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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교의 인문학 교실] 아이들아, 촛불을 함께 들자

요즘 시국을 걱정하는 촛불 집회에 청소년들도 더러 나온다. 어느 고3 학생들은 “(눈 앞에 닥친) 시험보다 나랏일이 더 중요”하다 싶어 나왔댔고 어느 고2 학생들은 “투표권도 없는 미성년자요,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가고 싶지만 나라가 망해 간다는 생각에 공부만 하고 있을 수 없었”댔다. 중학생과 초등학생까지 촛불을 들었다. 어느 고등학생들은 당당하게 자기 학교 교문 앞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했고, 또다른 고등학교에는 대자보가 붙었다.

원광고등학교 학생회 대자보
원광고등학교 학생회 대자보ⓒ원광고 학생회 페이스북

이렇게 나랏일을 걱정하고 나서는 청소년들이 대견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절인가? 온 국민이 집권자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는 것으로 모자라, 그런 집권자한테 휘둘리고 살아온 세월이 부끄러워서 치를 떨 지경이다. 초등 코흘리개 입에서 “나라가 이상하다.”는 말이 나도는 세상이다. 사변事變이 나도 단단히 났다. 그러니까 (집회) 옆자리에 앉은 눈빛 똘망똘망한 청소년 몇몇을 보고 (“너희도 나왔구나!” 하고) 흐뭇해 할 일이 아니라 촛불집회에 나온 청소년이 왜 아직 한 줌밖에 안 되는지를 심각하게 걱정할 일이 아닐까?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데 말이다.

거리로 나와야 정상正常이다

그동안 우리는 촛불집회에 청소년들이 얼굴을 비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익숙하게) 여기며 살았다. “애들은 입시 준비에 바쁜데 뭘.” 하지만 반세기 전에 터져 나온 4.19 혁명 때는 중고생은 물론이요 초등학생까지 거리로 나왔다. 그 시절의 신문에는 서울 수송 국민학생들이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는 펼침막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 사진이 실렸지만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독재자 이승만이 물러난 뒤로도 혁명운동은 한동안 계속됐다. 도시에서는 중학생들이 ‘혁명하자!’고 앞장섰지만 시골 읍내에서는 국민학생(!)들이 ‘혁명’을 외치고 다녔다. 그러니까 이제는 고정관념(?)을 허물어야 하지 않을까? 촛불집회에 청소년들이 무더기로 우루루 나와야 정상正常이라고, 그래야 비로소 ‘뉴 노멀normal’을 이뤄내는 것이라고!

빗속에서 치러진 이날 촛불집회에 광주지역 청소년들도 참여해 ‘사드배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빗속에서 치러진 이날 촛불집회에 광주지역 청소년들도 참여해 ‘사드배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김주형 기자

우리 청소년들이 입시 지옥에 짓눌려 얌전한(무기력한) 순둥이로 살아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광우병 파동때 정치의 주체로서 잠깐 촛불을 들었지만 ‘반짝 이벤트’로 그쳤다. 일본과 미국과 중국은 어떤가. 거기 청소년들은 한국 청소년보다도 더 정치적 무관심이 짙은 것 같다. 무슨 정치적 행동에 나섰다는 소식을 들은 적 없다. 하지만 바람결에 들려오는 blowing in the wind 1) 소식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2년 칠레의 대학생과 중고생들은 ‘공교육의 예산을 늘리라’며 ‘펭귄’(교복을 달리 일컫는 별명)들의 행진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2005~2006년에 벌인 싸움이 다시 터져 나왔다. 우리는 나라 전체가 걱정스러워질 때에만 청소년이 거리로 나왔는데 그 나라에선 청소년들이 자기들 삶의 문제를 갖고서 목소리를 냈으니 훨씬 앞서 나간 셈이다. 8년 전에 프랑스에 갔다가 파리 민중이 ‘청년고용법’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는 광경을 본 적 있다.2) 고등학생 행진 대열이 가장 활기찼다. 리듬감 넘치는 구호를 외치며 다들 춤추며 걸어갔는데 그렇게 주눅들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한국의 일부 청년들처럼) 자살의 유혹을 느낄 리 없다.

왜 나오라는가

우리는 왜 아이들더러 ‘거리로 나오라’고 부르짖는가? 왜 비상벨을 울리는가? ‘박근혜게이트’는 지나온 민주화의 역사를 다시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지만 우리가 절박하게 맞닥뜨릴 과제는 단순히 ‘과거 바로잡기’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앞으로 닥칠 현실이 더 엄중하다. ‘혼술족, 혼밥족’이 요즘 유행어가 됐다는 것은 가족 울타리가 무너져서 그들 상당수가 외롭게 살아갈 거라는 회색빛 예고다.

