가를 후원하는 권위있는 수상 제도다. 1,450여 점의 드로잉을 통해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 김을, 사진 매체에 대한 실험을 하는 백승우. 그리고 축구선수가 된 탈북 소년과 공동작업을 한 함경아. 강제이주되는 식물을 통해 개발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믹스라이스 팀이 전시 중이며 신작과 함께 지난 활동의 아카이브, 심층 인터뷰 영상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이 중 유일하게 말을 걸어오는 작품은 믹스라이스의 “덩굴연대기”였다. 재개발과 이주라는 익숙한 사회현상을 다루고 있어 몰입에 어려움이 없다. 작품의 소재 또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이다. 2채널 영상 “덩굴연대기”에서 볼 수 있는 나무의 의인화 그리고 “우리는 왜 외부를 내버려 두지 않는가? 우리는 왜 모두 내부여야만 하는가?”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마치 소유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인간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탈북 소년을 응원하는 함경아의 프로젝트는 수혜적 이벤트로 보여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탈북’이라는 정치적 상황의 본질을 포착할 수 있는 장치가 하나만 더 있다면 어땠을까.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들의 경향은 한국현대미술을 읽는 중요한 단서다. 지난 2014년 수상은 사진작가 노순택. 노순택과 믹스라이스의 공통점은 예민한 사회적 감각이다.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민낯을 볼 수 있는 현장에서 그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순택은 공권력과 시민들이 대치하는, 긴장감 넘치는 현장에 어김없이 존재하며 찰나를 포착한다. 믹스라이스의 오랜 화두는 타국에서 이주해 온 노동자들이었다.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률 그 조명 밑에 떨어진 짙은 그림자. 주류 사회로부터 소외된 곳에서 빛을 꿈꾸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 온 시간들이 그대로 작품으로 남았다. 동시대 풍경을 담고있는 작품들, 이들이 있어 나는 전시를 본다.

믹스라이스의 아카이브 공간에 전시되고 있는 프라이팬. 이 프라이팬으로 핫케이크를 구우면 케이크에 글씨가 새겨진다.
믹스라이스의 아카이브 공간에 전시되고 있는 프라이팬. 이 프라이팬으로 핫케이크를 구우면 케이크에 글씨가 새겨진다.ⓒ박민희

지난 18일 종료된 홍진훤 개인전 <쓰기금지모드> 또한 이주 현상을 다루고 있었다. 작가는 전국의 뉴타운 재개발 지역, 제주 강정마을, 밀양, 오키나와, 후쿠시마 등 국가폭력에 의해 삶을 빼앗긴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해왔다. <쓰기금지모드>에서는 미군기지확장을 위해 사라진 평택 대추리마을의 지금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빠른 시간 내에 쌓아 올려졌을 벽돌들, 같은 업체에 시공한 듯 비슷해 보이는 대문. 서양식 대문에 새겨져 있는 도깨비 문양 부조처럼 어색하게 모여있는 주택들. 복사, 붙여 넣기가 쉽고 익숙한 세상과 그 세상을 카메라로 또 다시 복제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한 사람. 새 외장하드에 사진파일들을 복사하던 중 ‘쓰기금지모드’ 경고창에 안도감을 느꼈다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조현아 개인전 <누군가의 목소리가요, 듣고 싶어집니다.>는 인간관계가 약해져 홀로 죽음에 다다르게 되는 노숙인들의 ‘무연사’를 통해 삶과 죽음을 말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노숙인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시도했던 작가. 생경함 그리고 구체적인 삶을 마주했을 때 마음의 무게. 하지만 전시장에 놓여진 것은 열 명의 목소리가 뒤엉킨 어떤 ‘소리’ 뿐이었다. 그 속에 잠시 머물렀고 어떤 이야기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작가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며 느끼고 생각한 것들, 그 경험을 좀 더 전해 듣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지양, 인세인박 작가의 <지나치게 감상적인:W/M>전시는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여성혐오’, ‘페미니즘’, 남녀관계에 대한 논쟁을 부추긴다. 특히 자극적이었던 작품은 인세인박의 오줌이 통하는 관과 비디오로 구성된 “girl do not need a prince(소녀는 왕자가 필요하지 않다), 2016”. ‘FEMINIST(여성주의자)’ 모양으로 구부려진 관에는 시간이 지나 희석된 작가의 오줌이 흐르고 있고, 싱글채널영상에는 왕자가 백설공주의 입에 침을 뱉는 패러디 이미지가 나오고 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해보려 노력했지만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분명한 건 이 작품은 ‘FEMINIST(여성주의자)’에 오줌을 싸고있다. 전시는 10월 30일까지 진행되며, 전시장에 가면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다. 혹시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시를 보고 대화를 시도해보면 어떨지.

girl do not need a prince(소녀는 왕자가 필요하지 않다), 인세인박, single channel video, loop, 2016
girl do not need a prince(소녀는 왕자가 필요하지 않다), 인세인박, single channel video, loop, 2016ⓒ박민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오일 동안 진행되었던 <유니온 아트페어>는 청년과 예술인들의 고달픈 삶을 언급하며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 낸 것에 의미를 두었다. 하지만 이 시대 예술의 역할을 고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기획의도는 (전)시장에서 찾기 어려웠다. 그곳을 빠져나왔을 때 심장을 쿵쿵 울리는 음악과 들뜬 분위기 외에 기억에 남는 작가나 작품은 없었다. 어디선가 본듯한 문장들이 병렬되어 있는 전시 서문이 못내 아쉽다.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곳에서만 미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창신동 꼭대기의 갤러리 ‘지금여기’, 황학동 중고품 시장 속 ‘케이크갤러리’, 문래동 공업지대 지하에 존재했던 ‘space XX(스페이스 엑스엑스)’ 외 수많은 어떤 공간들. 땀내 나고 손때 묻은 거리, 기계돌아가는 시끄러운 소음까지 사색의 연장으로 만들어버리는 현장들. 전시공간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 안에 동시대의 공기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젊은 작가들로부터 한국미술의 내일을 본다. 그들의 예민한 감성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잘 견뎌내기 바라며.

박민희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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