그뿐인가.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은 것은 (기술혁신이 이뤄졌으니 긍정적인 구석은 쬐끔 있다 해도) 당장은 미래 세대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그게 장밋빛 사건이 아니라니, 무엇인가 잘못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20세기말부터 세계적으로 빈부貧富 양극화의 흐름이 한결 가팔라졌다. 대다수 민중의 삶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이미 그 결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뒷걸음질을 쳤고, 우리 아이들은 부모보다 더 가난하게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그뿐이랴. 제국주의가 개발도상국들의 운명을 마음껏 갖고 놂에 따라 (시리아, 이라크 등등에서) 전쟁 난민이, 기후변화(지구 온난화)가 깊어짐에 따라 환경 난민이 무더기로 생겨날 판이다. 또 미일美日과 중국 사이에 헤게모니를 둘러싼 다툼이 커져 가고 있으니 19세기말처럼 동아시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개연성도 높아지고 있다(강정마을에 들어선 미 해군기지를 떠올려라).

어쩌면 (경주 지진을 겪은) 우리는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기우제祈雨祭 비슷한 것을 해마다 지내야할지도 모른다. “제발 한반도에 지진이 일어나지 말라!”고. 우리 평생에 한번쯤은 큰 지진을 겪을 수도 있는데 그래서 원전이 무너질 경우, 한반도 전체가 생존 불가不可지역으로 바뀔 터이니까 말이다. 상상하기 싫은 일까지 우리는 대비하고 살아야 한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주최로 최순실 게이트’의 심각한 국정농단, 국기문란 행태에 청소년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청소년들이 박근혜가 망친 민주주의 청소년이 살리자!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주최로 최순실 게이트’의 심각한 국정농단, 국기문란 행태에 청소년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청소년들이 박근혜가 망친 민주주의 청소년이 살리자!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물론 아이들 몇몇이 거리를 뚜벅뚜벅 걸어 봤자 한참 동안은 ‘달걀로 바위 치기’다.3) 저희끼리 똘똘 뭉친 지배세력이 당장은 눈 하나 깜빡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들더러 거리로, 교문 앞으로 나오라고 말을 건네는 것은 그들더러 ‘주체로 나서는 연습’을 하라는 권고다.

아이들은 “공부만 하고 있을 수 없어서 거리로 나왔다”고 무심코 털어놓지만 그 공부를 왜 해야 하는데? 이른바 ‘좋은 대학’에 발탁되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공부는 겉껍데기(소외된) 공부 아니냐.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라면 무슨 못된 짓들이 벌어졌는지, 우선 샅샅이 알아야 할 것 아니냐. 먼저 폭넓은 문제의식과 타오르는 분노를 품어야 사회과학 책과 인문학 도서가 비로소 눈에 들어올 것 아니냐. 촛불에 나온 아이는 갖가지 절박한 세상 얘기를 듣고서 제가 왜 부지런히 (입시준비 아닌 참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 같은 불행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어찌 해야 하나?” 거기 모인 사람들한테서 힘도 얻는다. “세상(우리 위에 군림해온 지배세력)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구나.”

어린이들한테도 참정권을!

촛불에 나온 아이들아, 너희의 문제의식이 집권자 한 사람의 잘잘못을 따지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박근혜게이트’를 옳게 해결하려면 더 큰 질문을 던지자.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이 왜 자꾸 늘어나는지, 청년들의 앞날이 왜 안개 속 같은지 등등. 그 중에 하나가 너희의 참정권 문제다. “우리는 투표권도 없는 미성년자이지만...”하고 쭈삣거리는 청소년이 많을 터인데 한국 청소년들이 가장 늦게 투표권을 부여받는다는 사실을 아는가? 우리는 만 19세이지만 대다수 나라는 18세요, 브라질을 비롯한 대여섯 나라는 16세에 어른 대접을 받는다. 우리는 지금의 선거법에 만족해야 할까, 아니면 청소년들을 ‘나라 정치의 주체’로 더 정중하게 대접해야 할까?

여학생이 29일 서울 종로구 북인사마당에서 열린 최순실을 중심으로 한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에 대한 청소년들의  ‘박근혜가 망친 민주주의 청소년이 살리자’는 시국선언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여학생이 29일 서울 종로구 북인사마당에서 열린 최순실을 중심으로 한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에 대한 청소년들의 ‘박근혜가 망친 민주주의 청소년이 살리자’는 시국선언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역사학자 김기협은 ‘갓난애한테도 참정권을 주라’고 외친 적 있다. 그 애가 간단하게라도 읽고 쓸 줄 안다면 말이다. 그의 주장은 좀 과격한 것이라 해도, 초등 5학년쯤 되면 어엿한 식견과 인격을 갖출 나이가 아닌가?4) 교과서만 열심히 들여다 봐도 세상에 대해 기본적인 앎을 얻을 나이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초등학교를 마친 청소년한테는 다 선거권을 주라’고 외치고 싶다.

요즘 들어 그 사실은 더욱 뚜렷해졌다. “우리 000, 불쌍해서 대통령 시켜 줘야 한다.”고 수많은 노인들이 눈먼 믿음으로 표를 던진 반면, 한국의 초등학생들은 “나라가 망해간다”고 요즘 사태의 핵심을 옳게 짚어내지 않는가. 어느 쪽이 더 세상을 제대로 꿰뚫어 보는가? 김기협의 주장은 앞으로 노인이 늘어날 시대에 노인들이 저희 살 궁리만 하고, 정치인들은 그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젊은 세대에게 국가의 빚더미를 함부로 떠안길 것을 염려해서 나왔다(요즘 일본나라 정치가 그 모양인데 한국도 본받을 위험이 높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저희의 위태로운 앞날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라도 일찍부터 그들한테 정치참여의 권리라는 무기를 건네줘야 한다(적어도 선거권이라도).5) “청소년들아, 지금부터 너희 권리도 당당하게 부르짖어라!”

....촛불집회에 나오는 청소년이 몇 안 돼서 아쉽다. 사람은 ‘동무 따라 강남 가는’ 법인데, 어른들이, 또 교사들이 거리로 나가지 않으니 ‘미성년자’들이 선뜻 거리로 나가지 못한다.6) ‘시국선언’을 내건 어느 고등학생들은 그 학교가 오래 전부터 ‘철학’ 과목을 개설했던 것이 구실한 성 싶고(그러니까 인문교육 제대로 시키는 것이 참 중요하다), 대자보가 붙은 어느 고등학교는 그 학교 재단 자체가 ‘열린 눈’을 갖고 있었기에 학생들이 건강한 기풍을 발휘한 것 같다(그 학교는 원불교 재단인데 최근 원불교는 ‘사드 반대’의 소리를 냈다). 몇 해 전, 몇몇 고등학생들이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의 소리를 냈더랬는데 그 학생들은 대안학교 학생들이었다. 물론 가정의 TV 앞에서나 교실에서야 어른(교사)들이 시국을 걱정하는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줬겠지만 행동이 동반하지 않은 비판은 아이들을 (이 사회의) 능동적인 주체로 변화시키기 어렵다. 지금 나라꼴이 우스워진 마당에 나무라야 할 대상은 000를 밀어올린 사람들만이 아닐 것이다. 무기력한 소시민으로 살아서 청소년들한테 좋은 본을 보이지 못한 우리 어른(교사)들 대다수도 분발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부터라도!

각주

1) 밥 딜런의 이 노랫구절이 한국에선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라고 잘못 번역돼 불렸다. 바람결에 ‘전쟁 반대’의 함성소리가 들려온다는 얘기를 그때 한국 가수들이 이렇게 흐릿하게 번역했던 것은 그 강렬한 메시지를 감당할 용기가 없어서였다. 1960년대말 한국에는 68혁명의 바람이 불어오지 못했다.
2) 올 여름에도 프랑스 몇몇 고등학생들은 ‘노동법 반대’ 정치운동을 벌였다.
3) 2005년 대만 학생들은 ‘두발규제’ 반대운동을, 2008년 네덜란드 학생들은 ‘학교 수업일수 축소’ 운동을 벌였다. 학생들이 나라 전체 일에 미치는 영향은 작다 해도, 교육(또는 청년) 문제만큼은 발언권을 얻을 수 있다.
4) 교육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의 인격은 초등 6학년 나이에 다 형성된다고 했다. 그 뒤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댔다. 10대 초까지 ‘이웃 사랑’의 도덕성을 기르지 못한 사람은 커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5) 한 세기 전, 유럽에서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주자’는 주장이 나왔을 때도 온갖 황당한 구실로 반발하는 소리가 컸지만 지금은 잠잠하다. 한편 요즘 프랑스는 ‘어린이 입법단’이 발의한 법안을 의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생태 문제에 대처하는 법 몇 개가 그래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국은 몇 해 전에 청소년단체들이 ‘참정권 확대’를 외쳤는데도 기존의 정당들이 받아 안지 않았다.
6) 40세 이상 어른은 2200만 명, 교사는 33만 명, 미성년자는 천만 명 남짓이다.

정은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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